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총 AK47
마쓰모토 진이치 지음, 이정환 옮김 / 민음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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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47 소총. 이름은 들어봤다. 단순히 구 소련에서 만들어진 총이고, 사회주의권, 공산주의권에서 많이 사용하는 무기라는 것.

 

아마도 군대에 다녀왔던 사람들, 또는 나이가 어느 정도 돼 고등학교 때 교련을 배웠던 사람들은  M16이라는 소총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소총은 미군이 사용하던 소총을 우리나라에서 수입해서 쓰던 소총. 우리나라에서 자체로 소총을 개발하기 전까지 쓰던 우리나라 기본 소총이었다.

 

이와 반대편에 있는 소총이 바로 AK47 소총이었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책의 제목이 "역사를 바꾼 총"이라고 해서, 도대체 이 소총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원자폭탄이 전쟁의 양상을 다르게 바꾸었고, 핵발전으로 이어져 세상을 바꾸었고,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다면, 또 노벨의 폭약이 세상을 바꾸었다면, 이 소총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

 

역사를 바꾸었다는 표현이 긍정적으로 쓰였으면 좋겠지만, 이 책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이 책을 읽어보면 이 소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비극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소총의 기원은 대부분의 무기가 그렇듯이 (원자폭탄도 표면적으로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개발되었다. 독일보다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원자폭탄을 미국에서 만들게 했다) 이 소총 역시 침략자인 독일에 승리해 평화를 이루기 위해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 소총의 개발자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나치 독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소총개발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소총에 붙은 47이라는 숫자는 이 소총이 개발된 년도를 의미한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왜? 다시 나치와 비슷한 적이 쳐들어 오면 퇴치하기 위해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평화가 온 것이 아니라 냉전이 왔고, 세계는 각종 무기의 경연장이 되어 버렸으니...

 

이 소총의 개발자인 칼라시니코프의 바람대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 소총이 쓰일 수도 있었겠지만, 냉전 시대는 자기 나라에서만의 전쟁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전쟁이 확산되는 시기였기에, 이 소총 역시 원자폭탄이나 노벨이 발명한 폭약처럼 부정적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았다.

 

단순하고 저렴하고 고장이 잘 안나는 총이라는 이 AK47 소총은 그래서 정국이 불안정한 나라에 잘 팔려나갔다. 그리고 이들은 이 소총으로 무장하고 온갖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특히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하는 아프리카 각 나라에서는 이 소총은 반군들의 무기가 되었고, 이 소총으로 아프리카는 극심한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되었다. 개발자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의도가 좋더라도 살상무기는 언제든지 사람들을 해칠 수 있음을...

 

무기는 평화를 유지하기 보다는 오히려 전쟁을, 폭력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익히 들어본 나라들, 시에라리온, 수단, 콩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소말리아 등등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내전들, 학살들에 이 소총이 함께 등장한다.

 

이 소총의 단순하고 고장이 잘 안나고 저렴하다는 장점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무기 탓만을 할 수는 없다. 결국 사람의 일 아니던가.

 

그래서 이 책은 마지막 부분에 소말릴란드 공화국에서 무기를 회수한 일을 다루고 있다. 무기를 반납받고 사회의 평화를 이루어내려는 노력. 이것이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둬 사람들이 총에 맞을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 사회가 된 곳. 소말릴란드 공화국.

 

이 책이 발간될 당시 정식 국가로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가 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무기를 회수해 어느 정도 성공을 했으니...

 

AK47 소총이 아프리카의 역사를 비극으로 바꾸었다면, 그것을 희망으로 행복으로 평화로 바꾸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그것을 소말릴란드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우리는 이러한 무기에 대해 이 책에 나온 아프리카의 모습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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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멈춘 시간, 11시 2분 - 십대가 알아야 할 탈핵 이야기 꿈결 생각 더하기 소설 1
박은진 지음, 신슬기 그림 / 꿈결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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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 두 대가 떨어졌다. 세상에 없던 무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한 대의 폭탄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건물들을 폐허로 만들어 버린 무시무시한 무기.

