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  음악은 세 번 태어납니다!
  
 
  제목을 되뇌어 읽다가, 유명한 CD 박웅현씨가 문안을 짰던 광고가 생각났다. 음악은 세 번 태어납니다! 라는 문구이다. 베토벤이 작곡을 했을 때 처음, 음악이 태어나고, 그 곡을 연주가가 연주했을 때, 음악은 두 번째로 태어나고, 마지막으로 스피커에서 소리가 재생되었을 때, 음악은 세 번째로 태어난다는 스피커에 관한 광고에 씌인 글귀이다. 작곡가의 손에서 연주가로, 그리고 재생기기로의 과정을 잘 포착한 광고기획자의 눈썰미가 돋보이는 광고이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의 제목은 보이는 현재와 다른 현재를 해석(과거), 미래를 꿈꾸는 새로운 세계를 진행시키는 일을 통해 인간은 조금 더 나아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내가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미래는 좀 다르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뭔가 읽고 써야 하고, 그 과정에 고전이 등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감동받았던 글을 타인에게 소개할 때 글은 가장 큰 설득력을 지닌다. 저자 역시, 자신의 마음을 움직여, 독자들도 한 번 귀기울여 들어보았으면 하는 작품 15편을 골라, 책 속에 좋아하는 마음의 순간들을 사진의 한 장 처럼 찰칵 포착해서, 책을 읽기전의 자신과 책을 읽은 후의 자신, 그리고 변화된 시대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까지 글에 남긴다.
  
 
#  고전을 통해 시대의 풍경을 바라보다.
 
  고전을 열심히 읽다보면, 현대사회의 풍경도 함께 보이는 걸까. 오랜시간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에는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거나,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가 내재되어있음을 저자의 매끄러운 설명을 통해 확인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기 보다는, 사람들이 떠받드는 세련된 거짓 모습을 구축하며, 사랑을 구했던 개츠비의 모습과 성공의 끝자락을 붙들기 위해 대학시절부터 취업 스펙을 맞추려는 모습이 겹쳐진다. 『보바리 부인』에서는 권태를 이기지 못한 채, 더 나쁜 선택을 계속해가는 모습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는 선과 악이 빚어내는 틈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이, 『1984』에서는 미국과 한국사회에서 전쟁의 위협이 만들어낸 자발적인 통제와 강압과 위협의 풍경이 보인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더 젊어지려, 동안의 모습, 젊음의 모습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은 성형과  젊음의 욕망과 타인의 시선에 매여있는 현대에 더욱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고전이 퀘퀘먹은 옛날 책이 아닌, 지금 다시 읽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내용이라는 사실과 함께, 찰칵, 찰칵, 저자가 느꼈던 가장 감동받았던 순간들이 책에 가득하다. 줄거리소개와 함께, 저자가 책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세상을 보는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듣다보면, 저자의 글에 소개된 것처럼 새벽 3시 매혹적인 이성의 달콤한 키스처럼, 고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냥 내용만 알고 있고, 아무도 읽지 않기에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 누군가의 따스한 눈빛과 손길을 통해, 다시 한 번 꺼내어 읽고 싶은 현재형의 책으로 변한다. 저자만의 특징인 길고 긴 인용과 릴레이 인용이 마음에 불쾌감을 주지 않는 이에게는 또 다른 책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의 언어로 새롭게 이야기한다고 믿는 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  하루에도 몇 번 씩...
  
 
  하루에도 몇 번 씩, 마음이 변한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변하던 생각이 누군가와 만남을 통해 단단한 생각으로 변한다. 고전은 자신의 마음에 하나의 보석을 새겨넣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예전에도 등장인물들이 고민했고, 지금도 여전히 문제를 지니고 있는 상황들을 고전이라는 장치를 통해, 재체험함으로써, 다음에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미리 얻을 수 있다.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놓쳐가는 마음의 풍경을 그린 작품들도 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건 나와 맞지 않는 책이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한다.
 
