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힘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김은경 옮김 / 북바이북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 새롭게 의미부여된 제목에 끌리고, 독특한 생각의 폭에 빠져들다.
 
 
  망각의 힘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수많은 정보가 난무하는 정보화 시대, 잘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 유행하는데, 저자는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망각에 주목하라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를 취합해 사고하는 능력이라 이야기한다. 배우고 기억하는데 힘쓸 시간에, 적절하게 자신의 지식을 뇌에서 내보내는 배설작용이 필요하다는 주장, 색다르다.

   
  어렵지 않게 글을 읽고나면, 생각거리가 남아있다. 아! 그렇구나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더 깊이 이야기에 빠져 의견을 피력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글 안에 스며있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야기하기에, 독자가 쉽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지나간 기억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며, 아름다운 작품에 이끌려 작가와 가까워질수록 작품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눈 먼 인간의 오해에 불과하다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명저를 읽었다면 작가를 만나지 말라" 는 저자의 이야기에 수긍이 가면서도, 저자와의 친분이 저자를 새롭게 바라보는 하나의 마디가 돌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와의 소통이 작품을 더욱 이해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 생각했는데, 저자의 글을 통해, 친분이 작품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장애가 된다는 새로운 시선으로 작가를 바라보았다. 

    
# 책을 읽을때보다 생각할 때, 머리가 잘 돌아간다!
   
   
  짧은 글이지만, 깊은 의미를 지닌 글이 모여있다. 휘발유 가격보다 더 비싼 물, 거짓과 진실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기에는 3차원의 넓고 깊이있는 세계라서, 거짓과 진실이 모두 공존가능하다는 이야기, 자신을 힘들게 하는 까다로운 상대, 적이 고마운 존재라는 글 등, 다양한 주제, 인간 사회의 풍경을 드러내고 독창적인 주장이 담긴 50편의 글이 묶여있다.
 
  책을 읽을때보다 생각할 때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말처럼, 두뇌를 자극하는 주장들이 다양하게 담겨있다. 무엇보다 리듬을 중요시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몸에 밴 습관의 힘에는 리듬감이 중요하다며, 활동과 휴식이 반복되어야 리듬이 생겨나고, 휴식은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길면 컨디션을 망친다는 이야기에 공감했다. 여름방학의 긴 기간이 교육의 리듬을 깬다며, 일상의 생활습관은 낮과 밤으로 이루어지므로, 그 밖의 주장은 해가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안식년을 주장하는 의견과 상충되는 의견이 되어,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야기거리라는 생각을 했다.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를 하고 싶은 이에게는 대화 형식의 에세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제시하는 책이다. 대화가 문자의 영역에서 숨을 쉬는 모습이 독특했다. 형식에 자유롭고, 편견에 매이지 않는 저자의 글에 스며있는 힘을 느낀다. 한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책을 원하는 독자보다는, 뷔페 식당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기를 좋아하듯, 다양한 소재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좋아하는 독자에게 더 알맞을 책이다. 고정되기 쉬운 관점이 책을 통해, 넓어진 기분이다. 이 기분, 나쁘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꼴찌를 일등으로>를 리뷰해주세요.
꼴찌를 일등으로 - 野神 김성근
김성근 지음, 박태옥 말꾸밈 / 자음과모음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감독의 야구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포츠가 아닌, 전쟁을 하는듯한, 야구플레이, 투수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소모품처럼 대하는 자세 등 믿음과 신뢰로 가능성을 끌어내는 감독이 아닌, 최대한 짜낼때까지 짜내거나, 이번에 지면 끝이라는 정신무장을 공자하는 분위기, 그리고 다른 구단과의 공공의 적인 팀 분위기를 보면, 내가 좋아하는 팀과 야구를 하더라도 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그의 자서전을 읽기 전까지의 내 기분이 그랬다. 보기만 해도, 싫어진다고 할까. 재일교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꿋꿋하게 버텨낸 그의 노력과 근성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팀 분위기는 싫엇다. 그런 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감독이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서전이기 때문일까. 그가 손꼽았던 인생의 풍경들을 보고나니, 왜 그의 플레이가 그렇게 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치열하게, 경기를 진행할 수 밖에 없는지, 순탄치 않은 삶의 여정에서 조심하고, 또 조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알게되었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치열하게 삶을 걸어왔던 한 인간의 풍경을 엿보는 기분으로 읽으면 괜찮을 책이라 생각한다. 마이너인 삶을 괴로워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도전해서, 정상의 길로 올라온, 그의 인생을 보면, 삶을 한 번 도전해 볼만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경질과 사퇴 등 순탄치 않은 많은 날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는 승리했고, 지금 12연승을 달리고 있다. 그의 팀이 승리하는 길을 원하지 않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의 승부를 다하는 모습에서 그라운드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야구에는 두번째 공이 없다. 일타일생, 일기일회, 한 번의 기회와 흐름으로 바뀌는 경기 등, 많은 걸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구의 연인도 되지마라>를 리뷰해주세요.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 김현진의 B급 연애 탈출기
김현진 지음, 전지영 그림 / 레드박스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누구나 A급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은 B급 연애에서 전전하고 만다.

