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산책길 들풀의 위로
이재영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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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면 엄청 어른인 거 같고 대부분의 일들이 다 해결되어 있을 거라고 믿고 살았는데 아니었다. (6페이지)


왜 하필 마흔일까. 인생의 계단을 한번 오를 때마다 느껴지는 10년이라는 간격이 있었지만, 스물 서른을 넘기고 마흔에 다가간 감정을 확인하는 이유가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을 거꾸로 묻고 싶기도 했다. 살면서 흔들리지 않은 때가 언제였더냐고, 그런 때가 있다면 오히려 흔들리지 않은 때를 세는 게 더 빠르겠다고. 하루를 보내면서도, 몇 년의 세월을 넘어가면서도, 한 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작은 선택 하나를 할 때도, 갑자기 닥친 큰 문제를 해결할 때도 언제나 마음은 위태로웠다. 그저 그 순간, 오늘을 잘 건너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니 저자가 말하는 마흔 즈음의 흔들림은, 그냥 우리가 사는 모든 찰나의 순간이 이어져가는 거라고 느껴진다. 어차피 오늘도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고, 내일도 흔들리는 날들을 감당하면서 걸어갈 테니까 말이다.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작가는 마흔에 접어든 순간의 일상이 흔들림을 경험한다. 작가라고 하기에도 깊게 뿌리내리지 못했고, 프리랜서 작가로의 일도 그즈음 줄었다고 한다. 소박하게 꾸려가는 작은 책방 역시 현상 유지만 할 뿐이라니,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한 오늘이겠는가. 중학생 딸과의 관계도 잘 이어가야겠고, 저자 자신의 삶도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데, 무엇 하나 완벽하게 갖춰진 것 같지도 않다.


나이 마흔. 어릴 때 들었던 마흔이란 숫자는 참 대단해 보이고 굉장한 어른이 된 것만 같았는데, 막상 자기 앞에 닥친 마흔은 아직 어른도 아니었고, 마냥 편하게 안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 가까운 이가 그런 말을 하더라. 마흔이 넘으면 뭐든 다 자리 잡은 상태일 거라고, 결혼하고 직장 잘 다니고 아이 키우면서 걱정 없이 하루하루 잘 지내면 될 것 같았다고. 그런데 현실은 한없이 불안하고 아직도 아이인 것만 같은 날들이라고, 적성과 다른 직장에서 버티는 나날에 '억' 소리 나는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할까 봐 걱정이고. 계속 달린 것 같은데 왜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은지 모르겠다고, 죽을 때까지 자리 잡기는 잡는 거냐면서. 누구나 오늘을 살면서 느끼는 건 비슷한 것 같다. 괜찮을까 하면서 나아가고, 지치고 힘들 때마다 또 마음이 갈팡질팡 우울해지고.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다른 선택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삶. 저자도 비슷하게 말하더라.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같은 선택을 하지 않겠느냐고. 나도 웃으면서 그런 말 자주 했다. 다시 고3으로 돌아간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친구 말에, 나는 그때로 돌아가도 공부를 더 열심히 잘할 것 같지는 않다고.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더 고민하고 선택하고 싶다고.




