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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다.

 

예전에 이성선, 송수권과 함께 3인 시집을 낸 적이 있었는데...

 

"별 아래 잠든 시인"이라는 시집이었다. 세 시인이 모두 자연과 어울려 사는 삶을 노래하는, 자연친화적인 시를 쓴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런 경향을 잘 드러내는 시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인데...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시. 작은 것 하나도 가볍게 지나치지 않는 시인의 모습을 이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번엔 나태주 시인이 병고를 치를 때 쓴 시를 모아놓은 시집이다.

 

점점 어지러워지는 시대, 꽃과 새를 멀리하는 시대에 시인이 노래하는 이것들은 사라져버리고 있다.

 

우리가 잃어야 하더라도 잃지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시인이 시를 통해 그것들을 살려내는 일은 좋은 일이다.

 

이 시집에 있는 "시"라는 시를 보자.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나태주, 꽃이 되어 새가 되어, 문학사상사. 2007년 초판 2쇄. 59쪽 '시' 전문

 

이것이 바로 시고,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재발견해내는 사람.

 

결코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

 

나태주 시집. 사람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철철 넘치고 있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한 세상 잘 살아온 사람이 여유있게 삶을 관조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들이 모여 있다.

 

하여 시를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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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 또는 이주 노동자.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꽤 됐다.

 

매양 단일민족이라고 그걸 무슨 자랑거리인양 떠들어대는 우리나라에서 힘든일을 하지 않으려는 풍습이 생기니, 그 일자리를 우리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나라에서 노동자들을 수입(?)해 와서 그 일자리를 유지하려는 정책을 핀 적이 있다.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온갖 힘든 일은 다 했지만, 그만큼 대우는 받지 못했던 사람들.

 

이것도 그들 나라보다는 돈벌이가 더 된다고 브로커들에게 목돈을 주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그 돈을 갚지 못하면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었던 노동자들.

 

일자리도 힘든데, 그래서 산업재해도 많이 당하는데, 더 억울한 일은 임금을 떼이는 일. 사장이 공장이 어렵다는 이유로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는 다달이 꼬박꼬박 다 주고 / 동남아인 노동자들에게는 다달이 절반씩 미루면서 / 한국인 노동자들은 처자식에 부모 있고 / 동남아인 노동자들은 혼자이기 때문이라고'(하종오, 국경 없는 공장, 삶이보이는창. 2007년. 20쪽. '체불'에서) 하면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 일.

 

같은 노동자인데도, 그들도 자기들 나라엔 부모들이 다 있는데, 왜 혼자라고 그런 핑계를 대면서 돈을 주지 않는지, 은연 중에 한국인 노동자와 동남아 노동자를 편가르는 자본의 술수를 시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시에서만 나타나는 일이었으면 좋으련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이었으니.

 

이 시집은 이런 외국인 노동자들에(특히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 대한 차별과 박해(?)를 시에다 담고 있다.

 

어쩜 우리는 얼마 되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또 더 오래 전에는 하와이에 노동자로 돈을 벌러 떠나갔던 일들을 잊고 있는지도, 하다못해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가서 받았던 그 차별들도 다 잊었는지도 모른다.

 

조금 살게 되었다고, 돈이 조금 있다고 인간성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동남아 노동자들을 지금처럼 대할 때 그들은 '외국인노동자병원에 입원하기 전 / 외국인노동자들은 하나같이 / 고국에 돌아가서 한국인을 만나면 / 발길질하겠다고 별렀다'(하종오, 국경 없는 공장, 삶이보이는창, 2007년. 124쪽. '무료진료'에서)는 자세를 갖게 된다.

 

이런 생각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만연할 때 과연 우리는 세계시민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니다. 결국 국적을 떠나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한국인을 달리 봐야겠다고 / 외국인노동자들은 마음을 바꿔먹'(하종오 시집 . 125쪽. '무료 진료'에서)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은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슬프고 안타깝고, 그럼에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삶의 치열함을 느낄 수도 있는 그런 시들이 실려 있다.

