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영 케어러와 홈 닥터,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하다
조기현.홍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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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케어러 조기현 활동가와 방문 진료 의사 홍종원의 대담집이다. 이 두 사람의 수식어를 보면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게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역시 깊고 굵은 메시지를 가득 담은 이야기였다. 이 시대에 빠지지 않는 화두인 돌봄과 그 돌봄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두 사람이 대화의 중심에 있다. 나 역시 지금 가족 돌봄에 관련된 한 사람으로,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낯설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나도 언젠가 돌봄의 대상의 될 수 있는 게 자연스러운 변화이기에, 조금 더 집중해서 듣게 되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돌봄이 사회적 책임 안에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돌봄의 역할에서 개인이 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온전히 개인만의 책임에 묶어둘 수는 없다. 이 사회의 변화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돌봄의 문제를 사회적 책임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누구나 경험하게 될 일이 돌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이 더욱 강조하는 게 돌봄의 주체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된다는 것. 그러니 돌봄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아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 사회가 돌봄 인프라 구축에 힘써 돌봄 위기 사회가 아니라 돌봄 사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말로만 하고 있으니 막연하게 들리는데, 내가 최근 경험한 경우를 생각하다 보니, 사회가 같이 책임져야 할 돌봄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나 역시 처음부터 내가 돌봄의 주체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다. 어쩌다 보니, 또 누군가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 되었다. 아버지가 편찮으셨던 몇 년 동안, 혼자 감당할 수 없던 엄마와 함께 돌봄의 주체가 되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일반 병실을 거쳐 요양 병원까지 입퇴원을 반복했던 시간이 5년 정도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제 돌봄의 시간에서 벗어난 우리는 이제 각자의 삶에 집중해야 했다. 마음의 부담과 피곤함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무렵, 이제 엄마가 아프고 몇 번의 병원 신세를 지곤 했다. 병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퇴원하고 집에서 지내는 동안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나는 또 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형제자매도 있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였지만, 이상하게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하게 되는 게 돌봄이 되어버리는 건, 또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덜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 간병인을 고용하는 비용이 저렴하거나,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내가 병원에 상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여건이었고, 보호자나 간병인의 상주를 원하는 병원 생활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환자 본인도 혼자서 움직이기 어려웠으니, 뭐 다른 방법이 있겠나. 어쨌거나 엄마의 병원 생활은 끝났지만, 여전히 걱정은 남아 있다. 집에서 생활하는 엄마를 자주 살피러 가야 하고, 혹시나 다른 일이 생기지 않을까 미리 걱정하는 일이 늘었다. 저자가 말하는 돌봄 위기의 근본 원인을 나는 여기에서 살피게 된다. 고령화 사회의 진입은 더 많은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은 나이 드신 분도 정정하시니 각자의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지만, 나이 드신 분이 젊은 사람과 같은 몸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니 돌봄이 필요한 건 너무 당연하다. 거기에 개인주의는 돌봄이 각자의 문제라는 인식을 만들 수도 있다.


돌봄이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하는 저자들의 대화가 뜬금없어 보였는데, 듣다 보면 그 관계가 순환하는 돌봄의 문제에서 꼭 필요한 관계였다. 돌봄이 일방적으로 개인이 고통 속에서 견뎌나가야 하는 문제도 아니고, 사회와 국가만이 책임져야 할 문제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 엮어진 많은 관계 안에서 이뤄나가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인간이 많은 관계를 통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서로 관계 맺음으로 돌봄 인프라가 형성된다고 한다. 이때 지역 사회의 발전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아픈 가족을 돌보며 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멀리 있는 병원에 가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지역 공동체의 도움으로 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치료 받을 수 있거나, 내 집에서 돌봄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줄여야 한다.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게 돌봄을 수행하는 데 정말 큰 역할을 한다.


어느 것 하나만으로 돌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저자들의 대화 역시 단순하게 돌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도 아니다. 돌봄 사회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돌봄 인프라의 확충이 중요하다. 돌봄이 중심이 된 지역공동체의 역할과 관계도 탄탄해져야 하고, 돌봄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의 실현이 따라와 주어야 한다. 거기에 우리의 역할도 분명히 있다. 우리 자신이 돌봄의 인프라가 될 때, 돌봄 위기 사회는 돌봄 사회가 될 것이다.