아마도 저자는 흔들리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붙잡아줄까 하는 바람으로 걷지 않았을까 싶다. 잠깐 걸으면서 눈앞의 것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을 기록한다. 넘어질 것 같을 때 걷기로 한 저자의 발걸음이 여러 곳을 향하고 많은 것을 보게 했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반려견과 함께. 아름다운 이름과 꽃말을 가진 식물들, 들꽃이라 불리며 길가에 단단하게 피어 있는, 풀 같으면서도 피어있다는 것 자체가 예쁘고 고운 것들. 항상 다니던 길인 것 같은데 왜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나 싶어서 오히려 놀라울 지경이다. 패랭이꽃의 화려한 색을 왜 못 보고 지나치기만 했는지, 왕고들빼기꽃이 이렇게 예뻤나 싶고, 강아지풀의 꽃말은 왜 동심과 분노처럼 대조적인지, 담쟁이가 덮고 있는 저 담 너머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하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면서, 길에서 마주친 꽃과 풀에서 섞여 나오는 자기 이야기에 인생의 어느 부분을 되새기기도 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것과 마주하면서, 계획하지 않았던 시간과 만났다. 물가에 핀다는 고마리를 보면서 고이지 않고 흘러가는 인생을 생각한다. 어떻게든 흘러가는 게 인생이겠거니 하는 마음의 긍정을 찾는다. 가슴에 뭔가 꽉 찬 것처럼 답답한 속내가 길에서 만난 작은 꽃 하나에 스르륵 풀리기도 한다. 나를 숨 가쁘게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눈을 돌리니 주변이 보이고, 소소한 아름다움이 보이고, 그렇게 보이는 것들이 흔들리는 마음에 중심을 잡아주는 듯하다. 여기저기 뿌리내린 작은 초록들은 제각각 자기의 모습 그대로 꿋꿋하게, 누가 와서 봐주지 않아도, 조금 천천히 자라도, 불어오는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남은 생은 실속 있는 알밤처럼 알맞게, 매달려 있을 만큼만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지루하고, 적당히 행복하고 불행하다가, 적당히 얻기도 하고 내주기도 하면서, 적당히 여물어 땅으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속도이자 앞으로도 쭉 유지하고 싶은 속도이고 내 꿈이다. (171페이지)


작은 것들은 작아서 더 오래 내 곁에 남는다. 크고 무거운 것들은 생의 어느 순간 버겁게 느껴져 헤어짐의 수순을 밟는다. 비싸게 돈 들여 산 옷이라도 옷장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애물단지가 되고 결국 버려지고 만다. (중략) 사람과의 관계도, 그밖의 많은 것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은 자연스레 정리되기 마련이다. 작은 관계, 작은 성취, 작은 성공, 작은 수고, 작은 행복, 작은 즐거움, 음악, 색깔, 향기처럼 아예 손에 쥘 수 없는 것들. 인생에 중요한 건 웅장한 게 아니라 작고 사소해서 긴밀하고 떨어지지 않는 그런 것들이 아닐까. (208페이지)



마음이 괜찮지 않은 어떤 날들은 흘러갈 거라고 위로하는 글이다. 길가에 보이는 꽃과 풀을 보면서 자기가 흘러온 시간을 반추하며 하는 이야기가 새삼 낯설지 않다. 땀 흘리면서 걷던 어느 저녁 시간이 개운했던 것처럼, 익숙하게 나를 감싸고 있던 것들에서 잠시 눈 돌리는 땡땡이가 필요하다. 조금씩 천천히, 괜찮아지는 날들과 마음을 기대하면서 공감하는 문장들이다.


어제 저녁에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그냥 밥 한 숟가락 밀어 넣고 울컥하는 기분에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가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놀랐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유를 나도 모르겠으니까. 그냥 요즘 며칠 괜히 우울하고, 워낙 집순이인데도 반강제적으로 나가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되니까 그런지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가득하다. 핑계지만 움직이는 시간이 줄어드니 살이 찌는 속도도 빠르다. 반년 넘게 심각한 감염병 때문에, 긴 장마에 안 나가고, 폭염에 숨이 막혀서 못 나가고, 태풍이 몰고 오는 바람이 무서워서 스스로 집안에 가두는 시간. 가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새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가로수 잎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꽉 막힌 속을 뚫을 수 있는 것은 문득 시선을 돌린 어느 곳에서 발견한, 소소한 것 하나에서일 수도 있다. 아마도 오늘은, 마음을 묶어두는 것을 잠시 내려놓아도 좋은, 태풍이 지나간 어느 길 위를 땀 흘리면서 걸어도 좋은 하루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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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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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무심했던 것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니 무표정했던 삶이 조금 환해졌달까. 무채색 세상이 유채색으로 칠해졌달까. 묵혀뒀던 오감이 자극된달까. 별것 아닌 일상조차 조금 특별해졌다. 손이 닿은 딱딱한 액정 속 디지털 세상이 아닌, 숨이 닿는 지근거리 이야기들이라서.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301~302페이지)