 

 

  드라마를 보면 여주인공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남성은 늘 나타나 도움을 준다. 여자들의 로망이라고 할까. 나만을 생각해주고, 나만을 아껴주는, 그런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기를 꿈꾸지만, 현실에서 그런 남자는 찾기 힘들다. 설사 그런 이성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부족한, 자신감 없는 사람은, '착하고 괜찮은 남자/여자'와 연애를 하기보다 '착한 남자/여자'와 연애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 행복해진다. 그 마음 평생가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현실과 대면하게 된다. 자기안의 기대나 결핍들이 상대를 힘들게하거나, 자신을 힘들게 만들어 연애를 지속하지 못하게 만든다. '나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해'라는 부모님들과 주변의 현실적인 기대들은 조건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축복이 앞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듯, 좋은 조건이 좋은 관계를 맺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두운 양지에 익숙한 사람들이 밝고 환한 곳으로 나오게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적응하는 일이 힘들어진다. 변화하려는 고통보다 그냥 내 안의 어두운 방에 갇혀있는 일이 더 익숙해지면, 더욱 더 B급 연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연애도 스펙과 조건을 무시할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그녀는 B급 연애를 하며, B급 사랑을 주고, B급 사랑을 받는 찌질해 보이기도 하고, 못난 보이기도 하는 사랑을 하는 여성들을 다독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이야기한다.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한 연애를 꿈꿀 때, 비참하고, 속상하고, 안타까운, 하지만 성인이기에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B급 연애를 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에 담겨있다.
 
 
# 이성에게 부모, 친구, 선배 다 바라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하나만 바라자.
 
 
  B급 연애에 빠진 여자를 위한 위로 팡팡 에세이라는 띠지의 글처럼, A급 연애를 바라는 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집안 좋고, 성격 좋고, 안정적인 직업에, 매너 좋고, 여유로운, 밝고 따뜻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A급 인간들이 아닌, 상처많고, 무엇인가 하나에 결핍되어 있는, 사랑에 못말라하면서도, 사랑이 다가오면 주춤거리고, 늘 상처로 끝나는 연애를 하는 B급 연애중독자들에게 이제 그만, B급 연애에서 벗어나자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백마 탄 왕자님처럼, 누군가가 짠 하게 나타나 내 마음을 위로해주고 다독여줄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어두운 방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사랑하자고 속삭이는 책이다. 무엇보다 B급 연애를 하는 이를 문제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활자가 되어 생생하게 살아있는 책이다.
 