최근에 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한 기억을 떠올려 보고, 엄마의 병원 생활을 기억해 보면, 돌봄의 문제는 이 사회 전체의 분야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일상의 관계 맺음에서 돌아보는 일이 돌봄이라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사회적 제도가 확충되어야 하는 일과 사람이 채워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어느 한 가지만으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돌봄이었다. 어느 날 늙고 병들어 돌봄의 대상이 될지도 모를 순간에,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까지, 돌봄의 가치가 올바르게 평가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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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젠 없어

짧은 한 문장에 웃다가, 어느 새 웃음기 사라진 내 표정을 느낀다. 노인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는 건 아직 어렵지만, 노인의 삶을 모른다고 할 수 없어서다. 누구나 늙는다는 당연한 사실도 너무 잘 알아서다. 아흔이 넘은 노인이 자신의 취향인 연상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보다 오래 사는 이가 많지 않다는 걸 증명하니까.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인 5-7-5의 총 17개 음으로 된 짧은 시를 센류라고 한단다. 이 책은 노인들의 일상과 고충을 그려낸 실버 센류당선작을 모아서 소개한 책이다. 매해 센류 공모전에 상당한 경쟁률을 보이는 응모작들 가운데 선정되었다고 하는데, 얼핏 일상에서 마주하는 쓸쓸함을 담고 있지만 그 표현이 참 유쾌해서 마냥 슬프지만 들리지도 않는다. 거기에 이 짧은 글을 다 읽고 나니 저절로 느끼게 되는 것도 많아서, 노인의 삶을, 그들이 건너온 시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마음도 생긴다. 흔하디흔한 그 말, 너도 내 나이 되면 알 거라면서 나무라던 엄마의 잔소리도 생각난다. 나이를 먹고 살아가는 동안 쌓이는 인생의 연륜이 이 짧은 시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누구나 걸어갈 수밖에 없는 그 길의 여정이 재밌게 들려서 읽는 동안 즐거운 시다. 살아가는 동안 겪는 기쁘고 슬픈 일들, 한때 잘나갔던 시절과 저물어가는 하루 같은 시간들. 나이를 먹으니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싶다. 그래도, 외모가 나이 들어가도 마음은 아직 여고생 같은데, 젊게 입어도 나이를 속일 수 없고, 얼굴에 화사하게 치장을 해도 나이를 알아보니, 그저 내 나이게 맞게 사는 모습이 정답이라는 걸 알게 되더라만...


쓰는 돈이 술값에서 약값으로 변하는 나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최근에 엄마가 넘어져서 손가락이 부러졌다. 바로 수술하고 2주 정도 병원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퇴원하고 1주일 정도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수술을 잘 됐지만, 아직 한쪽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일상의 곳곳에서 불편함을 호소한다. 혼자서 머리도 감을 수 없으니 답답하기도 하겠지. 병원비를 결제하는데 엄마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비싼 것을 먹지도 않고, 명품 옷을 사 입는 것도 아닌데, 병원비가 제일 많이 나간다고. 실제로 평소 엄마의 소비 패턴을 보면 병원비나 약값으로 나가는 금액이 가장 크다. 거기에 이번 입원비까지 얹어지니, 엄마의 한숨소리는 더 커진다. 금액의 크고 작고를 떠나서, 본인의 돈을 병원에 쏟아 부어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픈 거다. 너무 자주, 점점 더 큰 금액이 나가는 병원 출입이, 몸의 불편함보다 마음의 불편함을 커지게 한다.


