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과 편지 -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령 옮김 / 심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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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왜 우리 아버지는 저런 성격인지, 왜 아버지답지 못한 존재감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지. 아마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한 호감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 서로에게 무관심인 채로 살아간다면 더는 고통스럽지는 않겠지. 그게 최선이겠구나 싶었다. 포기했다고 해야 할까. 아버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그 어떤 노력이나 고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참 오래다. 그래도 언제나 가슴 한구석 답답함은 있었다. 아무리 무관심하게 대한다고 해도 없는 존재는 아니었으므로. 이제 더는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포기가 아니라, 필요가 없어졌다. 그 대상이 이제 없으니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를 힘들게 하는 대상과 더 싸울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고 느꼈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뭔가가 남아 있다.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느낄 즈음, 이 책을 만났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 아버지에게 듣지 못한 사과를 저자는 스스로 아버지가 되어 편지로 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1년이 흐른 후에야 소환한 거다. 저자의 성장에 아버지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대로 들려오면서, 저자가 아버지를 다시 불러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추적하는 것만 같다.


아무도 내게 이런 감정의 존재를 알려준 적이 없었기에, 어린 딸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너무나 혼란스럽더구나. 나는 사랑을 몰랐어. 숭배를 받은 적은 있어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 우상처럼 떠받들어진 적도 있고 누군가의 구세주 역할도 해봤지. 하지만 영혼과 세포를 키워주고 채워주는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달콤한 젖을 맛본 적은 없었어. 나의 몸은 달콤한 행복감을 맏아들이거나 경험한 적이 없었단다. (59~60페이지)


너의 성격을 파괴하고 의지를 꺾기 위해 난 매일같이 노력했다. 너에게서 온갖 잘못과 실패와 실수를 찾아냈지. 이런 일에 뛰어난 나는 네가 지닌 약점을 금세 파고들었어. (104페이지)


저자는 5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묻고 싶기도 할 거다. 그것도 친부에게 5살 때부터 성폭력 당하는 딸이라니. 아버지는 딸에게 설렘을 느끼고, 젊은 시절 그가 즐기던 인생처럼 딸에게 그 두근거림을 찾는다. 누군가 아버지의 귓가에 계속 속삭이기도 한다. 몇 년 후 성폭력을 멈췄지만, 아버지는 자기 눈앞에서 딸의 존재감을 없애려고, 딸을 제대로 교육하겠다면서 또 다른 폭력을 행사했다. 방에 가두기도 하고, 배고픔에 허덕이게 했다. 엄마와 오빠는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방관자였다. 모른 척 침묵하기도 했다. 어린 소녀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었고, 아버지는 소녀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자랐을까. 어느 정도 상상이 되기도 한다. 가족에게 외면받고, 아버지에게 억압과 폭력으로 대해졌던 어린 소녀가 성장의 시간을 어떻게 채웠을지 그려진다. 아버지에게 반항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저자의 저항 앞에 더욱더 교묘한 폭력을 행사했으며, 술과 마약에 빠지기도 했다. 스스로 학대하며 다리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술과 섹스에 빠져 살았고, 마치 그런 것들이 고통을 없애주는 것처럼 살았다.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은 온갖 좌절의 몸짓을 보여줬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나 그녀만의 인생을 돌보기 시작한 게 20대 중반이다. 희곡을 쓰고, 여성의 몸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질에 대한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세계의 여성들이 받는 고통을 말해왔다. 그렇게 쌓아온 경험과 성장으로 이제 저자는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 이제 가해자인 아버지는 없지만,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현실에서 사과받을 수 없게 됐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받고 싶었던 사과는 가해자가 없다는 이유로 완성될 수 없던 거다. 아버지의 사과를 더는 기다릴 수 없었기에, 이제 저자 스스로 전해지지 못한 사과를 받으려고 한다.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려냄으로써, 아버지의 사과로 과거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온전한 삶을 만들고 싶은 거다.


