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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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슬픔, 분노. 어찌 세상이 이토록 나아지지 않는지.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는데, 노동으로 삶을 잃어야 하다니.

 

최근에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로 숨지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경제력이 세계 몇 위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나라에서, 그 나라를 지탱하게 해주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과 가족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노동으로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잃고 있는 현실.

 

택배 노동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는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도 닥친 일이다. 이들은 고3이 되면 현장학습을 나간다. 노동과 학습이 연계된 활동. 예전에는 노동자 대우를 받아 월급을 받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실습 명목으로 월급이 아닌 수당만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들에게 가해지는 노동강도가 너무 세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학교는 학교대로 취업률로 지원을 받으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학생들에게 쉽게 학교로 돌아오라고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부모들 또한 마찬가지다. 다 그런 거지 뭐, 라는 말을 하면서 참으라고 한다.

 

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이들이 선택하는 길은 극단적인 길이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특성화고 출신 사람들이 많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것이 개인 탓인가?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아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 보라.

 

무언가 결핍이 있는 학생이 특성화고에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 책을 읽어보면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단지 대학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 받아서는 안된다. 특성화고는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아이들이 선택하는 길이다. 이런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고, 또 그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자신의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토대를 마련해 줘야 한다.

 

토대도 마련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 이들이 학교와 사회 양쪽에 걸쳐 있다고 어느 쪽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는 상황을 고쳐야 한다. 적어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게 해야 한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지은이는 제목을 이렇게 붙였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알려고 하지 않는 아이의 죽음'이라는 제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 존재하고,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여전히 학력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특성화고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오히려 이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피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그들도 엄연히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임을,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함을.

 

특성화고 출신들이 모여 노조를 만들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들이 자신의 전공과는 동떨어진 취업을 많이 하고 있음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겪고 있는 차별들에 대해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결국 알려고 하지 않는 아이의 죽음일 것이다. 이대로 우리가 계속 외면한다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제는 더이상 이런 아픔이 일어나지 않게 '알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것은 우리가 '알려고 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부끄러웠다. 나 역시 알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의 죽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살려고 하는 노동, 정말 살게 하는 노동이어야 한다. 죽음으로 몰아가는 노동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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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0-21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긴 하지만,,,,평생 주부로 사셨던 엄마는 항상 저에게 노동자로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커서 언제가는 나도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한국을 떠난지 10년이 넘어서) 지금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적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어요. 극단적인 육체노동정도만이. ˝노동˝이라는 생각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노동의 신성한 가치와 다양한 종류로 이루어진 노동에 대한 바른 인식이 생겼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kinye91 2020-10-21 08:44   좋아요 0 | URL
‘노동‘에 대한 생각이 아직도 예전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노동이고, 그러한 노동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요.
 
미래는 오지 않는다 - 과학기술은 어떻게 미래를 독점하는가
전치형.홍성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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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미래(未來)'라는 말을 그대로 풀이한 것이다. '미래'는 '오지 않다'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판치는 이 시대에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그것도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이런 주제로 책을 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지금은 과학기술의 시대고, 과학기술이 미래를 이끌 거라는 것에 의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부터 시작하여 나노기술 등등. 과학기술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장미빛 환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미래를 디스토피아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책 표지에는 또다른 말이 있다. '과학기술은 어떻게 미래를 독점하는가'라는 이 말을 통해 저자들이 과학기술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과학기술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이 미래를 완전히 예측하고 이끌어서 우리에게 가져올 거라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고 있어, 과학기술에 비판적이지 않은 현대인들을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과학기술에 열광하고, 과학기술 만능주의에 빠져, 모든 문제를 과학기술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또 그렇게 호도해 가는 집단들이 있는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과학기술에서 일어난 예측들이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니 예측불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예측한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기술도 의도한 바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조건들이 융합되어 있는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그리고 그러한 예측은 늘 상반되는 주장을 한 집단들이 서로 자신들이 한 예측이 맞았다는 주장을 하게 하기도 한다. 그만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식인 것이다.


이렇게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제목을 달고 책을 낸 이유가 무엇일까? 미래 예측이 필요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인가? 아니다. 사람은 현재만 살지 않는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이유는 현재를 살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현재에 과거와 미래를 함께 끌어들여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게 된다. 그러니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미래가 온 순간, 미래는 현재가 되어 버리고, 다른 미래를 꿈꾸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이런 인간들에게 일방적인 미래를 제시하는 일은 문제라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미래를 독점하는 현상은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을 보자.