  기대는, 연애를 꿈꾸는 환상은, 돌아서면 남이 되는 그 사람을, 내 속 깊은 곳까지 털어놓게 만드는 힘을 전해준다. 내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그는 나를 사랑해줄거라는 믿음, 난 사랑받을 자격이있다는 그 마음이 있다면, 수없이 연애를 실패하더라도, 괜찮다 생각한다. 연애만큼,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바라보게 하는 좋은 거울이 되어주는 가슴 떨리는 일도 없다 생각한다. 공통점을 발견하면서, 내가 이런것을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고, 차이점을 발견하면서, 이런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도 사랑해줄 수 있다는,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 한계와 자신이 변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게 된다고 할까. 연애는 여러번 어긋날 수 있지만, 같은 연애의 패턴이 반복된다면, 결국 문제의 해결책은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이성에게 어떤 모습이던지 사랑해주는 아빠의 역할, 힘들 때 조언을 해 주는 따스한 선배,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친구 등 많은 걸 바라게 되다보면, 연애는 실패의 길로 가기 마련이다. 이성에게 다 바라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하나만 바라자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알면서도 연애에 빠지게 되면, 많은 걸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그 기대를 받으려는 욕망을 줄이고, 누군가를 이해하는 길을 선택한다면, 연애가 끝나고 난 후, 전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될거라 믿는다.
 
  우리가 외면하기 쉬운 태양이 기운이 깃들지 않은 공간에서, 힘겹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솔직한 글을 쓰는 저자이기에, 그의 글이 많이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책의 인세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조분회 투쟁기금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저자의 삶도 그렇게 넉넉한 편이 아닌데, 자신의 가진 것을 내놓는 그녀의 삶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안쓰럽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자신의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억울하더라도,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다양하고 독특한 B급 사랑을 읽는 일이 쉽진 않지만,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 다양한 B급 연애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한다. 상처받을걸 알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연애를 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주는 책이다. 똑똑하게 계산해서, 나보다 더 나은 이성을 잡아 연애를 하려는 이가 아니라면,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행복한 연애를 하기 위해, 맞아두면 좋은 백신접종같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경찰도, 병원도 가난하기에 구해주지 않는 빈민가. 누가 그들을 돌보고 있었을까?
 
 
  현실세계는 두가지 축으로 움직인다. 권력이라는 이름의 영향력과 실제 생활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돈. 빽도 없고, 돈도 없고 희망도 없는 빈민가에는 사람은 살지만, 그들을 돌봐주고 구해주는 경찰과 병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시대, 기회의 소중함을 알고, 그 기회를 활용할 배경이나 여유가 있는 이에게는 보물섬에서 황금을 구하는 도전의 나날이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맨손을 지닌 이에게는 하루의 삶이 투쟁과 절박함의 연속이 된다. 여성이 아닌 이상, 밤거리의 공포와 여성이기에 차별받은 설움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절대적 빈곤의 늪에 빠질 여력이 없는 이에게는, 자신이 가난을 겪지 않았기에, 가난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자신에게 기회가 있다며, 더 많은 부유함을 얻기위해 노력하는 이와 가난한 이와 함께 공존하기를 토론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이기에,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절박한 처지에 놓이는 사람들과 끝없이 대화하며 공감의 폭을 넓혀야 한다 생각한다. 극단적 빈곤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이 책의 저자의 의문에 공감했다.
 
  10년간 빈민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졸업논문을 준비한 독특한 대학원생의 논문준비의 흔적이 잘 담겨있다. 1989년 가을, 과학적이나 수치적인 통계를 통해 특정 문제에 답을 얻기보다,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어울리고 싶었던 저자는 빈민가정의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눠보기로 결정한다.
 
  빈민가에서, 마약을 파는 갱들과 마주친 그는 대학을 다왔지만, 더나은 승진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다시 자신이 살던 빈민가로 돌아와 마약파는일의 중간보스를 맡은 블랙킹스의 두목 JT의 부하들에게 잡힌다. 상대조직의 끄나풀이 아님을 확인한 JT는 얼간이 같은 질문을 하지 말고, 왜 거리에서 살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질문을 싫어하는 갱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함께 생활해야 함을 그는 깨닫는다. 10년의 시간, 자신의 삶에 대한 자서전을 써준다고 오해하는 JT와 함께 저자는 빈민가의 사람들과 부딪치며 그들의 삶을 관찰하게 된다. JT가 고위두목이 되어 성공하고, 마을이 재개발이 확정되는 그날까지, 저자가 경험한 에피소드를 통해, 빈민가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  법률과 의료의 보호가 없는 빈민가를 보호하는 것은 갱들과 영향력 있는 지역유지들..
 
