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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저택 ㅣ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화성연대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한 작품을 재미있게 읽으면 다음 작품도 찾아 읽게 된다. 브래드버리의 이 작품 역시 [화성연대기]를 읽었기에 읽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핼로윈 데이라고 온갖 귀신들, 유령들 차림을 하고 즐기는 서양 축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는데...
이 소설은 그런 핼러윈 축제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월의 저택에 핼러윈을 맞이하여 친족들이 모인다. 그런데 친족들의 구성이 특별하다. 인간 가족이 아니다. 유령 가족이다. 여기에 인간인 아이 티모시가 있다.
고양이도, 생쥐도 거미도 있고, 온갖 유령들이 시월의 저택에 모인다. 미라도 있는데, 이들에 대한 이야기 한편한편이 재미있다. 짧은 소설들이 실려 있는데, 각자 독자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서로 연결이 된다.
일종의 연작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읽으면서 가족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문학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상상의 이야기들이 현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이야기가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면 문학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게 된다. "에이, 그거 소설이잖아!" "소설 쓰고 있네!" 하는 소리는 사실이 아닌 허무맹랑한 소리, 들으나마나한 소리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런 반응이 주류가 되면 문학은 설 자리를 잃는다. 이 소설집에서 '오리엔트 북행 특급'이란 소설은 특히 이런 점을 생각하게 해준다. 창백한 남자, 그를 간호하는 여자. 하지만 남자는 합리주의 앞에서 죽어가고 있다. 이 남자의 병이 무엇인지 알게 된 여자는 남자를 합리주의에서 보호해주려 한다.
이때 남자가 생기를 얻게 되는 사건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들에게 유령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에게서 남자는 생기를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하지만 소설집의 끝부분에 가면 이 저택은 파괴되고 만다. 문학이 저 멀리 밀려난 시대를 상징하듯이.
독자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 작가 역시 생기를 얻는 것. 아마도 문학이 쇠퇴하는 시기에 그러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우리와 함께 존재해야 한다고 브래드버리가 말하는 듯하다.
또한 문학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시월의 저택에 온갖 종류의 존재들이 함께 하면서 다양한 사건을 만들어 가듯이.
이렇게 문학에 대한 은유로 이 소설집을 읽어도 괜찮겠단 생각을 했는데, 이 점 말고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에서 발간되었을 때는 삽화도 있었을텐데, 그 삽화까지 같이 실렸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그리고 이 작품을 토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참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만들었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다만 유령을 다룬 애니메이션은 꽤 있으니...)
이런 점에서 이 소설집은 아이들(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소설 속에서 다양한 삶들에 대한 이해와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존재하는 유령들에게 입양되어 자라는 티모시에게 천 번 고조할머니(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 하면서 천 번을 거슬러 올라가는 할머니)가 넌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이때 티모시는 "아뇨. 여러분처럼 되고 싶지 않아요." (221쪽)라고 하면서 "...제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깨달으려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삶을요...."(221쪽)고 한다.
즉 죽음이 있기에 삶이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삶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함을 천 번 고조할머니의 말을 통해서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결국 유령이야기는 삶의 이야기다. 무한한 삶을 사는 존재들을 통해 유한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에게 삶을 돌아보라고 하는 것이다. 티모시라는 아이가 온갖 유령들과 함께 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문학의 이야기이자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통해서 상상 속에서 우리는 현실을 바라보는 거울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