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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작가와의 대화이다.˝

독서 과목을 가르칠 때 기본적으로 언급하는 지식이다. 기계적으로 이해하고 암기하고 가르쳐 왔던 명제이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이 명제는 체화된 암묵적 지식, 그러니까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했던 지식이었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독서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필연적으로 적용되는 지식일 것이다. 알지만 설명하지 못한 이유는 독서 행위 자체가 설명이 필요치 않을 만큼 삶과 닿아 있기에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독서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른 채 독서 행위의 겉멋에 취했었기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어떤 책이 무척 재밌어서 문장 한 줄 읽어나가는 게 아까워질 때가 있다.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진실되기에, 전달하는 정보가 유익하기에, 가치가 깊기에, 혹은 표현이 기발하기에. 그 모든 사유들이 책을 통해 주고 받는 작가와의 합이 잘 맞아서 발생하는 즐거움 덕분이다.

나에게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이 그러하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와 내가 참으로 쿵짝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드가 잘 맞다. ˝독서는 작가와의 대화이다.˝ 라는 명제가 고정된 지식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한 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서 안달내는 즐거운 친구 사이의 수다처럼 살아있는 것으로 다가오는 경험. 정말 멋진 일이다. 이런 순간이 닥치면 비로소 그 명제가 형광등처럼 머릿속에 불을 밝힌다. 아, 이거였구나! 하고.

물론 대화가 즐거운 책들은 많았다. 하지만 진정 대화하는 기분을 인지하며 독서하는 경험은 드물다. 독서 행위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서 입술이 근질거리는,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는 그런 독서를 했으면 좋겠다. 이런 날것의 경험들이 하나 둘 쌓이다 보면 당연하게도 수동적인 독자는 능동적인 독자가 되고, 필연적으로 생산적인 글쟁이로 변신하곤 한다. 독서를 통해 타인의 삶을 알아가는 복락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변신 과정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를 알 것이다. 내 삶에 그만큼 즐거운 일이 늘어난다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많은 이들이 책을 통해 작가와 수다를 떨고 나아가 즐거운 글쟁이로 변신하길 바란다.

가끔 빽빽한 활자가 토나올 것처럼 미울 때도 있지만 이렇게 한 단락만으로도 소풍 전날처럼 사람을 들뜨게 하는 글을 먹으면 을매나 맛있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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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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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만 남은 삶.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한 여자가 있다. 죽기 마지막 날, 라스베가스에서 한판 멋진 승부를 낸 후 미련 없이 떠나리. 이제 그녀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마감을 위한 노잣돈뿐. 쾌속한 노잣돈 마련을 위해 시작된 좌충우돌 긴자 호스티스 적응기. (두둥!?)‘ 따위의 홍보 문구가 따라 올 것 같은 가벼움.


가벼움에 대한 단상

#1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알프레드 디 수자의 그 유명한 시가 떠올랐다. 압축의 미로 주제를 전달하는 시만의 강력한 쾌감이 있다지만, 이 책은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를 떠올리는 것 자체로 송구한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표현이 아쉽다.

저자가 어떤 사연을 들려주고 싶었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단순하고 평면적인 서술 방식 때문에 감동이 덜하다. 게다가 노잣돈 마련을 위해 긴자 호스티스로 취업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의 사연을 서술하는 부분은 지저분한 밤문화를 너무 미화시킨 건 아닌가하는 불편함마저 느끼게 한다. 저자는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그들 역시 어떤 삶의 목표를 가진 채 호스티스를 수단으로 살아간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수단 선택의 잘못됨을 적절한 선에서 지적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1년 후에 죽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이 무슨 짓을 못할까마는, 그래도 혼자 죽는 게 서러워서 묻지마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람이 손가락질을 받는 것처럼 그녀의 선택도 일말의 자괴감 따위가 함께 묻어났다면 어땠을까 아쉽다. 그래서 이 책은 자칫 ‘죽기살기로 살아내겠다고 결심했다면 수단 따위는 아무렴 어때~‘라는 메시지로 전락해버릴 것 같은 위태로움이 있다. 그러한 위태로움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을 꽁기하게 구겨 놓았다. 이런 나는 꼰대인가.