 
  노숙자들이 서로 싸우고, 총기가 있기에, 총기사고도 잘 일어나는 빈민가에서는 싸움이 나더라도 경찰이 찾아오지 않고, 구급차를 불러도 오지 않는다. 싸움과 응급상황, 치안을 유지하는 일은 도리어 갱단이 맡게 되는 현실을 저자는 알려준다.
 
  갱단과 주민대표와 경찰이 은밀히 서로 협력하는 과정이 저자의 시선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진다. 사회안정망이 빠진 자리에 들어서는 지하경제에서 움직이는 원칙들을 볼 수 있다고 할까. 공공의 힘이 빠진 영역에서는 어둠의 영역에서 대가를 담보로 해서, 대신 세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사실과 대면하게 된다. 기회를 상실한 이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는지, 매 순간순간이 권력의 싸움의 현장이라는 점을, 로또처럼 대박을 노리고 마약판매의 가장 위험한 이를 떠맡는 이들이 기회비용으로 막대한 대가를 치루는 현실이 보인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중간보스 JT대신 일일보스를 맡은 저자의 두목체험기였다. 쉽게 보이는 두목의 위치가 많은 선택지에 최선의 답을 써내려는 과정이라는 점과 대기업의 기업구조와 비슷한 관리형식을 취한다는 점을 저자의 체험을 통해 생생히 전해진다. 공공의 힘이 미치지 못한 곳에서는 지하세계의 사람들이 영향력과 세금을 걷는 수탈이 반복된다는 점과 철거를 통한 협상의 과정에서도, 주민대표는 혜택을 얻지만, 주민들은 결국 새로운 곳에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떠나는 현실이, 용산철거와 앞으로 강화될 양극화가 계속되었을 때의 풍경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앞으로 20년 후에, 지금 농촌에서 활발하게 태어나고 있는 코시안들이 민족의 벽이 높은 한국에서, 새로운 소외계층으로 될 수 있음이 보인다고 할까. 낯선 외국인에게 한국인과 동등한 시선으로 보는 연습이, 국가와 사회, 개인 차원에서 활발해져야 함을 생각했다.
 
  에피소드를 통해, 낯선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객관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려 하지만, 결국 자신 역시, 이기적으로 주민들을 통해 이익을 얻었음을 인정하는 저자의 성찰과 소외받았지만, 그 안에서 서로 연대하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점이 좋았다.
 
  모두가 빈곤했을 때는 힘들때 서로 돕고, 응원하는 문화가 있어 외롭지 않았지만, 양극화의 시대에는 누구는 부유하게 살고, 누구는 늘 바닥에 있어야 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므로 더욱 구성원들 사이에 돈독함이 사라지는 면이 있다 생각한다. 양극화의 흐름을 설사 막을 수 없더라도,  사회안전망의 확충과 가난한 이가 자신의 가난함을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믿는다. 이제 세상을 떠나버린, 한 정치가가 남긴 글귀가 생각난다. 개인의 성공이 강조되는 시기,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글귀를 통해 한 번 더 곱씹어봐야 함을 느낀다.
 
  가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으로 성장하더라도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 다산책방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늘 그렇듯이...
 
 
  소중한 사람은 늘 그렇듯이, 떠난 후에야 그 빈자를 느끼게 된다. 정치가를 욕하고, 정책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너무나 크게 누렸기 때문이었을까. 새로운 정부가 바뀐 이후, 누군가에 어떤 언급을 하는 자체에 법률적으로, 심리적으로 위축됨을 느끼는 현재에 살고있다. 이렇게 막무가내일 줄은 몰랐기에, '언론의 자유'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해, 소통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전라도'인이였기에, DJ에 좀더 냉정했던 고종석씨의 DJ에 관한 글을 시사인에서 읽었다. 적어도 다른 대통령들에 견주어 준비된 대통령, 유신잔재세력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던 힘이 없던 대통령, 자식들에 관대해서 오점을 남겼던 대통령이었다는 말에 공감했다. 솔직히 5월 학살의 주범들이 사과의 말조차 꺼내지 않는 시기에, 화해와 용서를 외쳤던 그의 선택은, 많이 서운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남아있기도 하다. 전라도인이기에 더욱 그의 사소한 잘못에도 마음이 아팠던, 자기검열에도 심했던 점도 많았다.
 