겪어봐야 안다. 세상일 대부분이 그렇다. 그중에 경험으로 가장 잘 알 수 있는 게 누군가의 마음이자 살아온 시간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군가에게 이해한다는 말을 섣부르게 꺼낼 수 없어질지도 모른다. 왜냐고? 똑같은 경험을 하기 전에는 상대의 마음을 그대로 다 느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이해한다는 말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고 아프고, 제도의 불편함을 느끼고, 상실의 경험을 하고, 시험에 탈락하기도 하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이 누군가에게 이해와 공감을 부를 수 있지만, 온전하게 같은 경험을 한 게 아니라면 제대로 알 수 없는 마음이기도 하다.


비슷하게 보자면 TV 프로그램의 ‘극한직업’ 정도 되려나? 하지만 이건 직업이 아니고 우리 일상 곳곳에 자리한 사람들의 불편하고 어려운 부분을 같이 경험하는 것이기에 진지하면서도 울컥한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깨알 멘트는 웃음을 놓지 않는다)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감히 잘 안다고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음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겪어보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거라는 깨달음이 남았다. 내가 굳이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도 비슷하다. 그동안 그의 연재를 꾸준히 찾아보지 못했기에 내가 놓친 이야기가 궁금했다. 호기심만 채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에 너무 닿아있는 모습들을 알고 싶었다. 세상의 정의를 외치면서 앞에 서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삶과 마음을 함부로 단정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소심한 다짐을 더 해보면서 말이다.


저자는 평소 보고 생각했던 곳곳의 문을 열어보기로 한다. 아마 그가 알고 싶었던 버킷리스트쯤 되지 않을까 싶다. 리스트 목록에는 그가 가진 기자의 시선이 담겼으리라. 누구나 바라보는 밝은 곳이 아니라, 스포트라이트 이면의 곳곳을 비추고 싶은 마음. 세상의 시선 밖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공유하고 이해하면서, 같이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까지 당연히 얹어 있다.


그가 어떤 경험을 했을까. 연재 때 읽고 가장 웃음이 났던 게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해봤다’이다. 어느 하루, 그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방 안에서 지냈다. 씻는 것을 생략한 것은 물론이다. 더럽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아무것도 안 하고 한없이 늘어지면 방바닥을 뒹굴던 우리의 모습을. 솔직히 나는 며칠 동안 밖에 안 나가면서 세수도 안 한 적이 있다. 뭔가 입에 대면 양치는 꼬박꼬박했다. 원래 그런 거 아닌가?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체험을 하는데 왜 씻어야 하는가? ㅎㅎ 사실 이 경험의 의미는 안 씻어도 된다는 데 있지 않다.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모습을 반추하며 삶에 의미가 무엇인지 조용히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하며 누구와 살아가든, 우리가 바라는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 아니었던가. 바쁘게 달려오면서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은근한 떠올림까지 저절로 이어진다. 이 체험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봤다’와 연결해서 생각하게 된다. 공부하면서 달려온 10대 20대 시절, 직장생활에 적응하고 결혼하면서 현실을 살아내느라 벅찼던 30대를 그리는 저자의 머릿속이 복잡했을 것 같다. 쉬어보자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안 하던 하루가, 가만히 쉬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모습을 그리게 한다. 어느 날 하루 그가 꺼놓고 지냈던 스마트폰은 그동안 놓쳤던 세상의 모습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표정과 진심까지 읽게 했다. 스마트폰에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시간이 무섭기까지 했다. 이 작은 기기 하나가 삶의 대부분을 조정하게 하다니. 놀라우면서도 겁난다. 편리하지만 무섭다. 그가 스마트폰을 꺼놓고 지낸 시간 동안 업무나 상대방의 감정에 스크래치가 났을지는 모르지만, 스마트폰 없는 하루가 그에게 준 것은 표정 있는 삶이었다.


