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 - 자서전
스티븐 윌리엄 호킹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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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호킹의 모습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 그리고 뒤틀어진 몸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루게릭병이라는 근육이 위축되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그. 21세에 발병했다고 하니, 참 오래도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루게릭병에 걸리면 얼마 살지 못하던데... 1942년생인 그가 2013년인 지금까지 살아 있다. 이것은 단순한 경탄을 넘어 그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살아남아 우주론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잘 모르겠는데, 이 책의 해설에 보면 호킹의 복사이론은 우주론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 그는, 그가 말하는 '무경계'에 살고 있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그는 말한다.

 

'나의 장애는 나의 과학 연구에서 심각한 걸림돌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었던 것도 같다. 나는 학부생에 대한 강의나 교육의 의무를 지지 않았고 지루하고 따분한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오롯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동료들에게 나는 일개 물리학자일 뿐이지만, 대중에게 나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일 것이다.'(152쪽)

 

그렇다. 그는 바로 자신의 삶에서 경계를 없애버린 사람이다. 그가 연구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그런 경계없음에서 그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으며, 그런 그를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쓴 자서전이다. 엄밀히 말해 그가 썼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는 팔을 움직일 수 없으므로. 그러나 현대과학의 도움을 받아 그는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도 그는 무경계인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전문적인 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고자 했고, 또 그렇게 낸 책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역사"인데...이 책은 세계에서 많은 판매를 이룬 책이기도 하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는

 

'내가 장애를 딛고 이론물리학자가 되기까지의 흥미로운 사연이 책의 판매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의 역사"를 사서 책장 안이나 탁자 위에 진열만 해놓고 읽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확신한다. ... 반면에 적어도 일부 사람들이 내 책을 애써 읽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안다.'(125쪽)

 

이렇게 그는 자신의 처지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지만 거기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포기하는 이유를 찾지는 못한다. 오히려 어려운 책임에도 불구하고(아무리 대중적으로 책을 썼다고 하더라도 우주를 다루고 있는, 그것도 제목이 "시간의 역사"인 책이 쉬울 리가 없다) 읽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이것이 호킹이 지닌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하고 있다.

 

'내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면, 나는 행복하다.'

 

그는 가정으로 말했지만, 우리는 사실로 말할 수 있다. 그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고.

 

스티븐 호킹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신이 쓴 책이기 때문에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책인데... 분량도 얼마되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다. 앞부분에서는 호킹의 성장과정에 대한 이야기라서 쉽게 읽을 수 있는데, 뒷부분으로 가면 그가 루게릭병에 걸린 이후에는 우주론, 또 물리학 분야로 들어간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여럿 나온다.

 

특히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냐는 타임머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를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하나로 만들어준 블랙홀 이야기는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다. 다만 그가 그런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했고, 이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문제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시간 여행은 불가능할 거라고 말했는데...

 

'설령 미래에 어떤 다른 이론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시간여행은 영원히 불가능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언젠가 시간여행이 가능해진다면, 지금 우리 곁에는 미래에서 온 관광객들이 넘쳐날 것이다.'(142쪽)

 

상식적으로도 시간 여행은 불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여기에 중첩되어 있는 과거-거기, 미래-거기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공간의 중첩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는데.. 무슨 홀로그램처럼 공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공간에 존재하는 인간도 홀로그램처럼 존재하게 되나? 아니면 시간-공간이 하나의 쌍으로써 무수히 존재한다고 해야 하나? 하는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

 

다행히도 호킹은 우리가 '타임머신 지평을 통과하여 타임머신에 진입하려는 사람이나 우주선은 복사(輻射) 번개에 맞아 흔적도 없이 파괴될 것이다.(140쪽)'라고 하니, 여기에 대한 생각은 더이상 하지 않기로 하자.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읽었던 "시간의 역사" 그러나 이 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더불어 내가 우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은 사람은 어떤 상태에서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예로서 나에게 존재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존재할 것이겠지만.

 

그의 자서전인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루게릭병은 근육은 망가뜨려도 뇌는 망가뜨리지 못한다고.. 그가 생각하는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고.. 그래서 그의 삶은 경계가 없는 삶이라고. '무경계'란 말은 경계가 없다고 말하기보다는 경계가 너무도 뚜렷한데, 그 경계 위에서 이 쪽 저 쪽을 다 볼 수 있는 상태라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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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시대의 불꽃 16
김문주 지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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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윤.

그를 처음 만난 건 풀빛 출판사에서 발간한 "풀꽃 판화 시선"에서였다.

시집의 첫 장에 판화 두 장이 실려 있었고, 그 판화는 힘있는 민중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당극에서 걸개 그림으로 그의 그림이 이용되기도 했었고.

 

잊고 있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났음을. 이제는 우리 곁에 없음을. 그의 작품이 미완임을.

