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투스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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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세리나 프룸이고, 사십여 년 전 영국 보안정보국의 비밀 임무 수행을 위해 파견되었다. 나는 무사히 복귀하지 못했다. 보안정보국에 들어간 지 십팔 개월 만에 망신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파멸시키고서 해고되었다. (11페이지)


얼마나 호기심 일으키는 첫 문장인가. 직설적으로 자기 이름을 밝히고, 자기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 말하면서, 그 일의 최후까지 세 문장으로 독자의 눈을 붙잡는다. 소설은 주인공 세리나 프룸의 회고로 시작하면서, 1970년대 초 암호명 '스위트 투스'로 그들만의 문화 전쟁을 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은 군사적으로도 경쟁했지만, 문화 전쟁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문화로 대중 의식을 장악하려고 애썼다. 그동안의 사실로 보면 문화를 장악하는 쪽이 이긴다는 건 역사에서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목적으로 문화예술 사업에 몰래 돈을 대고, 그들의 후원을 입은 예술가들로 문화 선동 사업을 일으켰다. 물론 이 소설에서처럼 예술가는 그 후원의 정체를 모르기도 하겠지만. 영국의 MI5, MI6은 이러한 문화 선동 사업의 선봉에 서서 반사회주의 성향의 작품들이 태어나도록 했다.


이 전쟁의 용맹한 전사로 투입된 미녀 첩보원 세리나 프롬. 소설을 좋아했지만, 그녀는 수학을 전공했다. 좋아하는 것과 상관없는 것의 학업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케임브리지대학 시절 역사학과 교수 토니 캐닝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점점 문학적 재능을 찾아간다. 단순히 역사학자로 알던 토니는 사실 전직 보안정보국 요원이다. 세리나는 그에게 알게 모르게 훈련받았던 셈이다. 어쩌면 토니는 그녀의 인생의 다른 길을 열어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영국 정보국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이름에 무색하게 말단 여직원의 일을 하던 어느 날 첫 임무를 부여받는다. 소설가 톰 헤일리에게 접근하여 그를 후원하고 그가 반공주의 작품을 쓰게 하는 것. 정보국에서는 이 작전을 스위트 투스(단 것을 좋아하는 취향, 마약이나 해로운 것에 빠져드는 중독)라고 부르며, 지식인과 문학인이 자유주의적 사고를 작품으로 퍼트리는 일을 목표로 한다. 세리나에게는 소설가가 주어졌으며, 내부 회의에서는 과거 토니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던 그녀의 독자 생활을 바탕으로 톰 헤일리에게 붙여질 적격자라고 판단한다.


그런 그녀가 작전 대상과 사랑에 빠졌으니... 어쩌면 독자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떠올려보라. 비밀 임무 수행하는 이와 그 임무의 대상이 된 이가 사랑에 빠지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에서 힘을 발휘하기에 가능한 일. 세리나 역시 이 일에 성공하고 싶었다. 그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의 임무 역시 완성하고자 했다. 그는 그녀의 프로젝트이며, 일이며, 임무였다. 더불어 그의 예술, 그의 작품, 그들의 연애가 하나였다고 말하며 무게감을 느낀다. 그가 실패하면 그녀도 실패하는 것이기에, 그녀는 성공해야만 했다. 그녀가 성공하는 게 그가 성공하는 일이며, '우리'가 성공하는 것이었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더 혼란에 빠지고 감정에 죄책감을 가지는 이유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사랑은 거짓말을 배경에 두고 시작했다는 게 언제나 가슴 한구석을 눌렀다. 그 죄책감은 그녀가 그를 사랑할수록 더 커져만 갔다.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건 사실이고 진심이지만, 그 사랑이 시작된 배경에는 그녀가 숨긴 정체와 그에게 접근한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민, 언제까지 이 거짓을 숨길 수 없으며 언젠가는 그에게 다 말해야 한다는 고뇌가 그대로 전해져온다. 그에게 그녀의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들의 사랑은 끝날 것이라고 여긴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말할 수 없지만, 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말해야 한다는 모순 같은 진실의 혼란에 빠져든다.


이쯤 되면 더 궁금해질 것이다. 세리나는 톰에게 말했을까, 하지 않았을까. 둘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낳았을까. 그 궁금증은 이미 소설의 첫 문장, 첫 단락에서 알려주었다. 그녀의 임무는 성공하지 못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파멸로 이끌었으며, 그녀 역시 정보국에서 파면당했다. 한 사람의 단편 작품들에 빠져들었고, 그러다 보니 그 작가에게 호감이 생기는 일. 결국 그 작가와 사랑에 빠져들어 버린 시간. 그게 삼십여 년 전 그녀의 인생이었다. 그럼 지금은?