엄마뿐이 아니다. 나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병원에 드나드는 횟수가 늘어난다. 갑작스러운 무릎 통증으로 한 달 정도 치료를 받았고, 2년 전쯤 갑자기 생긴 편도결석이 이제는 더 자주 발견된다. 어느 날은 소화불량으로 내과를 찾았고, 주기적으로 치과에 다니고 있다. 어제는 손가락이 너무 아팠는데, 병원에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이다 하루가 그냥 지나가버렸다. 이 정도로 병원에 가는 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결정이 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늘어나는 건 신체의 불편함만큼이나 마음의 불안도 한 몫 한다. 어떤 것도 쉽게 선택되지 않을 때, 무거운 문제도 아닌 것 같은데 망설이다가 결정 못하고 자꾸만 마음이 오락가락 할 때.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만 묻는다. 이게 맞는 건지 저게 맞는 건지.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인간의 심장은 늘 뛰고 있지만 건강한 정상인은 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부정맥 환자들은 맥박수가 건너뛰거나 너무 빨라지면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끼게 되고, 가슴의 두근거림을 호소하게 된다는, 부정맥 증상의 설명을 봤다. 누군가를 보고 가슴이 두근두근, 어쩌면 오랫동안 쉬었던 사랑이 찾아온 건 아닐까 설레다가, 부정맥 증상인 걸 알아채고 급 수그러드는 마음에 슬픔은 배가 된다. 실제로 엄마도 최근에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껴서 불안 증세를 호소하다가 검사를 하고 당황스러웠다. 부정맥이 보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나이가 들면, 내 심장이 뛴다고 해서 이게 사랑인지 부정맥인지도 확인해 봐야 한단 말인가. 사랑이 아니었다고, 착각한 거라고 인정해야 하는 마음이라니. 유쾌하게 읽고 있었지만, 시 구절의 숨겨진 뜻을 찾지 않아도 훤히 보이는 진심을 선뜻 받아들이기도 싫더라.


이 나이 되니 너무 많아 다 먹을 수 없는 콩

일본에서는 입춘 전날 자기 나이만큼 콩을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 시 구절로 이런 풍습을 처음 알았는데,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기쁨도 잠시, 내 나이만큼의 콩을 먹기에도 버거운 나이가 된 느낌을 떠올려봤다. 내 손으로 젓가락질 하면서 밥을 먹고는 있을까. 살아있느니 먹기는 해야겠고, 한 끼 먹을 때마다 소화불량으로 소화제를 달고 사는 건 아닐까. 혹시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외롭게 지내고 있지는 않을까. 그날이 그날이고, 달력의 숫자만 바뀌고 매일의 풍경이 똑같은 날들일까. 생각이 계속될수록 슬프기만 하다. 그동안 외로움을 모르고 살아왔다고, 혼자여도 괜찮다고 말하곤 했는데, 요즘은 혼자인 시간이 가끔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편하면서도 뭔가 아쉽고, 나이 들수록 모르는 거 많아지는데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는 일상이 괜찮을까 싶은 불안함.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남편의 친구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친구들이 모여 서울의 장례식장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려고 장례식장을 나섰는데, 늦은 시간이라 택시가 하나도 보이지 않더란다. 앱으로 부르면 금방 오는데, 추운데 길에서 떨고 있었냐고 물으니, 한참 기다리니 택시 두 대가 나란히 들어와서 3명씩 나눠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고 한다. 50대 아저씨 6명이 있었는데, 앱으로 택시를 부를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여기에서 출발할 때도 내가 택시 불러줘서 기차역까지 타고 갔는데, 설마 서울에서 내려올 때도 그럴 줄은 몰랐다. 평소 운전하고 다니니 대중교통 이용할 일이 거의 없어서, 택시는 물론 카드 찍고 버스 타고 다니는 방법도 모르긴 하더라. 앱이 생기기 전에, 직접 전화해서 택시를 부르는 방식을 알고 살았던 사람들이, 변해가는 세상에서의 적응이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았다.(지금도 전화로 택시 부르는 방법은 가능하긴 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변화에 금방 빠져들기 어렵다는 일이기도 하다.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연세가 많으셔서요그게 병명이냐 시골 의사여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네

