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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다
지셴린 지음, 허유영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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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견뎌낸 95세의 노학자가 담담하게 들려주는 에세이.
 
 
  90이 넘었던 지식인을 알지 못한다. 저자가 내가 알고있는 지식인의 인물망 중에서는 최고령의 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지식인이 큰 고초를 겪었던 문화대혁명이라는 시기에, 저자는 격리조치와도 같은 '우붕'에서 삶을 견뎌내야만 했다. 감옥에서 비난받는 생을 사는 것과 차이가 없어보이는 굴욕의 순간을 저자는 방대한 양의 인도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의 번역으로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높은 단계로 승화시킨다. 긴 세월을 장수로 지내올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일까. 삶에 대한 마음 가짐이 남달랐기 때문이라 짐작해 보았다.
 
  남아있는 생이 살아온 생보다 많지 않은 저자는 인생에대한 정답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태어나는 것도, 죽는 일도 자기 뜻대로 결정하기 힘든 수동적인 삶, 어리둘정한 삶을 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야기 한다. 담담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에 대한 작은 편린들을 들려준다. 길지 않지만, 글 하나하나에 경험을 바탕으로 한 깊은 사색의 힘이 담겨있다. 젠체하지 않은 채, 거만하지도 자신을 낮추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들려주는 그의 글은 귀 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다.
 
 
#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다시는 혼자서만 깊이 생각하지 마라.
 
 
  안분지족이라 할까. 저자의 글에는 동양적 삶의 깨달음이 잘 우러나와있다. 다른 사람과 사회의 추세에 마음이 끌려가지 않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은 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생에 대한 자신의 자세를 생각하는 깊이있는 삶에 대한 철학이 글 속에 자연스럽게 담겨있다.   노학자의 글이라 고루하고, 시대의 흐름보다는 자신이 살았던 생의 시대를 많이 보여줄거라 생각했는데, 변화하는 세대의 차, 고령화 시대 등에 생각하는 관점은 젊은이들의 철없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자유로웠다. 나이가 먹을수록 지혜가 깊어간다는 말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좋은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흔을 넘어선 고령의 나이를 '늙은 시계'라 칭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허름하고 낡아보이지만, 시계의 역할은 다 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할까. 나이 들어감을 전략상으로 인정하지 않되, 전술상으로 늙었음을 인정하라는 묘한 지혜가 담겨있는 경구들은 되짚어 읽을 가치가 있다 생각한다. 어르신들보다 나이가 많지 않기에, 고령의 삶에 대한 경구에 몸으로 바로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로는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씩 몸의 기관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한탄하지 않고, 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볼 수 있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지는 마음,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치우치지 않는 마음 자세가 장수와 장시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생을 살아가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을 초조해 할 시간에, 짧은 시간을 쪼개어 도리에 맞게, 다시 말해 자신의 삶의 발걸음에 맞게 뚜벅뚜벅 걸어감이 좋다고 할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발걸음을 할 수 있는지 잘 헤아려 보는 일이라 생각한다. 재능과 기회는 하늘과 운으로 다가오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근면함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고, 정진하는 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일,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일임을 잘 알려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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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를 만나다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지음, 문지혁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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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의식을 가지고 처음 만났던 미술가, 렘브란트.

  
   사실 난 미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기도 했고,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것이 결합되어, 그냥 미술이 싫어졌다. 어렸을 때 싫었던 것들은, 어른이 되어서 잘 친해지지 않는다. 그랬던 내가 처음 미술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영미 시인이 쓴 <시대의 우울>을 통해서였다. 그림을 통해, 그림의 매력에 빠진게 아니라, 작가가 이야기 한 렘브란트를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는 그 이야기,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이 남긴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대한 글귀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렘브란트를 알게 되고, 고흐를 만나고,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에도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색이 아니라 멋진 수동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명품사진을 보는 느낌이다. 그 누구보다 빛을 잘 다룰 줄 알았던 달인이라고 할까. 똑같은 주제를 담은 동시대의 다른 화가의 작품을 보면서, 빛을 표현하는 색감의 차이만으로, 그림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빛과 어둠의 차이만큼 굴곡지었던 그의 인생까지까지 알게 되면 한 편의 인생의 격정을 겪어낸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그의 작품들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어진다.

