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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소원칙
도정일 외 지음 / 룩스문디(Lux Mundi) / 2008년 12월
평점 :
# 조금 잘 써보기 위해, 헤매이고 헤매였던 시간들.
글쓰기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한다. 15권이 넘어가니, 적은 권 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읽다보니, 문장을 쓰는 요령부터, 주제를 잡아 나가는 방법까지 참 많은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정보를 알게 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렇지 않았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고, 하나의 산에 오르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결국 자신이 가장 잘 오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 등반 경험담을 다 알지 않더라도 가능하다고 할까. 내가 어떤 코스를 더 좋아하고, 아침과 저녁 중 어느 시간에 오르는 일을 더 불편해 하지 않는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고, 왜 산을 올라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찾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조금 잘 써보기 위해 헤매이고 헤매였던 시간들, 오랜 시간을 투자했지만 몸으로 크게 다가온 생각은 없기에 고생한 보람이 없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사회생활을 하던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지, 인간관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을 오해 없이 전할 수 있는 '글쓰기'는 꼭 필요하다. 당장 이렇게 하면 된다는 법칙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그 많던 경험담에서 하나씩은 배울 점이 있었다. 살아가며 생각이 자라다 보면, 그땐 중요하다 생각하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도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을거라 기대를 하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다.
# '글쓰기'란 무엇인가 고민해 보게 하는 책.
『글쓰기의 최소원칙』은 글은 왜 쓰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대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담과 강연 형식의 글이 모인 책이다. 14명의 사람들이 12번의 강연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전해주었다. 교육대학원에서 마련된 특강이라, 조금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대학생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만큼 강연에 표현된 어휘나 메시지는 난해하지 않았다. 각양각색, 법학, 인문학, 과학, 소설가, 사회운동가, 고전 번역가 등 다양한 강사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글쓰기'를 왜 하는 것인지에 대해 찬찬히 고민해 보게 된다. 무엇보다 '잘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명확한 생각을 정리하지 않았기에 많이 헤매였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냥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꿈꾸는 사람처럼 말이다. 내가 떠나는 이유와 무엇을 보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생각이 있었다면 여행의 장소를 정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텐데, 그냥 막연히 떠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결국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서성이던 내 모습이 보였다.
12번의 강의가 마치 저녁을 먹으로 뷔페의 음식점처럼 느껴졌다. 한식, 중식, 제 3세계의 문화까지 스며든 다양하게 차려져 있는 음식이라 할까. 각 나라의 대표 음식을 모아 놓은 것처럼, 각 분야에는 그에 걸맞는 글쓰기 방식이 있어 개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음식은 결국 손님의 오감을 자극해서, 기분을 편안하게 하고, 몸을 건강하게 만들게 하듯이, 각 강사들이 말하는 '왜 글쓰기에 주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 스며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확실한 기술이 아닌, 바라보는 시각의 폭을 넓게 한 책.
수능 만점자가 쓴 수기나 학습노트처럼, 이렇게 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기술이 아닌, 글쓰기를 바라보는 자세에 대한 책이라고 할까. '막연히' 잘 써야하는 방법을 헤매었는데, 책을 읽고나니, 어떤 글을 쓰고 싶어하는지, 그 목적을 명확하게 해야 하는 숙제를 먼저 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되었다. 글쓰기에 대한 디테일한 방법을 알고 싶은 이는 이문재씨와 도정일씨의 글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와 일상의 삶에서 수사기법을 활용해서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두 저자의 강연은 실제적인 도움이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즐겁게 격려받으면서 쓰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글 솜씨가 늘어남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하다보면, 시행착오를 거쳐 하나의 요령이 생기듯이 글쓰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세련된 기술보다는 오래 꾸준하게 글 쓰는 일을 놓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쓰기 위해서는 무엇을 읽던지 봐야 한다. 쓰기 위해 읽던지, 읽다보니 쓰고 싶어지던지, 내 머리속에서 일어난 사유를 글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놓지 않는다면, 고민만 하지 말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다보면, 자기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거라 믿는다. 문제는 시간과 방법이 순탄치 않을 수도 있다는 점, 큰 기대없이 하다보면, 도리어 쉽게 발견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