이 사랑이 방향을 잡고 흘러가기 전에 그에게 나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우리 사랑은 끝날 것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말해야 한다.

나중에 우리는 어둠 속에서 팔짱을 끼고 누워 우리의 비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나쁜 짓에 어린애처럼 키득거렸다. 그리고 우리가 나눈 엄청난 말에도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규칙에 묶여 있지만 우리는 자유로웠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사랑을 나눌 것이고, 우리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다. (412~413페이지)


정보국의 비밀 작전에 투입된 여성 요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지만, 그 시대에 실제 일어난 사건(인 카운터)을 보면 소설로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작가는 그 사건에 오랫동안 관심을 두었다는데, 그러한 관심은 그 시대의 분위기와 역사적 사실에 더 깊이 파고들게 했으며, 결국 이 소설까지 이어졌다. 냉전 시대의 복잡 미묘했던 문화 전쟁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에 로맨스까지 더해진 이 소설이 재미와 호기심에 한 발짝 더 들여놓게 한다. 게다가 소설 속에서 세리나가 그녀의 스승(?)인 토니와 벌인 열띤 토론과 문학 작품들의 이야기는 소설에서 만나는 또 다른 문학의 목록을 쌓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문학 작품 이야기는 그녀의 작전 대상이자 연인이었던 톰과의 시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학 작품 속에 녹아든 의미를 파악하고 시대를 읽으면서, 소설가의 현실을 동시에 본다. 쓰고 싶은 작품도 많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정작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도구나 수단은 너무 적었다. 잘 안 팔리는 단편소설만으로는 그의 작품 세계를 알릴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이 21세기의 자유주의 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현실까지 같이 담아냈다.


소설로의 재미도 넘쳤지만,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한 시대의 전쟁에 문화가 했던 역할을 알게 되기도 했고, 작품을 쓰고 싶은 한 소설가의 열정이 그대로 읽히기도 한다. 작전 타깃인 소설가와 작전 수행자인 독자가 공유하는 문학에 대한 애정 역시 엄청나다. 두 사람이 나누는 책 이야기는 어느 독서 토론 못지않게 치열하기까지 하다. 작품의 설명과 이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다른 감상과 의도를 가지고 싸우기도 하고, 결국에는 상대의 진심을 읽어내며 감정적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일이 된다. 특히 세리나가 톰의 단편들을 읽어가면서 느끼는 독자 후기 같은 감상은 너무 익숙했다. (우리가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몇 마디 남기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이렇게 너무 잘 소통하고 사랑하고 열정이 넘치는 그들 사이에 '거짓'이라는 게 존재하는 사랑은 너무 위태로웠으니...


소설의 첫 부분에 드러난 이 사랑의 결말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거짓이 드러나고,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임무에 실패한 이들 사이에 어떤 게 남아 있을지 확인하길 바란다. 세상은, 사람은, 사랑은, 때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선택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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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가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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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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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 (꿈꾸는 듯한 표정이 되어) 1922년에서 1957년까지…….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은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 죽는 거예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54페이지)


가수 나훈아는 테스 형에게 물었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왜 이렇게 힘이 드느냐고, 먼저 가본 저세상은 어떠냐고, 가보니까 천국은 있더냐고. 나훈아는 노래를 부르면서 테스 형에게 대답은 들었을까? 글쎄. 나도 궁금했다.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정말 저세상이, 천국이 있을까요?' 아마도 나는 이 대답을 다음 세상에서나 할 수 있을 듯한데, 전생의 기억을 완전 삭제하고 태어난다면 또 그 대답을 할 수 없겠지. 그때 다시 궁금해질 것 같다. 천국은 있을까? 내가 죽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심판을 받으며 천국을 경험하고 있을까?



눈앞에 천국이 펼쳐져 있다. 그 천국을, 이제 막 천국에 입성한 아나톨만 모르고 있다. 하루에 담배를 세 갑이나 피워대던 아나톨은 폐암에 걸렸고, 수술하다가 사망했다. 눈을 떠보니 몸이 가뿐하다. 음,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되었군. 한참 착각에 빠진 그를 기다리는 건, 그를 천국에 머물게 할 것인지 다시 지상으로 보낼 것인지 결정해야만 하는 재판이었다. 처음 그도 자신이 죽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자기 인생에서 이보다 더 고민에 빠진 선택과 몸부림이 있었던가? 자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던 아나톨은 이제 그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하는 물음에 답해야만 한다. 온 힘을 다해 답을 찾아야만 한다.