거절과 나쁜 말 듣기가 싫어서 자꾸 움츠러드는 마음을 이기고자 스스로 거절당하기를 경험하고, 나도 모르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다가 정작 들여다보지 못한 내 마음을 돌봐 주려 착하게 살기를 거부해봤다는 저자. 유기견 보호소에서 안락사당하기 직전의 강아지 구출 작전에 참여해보고, 무연고자의 죽음을 배웅해봤으며, 24년 만에 초등학생이 되어 요즘 아이들의 일상을 경험했다. 가볍게 웃으면서 보고 싶은 경험 같았지만, 그 경험의 시간 동안 느낀 것을 듣고 있노라면 하나도 가벼운 게 없었다. 언제나 그 시간, 그 자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충이 함께했다.


노인 체험 장비를 벗은 뒤 팔이며 다리에 붉게 물든 상처들을 보고 알았다. 하루 내내 싸운 흔적이었다. 마음처럼 안 움직이는 팔과 다리를 애써 움직이려고, 굽은 허리를 곧게 펴려고, 몸은 여든 살이라는데 마음은 여전히 서른일곱 살이라 여기면서. 그렇게 세월을 거스르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노인 체험을 자처했으면서, 막상 노인이 되니 난생처럼 겪는 경험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언젠가 나이들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요했던 물에 돌멩이를 던지면 파장이 일듯 별 것 아닌 일상들이 일렁거렸다. 43년의 세월이 주는 무게감은 그렇게 컸다. 이게 체험이 아니라, 언젠가 맞을 미래란 걸 알기에 더 그랬다.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58페이지)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들. 그가 폐지를 줍는 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 정말 우연히 그렇게 됐다는 것. 인생이란 게 얄궂어서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이들을 외계에 사는, 별나라 사람쯤으로 볼 게 아니라 이웃으로 보면 좋겠다는 것. 관심을 두는 것만으로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145페이지)


그의 경험 대부분은 우리와 오늘을 함께 사는 이들의 시간이었다. 거리에서, 근처에서 익숙하게 봤지만, 우리가 실제 경험하지 않는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일들에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노인 분장을 하고 80세 노인의 삶을 경험한 그는 나이 듦의 자연스러움과 그동안 애쓰며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진하게 느꼈으리라. 누구나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된다. 어떤 젊음을 보내면서 맞이할 노인의 모습을 상상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웃음소리에 마냥 다 다 잃고 내려놓은 절망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나이 든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됐다. 폐지 줍는 이의 하루를 같이 걸으며 어떤 일상인지 보기도 했다. 길에서 흔히 보이는 폐지 줍는 이들. 리어카 한가득 싣고 가는 모습이 위태로우면서도 정작 그 리어카의 뒤를 밀어본 적이 없다. 그들의 삶이니, 타인이니 굳이 가까이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경험한 폐지 줍는 하루는 누군가의 생활수단 전부이자,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이자, 아이들에게 먹여줄 음식값이 된다. 누구나 사연도 있고, 그런 삶을 가진 이유도 있다. 그 제각각의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의 삶 하루를 경험한 이의 공감을 바탕으로 이해의 근처에 닿을 수 있으면 하는 간절함이 담겼다.


새벽 5시에 시작된 환경미화원의 세계를 보았다. 눈을 감고 벚꽃축제 그 길을, 시각장애우의 세상에서 걸었다. 집배원의 하루를 같이 다니면서 왜 과로사가 그렇게 많은지 알게 되었으며, 35킬로그램 방화복을 입고 계단을 오르며 소방관을 살아봤다. 거리의 쓰레기는 당연히 환경미화원이 치우는 거라고, 소방관은 불을 끄는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면 저절로 반성 모드가 되어야 할 판이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그에 보수를 받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니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굳이 길에 쓰레기를 버릴 일도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누군가가 무분별하게 버리고 쏟아내고 그냥 지나간 그 길을 깨끗하게 해주는 이들의 노고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물론 무료봉사가 아니다. 하지만 하는 일에 상응하는 대우가 주어지고 있는지 거듭 확인해봐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하루였지만 직접 체험한 시간이 더욱더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세계의 일을 이렇게 들려주는 이가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방관자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까. 나와 지금을 같이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세상을 안다는 것은, 누군가가 나의 삶도 지켜봐 주고 있다는 말일 테니까.