 

시들이 전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시라고 볼 수 있는 이 시집은 우리나라 공장이 이제는 '국경 없는 공장'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국경 없는 공장'에서 사람들을 국경으로, 아니 국가의 경제력으로 나누는 그런 모습은 사라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특히 이 시집은 마지막 4부 '컨테이너 신혼집'은 일종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데, 영웅적인 주인공이 나오지 않아 서사시라고 하기 그렇다면 이야기시라고 해도 좋을 이 시는 날염공장의 컨테이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한 편의 소설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 컨테이너에서 벌어지는 슬픈 일들. 자본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이것이 한 때 우리나라의 모습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2007년에 나온 이 시집이 2013년이 된 지금도 유효하다면 그건 정말 비극이다.

 

그런 비극, 이제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자본은 국경이 없다. 자본은 어디에 가나 환영을 받는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아직도 국경이 있다. 그들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환영을 받든지, 천대를 받든지 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자본에게 국경이 없듯이 노동자에게도 국경이 없게 만드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지니는 기본 예의이지 않을까 싶다.

 

이 시집의 대표적인 시. 제목이 되는 '국경 없는 공장' 슬프지만 훈훈하다.

 

국경 없는 공장

내 친구는 직장생활 이십 년 / 퇴직금 받아 시골에다 / 이슬람국가로 수출하는

날염 하청공장 차린 지 / 삼 년도 채 안되어 / 이라크전이 터져 망했다

 

역사 선생 하다 왔다는 파키스탄 청년은 / 시간외수당 주지 않으면

잔업하지 않겠다고 늘 버티더니만 / 저축한 돈 가지고 귀국하면

사장보다 부자라며 빈둥거린다고 했다 / 대학 다니다가 왔다는 스리랑카 청년은

체류기간 넘어서 함부로 나다니지 못해 / 사장한테 일자리 알선해 달라며

기숙사에 박혀 지낸다고 했다 / 막일 하다가 왔다는 미얀마 청년은

사장이 손 내젓는데도 / 날마다 작업대 닦으며

체불임금 달라는 눈치 보낸다고 했다 / 야크 기르다가 왔다는 네팔 청년은

흙먼지 이는 앞마당에서 먼산바라기하고 / 벌목 하다 왔다는 인도네시아 청년은

소나무 우거진 뒷산 오르내리고 / 담배 농사짓다 온 필리핀 청년은

열무 심은 텃밭 맨다고 했다 / 눈치 빨랐던 베트남 청년과

손발 빨랐던 인도 청년은 몸이 아픈지 / 종일 담벼락에 기대 햇볕 쬔다고 했다

 

내 친구는 군대 간 아들이 / 봉급 더 받으려고 지원하여

이라크전에 참전한 뒤 / 기계 팔고 임대차보증금 빼내어

외국인노동자들에게 퇴직금 주곤 / 날염 하청공장 문 닫았다

 

하종오, 국경 없는 공장, 삶이보이는창, 2007년. '국경 없는 공장' 전문. 94-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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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는 몸을 살리는 교육 특집이다.

 

몸을 살린다기보다는 체육활동을 통해 건강한 신체를 만들고, 건전한 정신을 형성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학생들에게 '스포츠 활동'을 일주일에 4시간 정도 하도록 시간표를 통해서 강제하고 있기도 한데...

 

이것이 몸을 살리는 교육과 어느 정도 연관이 되기도 하겠지만...

 

학교 교육이 몸과 멀어진 지는 오래되었고, 학교 교육을 오랫동안 받으면 받을수록 몸과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학력이 높을수록 몸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우리가 몸을 떠나서 살 수 없고, 몸을 등한시하는 교육을 하면 더 이상이 발전이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민들레 이번 호에서 말하고 있듯이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움직임을 거세'하고 있으며, 또한 몸을 통제에 길들여지게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안학교들은 이런 점에서 조금 예외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안학교에서 하는 몸을 움직이는, 또는 몸을 살리는 교육을 제도권 학교에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여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몸에서 멀어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몸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호에서 말하고 있는 것.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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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헌책방 나들이를 한다. 그야말로 나들이다. 그 많은, 이미 남의 손때를 묻힌 책들 사이를 다니다 보면 책의 이력이 마음에 와 닿는다.

