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러웨이 선언문 -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관한 전복적 사유
도나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 옮김 / 책세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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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자꾸 손이 가는 사람이 있다. 이해하려면 그 사람만 집중적으로 읽어도 될까 말까 한데, 그렇게 하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읽지 않으면 무언가 마음이 찜찜하고...


그런 사람들 중에 해러웨이가 있다. 언젠가 해러웨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꼭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한 장의 잎사귀처럼]을 읽고는 잠시 뒤로 미뤄뒀다. 아직은 해러웨이를 읽을 때가 아니구나.


그러다가 해러웨이 선언문 중에 [사이보그 선언]이 자꾸 언급되는 책을 읽게 됐다. 이거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구입했다가, 미루다 미루다 읽다가 또 손을 뗐다가 다시 읽다가.


그럼에도 잘 이해가 안 된다. 나중에 좀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읽어봐야겠다. 그럼에도 사이보그나, 반려종 선언에 들어있는 의미를 내 나름대로 추측한다.


해러웨이의 주장을 이해했다기보다는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외쳤는데, 해러웨이는 '인간은 죽었다'고 외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신이 죽으면 그 자리에 인간이 들어서야 한다. 유발 하라리 말대로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가 되어가고 있는 인간이다. 벌써 인간은 신의 자리에 올라섰다. 니체가 19세기에 외쳤던 신은 죽었다가 21세기에 와서는 현실이 되었다고 할까.


니체식의 초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이미 인간은 지구에서 군림하는 유일한 종이 되지 않았는가. 지구를 좌지우지하는 인간. 


아직 공식 명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인류세'라는 지구 역사에서 한 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인간 아닌가.


이렇게 인간이 신의 자리에 올라섰다면, 이제는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인간은 죽었다'고 외쳐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을 죽이지 않고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러웨이가 쓴 두 선언문을 나는 '인간은 죽었다'는 외침으로 읽었다.


인간이라고 할 때는 주로 남성을 지칭했는데, 해러웨이는 그를 부정한다. 이제는 남성만이 인간이 아니다. 여성을 비롯해서 성소수자들뿐만 아니라, 사이보그까지도 인간의 대열에 합류한다.


여기에 반려종까지 합세해서 이 지구라는 장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인간은 죽었다. 해러웨이가 대담에서 '아기 대신 친족을 만들자'가 다음 선언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때 친족엔 인간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사이보그를 비롯해서 다양한 종들이 포함된다. 그렇게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인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 얼마 전에 읽은 [빅이슈]에서 뜨개질에 관한 글을 생각나게 했다. 해러웨이 역시 다양한 종들이 뜨개질처럼 서로 엮어서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그 과정이 결코 단순하지도, 단일하지도, 또 쉽지도 않겠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나는 종 안팎에서 맺어진 모든 윤리적 관계는 관계-속의-타자성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라는 가늘고 섬세하며 질긴 실로 뜨개질한 편직물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며, 함께 살아감으로써 존재한다. 누가 있으며 누가 생겨나고 있는지 묻는 것이 의무다.' (178쪽) 


'다른 이와 나누는 애정, 헌신, 솜씨에 대한 열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191쪽)


이런 해러웨이 글을 읽다보면, 같은 인간들끼리도 잡아먹지 못해서, 또 같은 정당 안에서도 제 권력만을 위해서 상대를 비방하고, 상대가 무너지기를 바라는 말과 행동을 하는 존재들을 보면 이들은 도대체 어떤 종일까 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이들을 배척하더라도 그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러웨이는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고 한다.


진화론을 믿지 않는 창조론자들에게 '진화'라는 말을 빼고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어떤가 제안한다.


'"창조/보살핌"파의 사람들은 기독교인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는 윤리적인 자연 관리의 실패에 정말 화가 나 있어서, 동물을 더 잘 보살피고 기후를 망치지 않으려 대단히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화"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문을 열고 나가버리겠지만, 좋은 관리란 어떤 것인지 물으면 실용적인 대화를 할 수가 있지요.' (355쪽)


이렇게 함께 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같은 종에서도 같은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람들끼리도 소통이 안 되는 사회에서는 더욱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인간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기때문이다. 인간과 다른 존재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시대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아이보다는 친족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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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 - 분노라는 가면을 쓴 진짜 감정 6가지
충페이충 지음, 권소현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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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이 쓴 책. 참 좋게 읽었다. 분노를 할 때 해야 한다고. 분노는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오히려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를 더 안 좋은 쪽으로 이끌어간다고 하던 책.


