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영 케어러와 홈 닥터,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하다
조기현.홍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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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케어러 조기현 활동가와 방문 진료 의사 홍종원의 대담집이다. 이 두 사람의 수식어를 보면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게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역시 깊고 굵은 메시지를 가득 담은 이야기였다. 이 시대에 빠지지 않는 화두인 돌봄과 그 돌봄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두 사람이 대화의 중심에 있다. 나 역시 지금 가족 돌봄에 관련된 한 사람으로,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낯설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나도 언젠가 돌봄의 대상의 될 수 있는 게 자연스러운 변화이기에, 조금 더 집중해서 듣게 되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돌봄이 사회적 책임 안에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돌봄의 역할에서 개인이 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온전히 개인만의 책임에 묶어둘 수는 없다. 이 사회의 변화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돌봄의 문제를 사회적 책임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누구나 경험하게 될 일이 돌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이 더욱 강조하는 게 돌봄의 주체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된다는 것. 그러니 돌봄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아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 사회가 돌봄 인프라 구축에 힘써 돌봄 위기 사회가 아니라 돌봄 사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말로만 하고 있으니 막연하게 들리는데, 내가 최근 경험한 경우를 생각하다 보니, 사회가 같이 책임져야 할 돌봄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나 역시 처음부터 내가 돌봄의 주체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다. 어쩌다 보니, 또 누군가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 되었다. 아버지가 편찮으셨던 몇 년 동안, 혼자 감당할 수 없던 엄마와 함께 돌봄의 주체가 되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일반 병실을 거쳐 요양 병원까지 입퇴원을 반복했던 시간이 5년 정도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제 돌봄의 시간에서 벗어난 우리는 이제 각자의 삶에 집중해야 했다. 마음의 부담과 피곤함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무렵, 이제 엄마가 아프고 몇 번의 병원 신세를 지곤 했다. 병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퇴원하고 집에서 지내는 동안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나는 또 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형제자매도 있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였지만, 이상하게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하게 되는 게 돌봄이 되어버리는 건, 또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덜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 간병인을 고용하는 비용이 저렴하거나,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내가 병원에 상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여건이었고, 보호자나 간병인의 상주를 원하는 병원 생활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환자 본인도 혼자서 움직이기 어려웠으니, 뭐 다른 방법이 있겠나. 어쨌거나 엄마의 병원 생활은 끝났지만, 여전히 걱정은 남아 있다. 집에서 생활하는 엄마를 자주 살피러 가야 하고, 혹시나 다른 일이 생기지 않을까 미리 걱정하는 일이 늘었다. 저자가 말하는 돌봄 위기의 근본 원인을 나는 여기에서 살피게 된다. 고령화 사회의 진입은 더 많은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은 나이 드신 분도 정정하시니 각자의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지만, 나이 드신 분이 젊은 사람과 같은 몸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니 돌봄이 필요한 건 너무 당연하다. 거기에 개인주의는 돌봄이 각자의 문제라는 인식을 만들 수도 있다.


돌봄이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하는 저자들의 대화가 뜬금없어 보였는데, 듣다 보면 그 관계가 순환하는 돌봄의 문제에서 꼭 필요한 관계였다. 돌봄이 일방적으로 개인이 고통 속에서 견뎌나가야 하는 문제도 아니고, 사회와 국가만이 책임져야 할 문제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 엮어진 많은 관계 안에서 이뤄나가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인간이 많은 관계를 통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서로 관계 맺음으로 돌봄 인프라가 형성된다고 한다. 이때 지역 사회의 발전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아픈 가족을 돌보며 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멀리 있는 병원에 가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지역 공동체의 도움으로 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치료 받을 수 있거나, 내 집에서 돌봄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줄여야 한다.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게 돌봄을 수행하는 데 정말 큰 역할을 한다.


어느 것 하나만으로 돌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저자들의 대화 역시 단순하게 돌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도 아니다. 돌봄 사회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돌봄 인프라의 확충이 중요하다. 돌봄이 중심이 된 지역공동체의 역할과 관계도 탄탄해져야 하고, 돌봄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의 실현이 따라와 주어야 한다. 거기에 우리의 역할도 분명히 있다. 우리 자신이 돌봄의 인프라가 될 때, 돌봄 위기 사회는 돌봄 사회가 될 것이다.


최근에 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한 기억을 떠올려 보고, 엄마의 병원 생활을 기억해 보면, 돌봄의 문제는 이 사회 전체의 분야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일상의 관계 맺음에서 돌아보는 일이 돌봄이라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사회적 제도가 확충되어야 하는 일과 사람이 채워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어느 한 가지만으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돌봄이었다. 어느 날 늙고 병들어 돌봄의 대상이 될지도 모를 순간에,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까지, 돌봄의 가치가 올바르게 평가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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