 

정권에 아부하는 미술과 서양의 추상적인 미술을 추구하던 미술계에서 우리 전통의 맥을 잇는 미술을 하고자 했던 사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란 치열한 고민을 통해 현실을 드러내고 현실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것을 미술로 보여주고자 했던 사람.

 

그의 판화는 독일의 케테 콜비츠를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케테 콜비츠도 독일의 현실을 판화로 표현해내어 독일 민중의 삶을 자신의 작품세계로 삼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윤이 살았던 시대와 콜비츠가 살았던 시대가 다르다는 점과 전통이 다르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타나겠지만, 오윤의 작품에서는 민중들의 힘있는 모습이 잘 표현되고 있다. 그는 아무리 힘든 삶을 살아가는 민중이라도 그 힘듦 속에서도 변혁의 꿈을 잃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것을 그의 작품 속에서 나타내려고 했다.

 

그의 작품이 동학에서 전쟁으로, 그리고 통일로 계속 나아가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의 작품을 '한(恨)을 생명의 춤으로' 바꾸었다고 평가를 하는데... 그림들을 살펴보면 무언가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림에서도 이야기(스토리)가 있어서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그에 대한 평전이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스러져간 사람들의 평전 시리즈로 기획된 책 중에 16번째 책인데... 그에 대해서 잘 모르던 사람들을 위해서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잘 쓰여져 있다.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오윤이 '갯마을'로 유명한 소설가인 오영수의 아들이었다는 것. 참... 이렇게 세상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구나.

 

그는 더 좋은 세상을 보지 못했다. 그의 사후 87년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대통령 직선제가 이루어졌으며, 형식적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여 그의 작품이 과거에는 이랬지 하면서 과거를 회고하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었으면 했는데...

 

아니, 이런 오윤의 그 작품들이 지금에도 다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다니... 그의 '칼노래'이란 판화에서 잘라냈던 그 많은 것들이 아직도 우리가 잘라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가 '통일대원'이라고 빌었던 그런 그림들이 우리에게 아직도 진행형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까?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닐까? 그의 그림을 역사 속에 간직하지 않고 다시 현실로 불러내야 하는 이런 현실은 무언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된 것이 아닐까.

 

그의 '원귀도'가 아직도 우리에게 다가오다니.. 이런... 참...

 

민중들의 삶에서ㅡ우리의 역사에서-그는 자신의 미술을 살아냈다. 이제, 그의 뜻을 미술에서뿐이 아니라, 삶에서, 우리의 현실에서 이루어내야 하지 않을까...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반복이 된다면 이는 "지금-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잘못이다. 그의 평전을 읽고 그냥 참 잘 살았구나 감탄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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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문존
심산사상연구회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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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진정한 보수란 바로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자칭 보수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 정말 보수인가 하면 그건 아니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로는 보수라고 하지만, 보수란 지켜야 할 가치를 목숨걸고 지키는 사람, 자신의 이익보다는 나라의 이익을 더 우선시 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래서 때로는 무서울 정도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보수다.

 

그런 사람이라야 보수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보수를 지칭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내가 잘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라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더 많이 생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니 정말로 보수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여기에 한국 근현대사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구한말이라고 하는 시대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5.16직후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한 가운에 서 있던 사람.

 

정통 유학을 공부하여 유학자들에게 신망이 높았던 사람. 해방후에는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총장이 되었던 사람.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 감옥생활에 의해 다리를 못 쓰게 되었지만 자신의 지조만은 굳건히 지켜냈던 사람.

 

해방 정국에는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방향이 아니면 아무리 명망이 있는 사람이라고, 또한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도 함께 하지 않았던 사람.

 

동지들이었던 사람이라도 변절을 했을 때는 가차없이 비판하였던 사람. 탄압이 두려워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일이 없었던 사람.

 

끝까지 자신의 이익을 털끝만큼도 추구하지 않았던, 오직 옳음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사람. 그런 사람, 김창숙.

 

그를 기리는 문집이 여러 권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은 그 중에서 뽑아서 다시 엮어낸 것이다. 시와 편지, 비문 등과 그의 자서전을 수록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김창숙이라는 사람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글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이 아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다.

 

그런 때에 김창숙의 글은 우리의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 도움을 준다.