피해자인 저자가 아니라, 가해자인 아버지의 시점으로 써내려간 편지는 과거를 소환한다. 처음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했던 것부터, 아버지에게 외면받으며 괴롭게 성장했던 시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버지의 거절로 꿈을 포기해야 했던 순간, 제대로 아버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본인의 인생을 펼치기 시작했던 이야기가 현재의 저자를 만들기까지 생생하다.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의 인생을 추적하면서도 딸인 자신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데, 화자의 분위기가 참 묘하다. 저자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녀의 성장을 이야기하고, 아버지는 그 자신이 성장해온 환경에 영향을 받았던 게 딸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었던 거다. 딸에게 준 상처에 대해 아버지가 사과하는데, 왜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한마디 대신에 그가 걸어온 시간과 겪었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까? 무엇보다 아버지의 그 말을 피해자인 딸이 대신 적어가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원망과 분노의 대상이었을 사람의 마음을 대신 전하면서 구구절절 그의 사연을 공유한 것처럼 너무 잘 이해하고 있던 게 아닌가. 어느 순간, 피해자인 저자보다 가해자인 아버지의 서사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성폭력 생존자가 되어 목소리에 힘을 낸 저자는 진실을 드러내고 아버지와 화해하려고 이 글을 썼다. 가해자의 목소리를 남김없이 들려주고, 폭력의 본질을 꺼낸다.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를 은근히 피력한다. 변명으로 여기면서도 끝까지 자기 목소리를 낸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미처 드러내지 못한 말들, 미안함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그래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딸에게 성폭력을 행사했고, 외면하고 거절했던 존재로 남아있다. 본인도 어쩌지 못한 순간들에 대해 그 근원을 설명하려고 애쓴다. 자기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아버지도 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딸에게 사과하려고 시작한 이야기에서, 아마도 아버지는 자기의 서사를 한 번 더 확인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삶이 왜 그렇게 흘러왔는지, 그 자신의 성장기간 동안 만들어진 인성이나 현재 자기 삶에서 어떤 일을 만들었는지 보고야 만 시간이었으리라. 이 시간은 딸도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과거이자 아픔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의 성폭력이나 저자의 상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없었던 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대화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던 건데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만들어지지 못한 게 아쉽기만 하다.


한참 늦었지만,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었던 마음으로 아버지의 사과 편지를 쓴 저자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심정으로 좌절하고 반항하고 거칠게 살아왔을 시간을 떠올리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상처를 지우고 다시 걸어갈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건 맞다. 언제까지 가슴 속에 묻어둔 채로, 덜 아문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피해자가 원하는 건 더는 불안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 자기가 겪은 일을 다 말할 수 있는 것, 상처 입은 자신을 위해 법이 처벌해주어야 하는 것, 가해자에게 진심의 사과를 받는 것. 그리고 그 모든 바람의 끝에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나는 너에게서 평범한 일상을 빼앗았다. 나는 너에게서 가족에 대한 개념을 파괴해버렸다. 네가 네 엄마를 배신하도록 만들었다. 너를 영원한 자기 증오와 죄의식 속에서 살게 했다. 나는 형제자매 사이에 위계와 불신과 폭력적인 경쟁을 조장했다. 너희 중 그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회복될 수 없었다. (180페이지)


상상으로 쓸 수밖에 없는 이 글은, 저자가 오랫동안 묻어온 진실을 복원한다. 어쩌면 이미 죽은 사람을 불러내어 이렇게 사과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할 테지. 하지만 피해자는 안다. 피해자는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소환해서라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절대 사과하지 않을 아버지를 대신해서 상상했다. 상상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을 일, 상상으로라도 나를 위로하고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야만 했던 일. 이제는 자유로워져서 행복해져야 하는 자신을 위해 기꺼이 상상하고 썼을 것이다. 힘들었겠지만 생생하게 적었다. 섬세하게 감정의 민낯을 보여줬다. 추하고 잔인한, 고통스럽고 아팠던, 때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의 순간들까지 모두 꺼내놓았다. 사과 한마디 없이 사라진 가해자의 진실을, 그 진실을 받아들이면서 상처에서 회복될 자신을 또 상상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난 나의 아버지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여전히 이곳에서의 모습으로 자기만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 아니면 저자의 글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처럼 무언가 잔뜩 변명거리를 안고 말하고 싶은 표정일지. 나는 저자처럼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당신 딸로 살아가면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당신의 존재로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고, 당신의 부재가 몇 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당신을 떠올리면 고통스럽다고. 그러니 언젠가 나에게도 저자의 방식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가끔, 당신의 한 마디로 괴로운 내 마음이 위로받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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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29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준비해뒀는데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구단씨 님의 리뷰를 읽으니 저는 아마도 끝까지 읽지 못할 것 같기도 하네요. 읽기 전이라 모르겠지만 가해자 서사가 필요한건가, 의미있게 들어간건가 한편 걱정도 되고 말이죠 ㅠㅠ

