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이유와 그 연결에 숨어 있는 놀라운 과학
톰 올리버 지음, 권은현 옮김 / 브론스테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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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제목이 영어 제목과는 좀 다르다. 영어 제목은 THE SELF DELUSION인데, 이것은 자아라는 환상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자아'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요소 아니던가. 그런 자아를 강조하다 보면, 개인에 매몰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고립되어 있지 않다. 개인은 개인이 아니다. 개인을 홀로 존재하는 자아라고 한다면, 그런 자아들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 책은 그 점을 내내 강조한다. 자아가 환상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수많은 관계 맺기를 통해서 존재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주에서부터 미생물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한글 제목은 영어 제목을 풀이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너무도 거대해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중 어느 연결이 끊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지점에서 연결이 끊긴다면 자신이 지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의 환경에 들어설 수 있다.


너무도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너무도 길고 방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공간이 모두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연결을 잊고, '자아'라는 환상에 갇혀 살기도 한다. 연결의 끊김이 바로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음도 인식하지 못하고, 연결을 되살리는 쪽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오로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과학기술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그는 오히려 자연과 더불어 지낼 것을 이야기한다. 자연과 더불어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결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만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런 연결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이런 삶은 자연과 우주와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사는 삶이기도 하고, 또한 '나'라는 몸으로 국한시키더라도 내 몸에도 수많은 존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최근 과학이 증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개인 중심주의에서 연결성을 중심에 놓는 사고와 행동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느 한 나라만 잘 살아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을 저자는 실과 천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실의 삶에서 벗어나 천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자아정체성의 범위가 넓어지고, 자신이 하나의 실이라던 인식에 머물지 않고 전체 천의 웅장함을 볼 수 있게 관점이 바뀌면서, 우리는 모든 인류의 더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한 노력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291쪽)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관계가 바로 인간이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을 사회적이라는 말로 한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사회뿐만이 아니라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고, 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 우리가 그런 인간이란 생각을 지닌다면 개인에 매몰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우리는 인간이다. 사람 사이... 아니 모든 존재 사이. 즉 이 사이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의 끈을 만들며, 또 서로 엮여 살아가는 존재.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실들이 모여 이룬 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올이 나가면 천도 망가진다. 다른 실들이 온전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연결된 세상을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잘살아야 하는 세상. 이때 우리는 인간만이 아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들, 보이지 않는 존재부터 볼 수 없는 존재까지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연결되어 살아감을 이 책의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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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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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민주주의가 트럼프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민주주의 국가의 전범으로 불리는 미국에 전제주의 국가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인식.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붕괴고, 대다수 사람들에게 재앙이 된다.


민주주의 붕괴는 제도를 무시하는 개인의 등장에서 비롯된다. 갑자기 튀어나온 개인... 갑자기라고 하지만 사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 그 위기를 구원할 수 있는 인물로 제도권에 있는 사람이 아닌 사람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제도권에 대한 기대를 접고, 그 밖에 있던 사람에게서 지금의 난관을 타개할 능력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에게 많은 권한을 넘겨주게 된다. 그는 그 권한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하지만, 권한을 내려놓지 않고 기존 제도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한 개인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면,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민주주의는 붕괴되고 만다. 전제주의 또는 전체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미국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나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미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아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이 된 이후 얼마나 많은 민주주의 후퇴가 있었던가? 이 책은 민주주의 후퇴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다.


첫째는 심판을 매수하는 일이다. 심판이라 함은 삼권 분립이 이루어진 나라에서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입법부, 사법부를 자신의 의도대로 행하도록 하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견제할 수 없게 된다. 입법부를 장악하기는 힘들다. 대신 사법부를 장악하기는 쉽다. 미국에서 어떻게 연방 대법관 자리를 놓고 대통령과 입법부 사이에 견제와 투쟁이 일어났는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대법관뿐만 아니라 헌법재판관 임명을 놓고 벌어지는 일들을 보라. 그래도 우리는 임명이 안 되는 경우는 없었는데, 또한 재판관 수가 정해져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미국은 대법관의 수가 정해져 있지 않아 법적으로는 권력의 입맛에 따라서 조정이 가능하다고 하니...


