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가끔 꿈에 그집이 나타난다. 무의식의 세계에 나타나는 집의 의미가 안식이거나 공포라면 그집은 어디에 속할까. 내가 드라마 속 수애처럼 치매에 걸린다면 난 아마 그집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집은 고향을 떠나 혼자 내 몸을 뉘인 첫 집이었다.
집은 1층의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주인 할머니 내외는 옆집의 이층 양옥집에 기거하셨고, 내가 세들어 사는 집엔 세 가구가 살았다. 초록색 양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으로 방 3칸의 안채가 있고 오른쪽으로 문간방이, 뒷쪽 정면으로 부엌 딸린 작은 방(내 방)이 보인다. 마당은 시멘트를 거칠게 발라 아이들이 뛰어놀기는 위험했으며 오른쪽 문간방과 부엌이 있는 작은 방 사이에는 수돗가가 있었다. 수돗가를 돌아가면 계단이 나오는데 올라가면 작은 옥상이 있다. 옥상엔 장대 두 개를 연결한 빨랫줄이 중앙에 있으며 햇볕이 잘 드는 쪽엔 키작은 선인장들이 일렬로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빨래는 잘 익은 대추 처럼 사시사철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나는 빨래를 핑계로 종종 옥상에 앉아 있었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는 늦은 오후에 시원한 바람을 맞아가며 보는 하늘의 수채화는 매번 넋을 잃고 봤다.
안채에는 4인 가족이 살았는데 비쩍 마르고 강퍅한 아저씨는 말수가 적었지만 술에 취한 날엔 아저씨의 음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키도 크고 덩치도 있는데다 양볼에 욕심보 마저 붙어 있어 인상은 좋지 않았으나 기분이 좋을 때면 내게 세탁기의 탈수 정도는 허락했다. 아이들은 영악해서 부모의 부부싸움 때는 쥐죽은 듯 있었으며 대개는 둘이 놀았다. 동네에 또래들이 많았으나 집에 또래들이 놀러오지는 않았다. 간혹 부부싸움이 지나쳐 경찰차가 오고 경찰이 올 때면 어른들은 사이렌 소리에 마실을 나왔고, 동네 아이들은 경광등 불빛에 홀려 경찰차를 둘러쌌다.오른쪽 문간방에는 직장을 다니는 젊은 언니 뻘 아가씨가 살았고 얼굴은 한 달에 한 번 보는게 고작이었다. 나는 학교 근처에 내 방이 생긴 것만으로 좋았다. 2번이나 버스를 갈아타며 다니던 이전 집은 같이 살던 친언니가 졸업하면서 나올 수 있었고 나는 홀가분하게 혼자서 학교 근처의 방을 구해 마음껏 뒹굴거렸다. 혼자 사는 첫 집이어서 무서움 보다는 설레임이 더 컸다.
새로 터전을 잡은 내방에 적응할 무렵, 예비 2학년으로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엠티를 몇 일 갔다왔다. 땀에 절은 옷가지 등으로 눅눅해진 가방을 메고 도착하자마자 씻고 퍼져 잘 생각 뿐이던 내게 집 대문 한 켠에 우뚝 솟은 장대가 눈에 들어왔다. 장대에는 이파리가 조금 나 있었다. 장대로 빨래줄 다이를 만들려나보다. 고함을 많이 질러 쉬어터진 목이 아파 마당 한 켠 수돗가에서 물을 틀어 한 모금 먹고는 내 방문을 열어 바로 취침했다. 코를 골며 잠에 취해 열 몇 시간을 꼬박 잔 뒤, 다음날 오후 느즈막이 일어나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 대문에는 여전히 장대가 있었다.
달세를 드리기 위해 만난 주인할머니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평소와 달리 머뭇거렸다.
"계속 계약할 거야? 문간방 아가씨는 이번 달에 나간다고 하네. 그래. 잠자기는 괜찮아?"
"네? 왜요? 참, 할머니. 우리집 현관에 왠 장대가 계속 꽂혀있어요. 빨랫줄 다이를 새로 만들려나본데 아저씨가 안 도와주나봐요."
"그게..간판인데..그러니까..안채 여자가 무당이 되었다는구먼. 그참..전세기간이 많이 남아서 내보낼 수도 없고. 하필이면 전세계약을 새로 하자 무당이 될 게 뭐람. 이거..집값 떨어질까봐 걱정이구먼."
"네? 안채 아주머니가 무당이 되었다구요?"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네가 조금 이상하긴 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싸움 소리가 나던 집이 요즘 들어 무척 조용했고, 아이들도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아주머니 이마에 못보던 점이 하나 보여서, 원래 있던 점을 내가 뒤늦게 발견한 건지 점을 심은 건지 헷갈렸는데 그럼 그 이마 점도..
"그래. 붙인거야. 무당의 증표지."
주인할머니의 말밥은 신난 것과 짜증난 것이 섞여 있었다. 나는 괜히 험구가가 된 듯해 말밥을 이어주기 싫어서 적당히 말을 얼버무렸다.
"지금은..괜찮아요. 다시 이사하기도 힘들고, 뭐 이대로 좀더 있어볼게요."
느른하게 잠을 청하던 오후였다. 잠결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오고 있어?"
"그래. 지금 ...으니..조금만 더.. "
"어디까지.. 왔어?"