식사 후 체할 것 같아 청계천으로 향했다. 그러자 더위가 고역이었다. 섭씨 32도, 체감온도는 더 높았다. 걸은 지 5분 만에 브라에 땀이 찼다. 15분이 지나니 브라 끈과 와이어 부분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가슴골 사이에선 땀이 흘렀다. 겨울이면 따뜻하기라도 할 텐데, 여름엔 대책이 없었다. 패드 밑을 잠깐 들었더니 시원했다. 땡볕에 브라가 불타는 느낌이었다.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16~17페이지)


체험한 지 사흘 만에, 브라를 결국 벗었다. 육체적인 불편함보다 더 힘든 건, 버거운 시선이었다. 누가 뭐라 안 했어도 그것만으로 무언의 족쇄였다. 그래서 여성들도 쉬이 벗을 수 없었겠구나, 절실히 깨닫게 됐다.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20페이지)


다양한 체험 중에서도 웃픈 몇 가지를 확인하면서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브래지어를 하는 여성의 마음을 한없이 알아주는 그가 되기를 바랐던 ‘브래지어, 남자가 입어봤다’는 정말이지 역지사지의 대표 격이 아닐까 싶다. 브래지어 안 하는 시간의 편안함을 그가 알려주어 얼마나 고마웠던지. 특히 이 더위에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고통이다. 집안에서 브래지어 안 하고 헐렁한 티셔츠 입고 살다가, 속옷까지 갖춰 입고 나가야 해서 외출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해본 사람만 안다는 브래지어의 불편함을 남자인 저자가 생생하게 증언해주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아이 없는 남자의 하루 육아는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였다. 어쩌면 그가 아이 계획을 세운다면, 하루 육아 경험 전과 다른 조금 더 괜찮은 남편과 아빠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루였지만 그 경험이 육아의 현장을 그대로 각인시켜줬으니까.


그의 솔직함은 ‘자소서, 진짜 솔직하게 써봤다’에서도 빛난다. 흔히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라고 불리는 자기소개서. 태어나서 살아온 모습이 다 비슷한데 도대체 그 차별화는 어디서 가져와야 하는지 골치가 아픈 순간들. 결국 우리는 소설에 버금가는 자기소개서를 채워나간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첫 번째 관문인 서류심사조차 통과할 수 없을 테니까. 아무리 차별이 없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고 해도, 학력 구분이 없다고 해도,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은 취업 문턱을 증명하고 있던 셈이다. 저자는 취업준비생들의 솔직한 의견을 담아 자소서를 써서 지원했고, 당연하게(?) 탈락했다. 아마 그의 서류심사가 통과했다면, 그 기업의 취업 경쟁률 더 세졌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는 어디에 지원했는지? 누구나 들어가고 싶다던 기업이 어디 한두 군데여야 말이지)


우리가 알아야 하고 서로의 삶을 응원해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다던 저자의 말을 읽는 내내 곱씹게 된다. 당사자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진다. 아주 작은 경험 하나로도 우리는 그 세상을 알아갈 수 있다. 그러니 저자가 경험한 하루들의 시간은 얼마나 더 귀할까. 공감은 당연했고, 누군가를 더 이해할 수 있다는 작은 걸음을 보여줬다. (사실 누군가는 온전히, 다 이해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온갖 고생을 하며 그가 들려준 세상의 많은 이야기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몸으로 부딪쳐 해내야만 하는 일부터 사랑한다고 말하며 감정에 힘을 실어야 하는 일까지 다양한 그의 체험이 값지다. 읽는 동안 고맙기까지 했다. 나에게는 간접경험이지만, 그렇게 무언가를, 누군가를 알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하루의 경험이 그 사람의 모든 시간을 다 보여주지는 못하겠지만, 보게 된 만큼만은 세상을 더 알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 삶은 더 편해지고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렇게 달려온 세상이 놓치고 있는 것도 분명 있을 테지. 아마도 저자가 하루의 경험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잊고 있던 어떤 것을 찾아가고 확인하는 즐거움에 감사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지 못하지만 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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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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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는 것들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지. 이럴 때는 무척 가족 같군. 세 사람은 그렇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297페이지)


나의 죽음이 가까운 이들로부터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없는 나의 장례식을 저기 멀리서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상상이기에 가능한 장면을 떠올리면 궁금하기 그지없다. 내가 없을 때 나오는 말과 기억이, 그들에게는 나를 대했던 가장 진심일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장모이고, 할머니이자 외할머니였을 심시선의 죽음 10주기를 두고 펼쳐진 이들의 여행이 유쾌하다. 그리고 기억 속 심시선을 꺼내는 이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기대된다.