여기에 언론에 대한 통제까지 곁들이면 심판 매수는 끝나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에 출입을 금지한다든지,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인다든지 해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일을 한다.


트럼프는 이 일을 극단적으로 한 인물이지만, 과연 지금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 정치는 심판을 매수했다는 말에서 자유로운가 생각해 볼 일이다.


둘째는 정적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다. 이는 상대편에서 유력한 정치인이 제대로 정치 활동을 하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그에게 여러가지 죄를 뒤집어씌운다든지 또 그를 사회에서 용인하지 않는 주의에 동조하는 사람으로 만든다든지 하는 일이다.


트럼프가 힐러리를 범죄자로 몰아붙였듯이, 또는 오래 전 미국에서 매카시 상원의원에 의해 정적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듯이 그렇게 정적이 자신과 같은 정치판에서 활동할 수 없게 만든다.


성공하기 힘든 전략이라고 하겠지만, 의외로 이 전략은 잘 먹힐 때가 있다. 바로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다. 경제가 침체되어 있거나 이념적으로 양분되어 있을 때 이런 전략은 잘 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종북좌파'라는 말이 가장 잘 통했다. 여기에 요즘은 부패한 사람이라는 낙인까지 동원되고 있으니... 이는 상대 진영의 사람이 정치 활동을 하는 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자기만 선수로 뛰겠다는 발상, 이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 민주주의란 상대를 나와 같은 존재로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이념을 박멸하기보다는 토론을 통해서 더 나은 길로 나아가려고 하는 데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대표적인 예가 선거구 조정이다. 미국은 게리맨더링이라고 해서 선거구 조정을 하는데, 인종과 경제적 차이를 반영하여 선거구 조정을 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판을 짤 수 있다.


또 선거에 참여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어 소수가 자신들을 대변하는 사람을 선출할 수 없도록 하는 일도 가능하다. 


미국보다는 우리나라가 이런 일을 하기에는 좀더 어렵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선거제도에서는 소수 정당이 원내에 진입하기는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은 확실히 양당체제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역시 양당체제라고 해야 한다. 다른 정당들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민주주의를 위기에 처하게 하는 사람이 어떻게 등장할까?


이 책은 그 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떻게 트럼프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한 정당의 대표로 출마할 수 있을까?


트럼프를 극단주의자라고 한다면 예전에는 극단주의자를 걸러낼 능력을 정당이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극단주의자가 등장하면 서로 힘을 합쳐 그가 선출되지 못하게 하는 능력. 그것을 저자들은 민주주의라고 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극단주의자들이 등장하고 많은 표를 얻어 정당의 후보자로 추천된다. 그 이유는 바로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된 데 이유가 있다고 한다.


정치를 정당이 해야 한다는, 특별한 개인이 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는데, 정당에 대한 불신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정당 밖에 있는 인물이 선출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인물은 자신의 인기를 바탕으로 권력을 휘두르기 쉽다는 것. 그가 권력을 휘두를 때 기존 제도는 무력화된다는 것. 이런 무력화는 다음 정권에서도 독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상대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일, 지금 우리나라에서 과연 이 상대에 대한 관용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트럼프 시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다.


그 다음 제도적 자제는 법에 있더라도 자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불법이 아니면, 또 법에 명시되어 있으면 그 법을 활용해 자신의 권력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도 타협해서 하지 않을 수 있을 때 제도적 자제가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제도적 자제는 한쪽이 법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권이 교체되어도 이 관행은 지속될 수 있으므로, 일방이 아닌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이기도 하고.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이지만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지표를 적용하면 트럼프 시대와 지금 우리 시대가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기에 더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저항을 해야 한다고 한다.