  좋은 사회는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다양한 삶을 선택한 사람이 사회의 틀에 구애받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회라 생각한다. 역사가 흘러오면서,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여성의 인권, 장애인의 인권, 소수자의 인권이 백년 전, 이백년 전 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내 머리가 꿈꾸는 세상과 비교하면 아직도 수천 년 뒤쳐진 시대에 사는 느낌이지만, 모두가 함께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머리를 맞댄다면, 급격한 변화로 인한 충격을 얻지 않고서도, 충분히 어제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문제제기로 토론해 볼 가치가 있는 책들이 고전이라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취향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이기에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수많은 고전 중에 저자의 선택을 받은 고전들은 한 번 쯤 읽어볼 만한 이야기거리가 하나 이상은 각각 존재했다. 읽지 않은 고전도 있었다. 저자의 책 소개는 잡히면 빠져나오기 힘든 거미줄과 닮았다. 먼저 말을 걸어준 저자에 이어, 다른 고전들을 내 방식대로 말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자신만의 고전읽기가 끊이지 않는다면, 고전은 영원히 우리 사회에 숨쉴거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 9단
양순자 지음 / 명진출판사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모든 책에는 만남의 때가 있다.
 
 
  책에도 인연의 끈이 있는 것일까. 오래 전에 도서관에서 책을 보았을 땐, 그저 그런 에세이로 느껴져 시큰둥했었다. 최근에 헌책방 나들이에서 만났을 때는 진흙 속에서 연꽃을 만난 기분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관심도가 달라지듯이, 이제는 어르신의 지혜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제시하는 공식은 당신이 팔짱끼고 있어도 모두 다 해결해주는 마술 같은 게 아니야. 당신이 직접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해. 대신 공식을 모를 때보다 훨씬 더 쉽고 간편하게 실타래처럼 꼬인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약속할 수 있어. 나한테 통한 공식이니까 당신한테도 통할 거란 말이지. 당신이나 나나 여린 마음으로 작은 행복을 꿈꾸며 사는 사람들이니까.
 
 
#   가장 힘겨운 삶을 살았던 이가 들려주는 위로.
 
 
  여자 혼자의 몸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1940년생인,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이에게는 편견과 몰이해의 사회적 시선도 이겨내야한다. 유서를 쓰면서 마음에 걸려 있는 짐을 하나씩 지워내고, 이별을 하되, 충분히 숙고하고 이별을 경험했던, 가장 힘겨운 삶을 살았던 이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이기에, 더욱 값지고 빛이 난다.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줄 것 같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따스한 말씀이 가득하다. 거기에 솔직함과 직접 삶의 현장에서 경험한 일화들이 인생공식의 내용을 탄탄하게 지지한다. 봉사를 하면서도 그 사람이 당장 바뀔거라고 기대하지 말라는 말씀은, 30년 이상 사형수와 상담했던 경험이 있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살아가면서 실행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쉽게 잊고, 그렇게 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행동들을 바꾸면 내 인생을 쉽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라웠다.
 
  지혜로워지려 하지 말고, 미련한 짓부터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자는 말, 누군가를 도울 때는 물 한 바가지 퍼주는 심정으로 돕자는 말, '나는 귀한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을 바꿔보자는 이야기 등 귀기울여 들을 내용이 많았다.
 
 
  #  당신의 인생공식은 무엇입니까?
  
  
   힘들고 만만치 않은 인생살이를 조금이나마 살 만하게 해주고 싶어 할머니는 인생공식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불평하고 원망한다고 인생살이는 절대 좋아지지 않는다며, 어떻게 하면 인생이 살 만해질까를 생각하며 노력해보자 이야기한다. 한 번 듣고 버리지 말고, 가까이 두고, 자주 들춰보길 권한다. 65년 인생을 녹여내서 만든 공식이라며, 사는 데 도움이 되면 됐지 해는 절대 안될거라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독자 스스로의 인생 공식을 만들어 보길 권한다. 누구에게나 삶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공식이 있다 생각한다. 누군가는 힘든 상황을 겪을 때, 눈을 찡긋 감으며 지나칠 것이고, 누군가는 마음의 힘을 일으켜 절대 물러서지 않을 테고, 누군가는 주변에 힘을 구해 함께 이겨낼거라 생각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공식을 공유하다보면, 힘들고 팍팍하고 냉정한 세상도 조금은 더 나아질거란 생각을 했다.
 