연명 치료 필요 없다 써놓고 매일 병원 다닌다

내용보다 글자 크기로 고르는 책

손주 돌아가니 아내와 적막하게 숭늉 먹는다

경치보다 화장실이 신경 쓰이는 관광지


문장 하나하나가 강렬하긴 하다. 짧은 구절 하나에 직구를 날리는 듯한, 의미가 너무 크고 깊었다. 가볍게 웃고 넘기려니 목이 막히기도 한다.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아서, 실제 내가 직접 경험한 것도 있고, 옆에서 보는 엄마의 모습이기도 하다. 고령사회, 초고령사회의 흔한 노인의 모습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시들을 그저 서글프거나 하는 마음으로만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하는 노인의 표정을 상상하면서 공감하기도 하고, 삶의 희로애락을 다 겪은 이들이 건네는 노년의 풍경이라고 이해하고 싶기도 하다. 팍팍한 날들에 한발 떨어져서 세상을 보는 여유로움도 느껴진다. 그 안에 담긴 웃음을 먼저 마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거실에서 엄마가 머리 감겨달라고 부르신다. 한쪽 손을 못 쓰는 불편함을 어서 가서 달래드려야지.


#사랑인줄알았는데부정맥 #센류 #실버센류 #일본도서 #노인의일상

##책추천 #책리뷰 #신간도서 #우아한인생이야기 #아름다운시간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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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lC 2024-01-2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누구나 젊어본 적 있는 예비 노인이잖아요.
영화관, 공연장보다 병원 출입이 점점 더 잦아지는 요즘 공감도 가고 웃프기도 하네요. 특히 부정맥은... 진짜 조심해야겠어요😭

구단씨 2024-01-28 11:51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예비 노인.
저도 환자로 보호자로, 병원 출입 더 자주 하게 되네요.
나이 들수록 챙겨야 할 거 첫 번째가 건강 아닐까 싶어요.

호시우행 2024-01-25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절기엔 더욱 조심해야 하는 부정맥, 제 아내도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어요. 선천적으로 약한 심장을 갖고 태어났으니ㅠㅠ

구단씨 2024-01-28 11:52   좋아요 0 | URL
정말 조심하셔야겠어요.
저희 엄마도 이번에 전신 마취 때문에 몇 가지 검사했는데,
기존 알고 있던 내용을 더 심각하게 확인하게 되었어요. 부정맥, 동맥경화, 심장 판막의 문제 등.
조금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완전 식겁했네요.

호시우행 2024-01-2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에 더욱 관심을 갖고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2024-02-21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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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엄마가 입원한 병실에는 4명의 환자가 거쳐갔다. 작은 병원의 2인실인데, 대부분 노인인 데다가 몸의 어디 한 군데든 수술을 한 환자들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건 당연했으니, 누군가 돌볼 사람이 상주해야만 했다. 그중 세 번째 환자는 보호자도, 간병인도 없었다. 당연히(?) 내가 그분을 화장실에도 모시고 갔는데, 밤에 내가 없는 시간에는 엄마가 그분을 휠체어에 태워 화장실에 같이 갔다고 했다. 엄마도 손을 수술해서 불편한 사람인데,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상황이 된 거다. 그것도 생판 남을.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치료 받고 쉬어야 할 엄마가 이런 일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내 마음이 전혀 편하지 않았다. 어지럼증으로 고생하는 엄마가 옆 침상의 소리 때문에, 밤에 잠도 못 자고 불편한 상황은 더 커져만 갔다. 화장실에 가겠다고 부스럭대면서 몸을 움직이는 소리를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그분은 연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그런 말도 불편했다. 사소한 일인데 사소하지 않았고, 모른 척하고 싶었는데 모른 척할 수 없는 상황이 그저 어렵기만 했다.


돕는다는 의미. 크게 작게,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온전히 나만 생각하면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을 위태롭게 하는, 나의 가족에게 닥칠 불행을 알면서도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언제나 가능할까?