  <렘브란트를 만나다>라는 제목에서, 렘브란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평론은 아닐까 기대하고 책을 선택했다. 제목에 끌렸다고 할까. 첫 장을 넘기고, 한 편의 글과 한 편의 시를 보면서, 이전에 만난 <고흐를 만나다>가 떠올랐다. 첫 기대와는 달랐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렘브란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마음으로 찬찬히 글들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때론 그림을 오래 쳐다보기도 하고, 되뇌이듯 그녀의 시를 반복해서 읽어보면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그녀와 함께 같은 시간 바라보았다. 내가 느끼지 못한 많은 부분들을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하나의 그림, 하나의 글, 그리고 한 편의 시.

 
  <고흐를 만나다>의 구성과 동일하다. 한 편의 그림에, 하나의 단상이 나오고, 저자가 본 그림에 대한 짧은 글이 드러나고, 마지막으로 한 편의 시가 등장한다. 짧은 글은 여행을 테마로, 작품에 대한 짧은 생각이 드러나고, 한 편의 글에는 그림에 대한 세세한 부분들이 저자의 느낌에 의해 글로 드러난다. 시는 저자의 생각을 시의 형식으로 담아냈다. 시를 짓는 건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일까. 그녀의 시보다는 글에 더욱 마음이 끌렸다. 그림이 만들어지는 장면 전과 장면 후의 느낌이 저자의 글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할까. 맥엔타이어, 그녀가 본 렘브란트 그림에 대한 느낌이 어떠한지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림을 보고 시만 읽었을 때보다, 글을 읽고 난 후, 시를 접하니 좀 더 대하기가 편했다.

  청년 시절과 우스꽝스런 표정의 자화상, 노년의 자화상, 돌아온 탕자, 야경 등은 워낙 알려진 작품들이라,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었지만, 성경에 관련된 그림들은 많이 낯선 느낌이었다. 서양 문화에 대한 이해와 종교를 알고 있다면, 좀 더 렘브란트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외한이 바로 접하는 것보다, 어느정도 렘브란트에 대해 책과 이야기로 만난 이가 보가 더 좋을거라 생각한다. 

 

  렘브란트는 노골적인 색감이 아니라, 빛을 통해 말하는, 그림으로 '은유'를 표현하는 시인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에는 진실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들어왔다. 그러나 왜곡되지 않은 아름다움. 모든 것을 잃은 자의 정직한 슬픔과 주름.     


  베르메르의 빛이 여성적이라면, 렘브란트의 빛은 남성적이다. 베르메르의 빛이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감미로운 시선이라면, 렘브란트의 빛은 삶의 깊이를 아는 사람의 초월적인 시선이다. 베르메르의 빛이 화사로움과 따사로움이 내재된 고요함이라면 렘브란트의 빛은 암울함과 경건함이 감도는 따사로움과 적막감의 공존이다.  


  렘브란트에 대한 짧은 평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더 깊이 렘브란트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고 할까. 햇살이 비치는 아침 햇살에, 그리고 석양이 지는 햇무리가 살짝 남아있는 여운에 그의 그림과 작가의 글을 읽을 계획이다. 자연의 풍광과 그림의 묘한 매력, 저자의 글을 보다보면 내 마음의 예술의 심미안의 씨앗이 뿌려질거라 생각한다. 그 작은 씨앗의 기회를 안겨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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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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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의 마지막 순간, 당신의 마음 속에 남은 추억은 무엇인가요? 

  
  
  1968년 이른 봄철, 숙명여대 교수였던 저자는 서울대학교 문학회의 초청을 받고, 서오릉으로 한나절의 답청놀이를 가던 중, 시골풍경과 소달구지의 바퀴자국을 닮은 여섯명의 아이들이 봄나들이에 나온 모습을 목격한다. "이 길이 서오릉 가는 길이 틀림없지?"라는 첫 마디로 시작되는 그들의 대화, 그리고 씨름과 한나절의 즐거운 추억을 남긴 채,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는 이야기를 전해듣지만 저자는 잊어버리고 만다. 15일 후, 문화동의 산기슭에서 사는 세 친구의 안부를 묻고 모임 이름을 지어줄 것을 요청하며  사진을 받았으면 한다는 편지를 받는 순간, 반성의 마음을 갖게 된 저자는 "이번 주 토요일 오후 6시, 장충체육관에서 만나자"는 엽서를 보내고,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 저자와 여섯친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그냥 만나는 것이 좋았던 그들의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스스로 번 10원과 저자의 40원을 보태 한 달의 백원을 저축하는 모임이 되었고, 모임 때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되었다. 여름에는 마라톤을 준비하고, 동네 주변을 쓸고, 동네 계단의 얼어있거나 젖어있던 부분을 걸어다니게 편하게 만든 그들의 봉사활동의 모습과 너무나 가난해서 중학교에 갈 형편이 어려웠던 그들이 고난과 그것을 지켜보는 저자의 마음, 담낭절제수술로 수도국군병원에 입원했을 때 소풍때도 가져오지 못한 삶은 달걀을 싸왔지만, 결국 돌아가야만 했던 그들의 마음들이, 저자의 추억으로 갈무리 되어 하나의 풍경으로 그려진다.

