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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
조시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3월
평점 :
기괴한 느낌을 주는 소설(동양식 정원, 중국식 테이블. 파수破水-이 작품은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는 힘들다)도 있고, SF소설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소설([월간 코스모스 ]6월호, 특집:외계문학, 어스, 무덤 속으로,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도 있고, 그냥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다루고 있는 소설(파수, 에코 체임버)도 있다.
다른 내용의 소설들을 엮어 하나의 소설집으로 내었는데, 무엇보다도 읽는 재미가 있다. 읽기에 몰입할 수가 있는 소설들이다. 한편 한편이 모두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마치 정념이나 무엇을 떨치지 못해 그 속에 빠져들듯이,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기보다는 그 모호함 속에 빠져들어 버린다.
'동양식 정원'에는 물고기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원념을 버리지 못해, 그곳으로 가버리는 사람들. 이는 중국식 테이블에서도 마찬가지로 나온다. 마치 옛날 동양 공포 영화를 보는 듯한, 귀신이나 귀신들린 사람들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여기에 '귀'를 먹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파수'에서도 반복되어 나온다. '귀'가 잘리거나 '귀'를 먹었다는 것은 듣지 못한다는 말 아닌가. 듣지 못함, 이것은 불통인데, 귀를 잘라버리거나 귀를 먹어버리는 것은 남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의미 아닌가.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 아닌가 싶기도 한데,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에서 인간은 영혼(데이터)으로 변해버렸다. 인공지능이 다스리는 사회에서 인간은 데이터로 존재하고, 그 데이터가 인간을 흉내낸 몸으로 들어가 지내다 다시 데이터로 저장되는 그런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몸은, 유한한 몸, 질병에 걸리는 몸을 혐오해서 무한한 생명, 질병 없는 인간의 몸을 추구하는 우리의 모습이 만나게 될 미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몸이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몸은 독성을 지니고 있어서 땅에 묻을 수도 없다. 우주로 쏘아올릴 수밖에 없다. '어스'와 '무덤 속으로'를 보면 그러한 사회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은 이제 지구에서 살 수 없다. 인간 스스로가 지구를 망가뜨려버렸다. 개조된 몸으로 살아가는 인간들, 그러한 인간들을 우리는 인간으로 인정할 수 있나? 이젠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는 인공지능이나 복제인간에 대한 논의를 떠올리게 하는데, 소설 속에서 그러한 인간들은 예전의 인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인간이라고 할 때의 인간처럼 살고 죽고 싶어하는 존재들이 있는데, 그러한 인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데이터로만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었을 때를 그리워하고 그때 사랑한 사람을 찾아가는 존재를 그리고 있는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에서도 그 점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귀'가 없는 사회가 맞닥뜨릴 미래의 모습, 어쩌면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결국 이 소설집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귀'를 먹어버렸다는 표현이다. 듣는 역할을 하는 '귀'를 자신이 먹어버렸다는 것, 또는 잘라버렸다는 것은 남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고, 이는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밀어붙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을 끝까지 밀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데, 그러한 세상이 행복할 수 없음을 이 소설집의 다양한 배경과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 재앙부터 시작해서 외계 탐사 및 이주, 인공지능 개발 등등이 과연 소통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쩌면 이들은 다른 존재들의 '귀'를 먹어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일방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이 소설집을 통해서 미리 만나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