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 다산책방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늘 그렇듯이...
 
 
  소중한 사람은 늘 그렇듯이, 떠난 후에야 그 빈자를 느끼게 된다. 정치가를 욕하고, 정책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너무나 크게 누렸기 때문이었을까. 새로운 정부가 바뀐 이후, 누군가에 어떤 언급을 하는 자체에 법률적으로, 심리적으로 위축됨을 느끼는 현재에 살고있다. 이렇게 막무가내일 줄은 몰랐기에, '언론의 자유'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해, 소통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전라도'인이였기에, DJ에 좀더 냉정했던 고종석씨의 DJ에 관한 글을 시사인에서 읽었다. 적어도 다른 대통령들에 견주어 준비된 대통령, 유신잔재세력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던 힘이 없던 대통령, 자식들에 관대해서 오점을 남겼던 대통령이었다는 말에 공감했다. 솔직히 5월 학살의 주범들이 사과의 말조차 꺼내지 않는 시기에, 화해와 용서를 외쳤던 그의 선택은, 많이 서운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남아있기도 하다. 전라도인이기에 더욱 그의 사소한 잘못에도 마음이 아팠던, 자기검열에도 심했던 점도 많았다.
 
  떠나기 전에는 큰 거목이었던 그의 그늘에 기대 쉬는 점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고마움을 몰랐었는데, 이제 나무가 떠나버린 후, 쨍쨍 내리찌는 햇살과 뜨거운 바람과 마주하고나니, 그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는 흠결 없는 완벽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질 줄 알았고, 평화와 인권을 위해, 말로만 외치지 않고, 늘 선두에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호소하고 애원했다. 그가 떠나버린 후, 그의 외침에 더 귀기울이지 못했던 점은, 살아가며 늘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정치인 DJ가 아닌, 저술가로서의 DJ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의 '김대중_옥중서신'을 읽고 싶었지만, 서점에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 가장 최근에 그가 저술한 글 중, 역자가 좋았던 글을 가려뽑아 엮은 책을 발견했다. 글은 그 사람을 드러낸다. 빨갱이와 대통령병환자 등 다양한 이미지에 가려 보지 못했던 그의 흔적을 글을 통해 만나고 싶었다.
 
 
# 정치인 DJ가 아닌, 독서인, 인간 DJ를 알고 픈 이에게 어울리는 책.
 
 
  정치가로서의 생애를 다룬 김대중 자서전보다 이 책을 먼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색을 떠나, 무엇이 되기보다, 어떻게 살기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DJ의 모습이 글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진다. 수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늘 비판의 눈을 잃지 않고, 정독하면서도 사색하는 일을 꼭 함께 했던 DJ, 보통사람이 견디지 힘든 고난을 여러번 겪었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비결이 그의 메모속에 생생하게 드러난다. 겁 많고, 두려움이 많았지만,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용기에 대한 생각에 공감이 갔다.
 
  국민은 잘못 오판하기도 하고, 흑색선전에 현혹되기도 하며, 엉뚱한 오해를 하기도 하고, 집단 심리에 이끌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국민 이외의 믿을 대상이 없다며, 국민과 손을 잡고 반 발짝만 앞에 서서 이끌어야 한다고 외쳤던 DJ, 혁명보다 개혁을 좋아했던 DJ, 화려한 건축물 뒤에 숨은 이름 없는 석수, 화공, 목수 등의 백성의 무리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던 DJ, 무엇보다 이상에 빠져있지 않고, 늘 현실속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 노력했던 그의 모습은 진흙탕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꽃을이 생각난다.
  
 
# 말과 행동이 일치한 이를 만나 행복했던 시간들.
 
 
  DJ니까, 당연히 민주주의를 위해, 평화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떠난 이후, 그만한 정치인이 없다는 현실이 힘겹다. 솔직히, 정치는 이제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 어차피 서민에게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도둑놈이라는 말이 공감이 간다. 하지만, 먼저 떠나버린 두 전직 대통령이 공통으로 외쳤던 민주주의를 지키는 이는 현명한 시민들이라는 말에, 이제 비어있는 자리는 시민들이 서로 지혜를 모아 속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기에 더욱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과 어떤 세상을 꿈꿔야 하는지 많이 논의해야 함을 느낀다.
 
  DJ에 대해 많은 이들이 글을 남겼지만, 서두에 언급했던 고종석씨의 칼럼의 마지막 글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모래위에 성을 쌓듯, 쉽게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인권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많이 헌신했던 그의 삶을 철학이 담긴 글귀를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이제, 기쁨도 슬픔도 없는 그곳에서 편히 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그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1987년에도, 아니 투표권이 없었던 1971년에도 이미 나는 그의 지지자였음을. 그리고 나는 또 안다. 1998년 2월 말부터 다섯 해 동안, 자신이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그가 있었음을. 지난 쉰 해 동안 그와 동시대인이었던 것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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