  몸이 완쾌되어 백운대로 소풍을 가게 된 그들을 위해 육군사관학교 경제학부 교수이자 이화여대에 출강중이였던 저자는 육군사관생도와 이화여대 '청맥회' 학생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소풍을 떠난다. 1968년 7월, 군사정부에 의해 구속되기까지 이어졌던 그들의 만남은 사형을 언도받은 저자로 인해 한 순간의 추억으로 갈무리 되고 만다. 정치적 권력을 위해 개인을 빨갱이로 몰아부쳤던 검찰과 정보부는 '청구회'라는 모임을 심문하고 그들이 불렀던 노래의 '주먹쥐고'라는 부분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폭력을 준비하는 단어가 아니냐며 저자를 몰아부친다. 군사재판에서 1심을 언도받고 사형을 선고받은 저자는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이루지 못한 약속, 아쉬운 순간들을 떠올리다, 청구회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 옥중에서 쓴 추억의 편지. 추억으로 되살아나는 그때의 풍경들.

  

  하루에 두 장, 화장지 대용으로 나눠 준 재생종이 두 장에 쓴 청구회의 추억은, 다른 저자의 메모와 함께 공책처럼 묶여 있다가 대법원 판결에서 사형이 파기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면서 근무하는 헌병에게 전해진다. 헌병에게 집으로 보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여의치 않으면 없애도 괜찮다는 말로, 당부하며 적은 글은 오랜세월 잊혀지다가 1988년 출소즈음 집을 이사했을 때 아버지의 방에서 발견되어 1993년 영인본에 실리게 된다. 잊혀질 수도 있을 추억들이, 따스한 우연의 힘에 의해 다시 세상에 빛을 보는 순간이라고 할까. 출소 3년 후, 저자의 미술선생님이던 김영덕님의 <전장의 아이들>이란 사진을 보고 청구회의 추억을 다시 떠올린 저자는 청구회 멤버들을 수소문하고, 일부 학생을 만나기도 한다. 변해버린 시간동안 쌓여있던 그들의 삶의 무게만큼 다양한 삶들을 그들은 살고 있었고, 다시 한 편의 추억의 장면으로 남겨져 버린다.

  저자의 아름다웠던 생의 한 순간의 풍경들을 지켜보다보면,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풍경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저자의 글 사이사이의 그림들은 풍경을 떠올리는 일을 도와준다. 초등학교 때 동물원에 가서, 소풍을 갔던 추억들, 그때는 디지털 카메라가 도입되지 않아 사진기 하나 사는데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던 때였다. 저자의 추억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추억이라, 그때의 실상을 떠올릴 수 없지만, 살다보면 잊어버리고 마는 추억의 순간들을 떠올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가난하지만, 서로 인정이 넘치였던 옛날은 낯선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일도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낯선 이와 대화하는 일은 서로에게 경계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저자의 추억이 현재에 되살아날 수 없는 건, 그만큼 우리의 삶도 많은 부분 변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기술이 고도화로 발달된 만큼,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도 발달되었다고 말하기 힘들다.

  12월, 한 해를 돌아보기 좋은 시기이다. 한 해만 돌아보지 말고, 조금 더 시간의 폭을 넓혀 어린 시절의 잊어가는 추억들도 생각하는 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추억을 되살림으로써, 지금의 삶이 나아지는데 실질적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지만, 떠올리고 싶은 추억들은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자주 연락하지 않지만,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지인과 어제는 오랜 통화를 했다.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에 오랜 시간의 머뭇거림은 사라지고, 바로 옆에서 소곤소곤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가늘고 긴 추억도, 청구회의 추억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좋은 인연을 맺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통화를 마치고 나니, 청구회의 추억에서 추억이란 단어가 더 크고 마음에 가까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기에는, 바쁘고 고되고, 삶의 여유가 없는 팍팍한 세상이다. 그럴수록 추억이 필요하다. 바로 당신을 위해.