2020-10-05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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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어느 부족에서는 사자의 장례를 치를 때 그의 영혼이 들고나는 통로를 마련해주고자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와 구실이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거라면, 자신을 수호하는 용도의 문신이 있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129페이지)

 

살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간절함의 순간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살면서 그런 간절함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건강을 위해서, 얻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서, 피하고 싶은 고통의 순간을 위해서 등등. 그 간절함에 또 무언가를 붙잡고 매달리기도 한다. 사람에, 종교에,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이 소설 속 인물들은 그들이 겪는 고통을 견디고자, 그 고통의 순간을 이겨내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문신이다. 어떤 대상을 정하고, 그 대상을 내 몸에 새기고, 나에게 와서 딱 달라붙어 있는 그 새겨진 것이 나를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 아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는 것일 테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이들의 몸이 새겨진 문신은 그들의 목숨을 유지하게 하는 부적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끝내는 가장 확실하고 완벽한 방법이 생을 놓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서울의 어느 아파트 10층. 그날은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다. 모두가 축구 중계에 열을 올리던 그 시간, 한 집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혹시 옆집이나 위아래 집으로 불이 번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화염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중년 남성이 창문 밖으로 떨어졌고, 병원으로 이송하면서 사망했다. 사고를 조사하던 경찰은 그 집에서 감금되었던 딸 말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딸이 용의자가 되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들이 딸을 향한 의심을 거두게 한다.

 

이상하게도 이해할 수 없는 사고와 죽음은 계속된다. 삼십 대의 한 남자는 혼자 살던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다. 어떤 동물에게 공격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집안에는 그 어떤 흔적도 없다. 한 회사 대표인 오십 대의 남자는 자기 집 거실에서 익사했다. 바닷물에 빠진 것처럼 죽은 남자는 외부 침입 흔적도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말 그대로 미스터리한 죽음이 계속 일어나고, 경찰이나 다른 사람들도 이들의 죽음에 많은 추측만 있을 뿐 진실을 알 수 없어서 난감하다.

 

마치 무슨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죽은 이들의 진상을 알아가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이들의 죽음 뒤에 무엇이 있기에 이렇게 완벽한(?) 완전범죄가 가능해지는지 궁금해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이 죽은 이유나 과정을 밝혀낼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의심과 진실 사이를 오가던 '시미'의 추적은 그녀만의 간절함을 채울 수 있는 곳을 향한다. 회사 후배인 '화인'의 권유로 그녀는 문신하러 간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문신 가게, 겉으로 봐서는 전혀 문신하는 곳처럼 생기지 않은 그곳, 문신할 것처럼 생기지 않은 가게의 주인장, 알 수 없는 편안함에 문신의 두려움 없이 편하게 누워있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문신을, 왜 새기고 싶어 하는 걸까?

 

화인이 목에 새긴 샐러맨더 한 마리는 그녀를 지켜주는 수호신 같았다. 마음에 의지가 되고, 지금 자기가 겪는 고통이나 위험을 견디게 해주는 용기를 갖게 했다. 이해가 안 될 것 같으면서도 공감의 끄덕임을 보내면서 읽게 되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이 부분은 나중에 화인이 시달려왔던 고통이 끝난 순간에 비로소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데, 아마 그 작은 샐러맨더 한 마리가 그녀를 구해주었다는 확신이 든다. 그녀도 느낀다. 그 작은 문신 하나가, 가장 절박했던 순간에 자기를 지켜줬다는 것을. 그렇게 화인을 지켜준 샐러맨더는 떠나갔다. 마치 자기 할 일은 다 했다는 듯이, 희미한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녀의 간절함을 해결해주었으니 더는 그녀의 몸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 사건에 연루된 작은 공통점 하나를 발견한 시미는 조금씩 알게 된다. 그 사건들에 관계된 사람들이 가졌을 간절함, 그 간절함을 읽어주던 이상한 문신업자, 그들이 몸에 수놓은 것들이 일으키는 작은 기적(?)들을.