#2

대한민국이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쓴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가족이 편지 한 장 남기고 삶을 포기했다는 사연은 잊을 만하면 뉴스를 장식하곤 했다. 누구나 팍팍하다 못해 퍽퍽해서 언제나 몸 어디쯤엔 멍자국 몇 개는 달고 살아야 하는 그런 고달픈 인생이다. 그래서일까. 절망감만 잔뜩 떠안고 살아가는 개인이 죽음을 결심하고 어떤 계기를 통해 삶의 반전을 꾀하는 내용은 이제 너무 평범한 비극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상화된 비극을 접한다. 제1회 일본감동대상 대상 수상작이라 홍보하고 있음에도 이 책이 내 마음을 깊이 적셔주지 못한 탓은, 이 책 또한 예쁜 쇼윈도에 아기자기 장식된 비극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로인해 무뎌진 내 현실 감각 탓일까. 미드 <쉐임리스>에서 가난은 마치 패션처럼 소비된다. 주인공들의 쉐임리스한 삶의 방식을 장식하는 악세사리. 미드 <쉐임리스>가 고단한 삶을 노골적으로 상업화 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실화와 자기계발류의 감동을 덧바르고 있지만 불행을 소비하는 방식에는 미드의 그것과 다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불편했다.

일상화된 비극은 그 무게가 결코 더 가벼워 지지 않는다. 오히려 영혼의 21그램에 숨어들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좀먹는다. 그래서 나는 판타지와 할리퀸이 엉뚱하게 배합된 이 자서전이 불편했다. 역시 나는 꼰대인가.


#3

무더운 여름 날, 가볍게 읽고 싶어 선택한 책이었다. 분명 가볍게 읽겠다는 목적을 달성했는데 왜 나는 무겁지 못했냐고 탓을 한다. 꼰대는 무슨. 애다,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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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2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2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08-12 12:39   좋아요 0 | URL
신경쓰지 말구 팍팍 하셔요 막. 한 300개 던지는 겁니다. 친구가 되면 더 많은 분들이 더 좋은 댓글 달아주실 거예요.

쇼코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ㅎㅎㅎ.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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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다시 읽기 시작했고, 맥주 한 캔을 따며 존 레논의 이매진을 듣기 시작한다. 몇 번이고 절정에 이르는 음란한 폭염 속에서 신성한 에어콘의 가호를 받으며 나는 지금 무작정 평화롭기로 결정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으나 결국 자살을 선택한 레비의 생과 사를 떠올리는 이 밤에, 내게 강 같은 평화 또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 지금 당장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묻는다면, 지금의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래요. 오늘은 인간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 형편 없지만요.˝ 밖에서는 ‘교양 있는 데카르트적 환영‘을 기르던 레비도 수용소 안에서는 결국 절멸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듯, 인간이란 이렇게나 모순적인 존재다.


<이것이 인간인가>의 마지막장을 처음으로 덮었을 때, 나는 꽤나 단호했다. ˝이건 인간이 아니지. 암만.˝ 그 순간에는 우습게도 비정상회담의 다니엘마저 미워질 정도로 이성을 잃고 분노했다. 치솟은 분노만큼 할 말 못할 말도 많을 줄 알았다. 그러나 꽤 긴 시간 시도했으나 글로 풀어낼 수 있는 건 없었다. 1.3키로 짜리 살덩이가 엉킨 살타래로 변해버렸다.


손가락이 곱은 채 커서만 노려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돌이켜보면, 아마도 증언의 무게에 짓눌린 탓이리라. 때론 증언이 담고 있는 진실의 무게는 준비되지 않은 미경험자에게 감당할 권리를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숙한 미경험자는 일단 경험자의 삶을 극히 세심하고 조심스레 다루어야 할 유리상자로 설정한다. 바로 이 조심스러움이 내 활자를 가로막은 원인이었다. (물론 그러한 태도가 무조건 잘못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유야 많겠지만 그 웃음이 일종의 방어기제로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말투는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가볍다. 이 가벼움은 심각한 상황에서 방어기제로 작동하는 ‘웃음‘과도 같다. 무게감을 반쯤 덜어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나는 이렇게나 쫄보다. 그런데 그래야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은요, 잘 모르겠어요. 이게 인간인지, 아닌지.˝


진지한 태도로 글을 쓴다면 분명한 어조로 단언해야 할 것만 같았고, 그도 아니면 고뇌에 빠진 회색인간인 척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민낯은 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맹한 고백이다.