  분노할 때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도 그렇다. 분노가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한다.


  우리 몸이 안 좋을 때 열이 나듯이 무언가 나에게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분노가 인다고 한다.


  즉, 분노는 신호라고 한다. 이 신호를 읽지 못하면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잘못되어가는 사회에 분노하지 않으면 더욱 안 좋은 사회가 되어 모두가 고통받듯이, 자신이 분노하고 있는 지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도 힘들어진다고 한다.


왜 분노하는가? 무엇인가 해결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 해결되지 않았기에 분노라는 감정으로 표출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이 책은 분노에 대해서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이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무작정 억누르려고만 하지 말고, 표현할 수 있을 땐 표현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적정한 수준을 지켜야 하고.


'분노는 사랑에 대한 호소이며 관계에 대한 갈망이다'라고 이 책의 표지에서 말하고 있다. 즉, 분노는 갈망에서 나온다. 그리고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자기가 한 만큼 대우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온다.


나는 이렇게 했는데 왜 나처럼 안 해줘? 하는 마음이 분노로 나타날 때도 많다. 하지만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여러 감정이 교차될 수밖에 없다. 분노 역시 마찬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분노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좀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이렇게 분노를 잘 파악해서 자신의 삶을 긍정적인 쪽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이 책은 여러 장에 걸쳐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차분히 들여다보고,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익히라고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나약함의 표출이 분노가 아니라 분노도 자신을 존중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좀더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를 파악하는 일. 이것이 남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앞서야 한다고 한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분노는 정당하게 자리잡고, 정당하게 행사될 수 있다.


이렇게 분노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삶. 그런 삶을 산다면 사회를 바꾸는데도 긍정적인 분노가 작동하지 않을까 한다. 스테판 에셀이 말한 '분노하라'는 바로 이런 긍정 위에서 행해지는 분노다.


이 책과 더불어 틱낫한 스님의 [화]를 읽어도 좋겠단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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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의 의미 동문선 현대신서 16
존 버거 지음, 박범수 옮김 / 동문선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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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의 의미]다.


보이는 것을 보는 것. 보인다는 말, 수동적인 말이다. 의지가 개입하기 전에 눈에 들어오는 대로 인식하는 일. 그런데 보이는 것을 본다고 할 때는 의지가 개입한다. 


똑같은 존재라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르게 보인다.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아는 만큼 보인다를 수동적으로 해석해서,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앎에 한계가 있다고 인식한다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내가 보는 것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과 같다. 즉 자신이 놓치고 있는 면이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는 말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 눈에도 똑같이 또는 비슷하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일 수 있다. 엄청나게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특히 예술에서는.


그래서 예술 감상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지 않나. 자신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의 다양성은 이런 다양한 관점에서 나오지만, 다양한 관점은 곧 보기의 차이에서 온다.


그런데 어떻게 보아야 잘 봤다고 할 수 있나?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나? 단지 예술에 대한 지식뿐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 지식이 총 망라되어 작동되어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꽤나 많은 지식이 필요한데, 특히 사회와 동떨어져서 볼 수 없다는 점을 이 책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


존 버거 책을 읽으면 관점의 다양함과 관점의 독특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존 버거 역시 노력을 많이 했으리라. 


그는 어떤 것을 볼 때 그것을 따로 떼어서 보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따로 떼어서 볼 때도 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살고 있는 세상과 관련짓는다. 사회와 동떨어진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춰진 진실을 찾아낼 수가 있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또는 동물이든 그는 보이는 존재들에게서 무엇인가를 더 보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이 본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 역시 잘 보라고.


이런 점을 잘 나타내는 문장이 있다. 사진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한 말이다.