천국의 법정은 뭐가 다를까 싶지만, 지상의 재판과 같은 모습이다. 죽기 전 판사였던 아나톨은 피고인이 되어 천국의 판사 가브리엘 앞에 서 있다. 그는 지나온 자기 삶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판사의 물음에 그는 자기가 좋은 학생,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직업인이었다고 말한다. 정말? 검사인 베르트랑은 아나톨의 대답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조목조목 대면서, 그에게 천국에 머물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에 반해 아나톨의 변호사인 카롤린은 그가 '삶의 형'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변호사와 검사 사이의 설전을 지켜보면서 궁금해지는 건, 천국에서 죄를 논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거였다. 그들은 그동안 아나톨의 모든 생을 지켜본 이들이다. 검사는 그의 신호 위반, 속도위반, 음주운전, 욕설 등 모든 위반 사례를 들었고, 심지어 그가 제대로 판결하지 못한 사건들을 언급했다. 심지어 그가 저지른 죄의 범위를 점점 확대해가면서 아나톨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


웃음이 나면서 동시에 심각해진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일상의 소소한(?) 위반들이 천국의 심판대에서는 굵직한 죄가 되어 되돌아온다. 그것을 시작으로 점점 우리가 저지른 죄의 크기는 살을 찌운다. 왜 그가 자기 행복을 위해 애쓰지 않았는지 저격한다. 아나톨은 지상에서 행복하지 않았을까? 판사라는 직업에 아내와 아이들, 크게 모자라지 않은 경제력이 일상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거 아니었나? 검사가 들춰내는 그의 죄목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뭔가 계속 콕콕 쑤시는 거 같았다. 행복을 누리지 않았다는, 행복한 삶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죄. 그에게 행복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모르고 놓친 채로 살아왔던가.


베르트랑 : 어떤 일이 어려워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중략) 지나치게 평온하고 지나치게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등한시하고, 운명적 사랑에 실패함으로써 피숑 씨는 배신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엘리자베트 루냐크의 꿈을 배신했어요.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배신한 셈이죠. (133페이지)


아나톨은 학창 시절 연극을 좋아했지만, 성인이 되고 판사로 살면서 우리가 아는 평범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연극으로 당시 밥벌이의 부족함을 알았고, 지금 아내와 만났으니 그냥 살았고,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사는 그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그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그가 배우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재능을 죽였고, 그가 좋아했던 여성과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아이들에게 무관심함으로써 엇나가는 자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나톨 자신도 몰랐던 아이들의 모습이 충격이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검사는 콧방귀를 뀌면서 그의 말을 핑계로 치부하고 그의 죄명을 외친다. 불행하지 않으려는 인생을 선택한 죄, 행복하지 않은 죄. 천생배필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기에 현재의 부인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평생 아내와 권태롭게 살아온 죄, 자기와 맞는 배우자가 자기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을 차단한 채로 살아온 죄가 크다고 말이다. 거기에 그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고 몰아붙인다. 그가 타고난 대배우가 될 자질인데 그 스스로 안정적인 삶을 찾느라 연극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기에 행복하지 않은 그의 세월을 탓한다.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 했다면서, 순응주의에 빠져서 자기에게 주어진 특별한 운명을 무시했다고, 그의 죄가 무겁다고 외친다. 기억하지 못한 시간의 죄까지 한꺼번에 들춰내니 이건 뭐 빼도 박도 못 한 증거가 된다.


검사의 주장대로 아나톨은 행복하지 않은 죄를 저지르기가 했을까? 그의 변호사 카롤린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무죄로 만들어 천국에 남게 하고 싶다. 그의 선택이 왜 그래야 했는지, 그의 선택 이면의 감정들을 피력한다. 첫눈에 반한 아내와 저지른 실수를 책임지려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아버지로 살아가려고 배우보다는 판사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냈고, 판사로 최고는 아니어도 직업인으로 나름 성실히 일해 왔다고, 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삶을 책임져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을까. 그는 판사의 판결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재능을 망각한 것은 유죄, 사랑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은 것도 유죄, 천국에 남을 만큼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것도 유죄. 그래서 아나톨 피숑은 유죄이며, '삶의 형'에 처했다. 천국에 남을 수 없으며,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