 

그렇다면 시미가 만나고 싶은 기적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은 모는 시미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들려온다. 곧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시미는 서른 살에 남편과 이혼하면서 아들을 두고 나왔다. 시미는 이십년에 가까운 세월을 혼자 견디면서, 사회를 경험하면서 온갖 불합리와 불편한 순간들을 견뎌왔다. 그렇게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삶을 지키려고 애쓰던 시미의 노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노력은 아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연결된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이혼했지만, 그래도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까지 잘라내지는 못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건과 비밀 앞에서 시미는 그녀만의 간절함을 키운다. 그녀가 살아온 현재의 모습이 달라지기를, 그녀를 둘러싼 나쁜 상황들이 좋아지기를 바란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겠지. 그런 바람으로 몸에 새기는 것들을 바라볼 것이다. 누구나 가진 말 못 할 고통을 자기만의 노력으로 극복하고 싶지만, 그 노력은 고통을 사라지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미신 같은 바람을 몸에 불어넣게 된다. 나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기를,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기를. 실제로 그 바람이 이루어주지는 않더라도 나를 살게 해주는 의미가 되어간다. 나를 지켜줄 것으로 믿으며 앞으로 나아갈 나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 나의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보게 한다. 내 몸에 새긴 하나의 작은 기도로.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138페이지)

 

사람들이 종교를 찾고, 점집에 다니고, 남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들로 마음을 의지하게 되는 일들을 생각한다. 삶이 잔혹해지는 순간에 무언가에 자꾸 매달리고 싶어진다. 그게 종교일 수도 있고, 상상에 의지하는 어떤 바람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간절함을 이루기 위한 것임은 다르지 않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들의 고통을 줄이고 삶을 바꾸고 싶은 마음을 문신으로 표현했다. 몸에 새긴 이 작은 그림 하나가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랐다. 문신업자의 말처럼, 이렇게 피부에 새겨진 것은 정말 자기 심장에도 새겨지는 걸까?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작게 새겨진 이 그림 하나는 심장으로 연결되어, 가슴속에 머물면서 그들의 기도에 동참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가슴에 붙이는 부적, 심장이 읊조리는 기도의 의미로 새기고 싶은. 나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을 지탱해주는 바람 하나를 갖는 게 문신이라면, 그 문신 하나쯤 새겨 보고 싶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말하지 못하는 자기만의 슬픔과 고통이 있으니까. 그런 순간 이겨내면 자기 역할 다하듯 사라지는 문신을 보면서, 내 삶을 힘들게 했던 것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판타지 같은 결말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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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오늘의 젊은 작가 26
김병운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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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점점 편해지는 자리 중의 하나가, 굳이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바닥까지 보이지 않아도 되는, 적당히 분위기 맞추고 서로 나쁘지 않게 이야기하는, 진짜가 아니어도 되지만 가짜일 필요도 없이 서로 이어갈 수 있는 사이와 자리. 나만 그런가? 그건 아닐 것 같다. 어느 순간 이게 내 진심은 아니어도 꼭 내 진심을 이 자리에서 꺼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순간적으로 연기를 한다. 진짜 모습은 잠시 접어두고 껍데기만 살짝 보이는 것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불가능하지 않다.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까. 그렇게 드러내지 못한 진심과 진짜 모습이 어느 순간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건 아닐까?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타인이 우리 모습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두고 살지도 않을 것 같은데, 막상 살아가는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작게 크게, 알게 모르게 혹시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으로 나를 꺼내지 못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배우 공상표(강은성)의 인생도 비슷했다. 아니, 공상표는 우리가 소박하게 드러내지 않은 진짜와 사뭇 다른 비밀을 갖고 있다. 그는 게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아챘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성 소수자의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다가 영화감독이자 학교 선배인 김영우를 만나면서 그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김영우와 나눈다. 그렇게 공상표는 두 개의 삶을 가진다. 배우 공상표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괜찮은 남자로 이미지 관리를 하고,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연인 김영우와 사랑을 나누며 그의 진짜 모습을 편하게 꺼내놓고 산다. 김영우의 말처럼 그는 김영우의 집에서만 연인이 되었으며, 그곳을 떠나는 순간 배우 공상표의 삶으로 들어간다.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현실의 삶을 관리해야 하는 공상표로 살아가는 순간들이 힘들지만, 더 힘들어지는 삶 역시 받아들일 수 없기에 말이다. 언제까지 이런 이중생활이 가능할까 싶기에 그가 조금 더 편하게 다 밝혔으면 싶지만, 누구도 함부로 그의 인생을 재단할 수는 없다. 그가 선택한 삶, 대중과 엄마가 바라는 모습으로 연기하며 살아가는 시간은 그의 필모그래피로 차곡차곡 쌓여간다.


