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헌책방 나들이를 한다. 그야말로 나들이다. 그 많은, 이미 남의 손때를 묻힌 책들 사이를 다니다 보면 책의 이력이 마음에 와 닿는다.

 

무슨 사연을 품고 여기까지 왔을까? 이 책은 누구에게서 이곳으로 왔을까?

 

그런 책들 사이를 유영하듯이 돌아다니다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으면 꺼내본다.

 

그리고 책의 상태를 보고(대부분은 책의 상태가 좋다. 헌책방에 있는 책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책들이니 말이다) 그 다음엔 가격을 보고... 헌책이라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 싶으면 얄팍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선뜻 집어들지 못하고... 우선 제자리에 꽂아두고 다른 곳을 둘러둘러 본다.

 

여러 책들이 눈에 들어왔을 때 그 책들의 우선 순위를 매기고, 다른 사람에게서 헌책방을 거쳐서 다시 내 손에 들어오게 되는 책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런 책 중에 하나가 이번에 고른 "천상병 시와 삶-구름 손짓하며는-"이다.

 

천상병이야 워낙 괴짜 시인으로 알려져 있고, 또 서울 인사동에 찻집 "귀천"도 있고, 그의 시 "귀천"은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시이기도 한데...

 

그의 시집을 갖고 있는 것이 세 권.

 

"괜찮다, 다 괜찮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이번 책은 그가 쓴 산문들과 시들을 모아놓은 책. 그래서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가격은 책 뒤를 보니, 참 오래 된 책이다. 1986년 책이라 3000원이라고 되어 있는데, 처음에 책이 나온 가격보다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내 손에 들어올 때 가격이 더 올라 있다. 4000원이란다.

 

허, 그러나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으니, 주인의 안목에 감탄을 하면서 고를 수밖에.

 

읽으면서 천상병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또 그를 다시 한 번 떠올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좋았다고나 할까.

 

단지 괴짜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 천상병으로서, 그리고 시인인 천상병으로서, 또 평론가인 천상병으로서 만날 수 있는 기회였으니.

 

그는 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시를 읽으면서, 어렵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쉽게 판단해야 한다. 어렵다고 생각되는 시는 시가 아니다. 수필적으로 읽을 수 있는 시가 좋은 시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소로운 일에서 인생의 근본을 생각케 하는 것이 시다. 믿음과 생활은 시의 근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어려운 말이 개입할 여지가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천상병 시와 삶-구름이 손짓하며는, 문성당. 1986년. 103쪽에서)

 

그래 시는 쉬워야 한다. 인생도 가뜩이나 어려운데 시까지 어려워서 사람을 힘들게 하면 안 되지.(설마 동종요법이라고, 세상이 어려우니 시도 어려워야 한다고 하지는 않겠지)

 

'귀천'이란 시야 워낙 유명하니까 넘어가고, 그만큼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유명한 시. '새'

 

그의 유고시집이라고 하는 시. 살아 있음에도 유고시집을 냈던 특이한 경력의 시인이 되게 했던 시집 "새", 그리고 시 '새'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무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천상병 시와 삶-구름 손짓하며는. 문성당. 1986년. 239쪽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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