 

P.S  영역본도 함께 덧붙여져 있다. 영역본을 보면 저자의 문체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학생들에게는 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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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서평을 보내주세요.
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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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많은 선택의 연속인 인생. 그 결과의 누적분이 바로 나.

 
  도서관에서 한겨레 21의 목차를 보다, 1년 전 번역강좌를 들었던 교수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인터뷰를 읽고, 오랜만에 안부와 함께 교수님께 메일을 쓰고, 그 분의 답장을 받았다. 안부 인사를 쓰면서, 불확실한 내 인생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긴 시간 내가 이루기 힘들다 생각했던 일들이, 그분 역시 일상의 우연속에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의 꾸준함 속에서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편지를 쓰면서, 내년 1월까지 해야 할 일을 결심했다. 내가 한겨레 21을 보지 않았더라면, 인터뷰를 읽지 않았더라면, 메일을 쓰지 않았더라면, 답장을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등등 세심하게 신경써서 돌아보지 않는 이상, 인생의 많은 선택들은 습관과 그때의 기분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인생이고, 그 수많은 틈새의 우연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려 애쓴다. 순간 우연과 가끔 찾아오는 축복에서 느껴지는 '기쁨'이 아닌, 오랜동안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지속적인 기쁨을 의미하는 행복을 꿈꾼다. 삶은 늘 불확실하다. 구름이 모이면, 비가 내리고, 겨울이 되면 눈이 내릴거라고 짐작하지만, 당장 내리는 소나기에 허둥되는 포즈, 그 포즈가 인생의 한 단면이라 생각한다.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알아야 하고, 내가 누군지 알려면, '마음속의 나'와 '내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나'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손가락받을 수 있는 습성, 못난 마음, 보잘것 없는 부분까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정하게 되는 일이라는 걸 저자의 답변을 통해 배웠다.   

  94개의 질의문답과 20개의 칼럼에서 작가의 인생에 대한 관점이 담겨있다. 부모에게 의지하고, 사랑에 어쩔줄 몰라하며, 회사와 직장, 친구 등 삶의 관계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에게 찾아오는 질문들에 저자는 친절하고 상냥한 답변이 아닌, 거칠지만 날카로운 답변으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 인생은 길지 않다. 짧은 인생, 삶의 주인은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저녁 뉴스에 2007년 신생아의 기대수명이 80에 가깝다는 보도를 들었다.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은 20살이 되고 난 후 60년은 충분히 살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태어나면서 시작되는 노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가기 시작한다. 어려서는 부모가 원하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고, 연애를 하면서는 연인의 눈치를 보고, 결혼을 하고나서는 가족들에게 눈치보면서 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는 애정섞인 간섭들이 도가 지나치게 되면, 아이는 어른이 될 나이에서도, 자신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우물쭈물, 시간에게 그 결정권을 넘겨버리고 만다. 도덕과 엄숙, 권위와 정반대인 품위 없지만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비장하지 않은 근대적 자아에 가까운 양아치가 되자고 주장한다. 