갑자기 잠이 확 깼다. 어디선가 듣던 목소리다. 애경이 소리. 술에 취한 애경이 소리다. 애경이는 술에 취하면 귀여워진다. 술이 조금더 취하면 운다. 울다가 술이 떡이 되면 아기 목소리로 바뀐다. 나는 애경이랑 술을 먹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어른이 내는 아기 목소리는 뭐랄까 해소가 잔뜩 낀 노인네가 가래를 밭지 않으려고 할 때 내는 소리와 같달까. 쇠를 가는 소리와 같달까. 그 어색하고 불편한 목소리는 신경줄을 팽팽하게 만들어 그만 술맛이 떨어지는 것이다. 애경이 남친 병길이는 이런 애경이도 좋다고 한다. 나라면 도망갈 터인데. 하긴 나라면 병길이도 도망갈 녀석이다. 병길이는 신장이 안좋아 신장투석을 한다. 어마어마한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병길이는 집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개인 세대다. 병길이는 요즘 들어 자주 신장투석을 하러 간다. 병길이는 얼굴이 검다. 병길이는 애경이가 술이 취해 애기 소리를 내도 그저 좋고, 애경이는 병길이 배가 자꾸 부어도 배를 쓰다듬으며 웃는다. 둘은 바보다. 둘다 바보다. 그래서 누구보다 이쁜 커플이다.
나는 애경이가 술에 취해 나를 보러 왔나 싶어 깜짝 놀라 일어났다. 애경이가 내 집을 어찌 알고. 학교에 무슨 일이 있나.
계속 말소리가 들린다.
"보이니?"
"까까..까까가 먹고 싶엉."
뭐야. 이건 애경이 소리가 아닌데?
분위기가 수상해 기척을 내지 않고 방문을 아주 살짝 열었다. 마당엔 아무도 없었고 맞은편 안채 마루에 아주머니 두 분이 앉아 계셨다. 둘다 머리게 고깔을 썼으며 안채 아주머니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연신 손가락질을 해대는게 뭐가 보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자세히 보니 쭈그랑 할머니였는데 앉은다리 옆으로 북을 하나 가지고 있었고 북채로 북을 연신 치고 있었다. 두둥 두둥. 북소리는 작았지만 낮은 심장소리처럼 내 피를 자극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계속 훔쳐 보았다.
"앙앙. 까까 줘. 까까 먹고 싶어."
"여깃네. 여기 까까 있다. 까까 먹자"
"냠냠. 냠냠. 까까 더줘"
....
꺄르르 꺄르르
안채 아주머니 속 아이는 실컷 먹고 실컷 놀다 갔다. 안채 아주머니 목소리가 원래로 돌아왔다.
"언제 집에서 죽은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입니다."
"아이고. 맞아요. 우리 신랑 먼 친척 중에 어려서 죽은 아이가 있어요."
"동자신이 무난하고 좋아요. 아이는 잘 삐치니 잘해줘야 합니다. 대신 바로바로 말을 해주니 그것은 좋지요."
그러니까 무당 수업 중이었던 것이다. 접신을 하는 법과 신이 들어왔을 때 신과 소통하는 법, 신을 어루는 법 등에 대한 수업.
그러나 내게는 개뿔. 거짓부렁 수업이었다. 접신이 저렇게 허투루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내 눈엔 암것두 안 보이더만. 저건 분명 오소리 귀신일 거야. 사람 귀신 아니야.
문간방은 한달이 지나도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다. 무당이 무서운지 무당이 사는 집이 무서운지. 학교에 가면 학과 친구들이나 동아리방 선배들이 자꾸 이사가라고 말을 한다. 그런 집에서 어떻게 살아. 그러나 원래 내가 살던 곳을 타의로 이사한다는 게 싫었고 무엇보다 귀찮았다. 그집은 빨래 널기가 아주 좋았다. 아는 사람이 어떤 이유로 조금 외양이 바뀌었다고 안면을 바꾸고 무서워요, 도망가는 것은 내게는 이상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겁이 전혀 나지 않았다. 미간에 빨간 점을 붙이든 눈매가 매서워지든 내가 알던 안채 아주머니 그대로인데.
주말에 고향집을 다녀와 반찬을 잔뜩 든 무거운 양팔을 낑낑대며 집 대문을 들어섰다. 이상한 향이 났다. 문간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누가 새로 이사를 들어왔나? 방문이 열려 있었고 나는 슬쩍 봤는데 방안엔 부처를 모셔놨고 제단이 있었고 향불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상한 향의 정체는 향불이었다. 안채 아주머니가 견습을 드디어 마치고 샵을 차린 것이다. 신내림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손님이 많겠지. 그러나 학교를 오가며 봐도 손님 꼬라지는 보이지 않았다. 홍보가 덜 되었나. 이 동네는 점을 잘 보지 않나. 내가 들락거리는 시간대가 맞지 않나. 들락거리는 시간대를 바꿔 보았다. 아주머니가 용돈벌이라도 해야될텐데. 나라도 봐주고 싶었지만 그때의 나는 내 미래가 궁금하지 않았다. 늘 아프던 아주머니가 이제 더이상 아프지 않고, 시끄럽던 부부싸움도 더이상은 하지 않으니, 아주머니에게는 신내림이 딱히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나는 그뒤로 무당을 보면 겁이 나지 않는다. 왠지 내 미래를 훔쳐 볼 것 같고, 내가 품은 나쁜 마음을 알아챌 것 같은 무당이었는데, 무당 견습을 본 뒤로는 어지간히 큰 무당이 아닌 고만고만한 무당들은 샵을 연 가게주인 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무당아줌마. 우리, 같은 상인으로써 작금의 불경기에 대해 이야기 한 번 해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