40대의 남자 빌 펄롱의 그날은 이상하기도 했고, 특별하기도 했다. 나라 전체가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는, 혹독한 겨울이었다. 빌은 부자가 아니었지만, 먹고 사는데 부족함은 없었다. 아내와 다섯 명의 딸과 행복했다. 특별할 게 없어도 별일 없는 날들이 그저 감사하다는 게 뭔지 보여주는 가정이 아니었을까. 도시는 쇠락해가고, 굶주린 사람은 늘어만 가는 날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아침, 그는 수녀원으로 땔감 배달을 갔다가 창고에서 한 여자 아이를 발견한다. 맨발에 때가 낀 상태로,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를 아무 일 없듯이 수녀원에 데리고 들어간다. 수녀원에서 불법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그는 확인할 수 없었다. 설령 그가 알고 있다고 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기는 할까 싶기도 하고. 수녀들의 품으로 돌아간 여자 아이는 말끔한 모습을 하고 그들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빌은 여자 아이의 첫 모습을 잘 못 본 거라고 여기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마주친 모습은 그의 일상에서 잊히지 않았고, 수시로 떠올리는 기억이 됐다. 그 여자 아이의 모습이 수녀원의 실상은 아닐까. 소문으로만 듣던 수녀원의 불법적인 일이 사실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빌은 이 여자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끝도 없는 고민이 그의 머릿속을 채웠고, 그는 잊으려는 듯하면서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기억을 안고 지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수녀원으로 찾아간 그는 확신했다. 그 여자 아이가 다시 창고에 갇혀 있으리라는 것을, 다시 그 여자 아이를 창고에서 발견한다면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가 몰랐을 리 없다. 그의 마음이 가는 대로, 그 여자 아이를 집으로 데려갔을 때 벌어질 일을. 그의 삶이 아주 불편해질 것이고, 그의 딸들이 다닐 학교에서 어떤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주의를 줄 정도로 위험에 빠질 것을. 그의 가족의 안위가 보장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여자 아이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마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에 이르기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혼란스럽고 많은 생각 끝에 그 여자 아이의 손을 잡았는지 알기에 숨이 트인다. 추운 새벽, 그의 야적장 자물쇠가 얼어붙어 있던 날, 처음 본 집의 문을 두드리고 따뜻한 물이 담긴 주전자를 건네받았던 그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떤 친절은 누군가의 목숨을, 삶을 구원하는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어렵기만 한 시절에, 시들어가는 채소 한 바구니에도 고맙기만 한 날들에 보여준 손길이었을 것을.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119페이지)


미시즈 윌슨은 미혼모인 엄마와 그를 버리지 않고 도움을 주었다. 그에게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쳐주었고, 그의 형편에 부족하지 않고 성장하게 해주었다. 물론, 바라는 모든 것을 채우려고 한다면 한없이 부족할 수 있지만, 그가 가진 조건으로 보자면 그의 성장 과정은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그게 미시즈 윌슨이 내민 손길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면, 그가 수녀원 창고의 여자 아이에게 내민 손길은 한 사람의 인생을 구원하는 첫 온기였으리라. 그에게 다가올 불행을 걱정하면서도 그의 선택에 은근한 응원을 실어주고 싶은 이유는 그 작은 여자 아이가 나일 수도, 나의 가족일 수도 있어서. 어느 날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누군가 나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에 말이다. 서로 돕고 사는 삶에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빌 펄롱의 말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엄마와 같은 병실에서 보호자 없이 지내던 어르신은 다인실로 병실을 옮겼다. 입원한 첫날부터 돈이 없다고, 다인실에 자리가 생기면 자기부터 옮겨 달라고 간호사만 보면 말씀하시곤 했는데, 대기자가 많다고 했는데 갑자기 옮긴 걸 보면 그분의 사정을 누군가가 배려한 건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어제는 엄마가 그분 병실에 가서 인사를 나누었다는데, 그분은 보자마자 또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고 한다. 여기 병원에서는 식사 때 개인적으로 수저를 준비해야 했는데, 첫날 아무 준비도 없이 입원한 분에게 내가 집에서 일회용 숟가락 젓가락을 몽땅 갖다 드린 일이, 그게 아직도 고맙다고 하신다. 자녀들이 있지만 멀리 산다고, 이렇게 병원에 입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이번에는 아예 연락을 안 했다고 말씀하시던 그분의 말이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자녀가 부모의 간병을 책임져야 한다거나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일을 보험 드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이가 없이 살아가는 내가 언젠가 이런 상황을 경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분의 모습은 어느 날의 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씁쓸하기도 했고, 서글프기도 했고, 변해가는 세상의 당연할 수도 있는 모습이기도 한 그 장면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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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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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1-18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몇달간 병동생활을 했어서 느낀 점들이 많네요. 그곳의 공기와 적막함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보다 이 작품 자주 보이던데 리뷰보니까 읽고싶어지네요. 겨울이라 그런지 좀 울적해지고 싶나봐요🙂