  백여 개가 넘는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먼저 자신의 경향성,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부분은 부족한지, 객관적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못난 자신도 받아들이게 되는 객관화 하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면, 삶에서 예기치 못하게 다가오는 선택의 순간에서도,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자신이 더 잘 견딜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선택을 했으면, 그 선택을 했을 때의 위험, 리스크 까지 받아들여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부모의 기대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허비하는 일이야 말로, 허망한 일이 없다는 말, 규범과 윤리에 얽매이기 보다, 자존감을 가진, 어른이 되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생활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인생을 살 것을 권유한다. 국가가, 지역사회가 보호해주지 못하고 가정이 마지노선이 되어버려, 서로 끈끈하다못해 간섭을 당연하게 여기는 관계에 매이다 보면, 관계의 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결국 내가 선택해서, 그 결과까지 내가 떠안는 일, 가족과 지인들이 조언은 해 줄 수 있지만, 그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바꿔 말하면, 가족과 애인, 타인의 기대 등에 빠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도전하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본 느낌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어, 삶의 불확실성은 '그분'이나 '절대적 존재'에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이 책은 필요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선택을 어떤 존재가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선택하고 그 나쁜 결과까지 감당하겠다는 자기결정권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성에 대한 보수적인 생각이 강해, '혼전순결'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거나, 도덕적이고, 의지하면서 사는 관계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불편한 내용이 많을거라 생각한다. 하나의 질문만 읽어도 저자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기에 각 장별로 한 두 개 질문을 살펴보고, 마음에 든다면, 그때 구입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힘든 경제상황에 놓여있지만, 돈을 벌어야 한다며, 추궁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결국 내 인생은 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부모님은 인내와 사랑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셨다는 걸 책을 통해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보다, 건강하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고, '스스로 선택' 할 수 있게 지켜서 감사드린다. 삶은 비정규직이고, 불안하기에 안정된 직장과 삶이 더 절실해지지만, 결국 인생은 비정규직이라는 점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목표에 구체적으로 도달할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해 봐야 겠다. 하면 된다. 아니면 말고! 이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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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불완전한 삶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견디어 가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재치있는 말과 논리적인 토대, 일러스트의 재미난 그림이 책을 더 부각시킨다.

  평범한 질문에 평범하지 않는 답변, 그 속에 숨겨진 예리함.

•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옵션)

    천개의 공감.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여친과 부모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내.

   앞도 보이지 않고,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채 일상을 사는 사람들.

   그냥 하루하루 아무 생각없이 사는 아이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자식이 부모에게 갖춰야 할 건, 효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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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 그의 글을 읽게 된 특별한 계기.


  작가의 작품은 초창기부터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는 일은 썩 내키지 않았다. 그의 책을 지인에게 선물하고, 적지 않은 책을 읽기도 했지만, 그의 책을 읽고 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무언가 사람들의 유명세에 끌려서 책을 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좀처럼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의 글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그의 강연을 듣고 난 뒤였다. 대학에 다니던 때 글쓰기 과목의 강좌가 있었고, 학기말에 시상식을 하는데 김훈 작가가 강연자로 초대되었다.

  순박한 소처럼 큰 눈을 가진, 느릿느릿 어눌한 말씨를 가지고 있는 작가는, 글에서 보이는 단정적이고, 차가운 분위기와는 다른, 순박하고 유머넘치는 강연을 하였다. 보고서를 쓸 때,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을 말하는 것과 의견을 말하는 것을 구분해서 말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비결과 칼의 노래의 첫 문장에서 조사를 고쳐가면서, 한국어로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조사를 잘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대학에서 보낸 시절보다 거리에서, 시장에서 공부를 했다며, 글에 재능을 보이는 아들이 자퇴하려고 하는데, 하는게 좋을지 말아야 할지 묻는 부모의 질문에, 자신은 50이 넘어서 따로 공부하지 않고도 책을 냈다며, 그때 책을 내어도 늦지 않다고 이야기하였던 말도 떠오른다. 형용사와 부사, 수사를 쓰지않고, 주어와 동사, 목적어로 더 많은 감정의 표현을 전달해내는 작가의 글에 자기만의 깊은 철학이 담겨있음을 알게 된 후 그의 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한 번 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이게 마련이다. 자전거 여행에 소개된 곳을 따라 여행을 하며, 내 나름의 감회를 적어볼까 하던 차에, 그의 새로운 에세이가 출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고흐 그림가 본문과 표지에 실려있고,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변했던 강연이 글로 적어져 채워져 있었다. 이번에 글을 남기면, 다음 작품도 읽고 글을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완전한 언어로 불안전한 세계에 사는 불안전한 인간에 대해 쓰는 작가의 글에, 서툰 감상으로 글을 채워본다.
 