[ 이제, 사랑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집, 자신의 습관, 옷, 다시 말해 말 그대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빼앗겨버린 사람을 상상해보라. 그는 고통과 욕구만 남은, 존엄성이나 판단력을 잃어버린 텅 빈 인간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잃는 건 쉬운 일이니까. 그리하여 그의 삶과 죽음은 인간적인 친밀감 따위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아주 가볍게 결정될 것이다. 운이 아주 좋을 경우 그게 더 낫다는 순수한 유용성 판단 정도를 따를 수는 있으리라.(35쪽) ]


‘고통과 욕구만 남은, 존엄성이나 판단력을 잃어버린 텅 빈 인간‘. 그가 빼앗긴 ‘모든 것‘에는 과거의 습관과 기억, 미래의 꿈과 (쓰기도 민망한) 희망을 포함한다. 게다가 그들에게 ‘자살‘은 고차원적 사유가 선행되어야 하고 자유의지가 필요한, 지나치게 인간적인 행위였다. 따라서 그들은 죽음조차 자의로 선택하지 못한 채 산 채로 지옥을 견뎠다.(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견디기도 전에 죽었다.) 이것이 인간인가?


[ 자신의 도덕 세계의 한 부분이라도 포기하지 않은 채 생존하는 것은, 강력하고 직접적인 행운이 작용하지 않는 한, 순교자나 성인의 기질을 타고난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에게만 허용될 뿐이었다.(140쪽) ]


낙관적인 자도 비관적인 자도, ‘인간이 홀로 존재하며 삶을 위한 투쟁이 원초적인 메커니즘으로 축소되어버리는 수용소‘(134쪽)에서 결국 타락하게 된다. 대다수의 인원들은 이미 그들 내부에 신성한 불꽃이 꺼져버렸고 안이 텅 비어서 진실로 고통스러워할 수도 없으며 죽음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기 때문에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익명의 군중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극소수의 인원들은 생존을 위해 연대를 배신하여 특별히 잔인하고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특권층으로 타락한다. 이것인 인간인가?


이들도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한때 그들이 지니고 있던 영혼의 무리는 수용소에 들어온 첫날 모조리 빼앗겨버렸으므로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아니, 그들은 여전히 인간이었다. 죽을 때까지도. 인간은 끊임없이 변한다. 한때 자유의지를 행사했던 그들은 수용소에서 생존을 위해 인간성을 숨겼다. 그들의 인간성은 침묵하고 있었을 뿐,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숨기고 있던 인간성을 언젠간 회복했을 것이다. 충분히 오래 살 수만 있었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아니, 아니다....


죽을 때까지 삶의 의미를 정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무엇이며,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인간인지‘ 죽을 때까지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끊임 없이 답지를 한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말이 되든 죽이 되든 한가득 싸질러 놓았다. 어쨌든 이것은 시험이 아니므로 언제고 수정이 가능하다. 나처럼 죽을 때까지 인간으로 살다 인간으로 죽고 싶은 쫄보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이 책의 내용이 주는 무게감은 버겁다. 가볍고자 했으나 발목에 추를 달고 강에 뛰어든 사람처럼 결국엔 침잠해버린다. 쓰다 보니, 내 글의 주재료는 책의 내용보다 이 책을 대하는 내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리뷰나 서평은 고사하고 감상조차 되지 못했다. 삶에 대한 이해가 얕아서이다. 쓸데 없이 장광설만 늘어놓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 책에 대해 꼼지락거릴 수 있게 되었으므로 오늘밤은 이 책을 좀 잊어버리기로 하자. 내일은 어떨지 모르지만, 오늘은 인간인 것 같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오늘밤은 조금 기뻐하기로 하자.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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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07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아무래도 제가 이긴 도박인것 같습니다. 저 자신의 글 알아보는 눈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는군요 ㅎㅎㅎ

