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라니. 멋모르는 어린아이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어른이 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혈기왕성한 청춘 시절에는 그 시절에 흠뻑 빠져 나이들어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청춘 시절은 현재만이 있는 시절이다.

 

어쩌면 어린시절은 미래가 더 많이 보이는 시절이라면 청춘은 현재에 몰입한 시절이다. 그런 시절이 지나고 서서히 늙어가면 이제는 현재에서 미래를 보고, 과거를 보게 된다.

 

미래는 조금, 과거는 많이. 과거가 많이 보일수록 더 늙었다고 할 수 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앞으로 살아갈 세월보다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는 빨리 압축되어 존재하고, 미래는 느리게 펼쳐서 존재하길 바란다.

 

어느 순간 나이듦에 대해서 저항하기 시작한다. 과거를 그리워하기 시작하고, 현재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이때부터가 늙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저항한다고 해도 늙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늙음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죽음, 그것은 무(無)다. 도무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언어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다. 칸트 식으로 말하면 '물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절대로 인식할 수 없는. 경험할 수도 없는.

 

사람은 누구나 늙고 죽어간다는 것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경험은 우리가 언어로 다시 전달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일회성이다. 불가역적이다.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경험을 하되 경험했다고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태가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저항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아무리 저항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몸은 자꾸만 중력의 법칙에 따르게 된다. 땅과 점점 더 가까워진다. 점점 더 중력이 몸에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니 결국 체념할 수밖에 없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 두려운 것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늙어감에 대해서 자신이 서서히 죽음이라는 구멍을 향해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게 된다.

 

청년기를 지나고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접어들면, 아무리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도 인간이 영원히 살 수는 없으니까, 사람들은 늙어감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이 아무리 젊다고 생각해도 이미 뒤쳐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젊은이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어지고, 최근에 나온 책들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부정하려고 해도, 자신의 언어와 젊은이들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체념이라기보다는 받아들여야 한다. 수용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일회적인 것 아니겠는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삶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겠다. 이 책에서는 많은 문학작품이 언급된다. 거기서 늙어감, 죽어감에 대해서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일회적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죽음과 더불어 산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유한함을 깨닫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또 무의 무의미함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저 공허하고 잘못된 기대, 자기기만을 되풀이하는 연습에 익숙해질 뿐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은 자신이 이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한사코 부정하며 자기기만의 희생자가 된다.  204쪽.

 

늙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자신과 거짓말 타협을 하며 살아간다. 207쪽

 

이것을 꼭 자기기만이라고 해야 할까. 현재를 살면서 현재에 과거와 미래를 불러올 수 인간이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과연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그렇기에 인간은 현재를 잘 살기 위해서 자기기만을, 거짓말 타협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언젠가는 오겠지만 아직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체념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수용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겠단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늙어감이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지만,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니,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유한한 삶, 일회적인 삶을 잘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올 미래를 미리 당길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미래는 현재에는 없는 것이다. 내가 살아간다면, 늙어가고 있다는 것 자체도 이미 죽음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 살아갈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니...

 

그럼에도 우리는 늙어감,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한다. 만약 죽음이라는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지금보다 나아질까... 그 점을 생각하면...

 

늙어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는 책이긴 하지만, 서양문학에 대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지만 그래, 그래 하면서 읽을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프루스트, 괴테, 토마스 만 등의 소설이 기본 바탕이 되고 있으니... 원. 그래서 내게는 많이 난해한 글이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코 2017-08-12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kinye91님의 이 글에 공감하는 내용이 참 많아요. 과거가 더 많이 보일수록 더 늙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씀도, 자신이 아무리 젊다 생각해도 어느 순간 이미 뒤처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씀도 느무느무 공감했어요. 저는 제가 나이가 들더라도 태생이 철이 없어서 죽을 때까지 철없이 살다 죽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런 것과 무관하게 어느 순간 꼰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볼 때가 있거든요. 그럴수록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kinye91 2017-08-12 14:13   좋아요 1 | URL
이 책에 나와 있는 글들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어요. 저도 적어도 꼰대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노력해야겠지요.

돌아온탕아 2017-08-1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리뷰네요. 잘 읽고 갑니다. :)

kinye91 2017-08-13 10: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