# 수식어 없는 글들을 읽으며, 마음에 슬픔이 전해져 온다.
  

  수식어 없는 글들은 딱딱하다. 마음에 와 닿기 보다, 머리가 먼저 반응해서, 옳고 그름에 먼저 반응한다고 생각했다. 수식어 하나 없는 그의 글을 읽는 동안, 해지고 어둠이 온 세상을 덮은 강 하구에 앉아 닿을 수 없는 사랑을 생각하는 한 사내가 마음의 스케치북에 그려졌다. 손목에 보이는 푸른 정맥, 동물원의 동물들의 이름, 시선 등의 소소한 소재들이 적힌 메모장을 뒤적이며, 사랑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글에는 수식어가 하나도 없지만, 아련하고 애석한 마음이 흐르는 강물처럼 마음으로 전해져온다. 아름다운 불꽃과 총천연색의 화려한 빛깔로 눈을 현혹하지 않더라도, 단색으로 그린 투박한 그림 하나에, 몸과 마음이 반응한다고 할까. 그림으로 따지면, 수채화보다 수묵화에 닿아있는 느낌이다.

  아버지와의 추억, 어머니와의 추억, 소방관 이야기, 칠장사, 시집과 화가에 대한 평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에세이집의 틀 안에 담겨있다. 작가의 다양한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마음속의 의문들을 풀어낼 수 있다고 할까. 시집을 보면 좋다 나쁘다의 틀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생생한 체험들과 꼼꼼한 조사가 잘 조합되어 편안하게 읽기는 어렵지만, 깊이있는 글의 맛을 느끼게 한다. 나이 많이 먹은 장인의 꼬장꼬장한 성품이 담긴 물건을 사서 사용하는 느낌이다.

  그와 동시대의 삶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의 고충과 고난을 알기 힘들다. 슬픔과 고난과 괴로움의 늪 속에서 작은 희망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임꺽정과 산적들이 의형제를 맺었던 칠장사를 다녀와 남긴,  <칠장사 기행>을 보면 이념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이가 아닌, 거부로서 삶을 살았던 임꺽정과 그의 삶에 대해 호의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완성되지 못한 민중들이 빚어내는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보인다고 할까. '정의' 에 뜻을 두기 보다는, 한평생 일상의 영원성을 지켜가고 싶었던 그의 로망이 있었기에, 그들에 대한 시선이 차갑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이념, 보이지 않는 이상에 대한 환멸이 강한 사내가 작품속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모습일거라 생각했다.


# 화려한 부록이 인상적인 책.

  
  말과 사물이란 이름이 붙은 3장은 <회상>과 <말과 사물>은 저자의 강연을 기초로 저자가 다시 글로 적은 에세이이다. 저자의 삶에 대한 생각과, 조국을 바라보는 모습, 인생관 등을 잘 느낄 수 있다. 옹기장이 노인이 어떻게 옹기장이가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나의 옹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기만의 철학과 고행등을 전해 듣는 것처럼, 그의 눌변의 이야기가 냉철하고 수식없는 글로 정돈되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3장부터 부록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강연을 듣는 일은 쉬운 기회가 아니다. 내가 들었던 강연의 내용은 둘로 나뉘어 회상과 말과 사물에 나누어 소개되어 있었지만, 저자가 말했던 조사의 사용과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서 말하는 일만 잘해도 글쓰기의 절반은 잘 하는것이라 생각한다. 그 다음은 호기심을 키우고,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쉼 없이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동어반복을 피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삶의 현물성이 것들에 대한 묘사와 표현으로 다음 작품에 소개될 것 같다. 이제까지 저자가 바라봤던 삶의 현상들과 이제 바뀌어 표현하려는 그의 의지를 볼 수 있었기에,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설레임을 안겨준 책과의 만남이었다.

  책을 고를 때 사람들은 여러가지 기준으로 책을 결정한다. 30페이지를 읽어 볼 시간이 없을 때, 목차와 저자의 말을 보고 그 책을 읽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내가 읽었던 책 중 가장 저자의 말이 인상깊었던 저자 중의 한 명이었기에, 그의 저자의 글만 모아서 정리하고 싶었는데, <바다의 기별>에서 그런 수고를 덜어주었다. 오치균의 그림이 부록으로 소개되어 있는 것 또한, 그에 대한 에세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독특한 부록이 마음의 기쁨을 더해주었던 책이다.

  좋은 글은 누가 읽어도 마음의 울림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자신이 책을 읽을 연이 되었을 때, 읽는다면 책값과 시간이 아깝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그의 글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소리내어 읽으니 그의 말의 울림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수상소감 앞까지 소리내어 읽고나니 하루 해가 저물어 버렸다. 하루를 이 책으로 보냈다. 나의 인생의 정해진 시간 중 하루의 시간이 그의 책과 함께 시간의 강물에 흘러갔다. 함께 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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