'가능하다면 의회와 법원, 그리고 선거를 통해 저항을 해야 한다. ...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저항은 기본적인 권리이자 중요한 책임이다. 하지만 저항의 목표는 권리와 제도를 뒤엎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274쪽)


'극단적인 양극화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째, 사회적 분열을 인정하면서 엘리트 집단 간의 협력과 타협을 도모하는 것이다. (277쪽) ... 미국의 양극화를 고착화하는 두 가지 요인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요인이란 인종적, 종교적 재편, 그리고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경제 불평등을 말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정당이 대변하는 대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279-280쪽)'


미국의 상황에서 저자들이 제시한 대책이지만 이를 우리나라에 변용해서 적용할 수 있다.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일. 그리고 정당들이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정당 개혁을 하는 일... 그렇게 하도록 정치에 참여하는 일이 그것일지도 모른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트럼프가 물러났다고 해결되었을까? 여전히 지속적이지 않나? 우리 역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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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제임스 볼 지음, 김선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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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신발을 신을 때, 거짓말은 이미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312쪽)


요즘은 많은 언론사에서 팩트체크를 하지만, 팩트체크를 하더라도, 진실의 힘보다는 거짓의 힘이 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번 터진 가짜뉴스는 계속해서 퍼져나가는데, 가짜뉴스를 가짜라고 알리는 기사는 널리 퍼지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들이 가짜뉴스를 보도했다고 정정하는 정정보도 역시 잘 안 보이는 곳에 아주 적은 분량으로 나올 뿐이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니 거짓은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퍼져나가지만, 진실은 거짓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다. 앞에 인용한 말이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크게 두 사건을 다룬다. 가짜뉴스라고 하기에도 뭣한 거짓, 아니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는 개소리(bullshit)가 어떻게 정치에 영향을 주었는가를 보여준다.


하나는 미국에서 벌어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일. 그는 거짓을 일삼았는데도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발휘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한 말들은 단순명쾌하다. 길지 않다. 그리고 강하다. 즉,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그냥 몰아갈 뿐이다.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전혀 고려 대상도 아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날조된 말들을 날릴 뿐이다.


'아님 말고'가 아니다. 아님은 없다. 그의 말은 '대안적 진실'이라는 말로 없는 사실도 자신들이 원하는 사실이 되도록 하게 한다. 그러니 트럼프에게는 아님 말고는 없다. 그냥 그렇다다. 사실이냐고?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사실이다. 그것은 '대안적 진실'(203쪽)이다.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그 말을 누가 믿냐고? 믿는다. 너무도 많은 매체와 정보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말들을 전달해주는 기사는 너무도 구미에 맞는다. 구미에 맞는 말,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더 강화한다. 이건 진영논리라고 하기에도 뭣하다. 진영논리에는 최소한 논리라는 말이 들어있는데...


두번째는 영국에서 벌어진 브렉시트 문제다. 유럽연합에서 영국이 탈퇴하는 문제를 가지고 국민투표를 했을 때, 소위 개소리라고 하는 말들이 어떻게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의 삶을 결정하는 투표에서조차도 사람들은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하지 않는다. 어쩜 확인할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내가 두려워하고 있던 일을 콕 집어 말하면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지를 하게 된다. 믿게 된다. 믿고 행동하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의 삶을 오히려 안 좋은 쪽으로 몰아가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게 바로 개소리의 힘이다. 개소리의 힘으로 예상과는 반대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 바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관한 국민투표였다.


이런 개소리를 팩트체크를 통해서 없앨 수 있다고 여기면 그건 오산이다. 이 책에서 누차 강조하고 있다. 팩트체크만으로는 안 된다. 이윤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돈이 안 되는 일은 언론에서도 잘 하지 못한다.


돈때문에 많은 기자들을 고용하지 못하고, 적은 기자들로 운영해야 하기에 사실이 아닌 기사들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극적인 기사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니 그것이 돈으로 연결되기 쉽다. 개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경제와 정치가 만난다. 이 사회에서 돈(이윤)과 무관한 일은 없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트럼프의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이 이런 개소리들이 사회를 바꾼 예라고 하는데... 


책의 끝부분에서 이러한 개소리를 없애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치인, 미디어, 독자와 유권자로 나누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제시된 대안들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속도는 아마도 신발 끈을 매는 정도, 이미 가짜뉴스, 또는 개소리는 지구를 반 바퀴 이상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만치 앞서가는 개소리.


하지만 개소리를 따라가려고만 하면 개소리를 이길 수 없다. 개소리가 만든 경기장에서 싸우지 말고, 자신의 경기장에 개소리가 들어오게 해야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대안들이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제시된 것이리라.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선 정치인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설명하지 마라, 불평하지 마라, 가짜뉴스에만 주목하지 마라, 학교에서 미디어 문해력을 길러주자, 내가 속한 체계를 무너뜨리지 말자, 표적 광고를 대중의 감시 아래 두자, 굳이 기성 권력의 일부처럼 보일 필요는 없다'


미디어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한다.