 

무슨 사연을 품고 여기까지 왔을까? 이 책은 누구에게서 이곳으로 왔을까?

 

그런 책들 사이를 유영하듯이 돌아다니다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으면 꺼내본다.

 

그리고 책의 상태를 보고(대부분은 책의 상태가 좋다. 헌책방에 있는 책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책들이니 말이다) 그 다음엔 가격을 보고... 헌책이라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 싶으면 얄팍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선뜻 집어들지 못하고... 우선 제자리에 꽂아두고 다른 곳을 둘러둘러 본다.

 

여러 책들이 눈에 들어왔을 때 그 책들의 우선 순위를 매기고, 다른 사람에게서 헌책방을 거쳐서 다시 내 손에 들어오게 되는 책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런 책 중에 하나가 이번에 고른 "천상병 시와 삶-구름 손짓하며는-"이다.

 

천상병이야 워낙 괴짜 시인으로 알려져 있고, 또 서울 인사동에 찻집 "귀천"도 있고, 그의 시 "귀천"은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시이기도 한데...

 

그의 시집을 갖고 있는 것이 세 권.

 

"괜찮다, 다 괜찮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이번 책은 그가 쓴 산문들과 시들을 모아놓은 책. 그래서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가격은 책 뒤를 보니, 참 오래 된 책이다. 1986년 책이라 3000원이라고 되어 있는데, 처음에 책이 나온 가격보다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내 손에 들어올 때 가격이 더 올라 있다. 4000원이란다.

 

허, 그러나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으니, 주인의 안목에 감탄을 하면서 고를 수밖에.

 

읽으면서 천상병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또 그를 다시 한 번 떠올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좋았다고나 할까.

 

단지 괴짜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 천상병으로서, 그리고 시인인 천상병으로서, 또 평론가인 천상병으로서 만날 수 있는 기회였으니.

 

그는 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시를 읽으면서, 어렵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쉽게 판단해야 한다. 어렵다고 생각되는 시는 시가 아니다. 수필적으로 읽을 수 있는 시가 좋은 시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소로운 일에서 인생의 근본을 생각케 하는 것이 시다. 믿음과 생활은 시의 근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어려운 말이 개입할 여지가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천상병 시와 삶-구름이 손짓하며는, 문성당. 1986년. 103쪽에서)

 

그래 시는 쉬워야 한다. 인생도 가뜩이나 어려운데 시까지 어려워서 사람을 힘들게 하면 안 되지.(설마 동종요법이라고, 세상이 어려우니 시도 어려워야 한다고 하지는 않겠지)

 

'귀천'이란 시야 워낙 유명하니까 넘어가고, 그만큼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유명한 시. '새'

 

그의 유고시집이라고 하는 시. 살아 있음에도 유고시집을 냈던 특이한 경력의 시인이 되게 했던 시집 "새", 그리고 시 '새'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무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천상병 시와 삶-구름 손짓하며는. 문성당. 1986년. 239쪽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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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은 내게 두 사람을 통해서 다가왔다.

 

한 사람은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는 시집에서 자신의 스승으로 구상을 이야기했고, 그래서 구상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다음으로 듣게 된 것은 화가 이중섭.

 

이중섭이 구상의 친한 친구였다는 사실. 둘은 모두 어려움을 겪지만, 특히 더 어려움을 겪었던 이중섭을 구상이 많이 도와주었다는 얘기.

 

이 시집에 나온 이들의 관계.

 

  향우 이중섭이 이승을 달랑달랑 다할 무렵이었다.

  나는 그래도 검은 장미빛 피를 몇 양푼이나 토하고 시신처럼 가만히 누워 지내야만 했다.