서른 해 가까이 살면서 그가 분명히 알게 된 것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아무리 밝고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제 몫의 어둠과 그늘이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꼭꼭 숨겨 두어서 자신조차도 그 모양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우물을 누군가에게 열어 보인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169~170페이지)


나를 드러내는 일이, 나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이 왜 이렇게 치열해야만 할까. 공상표는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면 그의 삶 전체가 망할 거로 생각한다. 배우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을 것이며, 자기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엄마가 받을 충격에, 사람들이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편견을 그대로 견뎌야 하는 게 두려웠다. 그 공포를 꼭꼭 눌러 담으며 살아오다가 겨우 커밍아웃을 한 상대는 연인이 된 김영우다. 연인에게만큼은 그가 감당하는 모순의 순간을 벗어버리고, 평생 그를 불안하게 했던 것들로 보호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연인은 내가 가장 설레는 상대이기도 하지만, 내가 많이 편하게 지내고 싶은 대상이기도 하기에 그는 알게 모르게 지켜온 그의 비밀을 털어놓는 순간 해방감을 느꼈을 테지. 하지만 공상표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연인 사이에서도 사람이 느끼는 기본적인 질투와 절망, 배신감 같은 나쁜 감정이 존재한다는 거다.


김영우는 그냥 좋았다. 아직 입봉하지 못했지만 연인 강은성이 옆에 있었고, 자신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었기에. 가족들은 그의 커밍아웃 앞에서 절연했지만 그들에게 받았던 인간 이하의 취급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게 나았으니까.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는 답답함과 두려움은 여전했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험난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면서 서술하는 인물은 공상표와 김영우뿐만은 아니었다. 공상표의 엄마 김미승, 소속사 대표 양병진, 공상표의 누나 강은진까지 다양하다. 각각의 인물이 왜 서로 다른 공상표의 모습을 이야기할까 싶어서 궁금했는데, 그들의 입으로 나오는 말과 생각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대변하는 건 아닐까 싶다. 엄마 김미승은 아들이 전부였으며 아들이 게이라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아들이 게이라는 게 알려진 순간 인생이 끝나리라고 여겼다. 암암리에 공상표의 게이설은 이미 한참 전부터 돌기 시작했다. 그에 양병진을 통해 아들의 게이설을 감출 스캔들을 기획하고, 강은진은 엄마의 계획을 좀 더 확실히 완료하고자 동참한다. 이들의 연합은 절대 공상표가 게이라는 게 알려지면 안 된다는 공통된 의지로 행해졌다. 왜 공상표가 게이라는 게 알려지면 안 되나?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정작 공상표가 바라는 것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놓고 편해지고 싶었던 마음과 커밍아웃 후에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삶의 불안한 현실 사이의 양가감정에 혼란스러웠을 테다. 그러던 어느 날, 김영우의 영화에 게이로 출연한 자기 모습을 마주한 공상표는 현실에서 달아난다. 게이 연기를 하는 진짜 자기 모습을 혐오스럽다고 여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살았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던 걸까. 한없이 불안해 보이고 일관되지 못한 태도의 그에게 어서 한 가지 선택을 하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 질문을 나에게 되돌려 보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성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생활을 하는 나도 어떤 불안을 잠재우고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선택 앞에서 망설이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을 테니까.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모든 것을 걸고 이제 자신을 살아가고 싶은 인생을 만들기 위한 커밍아웃이 결코 쉬울 리 없다. 그런데도 그가 자신을 찾아가야만 했던 이유가 소설의 2부에 드러난다. 1부가 그의 변명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2부는 그가 살아가고 싶은 시간을 선택한 이유를 그린다. 마음과 다르게 살아왔던 순간을 버리고 그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용기를 얻는 시간이라고 해도 되겠다. 오랫동안 자기혐오에 시달렸던 그가 이제 정말로 자기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는 다짐 같이 들린다.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자기를 버리는 일이 되어야만 하는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소설의 끝에 부록으로 실린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가 그 흐름을 대신 말한다. 그가 출연한 작품들과 배역의 특징들을 간략하게 소개한 부분에서 그가 어떻게 배우의 길을 걸어왔고, 또 어떻게 그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지 그대로 보인다. 한 사람의 궤적이자 배우의 기록이고, 한 사람이 진짜 자기를 찾아가는 변화를 포착한다.