 

그런데, 이 무기의 위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이 무기는 터지는 순간의 위력에서 그치지 않고, 방사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살상무기가 수십 년을, 그것도 대를 이어서 사람들이 고통받게 만들고 있다.

 

원자폭탄의 피해는 당사자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이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사코는 나가사키에 살았다.

 

그리고 폭탄이 떨어질 당시 학교에 있었고, 피폭을 당했다. 겉으로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으나...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정상적인 아이를 낳지 못하고, 나가사키 출신임을 감추었다는 이유로 이혼까지 당한다.

 

아이를 잃은 것, 그리고 그 곳에 살았다는 이유로 온갖 차별을 받게 되는 마사코. 그러나 마사코의 경우는 재일 조선인들에 비하면 낫다고 할 수 있다.

 

마사코와 함께 지냈던 우시다라는 일본 이름으로 불린 박석진 할아버지는, 강제징용으로 고생을 하다 원폭의 피해를 입게 된다.

 

그는 우리나라로 돌아오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다. 자신의 자식에게도 그 비극을 전해주어야만 했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일본인이 아니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힘들게,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1945년 8월 9일 11시 2분에 터진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이들에게 세상은 그 시간에서 멈춰버렸다. 더이상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아주 심각한 내용인데, 이를 중학교 3학년 서술자를 동원해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꿈 속에서 만나는 귀신이 나가사키에 살았던 여학생이며, 그를 만나게 되는 계기가 가족과 함께 한 나가사키 여행이었고, 이를 통해서 한국에 돌아와 살고 있는 박석진 할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다시 나가사키 여행을 통해 원폭의 피해를 절감하게 되는 그런 내용.

 

아마도 중학생 정도의 학생들이 쉽게 핵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성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목적성이 강한 소설이라서... 소설이라고 하지만 중간 중간에 무슨 보고서처럼 원자력폭탄에 대해서, 또 원자력발전에 관해서 설명이 되어 있으니... 확실히 교육용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감흥은 좀 떨어지는데, 그럼에도 원폭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간중간의 개입을 통해 원폭만이 아닌 원자력 발전이 평화와 공존할 수 없음을 역설하고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원폭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음을 잘 알려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경상남도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릴 정도로 원폭피해자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책에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원폭 2세들 역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있다.

 

아주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되는 원자력폭탄의 피폭...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겪은 비극이었음을 상기시켜 있으니... 청소년들이 읽어서 원폭의 피해에 대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 원폭의 피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덧붙여 읽으면 좋을 소설이 원폭 피해 2세대를 주인공으로 다룬 김원일의 "히로시마의 불꽃"도 읽으면 좋다.

 

여기에 좀 길지만 한수산의 "까마귀"란 소설도 (5권이나 되는) 읽으면 좋겠다. 이런 소설 속에서는 원폭으로 인한 고통이 생생하게 다가올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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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공공 - 자립, 학습, 비평, 삶의 기획
00그라운드 기획단 엮음 / manilpress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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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공공이다. 제목이 이중적이다. 하나는 공공이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적인 면에서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개인으로 살아가지만, 이 개인은 사회를 벗어날 수 없고, 사회 속에서 공적인 면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청년들이 극히 개인적으로 변했다지만, 이들의 삶 역시 공적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이들이 개인적 삶을 풍요롭게 하려는 시도가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만 제대로 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로 이 책의 제목을 받아들여도 좋겠단 생각을 했다.

 

이 책에 나오는 대담자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 삶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고, 그 삶의 길에서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하려고 하는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파편화된 세상에서 개인이 자기 자신 속으로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우고, 세워진 자신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대하는 것. 그래서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시작하는 공공'에 부합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기보다는 그냥 공공을 00으로 받아들여도 된다. 시작하는 00은 어떤 일이든 청년들이 시도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청년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어른들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거나 만들어 하는 모습, 그 일이 바로 00이다.

 

이 00에는 수많은 일들이 포함된다. 그래서 공공이란 말이 공적 영역이란 말보다는 그냥 무한히 열려 있는 00이라는 말이 더 마음에 다가온다.

 

청년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나눈 대담을 책으로 엮어냈다. 따라서 이 기획에 따라 다양한 주제들이 이 책에 나오는데...