... 이 책의 제목은 요즘 미래 담론에서 흔히 보이는 확신, 즉 미래를 곧 일어나고야 말 객관적 사건으로 보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우리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주관성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이 책은 미래를 하나의 담론, 즉 해석과 비판과 논쟁이 필요한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미래에 대한 예측들은 데이터만이 아니라 세계관과 이념을 담고 있으며, 서로 주도권을 놓고 경합합니다. 그러므로 각종 미래상에 대한 꼼꼼한 독해가 필요합니다. (8쪽)


...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우선 우리의 미래 담론이 과학기술 중심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오늘날의 미래 담론은 과학기술이 거의 독점하고 있습니다. (8쪽)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또한 우리가 과학기술의 성공과 실패를 예측하는 데 그다지 유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 과학기술은 그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경로와 방식으로 성공하거나,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이유 때문에 실패합니다. (9쪽)


"미래는 오지 않는다"라는 선언을 통해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미래에 대해 말할 때 사실 우리는 현재를 놓고 다투고 있다는 점입니다. (10쪽)

 

미래를 예측하려는 사람과 집단은 모두 특정한 종류의 과학기술과 특정한 형태의 사회를 옹호하고 그러한 방향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11쪽)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서 과학기술이 또는 과학자들의 예측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됨을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읽으면서 예전에 월드컵에서 승자를 예측했던 문어 파울이 떠올랐는데,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의 예측 결과가 침팬지의 예측 결과를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수긍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책은 끝부분에서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고 꿈꾸는 것은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래를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래야 미래를 꿈꾸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미래 예측은 CEO를 위한 것이 아니라, 문제투성이 현재와 불편한 미래를 포용하면서도 희망을 키우고 연대를 만들어내는 시민들의 실천을 위한 미래 시나리오 작업을 의미합니다. 미래에 대한 이런 상상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면서, 현재 삶과 노력에 의미를 더해줍니다.

  우리는 미래 예측에 홀리는 대신에 바람직한 미래사회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나눠야 합니다. 이런 얘기는 우리가 걸어온 역사에 대한 고민과 성찰에 근거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토론과 협의를 반영해야 합니다. 결국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과학기술이 열어주거나 미래학이 예측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04쪽)

 


서문에서 한 말이 끝부분에서 다시 정리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특정인들의 담론에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 미래는 우리 모두가 참여하면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 

 

이들의 말을 명심하자.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양상들을 읽을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단지 과학기술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에도 집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오히려  인문학이 더욱 필요함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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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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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이 아마도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을 테고, 또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이 명심하고 살펴야 할 내용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나 역시 이 말을 아무런 생각없이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혐오표현에 관한 토론회가 있던 날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 장소를 급하게 큰 곳으로 바꿔가며 열린 토론회였다. 토론자로 함께한 나는 토론 중에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 결단을 내리자는 말을 하던 와중이었다. 토론회가 끝나고 식사를 하러 가는 버스 안에서, 참석자 중 한분이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5쪽)

 

정말로 아무 생각없이 쓰는 말이다. 자신이 잘 결정하지 못할 때 다른 사람을 향해 양해를 구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장애'다. '장애'라는 말은 '장애인'과 곧바로 연결되고, 이는 곧 무언가 부족하다는 의미로,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쓰인다.

 

결정장애가 있다는 말이 장애인을 비하하기 위해서 쓰이는 말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도 이 말에는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니 쓴 사람은 혐오표현이 아니라라고 강변해도 듣는 사람에게는 혐오표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 자리에서 잘못을 시인했다고 한다. 부끄러움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차별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어나는 차별이 얼마나 있을까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다. 우리 모두는 선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라는 말도 한다. 그만큼 우리들이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런 선량한 사람들이 의식없이 차별을 한다. 혐오표현을 한다. 그런 상황이 더욱 무서운 것이다.

 

차별인지도 모르고 차별을 행하면서 자신은 선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소수는 설 자리를 잃는다. 설 자리를 잃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 호소할 수도 없다. 다들 그게 왜? 라고 되묻기 때문이다.

 

하여 책 제목이 '선량한 차별주의자'다. 적확한 표현이다. 우리 모두는 선량한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남에게도 가급적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줄 때가 있다. 아무 생각없이 한 말이 혐오표현일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줄 때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언제든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받은 차별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자신이 차별을 받는 사람의 자리에 있을 수도 있지만 차별을 하는 사람의 자리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수많은 자리에 있다. 그 자리는 그때그때 다른 자리가 된다.