구단씨 2024-01-18 16:28   좋아요 1 | URL
그곳의 공기와 적막함은 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

이 작가의 전작도 좋았는데, 이번 작품도 짧은 글에 느끼는 바가 많아지네요.
 


TV를 보다 보니 실감이 난다. 아, 올해가 끝났구나.

여러 가지 시상식을 하고, 한 해의 활약을 지켜보는 각자의 마음은 어떨까.

'나, 참 열심히 잘 살았구나' 하면서 스스로 쓰담쓰담 하고 있을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올 한 해는 이렇게 끝났고, 

어떤 모습으로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올해의 시작부터 뭘 좀 배우겠다고 버둥거렸더니, 이렇게 마지막 날이다.

글쎄, 뭔가를 배우고, 시험도 봤고, 불합격과 합격을 동시에 맛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한번 불합격하고 나니, 다시 시험 볼 용기가 나지 않고, 참 공부를 하기 싫더라는 생각.

또 하나,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말을 부정하며 나이 상관없이 배움의 길을 활짝 열어주는 사람들의 말을 

조금은 믿지 않게 됐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 늙어가는 머리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그래도 배움의 마무리는 시험이고, 합격이라는 '증'을 받아야 하므로, 꾸역꾸역 다시 했고, 합격증을 받았다.

심란했던 실습까지 잘 마무리가 되었고, 이제 남은 것만 정리하면 될 것 같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뭔가 대단한 시험을 본 것 같은데, 아니다. ㅎㅎ

남들 다 하는, 다른 사람이 아주 어렸을 적에 이미 다 했을 것을 나는 이 나이에, 이제야 하느라 버거웠던 거다.

그래도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는데, 결과는 우울했다.

그 시험만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앞으로도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걸 알아서 조금 더 슬프다.

떨어진 자존감이 바닥을 쓸고 있다.

딱 연말다운 분위기로 마지막 날을 보내는 중이다. 많은 생각과 또 많은 생각으로...

한 해 동안 책도 못 읽고, 그래서 지금 뭐가 남아있나 싶어서 메모해 보니,

글쎄, 그래서 내년에는 어떻게 될까, 싶은 마음이 지금 내 안에 가득한 또 다른 생각.

그리고 조금 더 배우고 싶은 잡다한 것들이 있는데, 해도 되나 하는 걱정.


어제 조카가 와서 위로해 주는 말이, 그 흔한 말이었다.

어쩌겠냐고. 다음에 잘 하면 되지. 

그러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가 싶어서 인정했지만, 마음이 차분해지지는 않더라는...


아무 생각 없이, 며칠은 책에 푹 빠져 있고 싶었는데, 

습관이 무섭다고, 안 읽으니까 계속 안 읽어진다.

그래서 서재 메인에 둥둥 떠 있는 이 책을 골랐다.









한번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보면, 다시 돌아오겠지.




" 서재 이웃님들. 올해 잘 지내셨나요? 

어쩌면 각자의 삶 안에서 다사다난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힘들었을 수도, 행복하기만 했을 수도 있을 테지요.