  힘들 때, 할머니의 인생공식을 잊어버리지 않고, 찾아 읽는 일을 내 삶의 인생공식의 하나로 만들어 두기로 결심했다. 혼자서 모든 걸 다 이겨내기에는 마음이 그리 강하지 않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것을 비워내는 마음과, 다른 사람의 기쁜 일을 즐겁게 축하해주고, 기쁘게 하는 일을 많이 하려는 마음씨를 본받고 싶다. 꿈을 계속 그리다보면 그 꿈에 닮아간다는 말처럼, 본받을 만한 이의 글을 자꾸 읽다보면, 내 마음속에도 그의 기운이 조금은 스며들거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세헤라자드처럼, 하루에 한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마쓰오카 세이고를 처음 알게 된 건, 지의 편집공학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정보화시대가 진행될 수록, 넘쳐나는 자료들을 어떻게 정보와 지식으로 가공할 것인가에 대한 능력이 중요하다. 편집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저자는 사회생활의 시작을 출판사로 시작할정도로 그 분야에 대한 관심도 많고, 정보도 많이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하루에 한 권, 같은 출판사의 책을 연이어 선정하지 않고, 한 작가의 책은 한 권만 선택한다는 센야센사쓰 천야천책 프로젝트에 압도당했다. 이렇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한 번 들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책은 편집자와 저자의 대담으로 이루어졌다. 책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저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세상의 모든 것을 삼켜온 미디어로 정의내린다. 세상에 많은 것들을 책의 범위로 묶어낼 수 있는 '언어'와 '의미'의 교류에 그는 주목했다. 책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매일 옷을 선택해서 입는 것처럼 일상적인 대상으로 생각하는 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기 위해서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수많은 유혹을 이겨내야 겨우 책을 붙잡는 마음과 책의 거장의 마음가짐은 차이가 크다고 할까. 다독을 좋아하지 않지만, 거장이 이야기하는 다독은 뭔가 다를거라는 생각을 했다.
 
 
#  책의 달인이 전해주는, 책 , 이렇게 읽어라.
 
 
   한 편의 음식을 선택하는 것처럼 책을 선택하라는 저자의 메시지가 기억에 남았다. 음식에는 다양한 종류와 다양한 요리법이 존재하고,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의 취향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데, 유독 책에 대해서는 어떤 책을 보는지,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가에 대한 호불호가 강하게 미치는 현상을 주목하게 되었다. 인문이나, 고전, 문학이나, 자기계발 등 다양한 관점에서 책의 장점을 강조하는 책과 뭔가 다르다고 할까. 기존의 책읽기 방법을 소개하는 책과 접근법이 달라 신선했다.
 
 
   저자는 좋은 책,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택하고, 지긋하게 끝까지, 착실히 이해해가면서 읽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가며,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편이 좋다고 책을 읽고 고르는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독서는 저자가 쓴 것을 이해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저자와 독자가 만나 작용하는 협업이라는 점을 강조한 점이 독특했다. 저자의 메시지와 내용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 책에 빠져들게 되었고, 어디에서 책을 읽었는지 등에도 주목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에서 책을 넘어선, 활자와 컨텐츠의 교류를 중요시하는 저자의 생각이 전해졌다. 
 
 
#   책을 읽으며, 어제보다 더 나는 내가 되어간다.
 
 
   책을 읽는 다양한 방법이 제된 점도 좋았지만, E-book 과 컨텐츠가 중요시되는 시대에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책과 출판 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된 점이 좋았다. 서양에서는 북클럽이 발달해 있는데, 일본에서는 발달하지 못하는 사회학적인 이유와 독서에는 좌절과 실망의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사랑하는 마음과 닮아있다는 글이 기억에 남는다. 납치당하고 싶다,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는 느낌으로 책을 바라보는 이는 이미 책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에 매료되었던지, 특정 테마의 이야기에 빠져있든지, 무언가에 빠진 채, 한 발자국씩 자신이 읽는 책의 폭을 넓혀가고, 다시 재목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다 보면,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다채롭게 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의 절반정도는 저자가 책을 읽게 된 계기라던가, 저자의 삶을 알 수 있는 독서 자사전의 부분이 많이 들어있는데, 제목에는 다독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쉽다. 2만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저자가 어떻게 책을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책과의 인연을 지속하게 되었는지 알아가는 과정만으로도 책의 존재의 의미가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하게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일본작가의 책에서 말날 수 있는 책의 특성이다. 다독과 편집의 한길을 걸어온 편집과 다독의 달인에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천야천책 프로젝트를 다른 방법으로 시대해 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마음 먹었을 때, 목표는 시작하는 편이 좋다. 배꽃이 활짝 폈다가 지는 그 때에, 시작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 우리 시대 작가 25인의 가상 인터뷰
장영희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 잊혀져 가는 그들을 불러내다. 기억은 사랑이니까.
 