 

다른 자리, 다른 때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말을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다수가 옳다고 해서 꼭 옳은 것도 아님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혐오표현을 벗어나는 데에 있어선.

 

지금도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표현이 '남자가? 여자라?'라는 표현이다. 이는 어떤 행동을 특정한 성에 고정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 자체가 차별을 조장하는 불평등한 표현인데,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 표현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제는 어느 정도 공감을 얻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완고한 입장이 대세다. 이들은 여전히 설 자리가 매우 좁다. 이 책에서도 다뤄주고 있지만, 자신들의 축제를 여는 데도 수많은 방해를 이겨내야 한다. 그게 방해가 아니라 폭력임을, 불법행위임을 인식시켜야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제대로 제정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다. 갈 길이 멀다.

 

이 책은 이러한 차별을 3부에 걸쳐 다루고 있다. 1부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이라고 해서, 자신의 시야에 갇혀 차별을 보지 못하는 경우를 다루고 있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이 살아온 날들 속에서 형성된 생각들이 차별에 해당함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을 고찰하는 것이 바로 2부다.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공정함 속에 담겨 있는 차별, 배제 속에 담겨 있는 차별. 우리라는 말 속에 얼마나 심한 배제가 담겨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다름을 차별로 이어가는 모습들.

 

삶 속에 스며들어 인식하지도 못하는 차별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금 우리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존재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2부에서 만날 수 있다.

 

3부는 그렇다면 어떻게 차별을 극복할 것인가다.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 중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부분이 있다.

 

  형식적 평등은 가장 기본적이기는 하지만 충분한 조치가 될 수 없다.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불평등한 조건과 다양성이 고려되는 적극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적극적 조치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 불이익을 받는 집단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할 때가 있음을 의미한다.

  적극적 조치는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201쪽)

 

자, 이제는 차별을 없애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모든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차별이 없어지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책에 나온 내용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 이 일화에서 깨달을 수 있다. 역으로 이 일화를 통해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함을, 더욱 민감한 감성을 지녀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전세계의 사회복지 학자와 현장 활동가들이 모인 세계사회복지대회라는 대규모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규모에 걸맞게 개막식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축사 도중, 장애인 활동가 10여명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향해 "장애인 등급제를 폐지하라!"고 외치며 기습시위를 했다. 휠체어에 탄 활동가들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는 단상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경호원들은 활동가들의 사지를 들어 휠체어에서 분리하고 행사장 밖으로 끌어냈다. (169-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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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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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90년생은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될 것이다. 이들은 이제 대학에 입학했거나 사회 생활을 하기 시작한 나이부터,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을 한 세대다.

 

이런 그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미 사회에서 주도세력이 된 사람들은 60-70년대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세대에 대해서 별다른 정보가 별로 없다.

 

그래서 자신들이 지닌 관점에서 새로운 세대를 판단한다. 기성세대의 판단과 사회에 막 진입한 세대의 생각은 일치하지 않는다. 일치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만큼 세상이 많이 변했다.

 

변함을 인식하지 않고 자신들이 지내온 방식을 새로운 세대에게 기대하거나 강요하면 그것은 꼰대다. 제대로 소통이 될 수 없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사회에서 갈등이 유발되고 서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세대로 사회에 진입한 90년대생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들이 어떤 사회에서 성장해왔고, 이들이 지닌 사고방식은 어떠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권장해야 한다.

 

우리는 이들이 대부분 공무원 시험을 우선하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런지 생각하지 않고, 사실, 그들이 살아가기 너무도 힘든 시대이기 때문에 또 그들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그런 회사 생활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기에, 또한 자신들의 생활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직업이 공무원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직장에도 그들은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대기업이 아닐지라도.

 

그들의 특성을 이 책에서는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우선은 간단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복잡한 것, 무언가 계속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하는 일을 그들은 거부한다. 아니 90년대생 만이 아니다. 그것은 요즘 생활하는 우리도 원하는 일이다.

