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와 관련된 책의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 딱딱하고, 지루하고, 의무감과 사명감, 재미와는 전혀 친구가 될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himjin님의 추천에 의해 책을 꺼내들었지만, 에휴... 생태책은 지루해..지루해...라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책을 펼치기 전까지, 그랬다.
11p. 내가 이러한 글을 쓰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1985년, 나와 마크 카워다인은 우연한 기회에 한 잡지사의 부탁을 받고 이제는 거의 멸종한 여우원숭이의 일종인 마다카스카르손가락 원숭이(aye-aye)를 찾기 위해 마다가스카르로 갔다. 우리 셋은 누구도 예전에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나는 마크를 만난 적이 없고, 마크도 나를 만난 적이 없으며 마다가스카르손가락 원숭이를 본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예상과 다른 일정과 현지와의 다른 소통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에 빠져, 절반을 쉴 틈없이 읽었다. 열심히 책을 읽다보니, 사회과학 방법론 카페에 글 올리는 것도 소홀해지고, 생태소모임에 매일 글 올리는 일도, himjin님이 쉴때 같이 빠지면서, 책을 읽는 재미에 흠뻑 빠지고 있다. 아.. 내가 사람들 만나는 기쁨에 젖어있다가, 시, 공간을 초월하는 독서의 매력을 잠시 잃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당분간 흠뻑 책에 빠져 지낼 것 같다. 생태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21p. 나는 일이 참 재미있게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오는 바람에 여우원숭이의 피난처가 된 곳이다. 그런데 이제는 노지 망가베 섬이 마다가스카르 섬 해안에서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새로운 피난처가 되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나 같은 원숭이들이 노지 망가베 섬에 들어와 마침내 여우원숭이가 멸종할 것 같다고 한탄하며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마크가 말했다.
"차이점은 원숭이가 없는 최초의 피난지는 우연히 만들어진 데 반해 두 번째 피난지는 원숭이들이 만들어준 거라는 것이죠."
"내 생각에는 인류가 지능이 발달하면서 강한 힘을 얻게 된 것 못지 않게 그 힘을 사용해서 생기는 결과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지능은 주변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죠."
내 말이 어줍잖게 자기 종족을 대변하는 듯 들렸는지 곧바로 마크가 대꾸했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어느 정도까지는요. 현재 마다가스카르에는 21종의 여우원숭이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마다가스카르손가락원숭이는 제일 적어요. 마다가스카르 손가락 원숭이가 멸종할 확률이 가장 크다는 말도 되죠. 한때 여우원숭이는 40종이 넘었는데 벌써 거의 반수가 멸종해버렸죠. 여우원숭이뿐만이 아니에요. 사실상 마다가스카르의 다우림 지역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지구상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 이제는 대다수가 멸종해버리고 10퍼센트 정도만 남아 있어요. 그런데 아프리카 본토에 가본 적이 있나요?"
"아니오."
"하나씩 차례로 멸종해가고 있어요. 대부분 덩치 큰 동물들이죠. 북부흰코뿔소는 스무 마리도 채 안 남았어요. 자이르에 살고 있죠. 그곳에서는 현재 흰코뿔소를 놓고 밀렵꾼과 감시원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마운틴고릴라 역시 마찬가지예요. 마운틴고릴라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 가운데 하나지만 20세기 들어 우리 손으로 거의 다 죽여버렸죠. 지구상의 다른 지방도 예외가 아니에요. 혹시 카카포가 뭔지 알아요?"
.......
"잠깐만요. 잠깐만."
나는 오두막으로 들어가 원숭이가 이룩한 가장 멋진 업적 가운데 하나를 찾기 위해 개미떼 사이를 뒤적였다. 그것은 작대기를 짓이겨 걸쭉하게 만든 뒤 넓고 얇게 편 다음 한때 암소몸에 붙어 있던 무엇인가로 한데 묶어놓은 것이었다. 나는 다이어리를 가지고 나와서 페이지를 휙휙 넘겼다. 등뒤 나무 위로 목도리여우원숭이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사이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계단에 다시 앉으며 내가 말했다.
"준비 됐어요. 당장 써야 할 소설이 몇 권 있지만, 에...... 1988년에 시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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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들은 옵저버의 부탁으로 시작한 일을 확장해서, 멸종 동물 탐사를 떠나게 된다.
읽다보면, 멜버른에 지구상의 그 누구보다도 독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스투루안 서더런드 박사의 상식을 깨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69p를 보면, 희귀한 동물을 보호하는 일이 왜 어려운지.. 알게 된다.
무엇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5권으로 나뉜 책의 합본이 책장에 꽂혀 있고, 전혀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읽어보고 싶어졌다. 거기에 몇 년 전 읽을 기회가 있었던 에덤스의 소설을 읽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아, 인생은 타이밍... 그 때를 놓치면 결국 후회하게 된다.
그렇게, 애덤스씨의 이야기를 읽다, 다음 책인, 카렐 차페크씨의 책으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