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제임스 볼 지음, 김선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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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신발을 신을 때, 거짓말은 이미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312쪽)


요즘은 많은 언론사에서 팩트체크를 하지만, 팩트체크를 하더라도, 진실의 힘보다는 거짓의 힘이 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번 터진 가짜뉴스는 계속해서 퍼져나가는데, 가짜뉴스를 가짜라고 알리는 기사는 널리 퍼지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들이 가짜뉴스를 보도했다고 정정하는 정정보도 역시 잘 안 보이는 곳에 아주 적은 분량으로 나올 뿐이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니 거짓은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퍼져나가지만, 진실은 거짓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다. 앞에 인용한 말이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크게 두 사건을 다룬다. 가짜뉴스라고 하기에도 뭣한 거짓, 아니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는 개소리(bullshit)가 어떻게 정치에 영향을 주었는가를 보여준다.


하나는 미국에서 벌어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일. 그는 거짓을 일삼았는데도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발휘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한 말들은 단순명쾌하다. 길지 않다. 그리고 강하다. 즉,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그냥 몰아갈 뿐이다.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전혀 고려 대상도 아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날조된 말들을 날릴 뿐이다.


'아님 말고'가 아니다. 아님은 없다. 그의 말은 '대안적 진실'이라는 말로 없는 사실도 자신들이 원하는 사실이 되도록 하게 한다. 그러니 트럼프에게는 아님 말고는 없다. 그냥 그렇다다. 사실이냐고?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사실이다. 그것은 '대안적 진실'(203쪽)이다.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그 말을 누가 믿냐고? 믿는다. 너무도 많은 매체와 정보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말들을 전달해주는 기사는 너무도 구미에 맞는다. 구미에 맞는 말,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더 강화한다. 이건 진영논리라고 하기에도 뭣하다. 진영논리에는 최소한 논리라는 말이 들어있는데...


두번째는 영국에서 벌어진 브렉시트 문제다. 유럽연합에서 영국이 탈퇴하는 문제를 가지고 국민투표를 했을 때, 소위 개소리라고 하는 말들이 어떻게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의 삶을 결정하는 투표에서조차도 사람들은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하지 않는다. 어쩜 확인할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내가 두려워하고 있던 일을 콕 집어 말하면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지를 하게 된다. 믿게 된다. 믿고 행동하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의 삶을 오히려 안 좋은 쪽으로 몰아가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게 바로 개소리의 힘이다. 개소리의 힘으로 예상과는 반대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 바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관한 국민투표였다.


이런 개소리를 팩트체크를 통해서 없앨 수 있다고 여기면 그건 오산이다. 이 책에서 누차 강조하고 있다. 팩트체크만으로는 안 된다. 이윤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돈이 안 되는 일은 언론에서도 잘 하지 못한다.


돈때문에 많은 기자들을 고용하지 못하고, 적은 기자들로 운영해야 하기에 사실이 아닌 기사들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극적인 기사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니 그것이 돈으로 연결되기 쉽다. 개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경제와 정치가 만난다. 이 사회에서 돈(이윤)과 무관한 일은 없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트럼프의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이 이런 개소리들이 사회를 바꾼 예라고 하는데... 


책의 끝부분에서 이러한 개소리를 없애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치인, 미디어, 독자와 유권자로 나누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제시된 대안들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속도는 아마도 신발 끈을 매는 정도, 이미 가짜뉴스, 또는 개소리는 지구를 반 바퀴 이상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만치 앞서가는 개소리.


하지만 개소리를 따라가려고만 하면 개소리를 이길 수 없다. 개소리가 만든 경기장에서 싸우지 말고, 자신의 경기장에 개소리가 들어오게 해야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대안들이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제시된 것이리라.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선 정치인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설명하지 마라, 불평하지 마라, 가짜뉴스에만 주목하지 마라, 학교에서 미디어 문해력을 길러주자, 내가 속한 체계를 무너뜨리지 말자, 표적 광고를 대중의 감시 아래 두자, 굳이 기성 권력의 일부처럼 보일 필요는 없다'


미디어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한다.


'제목에 유의하자, 복잡함은 미덕이 아니다, '허공의 관점'을 다시 고민해보자, 기자들의 내부 사정을 설명하자, 독자가 필터 버블에서 빠져나오도록 돕자, 사실 검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신뢰받고 싶다면 신뢰를 주는 매체가 되자, 오보만큼 정정 기사를 널리 알릴 방법을 찾자, 내가 얻은 콘텐츠의 출처를 떠올려보자, 가짜뉴스 매체에 자금을 대지 말자, 과학 전문 기자에게 조언을 얻자, 새로운 공공매체를 만들자, 일부 독자가 떠나는 이유를 살펴보자'


독자와 유권자는


'나의 필터 버블을 터뜨리자, 시스템2(신중한 반응)를 가동시키자, 통계를 어느 정도 알아두자, 내가 믿는 담론을 믿지 않는 담론만큼 의심해보자, 음모론에 굴복하지 말자'


이런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이렇게 당부한다.


'현실 감각을 유지하고 음모론에 맞서면서 서로 기본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은 건전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진실이 무의미해진 세상은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360쪽)고.


명심해야 할 말이다. 우리는 가짜뉴스란 말을 많이 쓰고 있지만, 가짜뉴스라기보다는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개소리'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요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으니... 이 책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야기도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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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4-24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 소리가 흥한 시대에 산다는 것이 불행한 일입니다.ㅠㅠ

kinye91 2023-04-24 17:55   좋아요 0 | URL
개소리를 개소리로 인식한다면 개소리가 흥하지 않겠지요... 아무튼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소리가 주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레이스 2023-04-24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소개하는 방송 보고 재밌겠다 싶었어요^^

kinye91 2023-04-24 20:11   좋아요 1 | URL
이젠 최근이라 할 수 없지만 영국의 브랙시트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소위 개소리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아요. 꼭 남 나라 얘기만도 아닌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