 

두 번째 특성은 재미있거나라고 한다. 그들은 재미를 추구한다. 그렇다. 광고를 보더라도, 또 유튜브를 보더라도 그들은 재미를 추구한다. 자신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따분한 삶이 아니라 재미 있는 삶. 그것이 90년대생들이 지닌 특징이다. 그런 그들에게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회사에서 적응하도록 하려면 짧은 기간에 명확한 목표를 인식시켜야 한다. 이 일을 어느 정도 하면 어떤 보상이 있을 거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그들은 재미있지도 않은 불확실한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

 

세 번째 특징은 정직하거나라고 한다. 정직이라는 것이 거짓이 없다라는 것이 아니다. 이 때 정직은 공정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지금 청년들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불공정하다고 여져지는 일이 벌어졌을 때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공정, 이것이 90년대생이 바라는 것이다. 이런 그들이 직원이 되었을 때, 기존의 직원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하면 그들은 견딜 수 없다. 대기업이라도 그들은 과감하게 이직을 결정한다. 이들의 특성에 맞는 직장 생활 방식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90년대생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90년대생들이 원하는 삶의 형태로 변화되어 왔다. 90년대생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것, 자신의 삶을 가질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 수평적인 직장 문화 등등.

 

소비자로서의 90년대생도 마찬가지다. 이미 변한 사회의 모습에 따라 기업들도 변해야 한다. 그들이 이미 변한 사회의 모습을 알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변한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세대가 지금은 90년대생들이라는 것,

 

따라서 90년대생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생활방식에 맞는 기업문화,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실제 사례들을 들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90년생은 왔다. 이런 책을 기반으로 90년대생을 이해하다면 다가올 2000년생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세상은 늘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와의 갈등을 통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간다.

 

그러니 새로운 세대에 관심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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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교사들의 열두 달 학교생활 - 학교 성평등이 세상을 바꾼다
구세나.박효진.이소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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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생활을 하는 한 해 내내 페미니즘 교육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를 보여주는 책이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학교에서 실천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 냈다. 페미니즘 교육이라고 해도 좋지만 성평등 교육이라고 해도 좋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여기에 이 책에서 아쉬워 하는 점이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아직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과 함께 성교육 모임을 갖기도 하지만, 아직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교사들이 이런 식으로 성평등을 이루는 교육을 하는 것은 페미니즘에 어울리는 교육이다. 이런 교육이 학교에서 계속 이루어진다면 성별로 인한 차별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시작은 3월에 학생들 번호를 나누는 것부터다. 번호 하면 대부분 남학생이 앞번호, 여학생이 뒷번호 또는 성차별을 없앤다는 목표로 한 해는 남학생이 앞번호, 또다른 해는 여학생이 앞번호로 매해 번갈아 가며 번호를 다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남녀 구분을 없애고 가나다 순으로 번호를 부여하는 학교도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더 획기적인 방법이 나온다. 그냥 제비뽑기로 번호를 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별로 인해 번호가 부여되는 일도, 또 부모 성에 따라 부여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비록 자신이 원하지 않는 번호가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에 성별이나 성이 작동하지는 않게 된다.

 

두 줄 서기를 할 때 남녀로 세우는 관습이 지속되고 있는데, 그냥 두 줄로 서면 된다는 것. 아무 생각없이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 점이 얼마나 성평등에 어긋나고, 성구분을 자연스럽게 고착시키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4월이면 부모와 만나 성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왜 학교에 오는 부모가 대부분 엄마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한다. 학부형이 아니라 학부모이며, 학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엄마든 아빠든 함께 참여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성교육도 마찬가지고.

 

외모 중심주의에 대해서 학생들과 공유하며, 여성들의 생리대 문제에 대해서도 성별을 떠나 함께 경험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만든다.

 

미디어로 인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교육도 하고, 여성들의 롤 모델울 찾아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인물 중심의 역사에서 남성들이 많이 나오는데, 여성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려져 있을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차별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가장 평등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학교라는 생각을 하지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학생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젊은 여성인 교사에게 맡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여기에 승진을 하기 위해서 보직을 맡을 때도 여전히 여성인 교사보다는 남성인 교사에게 우선권을 주는 학교가 많다는 것.

 

단지 성별로 인한 차별만이 아니라 경력이나 나이로 인한 차별도 학교에서 꽤 일어나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에 문제제기를 하고 교사 사회부터 바꿔나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이 책 표지에 있는 문구가 마음에 와 닿는다.

 

'학교 성평등이 세상을 바꾼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또 아이들이 배운다는 교육기관인 학교에서부터 성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사들 사이에서뿐만이 아니라, 관리자와 교사 간에, 또 교사와 학부모 간에, 그리고 교사와 학생 간에 평등한 문화가 확립되어야 세상이 변할 수 있다.

 

그런 변화를 이끄는데 페미니즘이 한 역할을 할 것이고, 페미니즘 교사들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그러한 변화는 더욱 앞당겨질 것이다.

 

 학교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 아이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이 책을 읽어보면 성평등이 성평등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임을,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임을, 그래서 우리 교육에서 가장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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