  
   나흘간 홀로 지냈다. 인터넷도 TV도 없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뉴스와 메여있던 일상들에서 자유롭지 못할까봐 두렵기도 했다. 지내보니, 익숙하지 않는 리듬에 적응되자, 오히려 편해졌다. 문자로 소식을 주고받고, 전화통화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외로운 마음이 많이 따뜻해졌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는 건, 그를 더 기억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인이 된 문학가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문학가들이 나눈 가상의 대화 25편을 읽었다. 말을 건다는 건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사랑이니까.
 
 
  저자들은 문학 작품의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작품을 쓴 작가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편지와 대담 등 대화의 방식도 자유롭다. 만남의 공간도 묘지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다. 문학의 전설들이 왜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라는 기대를 했었다. 두 번, 세 번 읽어보니, '전설'보다 전설에게 말을 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작가'가 바라보는 전설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하게 드러남을 알게 되었다. 가상 대화이기에, 현실의 작가가 모든 글을 채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  '전설'과 현실 작가를 겹쳐보다.
 
 
   거인이 남겨놓은 발자취에서 살아간다고 할까. 지금 글을 쓰는 문학 작가들에 영향을 미친, 소설 속의 등장인물과 작가들이 누군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학의 전설이 남긴 실마리를 붙잡고 동굴속으로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 탐색하는 작가의 모

습이 보였다. 둘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사람은 명이 다하면 세상을 떠나지만, 작가는 작품이 있기에, 그의 흔적들은 작품으로 남아, 그 작품을 읽는 누군가가 다시 글을 이어나가면서 세상에 영원히 지속된다는 생각을 했다. 책이 수명이 끊기지 않고 오래 살아남는 이유를 확인했다.
 
 
  눈에 익은 작가인 장영희 선생님이나 고미숙, 유용주 작가들을 통해서는 가상대화의 대상에 대해 더 알 수 있어 좋았고, 임화, 백석, 카프카 등은 익숙하지 않는 작가들이 거장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작가의 삶에 주목했던 작가도 있었고, 작품의 특성에 의미를 주는 작품도 있었다. 백석시인과 카프카는 두 명의 작가들이 다른 시각으로 가상의 대화를 시도해서, 비교하기도, 나라면 어떤 질문을 던질까 고민하게 만들어서 좋았다. 한 작품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강하게 기억되는 부분이 다른 것처럼, 다양한 시각들이 공존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  진지하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와 가상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가상의 대화를  건다는 건, 독자가 진지하게 작가의 작품과 대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 에 주목할 수도 있고, '작품''에 주목해서 등장인물이나, 작품 자체에 말을 걸 수도 있다. 생존하고 있는 작가는 다음에 어떤 작품으로 이야기를 걸지 기대하는 즐거움이 있고, 전설이 되어 버린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다. 끊임없이 소통하며, 그를 기억하는 일은, 그의 작품을 읽고 생각을 전개하는 일이란 생각을 했다.
 
   말을 걸어보고 싶은 한국 문학의 거정들이 있다. 이청준, 이문구, 최명희 등 잊고 살았던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을 떠올릴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좋았다. 던지는 질문은 늘 우문이지만, 질문을 던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나만의 현답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자연과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좋고, 비와 눈이 많이 내려 밖을 나가지 힘든 시간에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책장에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있는 작가들과 대화를 나눠보기로 결심했다. 귀기울여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다시 맑은 햇살이 다가올거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바깥'에 주목하는 이유.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형, 듣고 있어? 형이 그랬지? 저 혼자 빛나는 별이 없다며. 와서 좀 비춰주라."
 
 
   --- 영화『라디오 스타』 중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엑스트라임을 깨닫는 순간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다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까지, 다들 누군가의 관심을 받기를 원하며 열심히 살지만, 때로는 한 번도 빛을 받지 못하고, 다른 이를 비추기 마련이다.
 
  색이 바래,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왕년의 스타와 매니저와의 우정을 그린 영화 『라디오 스타』를 인상 깊게 보았다. 다른 이는 외면하는, 한물간 스타를 늘 스타로 대접하는 매니저의 모습도 기억에 남지만, '바깥'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다방 레지가 라디오를 통해, 엄마에게 했던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엄마, 비오네. 기억나? 나 집 나올 때도 비 왔는데…. 엄마, 그거 알아? 나 엄마 미워서 집 나온 거 아니거든. 그 때는 내가 엄마 미워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집 나와서 생각해보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 밉고 엄마만 안 밉더라. 그래서 내가 미웠어. 나 내가 너무 미워가지고… 막 살았다…. 나 미쳤나봐…. 엄마, 보고 싶어…."
 