소설은 챕터마다 죽은 심시선의 과거 어록을 앞세우고 시작한다. 그녀가 한때 출연했을 방송이나 인터뷰, 글에서 했던 말과 생각이 먼저 나오고, 그녀의 가족 중 한 사람의 기억이나 생각이 이어진다. 다소 충격적이었던 건 그 시절(20세기)에 방송에서 한국의 제사 문화를 까댔던 심시선의 말이었다. 제사는 사라져야 할 관습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은 유언이 되어 가족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당부했고,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심시선의 가족은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찾아갈 곳이 없다. 그 와중에 그녀의 큰딸 명혜는 엄마의 10주기를 기념하자면서 가족들을 끌고 하와이로 향한다. 뜬금없는 하와이는 또 뭔가 싶지만, 그들 나름대로 찾아낸 엄마의 장소이다. 하와이는 젊은 시절의 엄마가 한때 지냈던 곳이다. 사진신부로 가서 살다가, 화가 마티어스 마이어를 만나 독일로 가기 전까지 머물렀던 곳이며, 엄마가 치열하게 살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던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가서 엄마를 떠올리자는 명혜의 말은 아무도 거스를 수 없었고, 가족 여행 아닌 여행으로 모두 하와이로 간다.


누구를 위한 제사인가 싶지만, 사실은 시선의 흔적을 좇으면서 그들 각자의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받는 일이 된다. 각자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을 찾아내고, 이 기쁨의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이제껏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 물건이든 경험이든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으니 하나씩 찾아와서 심시선의 10주기를 기리는 장소에서 공개하자고 한다. 기간은 다 며칠이다. 심시선의 기일까지 찾아야 한다. 가족들은 모두 흩어져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면서도 심시선의 기일에 보여줄 무언가를 찾는 일을 잊지 않는다.


이쯤 되니 나도 다시 한번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니면 내가 죽고 나서.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그런 게 있나? 가족들끼리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제사 같은 거 말고 그냥 엄마 납골당 가서 얼굴 보고 같이 모이는 날로 하자고. 명절도 굳이 지킬 필요 없이, 지금처럼 시간 되는 사람만 오면 된다고, 그것도 싫거나 귀찮으면 하지 말자고 말이다. 서로 얼굴 보면서 즐거워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의미로 보자면 명절이나 제사나 마찬가지다. 서로를 힘들게 한다면 지키고 이어가야 할 문화가 아니겠지. 심시선이라는 한 사람이 살아가던 시대에 꺼내놓은, 제사 문화가 사라져야 할 것이라면 이유가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비슷하겠지만, 여성이 살아가기에 비극적인 시대였기에 더욱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모르지. 가족들의 기억 속 심시선이 꺼내질 때마다 그녀의 지나간 인생이 한 자락씩 펼쳐지고, 그녀와 함께한 가족 각자의 기억이 하나씩 되살아난다. 죽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챙기는 기일이 이래야 하는 거 아닐까. 의무적으로 모이고 스트레스 만땅 채우는 날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죽은 이와의 추억을 기분 좋게 되새김하는 시간을 만드는 날이어야 한다.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 보고 비키라지. 공간을 크게 크게 쓰고 누가 뭐라든 해결하는 건 남들한테 맡겨버려요. 문제 해결이 직업인 사람들이 따로 있잖습니까?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아주 좋다, 아주 좋아. 좋을 줄 알았어요." (269페이지)