쇼코 2017-08-07 12:22   좋아요 0 | URL
ㅎㅎ 부끄럽게 왜 이러세요.... 쇼님께 칭찬 들으니 더욱 거세게 이불킥 하고 싶어졌어요. 으하하ㅠ 그래도 역시 당근은 기분이 좋네요. 고맙습니다^^ 오늘도 무덥습니다. 건강 조심하셔요!!

cyrus 2017-08-1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내용 자체가 묵직하고, 상당히 진지해서 눈으로만 읽고 이 책을 평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레비의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레비가 생전에 느꼈을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쇼코 2017-08-21 14: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늦은 휴가를 다녀와서 답글이 늦었습니다.

저도 레비의 글을 읽으면서 이 사람의 체험과 사유에 압도되어서 평가하는 행위가 죄스럽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래서 평가는 고사하고 감상조차 내리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은 레비의 다른 책들도 차근차근 읽으면서 그의 삶에 대해 좀더 겸허하게 생각할 수 있길 바라고 있을 뿐이랍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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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없는 구타가 가능하고, 연대의 단절이 인간의 타락을 부추기며, 자살이라는 철학적 행위는 최상위의 사치가 되어버린 절멸의 수용소 아우슈비츠. 그곳에서 ‘구조된‘ 생존자 프리모 레비가 우리에게 묻는다. ˝이것이 인간인가?˝ 인간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면, 우리는 그 서늘한 물음에 대답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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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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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보다 여자가 먼저 이 책을 읽길 바란다. 물론 이 책이 남자가 읽기에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남자들도 꼭 한 번 쯤 읽길 바란다. 그러나 이 책은 ‘실전서’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여자가 먼저 읽길 바란다는 의미다.

젠더 위계에서 하층을 차지하는 여자들은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평생을 여자로서 ‘살아내고’ 있다. 그렇기에 여자에게 페미니즘은 ‘실전’이고, ‘삶’ 그 자체이다. 지금 바로 전쟁에 투입되거나 이미 투입된 군인에게 총기의 역사나 관련 학문을 전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들에게는 목표물을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고 흔들림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실전 기술’이 필요하다. 여자에게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뉴스에서 여성혐오범죄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내몰린 여자들에게는 페미니즘의 이론적 지식보다 실전 기술이 더 먼저 필요해 보인다.

저자인 이민경 씨는 이 책의 쓰임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책은 이론 공부를 더 하기에 앞서,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줄 호신술과 같습니다. 호신술이란 반드시 써먹지 않더라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할 수 있으니까요.”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부당한 여성혐오 앞에서, 당황한 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한 여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호신술’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자보다 여자가 먼저 이 책을 읽길 바란다. 여성혐오를 당하는 여자뿐만 아니라 그것이 여성혐오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고 있는 많은 여자들이 이 책을 읽길 바란다. 경력이 단절된 채 독박육아로 딸을 키우고 있는 지인이 이 책을 읽길 바란다. 이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버지로부터 그래도 여자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사는 지인이 이 책을 읽길 바란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딸 둘을 둔 지인과 그 딸들이 이 책을 읽길 바란다. ‘남자가 사회생활 하다보면 술집에서 여자 끼고 놀 수도 있지.’라는 말을 딸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는 내 어머니께서 이 책을 읽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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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16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에 무관심한 여자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제 여동생이 그렇습니다. 페미니즘을 쉽게 정리한 책을 읽어보도록 권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페미니즘에 대해서 설명하고, 알려주면 ‘맨스플레인’이 될 수 있거든요. ^^;;

쇼코 2017-08-21 14:23   좋아요 0 | URL
저도 무관심한 여자들 중 하나였답니다. ㅠㅠ 사는 게 힘들어서, 라는 변명으로 살았는데 관심을 가지고 보니 페미니즘이 제 삶과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었더라고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으하하;;

아직 ‘맨스플레인‘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깊이 생각하진 못했지만,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단 생각이 막연하게 들어요. 그러니 cyrus님께서 만약 저의 무지를 지적해주시고 모르는 것을 알려주신다 하더라도 객관적인 태도와 진심이 느껴진다면 저는 언제나 적극적으로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답니다. 그리고 고마움을 느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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