 

진보니 보수니 하며 색깔 논쟁이니 뭐니 하면서 시끄러운 지금. 정말 보수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 그의 글들을 읽는 시간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덧글

 

다 좋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 책의 구성에서... 첫 부분이 '시'인데, 김창숙이 쓴 시는 아마도 대부분이 '한시'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한글로 번역한 시들만 실려 있고 한문 원문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책 제목이 '문존'인데, 그의 글을 원문을 실어주었으면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시는 번역 옆에 적어주면 따로 공간을 차지하지 않을텐데 하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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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롤링,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 줘 - 수업 시간마다 떠들어서 지적 받는다고?, 작가 내가 꿈꾸는 사람 5
최가영 지음 / 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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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처럼 나타났다고 해야 하나? 어느 순간 조앤 롤링은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그가 쓴 소설인 "해리 포터"시리즈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고, 무명 작가이던 롤링은 해리 포터 시리즈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많이 팔린다고 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세계적으로 어린이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조차도 열광하는 소설이라면 말이 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은 아무리 흥미로워도 작품성이 없으면 어느 정도 열광하다가 시들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는 7부까지 나오는 동안 점점 더 사람들을 열광 속으로 끌어들였으니, 세계적인 작가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게다가 최근에는 다른 이름으로 쓴 추리소설조차도 롤링의 작품임이 밝혀져 롤링이 다시 한 번 대단한 작가임을 드러내주었으니.

 

그런데, 이런 롤링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롤링이 그렇게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려운 시절을 겪고, 그 시절을 이겨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 그 사람이 어떻게 주인공인 해리의 고초를 알겠는가. 그 고초를 극복했을 때의 성취감을 알겠는가. 따라서 롤링의 삶은 해리 포터의 이야기를 완성으로 이끄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롤링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롤링 자신이 쓴 자서전이면 더 좋겠지만, 롤링이라는 사람을 잘 모르던 사람에게는, 이렇게 어린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내용을 전개해나가는 형식을 취한 이 책이 더 쉽게 다가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롤링 인생의 초창기는 행복에 가득찬 시기였고, 중반기는 고초로 가득한 시대, 그리고 지금은 영광이 넘치는 시대라고 한다면, 롤링 자신의 말로 앞 시기를 이야기하기에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제3자의 입장에서 롤링의 삶을 풀어주고 있기에 우리는 지나친 감정이입을 막으면서 롤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된다. (반면에 롤링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위험도 있긴 하지만)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는 꼭 명심해야 한다.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 이 말은 우리는 언제든지 성공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롤링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었던가.

 

해리 포터 이야기도 우연히 어느 순간 롤링의 머리에 떠오른 것 같지만, 이는 롤링이 꾸준히 준비해온 것이 어떤 계기로 인해 좀더 구체화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가 만들어낸 해리 포터 시리즈는 이렇게 기나긴 준비기간을 거쳐 탄생을 했다는 사실.

 

하여 롤링은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더라'는 바이런의 말과 같이 우리에게 혜성처럼 나타났지만, 혜성은 이미 자신이 갈 길을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 눈에 띄었을 뿐이다.

 

롤링을 다룬 이 책은 작가(그와 비슷한 직업)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한 번 한 번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꾸준히 길게 보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들이 롤링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어서 읽어도 좋고,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우리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라고 할 수 있는 롤링의 이야기를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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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 다산과 연암 라이벌평전 1탄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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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고 든 첫 느낌.

 

아, 늦었구나.

 

누군가 언젠가는 한 번 연암과 다산에 관해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쓸 자신도 없고 공부도 하지 못했지만, 이 둘의 이야기는 이야기거리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미숙이 글 써 버렸다.

 

이미 이에 대한 작업이 먼저 있었는데, 그 때는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이란 책에서 한 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제목이 '유쾌한 노마디즘과 치열한 앙가주망 사이'였다. 역시 고미숙이 썼고.

 

이번엔 그 때의 작업을 더욱 구체화했다고 보면 된다. 아예 책 한 권으로 나왔으니.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라고.

 

이들은 별이 확실하고, 이들이 제시한 길 역시 우리에겐 지도 역할을 하는데, 이 둘을 하나로 묶으려는 모더니티의 자장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 둘을 둘 그대로 인정해야 할 때라고, 자신의 체질에 맞게(최근에 고미숙이 명리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했고, 또 동의보감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를 했다고 하는데.. 물론 이 둘은 책으로도 나와 있다.) 둘 중의 한 별을 택하면 된다.

 

아니지. 명리학에 따르면 또는 체질론이라고 해도 좋다면 우리는 그 둘 중에서 누구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누구에게 끌리게 되어 있다. 자신의 체질에 맞는 사람에게로.

 

하늘의 별을 본다고 모든 별들에게 똑같이 감흥을 느끼지 못하듯이 어떤 별은 자신의 마음에 쏙 들어오는데, 그 별의 밝기라든가, 그 별이 있는 위치라든가 하는 것들이 그냥 자연스레 마음에 들어오게 되는데, 좋아하는 인물도 마찬가지리라.

 

이성적으로 나는 이런 쪽으로 가야지 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그런 자신을 발견하곤 하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마음과 머리가 서로 갈등을 일으킬 때 우리는 얼마나 힘들어 했던가!