무엇보다 이 소설은 이 시대의 여성이 받았을 폭력과 부조리를 관통하며 현재 심시선의 가족에게 이어진다. 심시선을 제외하고 그녀의 가족들은 전쟁통에 몰살당했다.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이라고 비극이 없었을까. 그녀의 오랜 세월에 걸쳐진 비극과 그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딸과 손녀에게 뻗어간 여성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 보여준다. 마티어스 마우어의 폭력과 낯선 곳에서 이방인의 차별로 시달리다가 자기 삶을 찾아가려던 심시선은 마우어의 자살로 가해진 폭력에 또 한 번 고통 받는다. 그 사건은 평생 심시선의 명성에 빨간줄이 되어 괴롭힌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가해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살아간다. 그리고 명혜의 딸 화수는 협력업체 사장이 자행한 염산 테러에 일상이 무너졌다. 세상으로 다시 나가기가 두려웠고, 온몸을 감싸는 무력감은 그녀의 오늘이 어떨지조차 상상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 화수에게 심시선의 책은 세상의 일그러진 면을 찾고 조용히 그녀가 바라는 세상 속으로 뛰어들게 한다. 이 모든 게 하와이에서 다시 시작된 일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손녀 해림은 친구가 당하던 인종차별에 화를 내고 괴롭힘당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자기가 믿고 생각하는 대로, 옳다고 여기는 대로 나아갈 수 있는 시선이 이들 가족에게 있었다.


심시선의 인생을 생각하면 웃음보다는 눈물이 앞선다. 그 젊음의 세월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여러 번의 결혼과 성이 다른 아이들을 키우면서 받았을 시선이 얼마나 따가웠을까, 그녀의 생각을 그대로 쏟아내면 되돌아오는 싸늘한 시선과 공격들이 벅찼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스럽거나 벅차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런 심시선의 영향을 받으면 자란 딸과 손녀에게 그녀의 기가 전해지기라도 했던 걸까. 오늘을 살면서 고통받은 시간이 무색하게 심시선의 10주기를 위한 자리에서 기적 같은 힘이 폭발한 것만 같다. 문득, 내 주변에 내 조상 중에 심시선 같은 여성이 있었다면 우리가 걸어온 시간의 모습이 조금 달랐을까 하는 궁금증과 아쉬움이 생긴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이 꼭 제사는 아니어도 되는, 각자가 추억하고 싶은 방식이 꼭 한 가지일 필요는 없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왔으니, 어떻게 죽는지 모르고 또 죽을 것이다. 도중에 가슴이 터져 죽어버리지 않은 것은 어린 자식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와서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먼저 죽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애도에서 다음 애도의 웅덩이로 텀벙텀벙 걸으면서도 다 놓아버리지 않은 것은, 내가 먼저 죽은 사람들의 기록관이어서였다. 남은 사람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 어떤 의미로는 친구들에게 져 술래가 된 것이다. 편을 먹고 내게 미룬 채 먼저들 가버렸다. (239페이지)


뜬금없이 심시선의 10주기를 챙긴다는 가족의 말에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그들만의 방식으로 특별한 날을 채우는 게 너무 보기 좋아서 신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심시선을 위한 날이라는 것을 잊지도 않는다. 각자가 찾은 가장 좋은 것, 살아있으면서 누리고 싶은 간절한 것을 챙겨오려는 그 노력이 정말 고맙기까지 했다. 이동식 조리대를 가져와서까지 만들어낸 팬케이크, 자전거로 땀 흘리며 날랐을 뜨거운 말라사다 도넛, 화산석 자갈, 새의 깃털, 살아있다면 좋아했을 가장 맛 좋은 커피, 무지개 사진, 특히 명혜의 훌라춤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날이, 무거운 분위기로 한껏 점잔을 뺀 제사상 앞이 아니라 마치 파티 같은 자리라는 게 이상하게 낯설지 않고 좋더라. 앞으로 내가 경험할 많은 이의 죽음을 기리는 순간이 이랬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오랜 세월 겪은 희로애락을 추억하듯 곱씹을 수 있는, 죽은 이와 내 삶을 연결해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진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주인공인 심시선으로부터 이어진 가족의, 혹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중의적으로 써진 이 소설의 제목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더 담고 있을지 찾아보는 일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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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2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5 2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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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6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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