덜컥 겁이 난다. 삶의 모든 순간이 끝났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동안 살아온 세월의 죄를 묻는다고 생각하면 두렵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몰라서 당황할 것 같다. 특별히 나쁜 사람으로 살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순간들, 항상 원하고 바라던 삶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떠오른다.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아쉬움은 있겠지만,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었으니 하나를 선택하면서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익숙하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얼마나 더 행복할 선택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나톨의 변호사 카롤린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편안한 삶을 선택한 그의 죄를 논하는 검사하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피숑이 유죄라면, 한 시대와 그 시대의 관습 전체에 함께 죄를 물어야 한다'고. 카롤린은 아나톨의 수호천사였다. 그의 평생을 지켜본 이가 하는 말이니 어쩌면 그의 죄를 경감하고자 하는 주장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현실적인 답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은 바라는 것과 가능한 것의 싸움이었으니...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꿈만 쫓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당장 눈앞의 오늘을 보면서 살아가기에 급급한 게 보편적인 인간의 삶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내일을 생각하면서도 오늘의 선택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나톨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오늘을 살아내는 삶으로 그의 인생을 채웠다. 그랬는데 인제 와서 그 삶을 심판한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이 공존한다. 그가 기억하지도 못한 시간까지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보다는, 그때 그 행동이나 선택의 마음이 저절로 읽힌다.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겠지. 이 심판의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무죄를 받아서 천국에 머물며 천사가 되거나, 유죄를 받아서 지상으로 내려가 다시 인간으로 살아내거나. 말 그대로 '삶의 형'.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 유죄의 형벌이 내려진 게 꼭 나쁜 것이기만 할까? 별것 없이 고단한 인간 세상 다시 사는 게 힘들겠지만, 어쩌면 내가 놓친 행복을 다시 찾아가는 기회는 아닐까? 아나톨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판사복을 벗어 던진 가브리엘의 선택은, 행복의 기회를 다시 잡은 이의 즐거운 비명이 될 것 같다. 진짜 행복을, 또 다른 행복을 아는 인생이 되겠지.



아나톨 : 지상으로 돌아가는 건 다시 인간이 된다는, 결국 다시 무지해진다는 뜻이잖아요. 그동안 실수를 저질렀는데, 다음 생에서도 또 실수를 저지르게 될 거예요. (162페이지)

가브리엘 :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 내려가면 자유 의지를 가지고 혼자가 될 거예요. (197페이지)


현실에 순응하며 선택한 삶이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또 어떤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순응보다는 꿈을, 다가오는 파도를 피하기보다는 맞으면서, '적당히'가 아니라 치열하게 부딪히려는 바람 한 자락을 기억한다면 매 순간의 선택 결과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죽어서 가본 천국에서, 자신의 행복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불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온 죄를 너무 잘 알게 되었지 않은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형벌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너무 잘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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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0-1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네요. 전 보관함에 있는 책입니다. ㅋ

구단씨 2020-10-19 18:21   좋아요 1 | URL
금방 읽히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어서 놀랐(?)습니다. ㅎㅎ
 


재미와 혼란을 동시에 맛보여준 소설이 아닐까 싶다. 작가 조영주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왔지만, 정작 작가의 작품을 직접 완독까지 한 경우는 없었다. 언제나 그 입소문의 진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까 싶어 궁금하기만 하던 차에 이 작품 『혐오자살』을 만났다. 뭔가 잔뜩 긴장하면서 읽기도 했다. 무엇보다 동명이인의 등장과 사건이 시간을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아서 기억하면서 읽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점점 결말에 다다르면서 느껴지는 그 사건의 진실 앞에서 만족감을 만났다.


자고 일어난 명지는 어젯밤의 일이 기억난다. 명지는 어젯밤에 남자 친구 김준혁을 죽였다.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기가 김준혁을 죽였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남자 친구가 죽은 현자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을뿐더러, 모두 그가 자살했다고 말한다. 현재 그가 처한 신체를 비관해서 스스로 죽었을 거라고, 그런 일이 흔한 세상이니 자살이 아니면 무엇이겠냐고. 14년 동안 김준혁을 만나온 명지는 그가 왜 자살해야 하는지 믿을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가 죽인 게 아니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죽은 사람은 잊고 새로운 김준혁과 잘 만나다가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죽은 김준혁과 현재 살아있는 김준혁. 두 명의 김준혁은 명지의 인생을 채운 남자다. 한 명은 명지의 청춘을 채운 남자, 한 명은 명지의 첫사랑이자 최근 재회한 남자. 소설은 이 두 명의 김준혁을 등장시키고, 또 김준혁이 죽은 날을 중심으로 그 전과 후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죽은 김준혁은 살던 집을 두고 허름한 동네의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한다. 집을 중개했던 김 사장은 그의 형편에 딱 맞는 아파트를 소개해주고, 그 집에서 돈을 낭비하지 않게 충고 아닌 충고로 생활방식까지 정해준다. 하지만 그는 이사 온 첫날부터 그 집에서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옆집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드나들고, 위층 아래층 심한 층간소음에 돌아버릴 지경이다. 부동산 김 사장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경비실 정 이사에게도 말해보지만, 매번 그만 이상한 사람이 될 뿐이다. 주변 사람들 모두 그를 경계하고, 그를 볼 때마다 놀란다. 마치 소인국에 들어간 거인처럼, 다들 그를 멀리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본다. 이제 그는 더는 이곳에서 살 수가 없다. 일도 그만두고, 면접 보는 것마다 탈락이고,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이 아파트에서 생을 마감할 것만 같다. 안 되겠다. 마지막으로 명지를 한번 만나야겠다.