 

마찬가지다.

 

같은 시대를 살아냈지만 다산과 연암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냈고, 그 살아냄이 글로써 남아 있는데, 그 글은 서로의 차이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고미숙이 책의 앞부분에서 말한 것처럼 연암과 다산이 만났을까 하는 질문은 이제 의미가 없다고 해야 한다.

 

조선 후기 실학사를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레 드는 의문이 바로 고미숙도 지니고 있었던 의문이다.

 

이 둘은 과연 만났을까?

 

태어나고 죽은 때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가 정조 때인데, 또 그들을 연결시켜 줄 인물들도 있는데(박제가, 정석치 등) 이들은 왜 서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을까, 정말로 서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을 지니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들의 만남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기 시작하면 우리는 정작 중요한 점을 놓치게 된다. 이것이 고미숙이 이 책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이 둘의 만남보다 우리는 이들이 같은 시대를 어떻게 살아냈는지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는 것.

 

같은 시대를 보는 관점의 차이는 그들 삶의 형태의 차이로 나타나고(이 삶의 형태 차이를 고미숙은 사주를 동원하야 해석하기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렇다고 고미숙이 운명론자라고 할 수는 없을텐데, 연암과 다산의 사주가 물과 불, 파동과 입자 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하니...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체질적으로 끌리는 무엇은 있고, 그것이 의식적이든 아니든 삶을 이루는 차이로 나타난다고 생각하고는 있는데...) 있다고 한다.

 

연암은 유목인(노마드)라면 다산은 정착민.(다산에게 '앙가주망'이란 말을 쓰는데, 이는 참여적 지식인이라고 하면 될 듯하기도 하다) 

 

연암은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탈주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래서 그는 리좀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면, 다산은 한 곳을 향하여 달려나가는, 나무를 지향하고 있는 상태.

 

연암이 중심을 거부하고 원심력을 발휘하는 삶을 살아갔다면, 다산은 중심을 추구하는 구심력을 발휘하는 삶을 살아갔다는 차이.

 

이런 삶의 차이가 연암의 탄생에서 다산의 죽음까지 딱 100년이라는, 한 세기라는 우연찮은 사실. 이 책의 2장에 나와있는 이들의 생몰연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연암 : 1737년~1805년  정조 : 1752년~ 1800년  다산 : 1762년 ~ 1836년

 

하여 이 백년 동안에 일어났던 두 개의 별들을 고찰하고 있으며, 그 별들의 중심에는 정조라는 또 하나의 별이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정조 또한 이 둘을 이야기할 때 조연이 아닌 주연이어야 함을 제3장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별들은 서로를 빛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또한 각자 자신만의 길을 품고 있어, 그 길을 따르려는 사람에게 지도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차례의 제목을 보면 이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에 대해서 우리 나름대로 어떤 별을 택해야 하는지, 아니 천성적으로 어떤 별에 더 끌리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1장 물과 불 - 파동과 입자

2장 기묘한 '트리아드' - 연암과 다산, 그리고 정조

3장 문체반정 - 18세기 지성사의 '압축파일'

4장 "열하일기" vs "목민심서" - 유쾌한 '노마드'와 치열한 '앙가주망'

5장 진검승부 - 패러독스 vs 파토스

6장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각 장들의 제목만 보아도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왜 그들이 이렇게도 대비를 이루게 되는지는 각 장의 내용들을 읽어가면서 찾아내면 된다.

 

다만, 우리들의 삶은 이들처럼 이렇게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 우리 안에는 더 많은 복합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 우리에게는 이 두 개의 별과 두 개의 지도가 다 유용할 때가 많다는 사실. 때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어떤 지도를 택할 것인가는 그 때 그 곳의 나와 관련지어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

 

어쩌면 내 판단 자체도 내 맘 깊은 곳에서 자연스레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을 극한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연암과 다산이라는 사실.

 

다산이 20세기에 먼저 주목받았다면, 연암은 21세기에 주목받았다고... 나중 온 자가 먼저 되고, 먼저 온 자가 나중 되었다고... 그러나 이들은 이 세기로 끝나지 않았다고,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계속 문제를 제기한다고.

 

자,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냐고, 그것이 평전이 제시하는 문제 아닐까.

 

다음으로 두 권이 더 기획되어 있던데... 이 책들이 나오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던데..

 

기대된다.

 

덧글

 

가끔 책을 읽다보면 연도가 잘못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물론 앞과 뒤를 살피면 아 잘못된 연도구나 하고 금방 알게 되지만, 그래도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책에서 연도는 좀 조심할 필요가 있다.

 

248쪽. 1881년 다산은 유배지 강진의 다산초당에 있었다. 라고 되어 있는데, 앞을 보면 이는 181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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