'제목에 유의하자, 복잡함은 미덕이 아니다, '허공의 관점'을 다시 고민해보자, 기자들의 내부 사정을 설명하자, 독자가 필터 버블에서 빠져나오도록 돕자, 사실 검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신뢰받고 싶다면 신뢰를 주는 매체가 되자, 오보만큼 정정 기사를 널리 알릴 방법을 찾자, 내가 얻은 콘텐츠의 출처를 떠올려보자, 가짜뉴스 매체에 자금을 대지 말자, 과학 전문 기자에게 조언을 얻자, 새로운 공공매체를 만들자, 일부 독자가 떠나는 이유를 살펴보자'


독자와 유권자는


'나의 필터 버블을 터뜨리자, 시스템2(신중한 반응)를 가동시키자, 통계를 어느 정도 알아두자, 내가 믿는 담론을 믿지 않는 담론만큼 의심해보자, 음모론에 굴복하지 말자'


이런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이렇게 당부한다.


'현실 감각을 유지하고 음모론에 맞서면서 서로 기본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은 건전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진실이 무의미해진 세상은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360쪽)고.


명심해야 할 말이다. 우리는 가짜뉴스란 말을 많이 쓰고 있지만, 가짜뉴스라기보다는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개소리'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요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으니... 이 책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야기도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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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4-24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 소리가 흥한 시대에 산다는 것이 불행한 일입니다.ㅠㅠ

kinye91 2023-04-24 17:55   좋아요 0 | URL
개소리를 개소리로 인식한다면 개소리가 흥하지 않겠지요... 아무튼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소리가 주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레이스 2023-04-24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소개하는 방송 보고 재밌겠다 싶었어요^^

kinye91 2023-04-24 20:11   좋아요 1 | URL
이젠 최근이라 할 수 없지만 영국의 브랙시트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소위 개소리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아요. 꼭 남 나라 얘기만도 아닌 것 같고요.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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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소, 삼십 년 전의 어느 장거리 경주'


다 다른 내용이지만, 공통점을 굳이 찾으라면, 주인공들이 잘사는 사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투철한 공산주의 사상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하층민, 우리가 서민이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과연 그런 세상이 왔을까, 이들은 혁명 전후를 비교하지만, 혁명 이후에 무엇이 나아졌는지 묻고 있다.


아니, 혁명을 통해서 과연 사람들이 지닌 기본적인 감정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겪게 되는 여러 일들이 체제를 막론하고 일어날 수 있음을 모옌은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공산주의가 한창 자리를 잡아가야 할 때를 배경으로 그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공산주의 사회의 허구성, 폐쇄성, 폭력성을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소설도 아니다. 어느 체제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경직된 관료들, 그런 사회에서도 나름대로 융통성을 발휘해서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소설에 잘 나와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읽다보면 그 체제에서도 참 많은 문제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체제의 우월성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피고, 그들이 잘살아가는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함을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평생 모범 노동자로 살던 사람이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정리해고 되는 모습, 그런 사회가 어찌 공산주의 사회겠는가? 체제와 상관없이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공장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는 처지. 그들을 도와줄 체제는 없다.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에 나오는 주인공은 살 길을 찾다가 연인들이 사랑을 나눌 장소를 만들어 돈을 버는 라오 딩, 이 소설에서 딩 사부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가 겪는 일은 우리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각자도생. 이것을 이 소설은 유머러스한 문체로 풀어가고 있다.


'소'는 더 해학적이다. 우리나라 김유정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소설인데, 불까기한 소를 살리기 위해 밤새도록 끌고다녀야 하는 순박한? 시골 소년과 노인. 이들의 노력에도 소는 죽고, 그 다음이 풍자적이다. 그 소를 키우는 생산대에 주지 않고 자신들이 요리해 먹은 간부들이 식중독에 걸려 죽을 고비를 겪는 내용.


그렇다. 어떤 사회에서도 윗사람들은 잘먹고 잘산다. 그들은 없는 사람들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특출난 재주가 있다. 그런 재주를 이 소설에서 잘 볼 수 있다.


