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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무섭다. 그러나 거쳐야 할 일이다. 겪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에서는.
소설의 배경은 중2다. 우리나라에서 중학교 2학년 때를 사춘기가 가장 심한 때, 또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고, 친구 관계가 가장 중요하게 작동하는 때라고 한다.
친구 관계! 정말 중요하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길 때 제일 먼저 찾는 존재가 바로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처음 겪게 되는 일이다. 그러니 서투를 수밖에 없다. 서툰 행동과 말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친구 관계가 틀어질 때도 있다.
서툰 행동과 말 때문에 틀어지지 않으려면 자신을 감추어야 한다. 친구에게 맞추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친구가 뭘 원하는지 알아서 그에 맞게 행동하고 말을 해야 한다. 특히 친구가 권력을 지니고 있을 때에는.
위계, 그렇다. 서열이 생긴다. 여러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성향별로 또는 누군가의 주도로 몇몇끼리 모이게 되고, 그것이 굳어지면 다른 모임에 끼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이미 속해있는 모임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 한다.
중학교 교실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이 소설 역시 그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학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 그것을 관찰하면서 가까스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하는 다니자와 유카. 초등학교 때 친했던 노부코는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지만 당당하게 맞선다. 자신의 소리를 낸다.
그런 노부코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다니자와. 그렇다. 숨 막힐 것 같은 교실 생활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노부코를 통해 다니자와 역시 관찰자로서 지내온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아무 것도 달라질 것이 없음을.
자신이 자신에게도 방관자였고, 자신을 자신이 가장 부끄러워하고 비난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노부코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순간 이미 달라진 자신을 발견한다. 이제는 과거 관찰자, 방관자로만 지내던 자신과는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그것이 내가 싫어하는 나의 최후였다'(354쪽)고 말한다.
다니자와가 좋아하던 이부키와의 관계에서 위악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남을 잘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부키에게서 이런 소리를 들으며, 다니자와는 더욱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게 된다.
'제일 싫었던 건, 다니자와가 그걸 꾹 억누르면서 분명 자기가 제일 싫어할 방식으로 나에게 쏟아냈다는 거야. 네가 싫어하는 네가 나보다 상처받은 얼굴로, 자기에게 상처를 줬어' (364-365쪽)
이 구절에서 이 소설의 제목을 연상할 수 있다.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이라는 제목을. 이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관찰하면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그러면서는 속으로는 관찰하는 자신을 높이고 관찰당하는 친구들을 낮추는 다니자와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그것이 결국 자신을 낮추는 것밖에는 되지 않음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이부키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자와가 노부코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노부코는 자신을 관찰자의 자리에 놓지 않고 주체의 자리에 놓고 있으니까.
주체의 자리에 선 학생은 친구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아니, 친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을 누르지 않는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 모습을 이 소설에서 시종일관 보여준 존재는 이부키다. 그런 이부키를 통해서 다니자와 역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중반까지는 무섭다. 여학생들 사이의 따돌림, 모임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그런 모습들이. 여기에 자신을 싫어하면서도 자신을 지키려 애쓰는 다니자와의 모습. 여기에 사춘기 남녀관계가 끼어들면서 더욱 힘들어지는 친구들과의 관계들이.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자신을 바로보게 되는 다니자와의 모습. 남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눈만이 아니라 자신의 육체를, 살아있는 몸을 알아가는 다니자와의 모습을 통해서 소설은 무서움에서 응원으로 마음을 옮겨가게 한다. 스스로를 찾아가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행동을.
중학교 2학년이 주요 배경인 이 소설에, 한 학급에서도 철저하게 위계가 나뉘어진 아이들의 모습, 그런 위계를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 그럼에도 그것을 없애지 못하고 있는 현실. 여기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한 소녀의 모습을 통해서, 과연 이런 일을 모두가 겪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따돌림, 괴롭힘 등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다름'과 어떻게 공존하느냐를 배우는 과정으로 학교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부모에게서 떠나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할 때, 이 때 자신이 주체로 당당하게 설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하는 소설.
다니자와처럼 자의식이 강한 사람도 힘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그 과정을 힘들게 거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은 애정을 담아 고백할 수 있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이부키처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학창시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학교의 모습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