그랬다. 남자 친구 김준혁이 마지막으로 한번 명지를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날, 명지는 그를 만났고 그가 죽었다. 소설은 명지의 착각 아닌 착각을 시작으로 김준혁의 죽음을 차근차근 파헤친다. 사건 8개월 전의 죽은 김준혁의 시간부터, 사건 일주일 전의 백명지의 시간과 사건 한 달 전의 형사 김나영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채워진다. 잘 짜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도 들고, 누구도 모르는 자기만의 시선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모를 각자의 사정과 인생이 하나씩 들려올 때마다 한숨이 쉬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며, 왜 내가 원하고 좋아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보여주기 좋은 모습이어야만 하는 것인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또한 이런 생의 진리 아닌 진리 같은 시선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무섭기도 하다. 어쨌든 이 소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나 자신과 다른 시선으로 나를 보면서 인간 혐오를 쌓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혐오의 이유를 마주했을 때 분노하고 흥분하면서도 어쩌면 우리는 이런 혐오의 감정을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지 묻고 싶어진다. 나는 정말로, 단 한 번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혐오를 가져본 적이 없는지를.


남자 친구 김준혁의 장례식이 끝나고 명지는 그가 살던 집에 가서 유품을 정리한다. 방문 목적은 유품 정리라고 하지만, 그녀 스스로 김준혁의 살인자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기에 이 찝찝한 감정을 털어내고 싶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의 집에서는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떨어져 죽었다는 발코니에서조차 그의 지문이 없었다. 그는 발코니에서 떨어져 죽었다는데, 어떻게 죽었기에 아무런 흔적이 없느냔 말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으니 명지의 초조함은 커져만 가고, 그 와중에 형사 김나영이 이 사건의 수상함을 감지하고 파고들기 시작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동명이인에, 시간을 앞뒤로 왔다 갔다 했는지 궁금해도 재밌는 소설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하나씩 더 드러나면서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범인의 실체에 다가가는가 싶으면 뭔가 이상한 낌새에 범인을 단정할 수 없게 된다. 죽은 이들과 죽은 이들에게 남겨진 메시지 '이 나라를 떠나'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어서 끝까지 읽기 전까지는 그 확인을 마칠 수 없다. 등장인물들 또한 본명과 함께 그들의 별명으로 같이 나오는데, 아마 이 부분에서 이미 복선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미스터 블랙으로 불리던 김준혁, 죽은 김준혁의 친구 레드, 백설 공주로 불리던 백명지, 처음부터 계속 등장했던 난민이라는 신분. 언뜻 보면 이 단어들의 공통점을 금방 찾지 못할 것 같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인간의 묘한 심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불행과 고통과 힘듦을 타인에게서 찾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 때문에, 너만 아니었으면, 너만 없으면 금방 해결되고 괜찮아질 것 같은... 작은 편견으로 시작했던 거부의 감정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쌓여 금방 무너지지 않는 혐오로 자리 잡는다. 한마디로 표현하고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이 가지는 그 묘하고 두려운 감정의 적나라한 민낯을 그대로 비추는 작가의 방식이 흥미롭다. 그래서 추리소설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조각을 맞춰가는 재미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혐오가 얼마나 뿌리 깊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자라나기 시작했는지 차근차근 보여주면서,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혐오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그 혐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묻기도 한다. 그러면서 작가의 전작들에 등장한 형사 김나영 시리즈의 한 권으로 채워 넣는다. 추리소설의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품고, 아직 형사 김나영의 다른 활약을 못 만난 독자가 있다면 당장에 확인하고 싶게 한다. 전작 『붉은 소파』와 『반전은 없다』와 같이 읽는다면 더 즐거울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두 작품 사이에 위치한 이 이야기의 여운을 더 느끼고 싶다면 세 작품 같이 만나는 시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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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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