  떠나기 전에는 큰 거목이었던 그의 그늘에 기대 쉬는 점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고마움을 몰랐었는데, 이제 나무가 떠나버린 후, 쨍쨍 내리찌는 햇살과 뜨거운 바람과 마주하고나니, 그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는 흠결 없는 완벽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질 줄 알았고, 평화와 인권을 위해, 말로만 외치지 않고, 늘 선두에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호소하고 애원했다. 그가 떠나버린 후, 그의 외침에 더 귀기울이지 못했던 점은, 살아가며 늘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정치인 DJ가 아닌, 저술가로서의 DJ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의 '김대중_옥중서신'을 읽고 싶었지만, 서점에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 가장 최근에 그가 저술한 글 중, 역자가 좋았던 글을 가려뽑아 엮은 책을 발견했다. 글은 그 사람을 드러낸다. 빨갱이와 대통령병환자 등 다양한 이미지에 가려 보지 못했던 그의 흔적을 글을 통해 만나고 싶었다.
 
 
# 정치인 DJ가 아닌, 독서인, 인간 DJ를 알고 픈 이에게 어울리는 책.
 
 
  정치가로서의 생애를 다룬 김대중 자서전보다 이 책을 먼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색을 떠나, 무엇이 되기보다, 어떻게 살기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DJ의 모습이 글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진다. 수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늘 비판의 눈을 잃지 않고, 정독하면서도 사색하는 일을 꼭 함께 했던 DJ, 보통사람이 견디지 힘든 고난을 여러번 겪었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비결이 그의 메모속에 생생하게 드러난다. 겁 많고, 두려움이 많았지만,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용기에 대한 생각에 공감이 갔다.
 
  국민은 잘못 오판하기도 하고, 흑색선전에 현혹되기도 하며, 엉뚱한 오해를 하기도 하고, 집단 심리에 이끌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국민 이외의 믿을 대상이 없다며, 국민과 손을 잡고 반 발짝만 앞에 서서 이끌어야 한다고 외쳤던 DJ, 혁명보다 개혁을 좋아했던 DJ, 화려한 건축물 뒤에 숨은 이름 없는 석수, 화공, 목수 등의 백성의 무리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던 DJ, 무엇보다 이상에 빠져있지 않고, 늘 현실속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 노력했던 그의 모습은 진흙탕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꽃을이 생각난다.
  
 
# 말과 행동이 일치한 이를 만나 행복했던 시간들.
 
 
  DJ니까, 당연히 민주주의를 위해, 평화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떠난 이후, 그만한 정치인이 없다는 현실이 힘겹다. 솔직히, 정치는 이제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 어차피 서민에게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도둑놈이라는 말이 공감이 간다. 하지만, 먼저 떠나버린 두 전직 대통령이 공통으로 외쳤던 민주주의를 지키는 이는 현명한 시민들이라는 말에, 이제 비어있는 자리는 시민들이 서로 지혜를 모아 속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기에 더욱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과 어떤 세상을 꿈꿔야 하는지 많이 논의해야 함을 느낀다.
 
  DJ에 대해 많은 이들이 글을 남겼지만, 서두에 언급했던 고종석씨의 칼럼의 마지막 글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모래위에 성을 쌓듯, 쉽게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인권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많이 헌신했던 그의 삶을 철학이 담긴 글귀를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이제, 기쁨도 슬픔도 없는 그곳에서 편히 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그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1987년에도, 아니 투표권이 없었던 1971년에도 이미 나는 그의 지지자였음을. 그리고 나는 또 안다. 1998년 2월 말부터 다섯 해 동안, 자신이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그가 있었음을. 지난 쉰 해 동안 그와 동시대인이었던 것이 자랑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