'사진이 동시에 개인적, 정치적, 경제적, 극적, 일상적, 그리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여질 수 있도록 사진을 둘러싼 방사 체계가 구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93쪽)


즉, 사진을 볼 때에도 다양한 관점을 작동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주어진 대로만 해석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방통행은 없다. 일방통행은 보기가 아니다. 그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다. 이런 보기에 대해서 동물, 사진, 미술을 통해서 그 실례를 들어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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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갈 땐, 주기율표 - 일상과 주기율표의 찰떡 케미스트리
곽재식 지음 / 초사흘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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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외우기 싫어서 포기했던 화학. 

구구단은 어떻게 어떻게 자연스레 외워졌는데, 지금도 구구단은 잊어버리지 않고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데, 주기율표는 왜 외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주기율표가 왜 중요한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기율표보다는 화학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몰라서이기도 했다.


화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살면서 화학의 기본이 되는 주기율표를 이해할 생각을 못했으니, 화학은 점점 나와 멀어질 뿐이었는데...


최근에 화학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으면서 주기율표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이해하게 됐다.


여러 사람, 여러 시대를 거쳐 주기율표가 계속 보충되고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나트륨(Na)이 소듐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칼륨(K)이 포타슘으로 플루오르(F)가 플루오린이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화학협회에서 명칭을 바꾼 이유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을 쓰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쓰는 용어를 쓰는 것이 더 편하다고 여겨서였을까 그것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 바뀐 명칭들을 더이상 헷갈리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 책, [휴가 갈 땐, 주기율표]를 만났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원소 기호 외우지 않아도, 주기율표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 순서가 생각나도록 되어 있다.


총 20개의 원소, 아니 주기율표 20번째까지만 다루고 있는데, 첫번째인 수소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인 칼슘으로 끝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로 하는 이 원소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하나의 원소가 다른 원소들과 결합할 때 어떤 물질이 되는지, 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우리 생활과 관련지어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화학에 대해서 나처럼 싫어하던 사람도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20번째 원소 주기율표를 보자. 그리고 각 원소에 우리 생활의 어떤 것들과 연결지어 놓았는지도 보자. 정말, 우리 생활 자체가 화학임을 이 주기율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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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2-06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쓰는 작가예요
이렇게 배웠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

kinye91 2023-02-06 15:5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과학을 일상과 관련지어 잘 알려주고 있어서 좋았어요.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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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본 지가 얼마나 되었지? 하늘을 올려다 볼 틈도 없었나? 밤이 되어도 별보다도 더 빛나는 땅의 빛들로 인해서 밤하늘의 별들이 빛을 잃지 않았나?


내가 보지 않아도 별은 별일텐데... 천문학자들에게는 별이라는 말과 행성과 위성, 혜성이 다른 말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냥 별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별들은 이제 별 볼일 없어지고 만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 


천문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낸 책이다. 천문학에 관한 내용도 있지만, 천문학을 공부하면서 겪게된 자신의 일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천문학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에게도 읽을 만하다고 느끼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요즘 천문학자들이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사실까지도.


우주로 날아간 우주선들이 보내오는 사진들로도 행성을, 별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다고 하니. 


이렇게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시대라고 해도, 우리는 별에 대해서는 아련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달에 대한 사실들이 많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달 하면 무언가 그리움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듯이.


여전히 사람들이 우주로 나아가 살지 못하고 있는 상태, 달에 발을 디딘 지 오래 되었지만, 최근에야 다시 달에 사람을 보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니, 그만큼 우주는 여전히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다.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우리에게 어떤 아련함, 그리움, 동경 등을 주는 존재. 그런 존재를 연구하는 학문. 천문학. 그리고 천문학자.


이 책에는 그런 천문학을 공부하면서 겪게 된 일들이 많이 나오는데, 드물기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과 남성에 대한 차별이 있음도 드러내고 있고, 또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이 얼마나 잘 기록된 자료인지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최근에 천문학의 성과도 알려주고 있으며, 단지 별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땅으 이야기, 즉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로 연결이 되어서 좋다.


책의 끝부분에 나오는, 천문학자들의 그들의 책이나 논문에 쓰는 주체를 나타낸다는 말. '나'가 아니라 '우리'라고 한다는 말. 이때 '우리'는 함께 연구한 과학자들이 아니라 바로 '인류'를 뜻한다고 한다.


그렇게 과학은 특정한 한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해온 결과물이라는 사실. 그 점을이 책이 알려주고 있으며, 우주로 나아가는 일들이 결국은 '인류'의 일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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