세상에, 누군가에게 나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나의 말과 행동 하나가 어떻게 되돌아올지 몰라서 두렵기도 하다. 내 진심과 다르게 전달되는 말들에 오해가 생기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적으로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무서움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어쩌면 굳이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지는 세상이기에, 진짜 나를 애써 보여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공상표(강은성)의 고백 같은 이야기가 공감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왜 자기 인생과 사랑을 그대로 말할 수 없었는지 너무 잘 알아서 이해되는, 누군가 자기 존재로 있고 싶은 마음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시선을 알기에 그에게 강요할 수 없었다. 어서 고백하라고, 용기 있게 존재를 드러내고 말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힘들어지는 삶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선택했다. 그 자신에게 더 가까이 가고자, 그가 사랑하는 모든 것에게 인정받고자 고백했다. 애써 숨기고 감추면서 살아왔던 외로움을 더는 겪지 않으려고 말했다. 이제 진짜 인생을 살고 싶어서.


결국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소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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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9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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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고 살 방법이 없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가끔 하던 때가 있다. 늙지 않은 채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그냥 적당한 나이까지 살다가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한 인생을 가질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상상에서만 멈출 수 있는 듯하다. 혹시나 그 상상이 현실로 가능하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두렵기도 하다. 지금도 100세 시대라고,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지만 오래 산다는 것 자체가 좋기만 한 일일까? 오래 살아도, 건강하게 먹고 살 경제력이 바탕이 되어야 장수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아니겠나. 나이 먹고 병들고 가난에 허덕이는 삶이라면, 오래 사는 일이 꼭 즐겁지만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살아가는 목숨 강제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도 이제 초고령 사회로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가 되었다. 곧 노인이 될 나의 삶도 어떻게 그려질지...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백만 명을 죽이면 혁명이 된다." (10페이지)


이토록 서늘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은 우리가 염려하는 고령 사회의 문제와 고통을 생생하게 그렸다. 섬은 아니지만 섬으로 볼 정도로 고립된 팔곡마을. 전체 가구 수가 여덟, 인구수가 열. 그 열 명도 모두 노인이다. 일주일에 두어 번 팔곡마을로 들어가는 우체부가 노인들이 모두 사라졌다면서 파출소에 신고한다. 파출소장 박 경위는 우체부의 말이 근거 없다고 생각하며 귀찮아하지만, 일단 팔곡마을로 들어간다. 반쯤 잘못된 신고로 여기던 박 경위는 너무 고요한 팔곡마을의 어둠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챈다. 집마다 전기는 내려져 있고, 노인들 모두 집을 비웠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오랜 기간 집에 머문 흔적이 없다. 한두 명도 아니고 열 명의 노인 전체가 사라지는 일이 가능할까? 어떻게? 왜? 박 경위는 이상하게 언젠가 와본 적이 있는 것처럼 이 마을에 기시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나씩 소환되는 그의 기억에서 이 마을에 닥친 사건을 읽는다. 그래, 그건 사건이다.