그래도 2023년은 이렇게 흘러갔고, 하루가 지나면 2024년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자존감 가득한 하루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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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2-31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3년에서 2024년으로 곧 바뀌겠네요 곧이라고 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좀 길군요 구단 님 2023년에 공부하고 시험도 보고 잘 된 것도 있지만, 잘 안 된 것도 있군요 다음엔 잘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구단 님 늘 건강 잘 챙기시고 2023년 마지막 날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구단씨 2024-01-04 00:33   좋아요 1 | URL
이상하게 사람 마음이 그런 건지, 안 된 것만 더 기억되네요. 최근의 일들이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어쨌든 새해는 밝았고, 또 열심히 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 많이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호시우행 2023-12-3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엔 더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구단씨 2024-01-04 00:34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님도 더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아무튼, 잠 - 이보다 더 확실한 행복은 없다 아무튼 시리즈 53
정희재 지음 / 제철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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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황금기가 곧 인생의 황금기임을 모르는 젊은이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새벽에 세 번, 네 번 깨느라 통잠을 못 자는 시절이 온다는 것을. 그뿐인가. 부모나 조부모가 새벽에 깬 이후에 다시 잠들지 못한다고 호소해도 그게 얼마나 막막하고 몸에 무리가 되는 일인지 구체적인 실감이 없다. 그래서 어른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기 힘든 나이. 젊은이란 그런 것이다. 인생의 이런 면모를 미국의 소설가 코맥 매카시는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텅 빈 식당 창가에 서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신께서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시작할 때 삶의 진실을 모르게 하신 것은 정말 옳은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젊은이들은 아예 인생을 시작할 엄두도 못 낼 것이기 때문이었다.(모두 다 예쁜 말들. 코맥 매카시. 민음사. 2008) (44~45페이지)


엄마가 잠이 안 온다며 새벽 3시부터 깨어있기도 했는데, 그냥 엄마가 그런 건가 보다 싶었다. 코맥 매카시가 그의 작품 속에서 했던 말처럼, 엄마의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몰랐다. 수면에도 황금기가 있다는 것을, 잠들지 못하는 시간의 막막함이 얼마나 몸을 힘들게 하는지를. 어떤 날은 미친 듯이 잠이 오고, 어떤 날은 아무리 애써도 잠이 오지 않고. 어젯밤이 그랬다. 밤에 잠을 설치고 너무 일찍 일어났나? 준비하고 나가려던 시간이 애매해졌다. 피곤한데, 밖은 추운데, 그냥 나갈까, 조금 더 누워있다 나갈까. 고민하다가 10분의 꿀잠을 선택했다. 분명 알람을 맞춰놓고 누웠는데, 왜 알람 소리가 안 났던 건지. 10분의 꿀잠은 10분의 지각을 만들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상하다. 그 잠깐의 잠은 왜 이렇게 맛이 있을까. 왜 새벽에 일어날 시간의 잠이 더 달콤할까.


저자가 수시로 잠을 비축하며 살아왔던 날들. 잠을 자다가 날짜도 착각하고 중요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자세한 상황은 말하기 어려운데, 새벽에 모든 식구가 큰집에 가게 된 일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뜬 나는 텅 빈 집이 당황스러웠다. 모두 어딜 간 거지? 오늘은 운동회 날인데? 아침도 못 먹고 체육복을 입고 학교에 갔는데, 이미 학교에 엄마와 동생들이 와 있었다. 이른 새벽에 식구들 모두 큰집에 가야 했는데, 나를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한참을 깨우다 그냥 가버렸단다.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다. 누구도 나를 깨웠던 적이 없단 말이다.


잠에 진심이라고, 잠을 자는 것 자체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특히 요즘처럼 잠이 고픈 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배고픔도 이기고야 마는 잠이, 절실히 필요한 날들이다. ? 머리가 맑지 않은 시간이 많아져서 그렇다. 잠이 내 몸에 하는 일을 내가 막고 있는 기분이다. 충분한 수면이 뇌를 건강하게 만들 테고, 기억력도 좋게 한다. 숙면은 나를 기분 좋게 하니, 화가 나려는 순간에도 한 번쯤 나를 릴렉스하게 하는 듯하다. 고된 현실에 자극하는 자아의 활동이 자는 동안 휴업에 들어가면서 정화 작업을 거친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잠이 보약이라는 옛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걸 알겠더라.