 

그 주제들이 하나의 틀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다 다름으로 오히려 통일성을 지니게 된다. 열려 있는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을 현실로 갖고 들어온 청년들.

 

청년 실업이 심각한 이 때 이런 기획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경제논리, 자본논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길이 있음을 보게 되는데...

 

그 길을 보여준 것이 바로 이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이 바로 기본소득에 관한 이야기로 끝나고 있는데... 기본소득은 바로 청년들이 어떤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시작하는 공공.

 

이제 청년들이 시작해야 한다. 아니, 그들은 이미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그들을 우리가 보아주어야 한다. 이미 있는데 없는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자꾸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길이 있음을 많은 청년들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덧글

 

다만, 글씨가 너무 작다. 청년들이야 눈이 좋아 읽기에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조금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겐 읽기가 참 힘든 글씨 크기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들에게 자신들의 동년배들이 어떻게 시작하고 있는지, 그 00을 알려주는 목적이라고는 해도, 오히려 나이 있는 사람들도 읽고 아, 청년들이 이렇게 시작하고 있구나, 이런 00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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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 비타 악티바 : 개념사 30
하승우 지음 / 책세상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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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분 성과연봉제가 논의되고 있다. 공공부분에서 성과에 따라 차등 대우를 하겠다는 것이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퇴출까지도 가능하단다.

 

이러면 누구나 성과를 내려고 덤벼들 수밖에 없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신의 생계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과주의는 곧 결과주의를 낳고 (과정이 아무리 민주적이고 공공적이며 여러 사람에게 좋아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결과주의는 승자독식주의를 낳는다.

 

이런 승자독식주의는 피로사회를 낳고, 서로가 서로를 밀쳐내는 팔굼치 사회를 낳을 수밖에 없다. 성과연봉제라는 것이 사적인 분야에 도입이 되어도 이런 상황이 유지되는데... (이미 성과제를 도입한 사적인 기업들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피로에 몰려 삶이 찌들어 있는지) 공공부분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사회가 불안정해지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공성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 바로 공공성 아니던가.

 

이런 공공성을 국가로 치환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 책은 주장하고 있다. 공공성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공공성이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은 책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훌륭한 정치인으로 뽑는 박정희 때 공공부분 개발이 과연 제대로 된 공공성의 실현인가에 대해서 이 책은 단호하게 아니다라는 답을 하고 있다.

 

공공성은 민주주의와 떨어질 수 없는 개념이고 공공성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를 앞세우는, 특히 공무원을 주로 의미하는 공()의 개념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책임있는, 책임지는 주체들이 함께 한다는 공()의 개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독재시대에 발전한 공공부분을 공공성에서 멀어진 일이라고 한다면 식민지 시대에 일어난 일들은 더더욱 공공성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공공성이라는 말에는 민주적, 함께함, 열려 있음 등이 포함되어 있가 때문이고, 이러한 공공성은 특정한 누군가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고루 이익을 나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적부분 성과연봉제는 공공성에서 얼마나 멀어지고 있는지, 또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많은 일들이 공공성이 아닌 사적 이윤을 위한 일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진정한 공공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작은 책에서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이득을 취하는 집단에게 진정한 공공성은 무엇인지 판단하게 하는 자료로 이 책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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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지음 / 돌베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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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통해 남겨야 할 이유를 이 책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다. 기록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기록이 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그것도 안 좋은 역사만.

 

사법부.

 

이곳은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다. 사법고시를 통해서 선발된 인원들이 다른 사람들의 억울함을 없애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법에 의해 판단해야 하며, (이를 이들은 판결을 통해서 말한다고 하는데) 어떤 외적인 압력도 있어서는 안된다.

 

개인의 생각이나 개인의 이익, 선호도 있어서는 안 되고, 외부의 압력도 있어서는 안되는 오로지 법에 의해 사실 확인, 그리고 공정한 판결이 있어야 하는 곳, 이곳이 바로 사법부다.