  책을 읽으며 내내, 라디오스타가 생각났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고, 모두 저마다의 슬픔과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스타나 정치인들의 이야기는 TV나 뉴스 등 다양한 매체의 이야기를 통해, 계속 재생산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잊혀져가거나 주목받지 못하는, 주류가 되지 못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품절녀, 완판녀, 연봉, 프로는 돈으로 말합니다 등 인간의 품격보다는 자본의 논리가 우선시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현대사회를 살고 있다. '1등 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유행어가 어색하지 않은 시대, 누군가의 말보다 몸짓, 표정에 이끌리는, 누군가의 말 사이에 담긴 호흡과 침묵의 질감, 차마 말하지 못하거나, 어색하게 마무리 한 다른 층위의 진실을 미쁘게 생각하는 작가의 말에서 그의 품성이 느껴진다.
 
 
#  당신이 미처 보지 못한, 26가지 이야기.
 
 
  주류의 시선에 벗어난 자리에서, 여전히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26가지 이야기가 책에 담겨있다. 대상은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이제 더 이상 경마장에서 뛰지 못하는 퇴역마, 이메일과 다양한 수단에 의해 잊혀져가는 우표와 절판되는 책과 막걸리 등 동물과 사물까지,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폭은 넓고 깊다.
 
  인터뷰를 읽으며,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돈이라는 가치로 따지면, 쉽게 하지 못할 일들이 바깥이라는 공간에서는 기적처럼 지금 숨 쉬는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적자의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허리우드 극장이 좀 더 오래 버텨주기를, 마을영화를 만들며 다니는 떠돌이 영화감독 신지승씨의 발걸음이 지속되기를, 캄차카반도로 불곰을 찍으러 떠나는 최기순 다큐감독의 영상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를 두 손을 모아 기원했다.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은, 26개의 공간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스쳐가며 쉽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각자 살아가며 간직한 뜨거운 철학이 작가의 따스한 필체에 스며들어 포근하게 전해진다. 풍족하게 인생을 즐기며 사는 이들은 없었지만, 각자 독특한 무늬를 새기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살아가며 놓쳐가는 많은 부분들을 다시 고민하게 했다.
 
 
  "우리 말 믿거나 말거나야. 나쁜 소리 하면 좀 조심하고, 좋은 소리 하면 정성 쓰면서 힘내서 더 열심히 살고. 그럼 되는 거지. 너무 미치지도 말고, 헐뜯지도 말란 말이야." - 무교 천하대신 할머니
 
   "자비나 박애랑 달리 유교의 사랑은 '친친애인 親親愛人'이거든.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고 그 사랑을 남에게 넓혀가자는 거지. 그게 현실적이고 솔직한 거 아닌가? 어떻게 내 혈육이랑 남을 똑같이 사랑해? 먼저 내 혈육을 사랑하고 그 간절한 마음을 이웃으로 넓히니까 더 큰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지." - 유교 최근덕 성균관장
 
 
  유교에 의해 많이 핍박받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무교와 일제시대를 거쳐, 서양학문의 유입과 함께 서서히 저물어가는 유교를 보면, 주류와 바깥은 언제나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사람들의 의식변화에 의해, 자리를 옮겨가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마음이 속상하거나, 소외당한 느낌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읽으면 힘이 나는 인터뷰집이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잊히고 사그라지는 사물과 대상들이 '괜찮다' 고 응원을 한다. 더듬더듬 질문을 하고, 깊게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을 작가와 인터뷰 대상과의 소통의 과정을 가슴 속 도화지에 그려본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남보다 주목받지 않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지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외침이 가슴에 스며든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한 때 열렬히 애용했지만, 눈에 띄지 않는, 바깥으로 밀려난 물건들이 이제는 눈에 보인다. 하나 씩 바라보며, 예전에 뜨겁게 불타올랐던 열정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지금 중심을 열망하지 않는 사람들과 '바깥'을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책이다. 아니, 중심을 열망하고, 사랑받고,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이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바깥이 있기에, 중심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그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