그렇다고 잠이 한없이 긍정적인 순간만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어렵고 두려운 순간을 잠으로 잠깐 달아날 수는 있지만, 언젠가 잠으로 외면했던 진실과 대면해야 한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하긴, 그걸 꼭 말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미 여러 번 경험했기에, 자면서 잠깐 미뤄둘 수는 있어도 잠으로 아주 안 보고 끝낼 수는 없다. 언젠가 마주해야 할 진실, 그 시간을 잠깐 유예할 뿐이다. 시험 공부도 마찬가지. 지금 이 시간에 공부하지 않으면, 다가올 시험 시간은 공포가 될 것이다. 공부에 집중하기에 앞서 졸리지 않아야 하는데, 이놈의 잠은 밀어내도 끝까지 밀고 들어온다. 그래서 문제의 타이밍이라는 약에 접근한다. 졸리지 말아라, 말아라 기도하면서 먹었던 그 약. 저자의 그 시간에 공감하게 되는 약 이름이었다. 그 시절의 필수품처럼,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그 약을 이 책에서 마주하니 반가움도 잠시, 씁쓸했다. 잠만 줄이면 공부를 잘 할 것 같은 믿음이 바로 사라졌던 기억도 같이 떠올라서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커피를 달고 달았던 시절의 연속. 글쎄, 커피가 정말 잠을 달아나게 할까 싶었는데, 엄마도 잠을 못 잔다면서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더라만. 나는 아침이든 오후든 저녁이든, 커피를 마시는 게 나의 수면 시간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커피를 마시든 안 마시든 별 상관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나의 잠 성향은 극과 극을 달리긴 한다. 조그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서 잠을 깨거나, 시체처럼 꼼짝 않고 깨울 때까지 자거나. 주변에서는 성격대로 잔다고 하던데, 내 성격이 극과 극을 달리나? 저자의 잠 수행 경험, 수행자를 만나 잠깐의 접촉(?)이 끝나면, 또 다른 진실이 남는다. 수행자의 매끄럽고 반짝이는 피부로 잠과 피부의 상관관계를 깨닫게 된다. 꿀잠은 꿀피부를 만든다. 이건 잠깐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어느 날이었던가. 오랜만에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화장실 거울을 보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어머나, 이렇게 뽀송뽀송(?)하고 피부가 뿌연 얼굴이 내 거야?!(미안, 피부가 검은 편인 내가 이렇게 뽀샤시한 얼굴을 보는 건 극히 드문 일이라 너무 놀라서 말이야)


학교 문예부실에서 도둑잠을 자고, 대학 기숙사에서 내내 잠을 자고, 히말라야 계곡에서도 잠을 잤다는 저자의 잠 세계는 놀랍기도 했다. 어떤 순간에는 나와 같아서 놀라고, 때로는 어쩜 이렇게까지 잠을 잘 수 있는지 놀라고. 저자가 마주한 잠의 얼굴은, 그냥 잠이었다. 잠을 줄이면서 해내야 할 일상의 많은 것이 있기에, 늘 잠에게 있었던 죄책감은 지워버려도 된다고. 그저 잠이 오면 자고 눈이 떠지면 그냥 일어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 밀려오는 잠에게 안달복달하면서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그래야 했고, 잠을 쫓아야 가능한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자는 동안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까지 하지 못했다. 안 되는 것만 떠올리며 살았다. 지금 붙잡아야 하는 것만 보였다. 이상하게도, 지금의 내가 과거의 그 시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이 책에서 말하는 잠의 시간이 온전히 와 닿지 않아서, 또 다른 방식의 수행이 필요한 건 아닌지 고민이 된다.


지나고 보니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올해가 참 바쁘게 흘러갔다. 뭔가를 했고, 뭔가가 남아 있기도 하다. 잠을 밀어내며 했던 일들이 보람되기도 했고,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잘 것을 하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나온 1년을 생각하니, 왜 많은 것을 해내는데 잠이 중심에 서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궁금증은 잠시만 더 뒤로 미뤄두어야겠다. 지금은 그냥, 잠이 오면 자고, 눈이 떠지면 일어나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잠에 예민하게 굴지 않기로 한다. 잠이 안 온다고 이런 저런 방법을 찾느라 애쓰지 않게, 그냥 이대로 오늘은 일찍 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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