박 경위의 기시감은 현재의 마을 분위기와 사뭇 다른 과거의 한 장면이었다. 팔곡마을은 전국에서도 장수하는 노인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방송국에서도 장수의 비결을 취재할 정도였다. 박 경위가 기억하는 그날도 어느 노인의 장수 축하연이었다. 사람들 모두 모여서 노인의 장수를 축하해주고 같이 즐겼다. 집안에서 진동하는 음식 냄새와 노인들이 가득했던 마루, 마냥 즐겁게 웃고 떠들고 즐기던 사람들까지. 그리고 누가 초대했는지도 모르게 잔치에 참석해있던 회색 옷의 사람들과 이상한 영상의 과거와 '웰다잉협회'의 우편물의 현재는 노인들의 실종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추적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소설이 무슨 추리소설 같겠지만, 사라진 노인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이 추리소설의 맛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인들이 사라진 이유를 찾으면서 생각하는 노인의 삶, 우리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초점이 맞춰진다. 깊게 알려고 하지 않는 노인의 자살률까지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노인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에서 1위라는데, 이 비극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소설 속 단체인 웰다잉협회는 '뉴 제너레이션'을 꿈꾼다면서 노인의 자살을 유도한다. 분명 사라지는 노인들은 자살로 발견되거나 실종 상태로 머물겠지만, 그들이 노인들을 자살로 이끈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노인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인가. 여기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시선은 노인 혐오가 아닐까 싶다. 소설에서도 말하고 있다. '세상이 점점 늙어가고 있다면서, 노인들이 지구 전체를 뒤덮어서 결국은 모두를 쇠락과 소멸로 내몰고 말 거라는(108페이지)' 공포가 '뉴 제너레이션'을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노인들이 맛이 가서 일으킨다는 교통사고. 노인들 때문에 젊은이들의 연금 부담이 커진다는 뉴스. 노인들의 만성질환 덕분에 파탄 나게 생긴 의료 재정.(115페이지)' 같은 피부에 와 닿는 문제의 원인을 노인으로 바라본 적은 없는지 묻는다. 웰다잉협회는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하고 세대를 바꾸어야 한다는 의무로 노인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일을 감행하는 것이다.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넘쳐서 말이다.


노인 혐오 시선을 가진 적 없는지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소설 속 노인들은 다행히(?)도 강경에 젓갈을 사러 단체관광 다녀온 것이었다. 열 명의 노인은 무사히 돌아왔는데, 관광버스 안에서 내리던 것은 열 명의 노인보다 더 많은 포장된 젓갈이었다. 평생 먹어도 다 못 먹을 것 같은 양의 젓갈은 왜 샀을까 궁금하던 차에 한 노인이 하는 말이 낯설지 않다. '자기도 모르게 젓갈을 이렇게나 많이 사지 않았는가. 나중에 아들 내외나 딸이 오면 또 얼마나 잔소리를 할 것인가. 하긴,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은 없다. 확실히 이런 걸 노망이라고 하는 거겠지. 김장할 것도 아니면서 이걸 다 사다니.(147페이지)' 뉴스에서도 종종 보던, 노인을 상대로 하는 다단계 업체의 사기 같은 거 말이다. 노인들은 노래 불러주고 즐겁게 해준다고 그들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고, 돌아올 때는 두 손에 가득 뭔가를 들고 왔다. 소소한 생필품에서부터 고가의 제품들까지. 일반적인 판매 가격보다 비싼데도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물건을 사서 집안에 쟁여놓는다. 원재료가 제대로 확인도 안 되는 건강식품, 어디 제품인지도 모를 전기레인지, 화장품 가게에서 2천 원에 파는 피부 세안제를 만원이 넘게 사서 오는 일들.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일들에 왜 저러나 싶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쌓아놓은 물건들은 당연하게 자식들의 잔소리가 되었고, 싸움이 되고, 혐오의 시선을 만든다. 인간이기에 실수하고 그럴 수 있는 일이, 노인이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는 건 아닐까 묻고 싶기도 하다.


그만그만한 거리에 적당히 모여 있던 작은 섬들의 노인이 계속 사라지면서 섬 세 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되었다. 나머지 두 개의 섬 중 하나가 팔곡마을이었다. 팔곡마을 노인이 사라지는 사건은 그냥 하룻밤의 해프닝이 되었지만, 며칠 후 마을의 노인 한 명의 시체가 호수 위로 떠 오른다. 이래도 그냥 웃고 넘길 하룻밤의 착각일까?


노인의 시체가 호수 위로 떠 오른 것으로 이야기는 끝났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남을 수밖에 없다. 노인 한 명의 시신이 발견된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노인이 더 생기지는 않을지, 다른 세대에게 짐 덩어리처럼 여겨지느니 우아한 마지막을 선택하겠다는 다짐이라도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여전히 세대 갈등은 계속 있을 것이고, 시선이 어긋날 때마다 그 혐오는 짙어질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금방 적응하지 못하면 스스로 도태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자존감이 떨어질 테지. 이 세상에 자기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타인에게 민폐가 되는 인생이라고 여긴다면 삶에 대한 애착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 대상이 내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나도 이제 '노인'이라 부르는 인생으로 들어갈 테니까. 대립이나 갈등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같이 찾아야 하는 문제로 남은 듯하다. 그들(노인)이 선택한 죽음이 개인의 선택에서 머물지 않음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현대 사회의 민낯을 비추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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