  하루는 그가 불쑥 나타나서 애들 도화지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애호박만큼 큰 복숭아 한 개가 그려져 있고 그 한가운데 싸 대신 조그만 머슴애가 기차를 향해 만세!를 부르는 그런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받으며

  <이건 또 자네의 바보짓인가? 도깨비 놀음인가>

하고 픽 웃었더니 그도 따라서 씩 웃으며

  <복숭아, 천도 복숭아

  님자 상이, 우리 구상이

  이걸 먹고 요걸 먹고

  어이 빨리 나으란 그 말씀이지>

 

  흥얼거리더니 휙 돌쳐서 나갔다.

 

구상 시선, 드레퓌스의 벤취에서, 고려원, 1986년 재판. 97쪽. '비의' 중에서

 

말이 필요없는 친구 관계.

 

그리고 대학에서 공부할 때 해방직후에 북한 지역에서 일어났던 "응향"지 사건에 구상도 연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이 "응향" 사건은 사람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아니니, 뭐.

 

구상이 시인이라고 알고 있고, 교과서와 비슷한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된 시는 '초토의 시'인데, 해방과 전쟁이 끝난 후 우리나라 현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시이다.

 

작자에게 있어서도 시 속에 사상적 요소를 보다 많이 담는 이와 감각적 경험이 요소를 보다 많이 담는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나는 앞쪽이라 하겠다.

 

구상 시선, 드레퓌스의 벤취에서, 고려원, 1986년 재판. '자서'에서

 

헌책방에 들러서 구하게 된 책인데, 이 책을 이제는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오래 된 시집이고, 오래 된 시지만, 이 시집에서는 오늘날 물신주의에 물든 우리들을 꼬집고 있는 시가 실려 있다.

 

어쩌면 물신주의는 인간이 함께 산 이래 계속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이 시를 이루고 있는 내용 역시 성경에 나오는 모세 때 이야기니까.

 

수천년 동안 이 물신주의에 벗어나지 못한 인간사회의 모습. 지금. 우리.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오로지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이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과연 이런 사회가 행복할까?

 

아닐 것이다. 것이다가 아니라 아니다.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선 이런 물신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도 없는 사람들보다는 있는 사람들이 더 물신에 물들어 있다. 물들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 없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듯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보편적인 양 말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우리는 그 옛날 모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니 모세의 말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그 외침.

 

사람을 사람으로 우선 생각하는, 그런 우리들의 본모습을 찾아야 한다.

 

    내가 모세의 선지와 진노를 빌어서

 

내가 모세의 선지와 진노를 빌어서 말하노니

새해 너희가 사람다운 삶을 되찾으려면

너희가 지금 우러러 섬기고 있는 황금송아지를

먼저 몰아내야 한다.

 

너희가 너희 식탁에서 유해식품을 사라지게 하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너희 고장에서 매연을 없애려먼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너희 집안에서 단란을 누리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너희 형제나 이웃과 화목을 이루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너희 어린 것들을 력사(轢死)에서 구해내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너희 지아비와 아내의 정조를 지키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백주에 살인강도를 만나지 않으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물에서 바다에서 떼죽음을 면하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학원에서 불변의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병원에서 인술로 병을 고치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법의 공정한 보호를 받으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격을 메우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서로 비정과 소외 속에서 벗어나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너희가 저 6.25의 참화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하고

그리고 너희가 영원이나 믿음이나 사랑과 같은

보이지 않는 힘과 삶의 보람들을 되받들어

마음의 평정 속에서 꿈과 일을 일치시키려면

너희는 먼저 그 황금송아지를 몰아내야 한다.

 

내가 모세의 선지와 진노를 빌어서 말하노니

새해 너희가 밝고 떳떳한 삶을 이룩하려면

너희가 지금 우러러 섬기고 있는 황금송아지를

먼저 몰아내야 한다.

 

구상 시선, 드레퓌스의 벤취에서, 고려원, 1986년 재판. 69쪽-71쪽

 

역시 시는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이 시는 지금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시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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