마지막에 실린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우파'로 몰리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지만, 우파들이 어떻게 우파가 되었는지를 해학적이고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냥 우파가 필요했을 뿐이다. 세상에 행진할 때 오른발이 먼저 나갔다고 우파라니?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어느 마을이든 우파가 꼭 필요했기에 이런 이유로도 우파가 될 수 있었음을, 마을의 장거리 경주를 배경으로, 과거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소년의 눈으로 본 그 우파나 또 그 마을 사람들의 모습인데...


오래 전 마오쩌뚱이 중국을 공산주의 사회로 만들려고 했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음을 모옌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이 소설들을 통해서 경직된 사회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런 것이 바로 삶임을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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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세계
션 B. 캐럴 지음, 장호연 옮김 / 코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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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이냐 우연이냐를 많이 따진다.눈먼 시계공이라는 말도 있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우리 삶이 과연 정해진 대로 살아질까? 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만 하면 될까?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의 삶에는 우연이 없다는 말일까?


과연 그럴까? 인간 숫자가 70억 정도 되는 이 지구에서 과연 모든 일들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질까?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멸종들도 필연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의문들이 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 그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한계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필연을 생각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서도 그런데, 그 상상이 인간의 한계를 짓는다고도 해야 한다.


신의 뜻대로라면 인간이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자유의지는 없다는 말도 있지만, 자유의지라고 해도 과연 필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내 뜻대로 한다는 의미의 자유의지라면 내 뜻대로에는 수많은 우연이 개입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우리는 우연으로 이루어진 세계, 우연이 만든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된다.


왜 하필 그때, 또 똑같은 일을 당하고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른 경우, 그리고 인간의 유전자가 거의 비슷하지만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는 이유 등등.. 결국은 우연이 작동한 결과라고 한다.


우연히 어떤 것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살아남아 다시 퍼뜨리고, 강화되고, 거기에 다시 우연이 발동하여 돌연변이가 생기고, 돌연변이가 널리 퍼져 우세종이 되는 현상. 이러한 현상들에 어떤 필연성을 찾기보다는 우연으로 인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몇억 분의 일이라는 확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우연이 작동한다. 그 점은 우리도 안다. 하지만 단지 모든 것을 우연에 기대지는 않는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노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여기에 또다른 우연이 개입해서 다른 변화가 일어난다.


이 말을 저자의 말을 빌리면 '우연은 창조하고, 자연선택은 발명품을 퍼뜨린다'(156쪽)고 할 수 있다.


왜 저자는 이렇게 우연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이것은 바로 인간의 자율성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신에게 인간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아닌, 수많은 우연으로 인류가 지구상의 지배종이 되었고, 또 수많은 우연으로 인간 유전자에 많은 변이들이 생기며, 그런 우연들이 살아남음으로써 지구상에서 생명들이 살아가게 했다는.


책은 처음에 지질 발견부터 시작한다. 단층이 생겼고, 거기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는. 멸종이 이루어졌는데, 멸종을 무엇이 일으켰느냐는 추적으로 부터. 추적의 결과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고, 그 충돌로 인해서 많은 생물들이 멸종했다고 한다.


많은 생물들의 멸종을 일으킨 소행성 충돌은 필연일까? 아주 적은 확률로 일어난 우연이다. 이 우연이 생명체들의 존속을 갈랐으니... 그렇다면 이런 우연에서도 살아남은 종들은 어떤 종들일까?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신을 창조한 생명체들이다.


결국 우연이 생명체들의 몸에 무언가를 창조했다고 할 수 있고, 이래서 우연이 창조하고, 자연선택이 퍼뜨린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 인간은 과거를 학습하는 능력이 있으니, 그러한 우연으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되었을 터. 우리는 우연으로부터 창조와 지속을 학습했고, 이런 학습이 바로 인간의 자율성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우연은 자리할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신의 존재에 대한 비판이 이 책6장에서 오순절 교회 목사들이 독사를 들고 설교하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우연을 강화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우리 세상은 우연이 우리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일이 많다. 


그러니 신의 뜻대로가 아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니, 살아 있는 동안 삶을 즐겨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우연에 대처하는 인간의 자율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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