 

어쩌면 외국의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도 눈이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본다는 행위 자체는 이미 그 봄으로 인해 자신의 관점에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볍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은 눈을 뜨고 법전(책)을 들고 있다고 하니... 책이란 엘리트들의 결과물 아니던가.

 

이런 사법부가 '오욕과 회한의 시절'을 지내왔다고 전두환에 의해 쫓겨난 이영섭 대법원장이 퇴임사에서 말했다는데...

 

그런데... 과연 사법부가 오욕과 회한의 시절을 겪었을까? 이들이 말하는 오욕과 회한이란 자신들이 좀더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고 외부의 눈치를 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절대 권력을 휘둘러야 하는데, 절대권력에 제동이 걸리자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안기부(예전에는 중앙정보부, 다음에는 국가안전기획부, 다음에는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이 바뀐다. 이름이 바뀌었다고 그들이 실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이 책을 보면 그 점을 잘 알 수 있다. 이들은 무소불위의 정보력을 통해 사법부까지도 휘둘렀으니 말이다. 최근에 벌어진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보라. 사법부가 과연 이들에게 책임을 물었는지...)의 통제를 받아 꼭두각시처럼 지냈던 시절이 있었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었고, 고문을 받았음에도 고문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적이 있었고, 누가 봐도 엉터리라고 할 수 있는 판결을 내린 적도 있었으니...

 

그렇다. 그들은 판결로 말했다. 우리는 권력의 시녀라고. 나도 권력의 중심부로 가고 싶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야겠다고.

 

이게 한 나라 독립기관인, 인권의 최후 보루이자, 억울한 사람들이 기대야 하는 사법부의 현실이었다.

 

읽을수록 화가 나고,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 그들은 판결로 말한다고 했으므로, 그 판결에는 반드시 자기의 이름을 남겨야 하고, 그것이 바로 기록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생각.

 

진정한 엘리트라면 역사의 심판을 잊어서는 안될텐데... 자기의 출세가 아니라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권력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법에 의해 그 사람들을 보호해주어야 하는 사람... 그들이 바로 사법부에 있는 사람들일텐데...

 

참담한 사법부의 역사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법부는 판사들을 말한다. 검찰은 여기에서 간간히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들은 사법부에서는 제외된다. 그러니... 판사들도 이 따위였는데...(이런 거친 표현을 용서하시라. 하지만, 이 말을 들을 만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면) 검사야 뭐...

 

자기들은 물라면 무는 개라고 스스로도 얘기했으니, 이 사법부라는 책을 읽다보면 검찰에 대해서 이런 책이 나온다면 얼마나 화가 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검찰과 사법부...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정의를 바라며 기대어야 할 곳인데, 지금은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생각. 여기에 제4부라고 하는 언론까지도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으니, 이래저래 힘없는 사람 기댈 곳이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권력집단으로 남을 수는 없다. 이런 기록들이 모이고 모여 이들의 허상을 까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춘추전국시대를 보자.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법가의 사상이 필요했지만, 이미 통일된 국가에서는 법가가 아니라 유가가 통치의 이념이 되었다는 사실.

 

법으로만 다스려지는 사회, 법에만 호소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법은 마지막에 동원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난무하는 수많은 소송들, 건강하지 않은 사회라는 증거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사회. 그 사회를 만드는데... 사법부도 기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려면 이들은 엘리트 의식을 내려놓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정의를 실현하는데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에 이름이 나오는 판사들처럼, 안 좋은 예로 계속 역사 속에 살아남을 것이다. 중국의 사마천이 "사기"를 쓴 이유. "사기"에서도 그 유명한 "열전"을 쓴 이유. 그것은 역사를 통해서 사람들이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경계하기 위해서이지 않겠는가.

 

이 책. 사법부. 나같은 일반인들에게도 사법부의 실상을 파헤쳐주는 역할을 해서 좋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법부에 관련된 사람들, 그 사람들부터 읽어야 할 것이다. 통렬한 자기반성 없이 사법부 개혁은 일어날 수 없으므로.

 

우리 역시 두 눈 똑바로 뜨고 사법부가, 검찰이, 국정원이, 정부가, 국회가 어떤 일을 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래야 함을 이 책을 읽으며 더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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