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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평점 :
# 글을 보면, 그가 보인다.
누군가를 깊게 알고 싶다면, 그의 행동과 그가 쓰는 말을 보면 된다. 작가의 경우는 좀 다른데, 가까이서 그의 행동을 볼 수 없기에 그가 쓰는 언어를 잘 지켜보면 그의 성격이 보인다. 실제 현실에서 친해지는 관계가 아니라, 생각과 그가 살아온 삶의 결이 어떤지를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천이라는 작은 시골(?)에서 미당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문태준과 김연수와 학교를 같이 다닐정도로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그는 문태준보다는 김연수와 많이 친하다. 김연수 소설가와 김중혁 작가가 씨네21에 연재한 에세이 모음집 <대책없이 해피엔딩>에서 나오는 거침없는 언어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친함이 보인다.
큰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 나와 취향이 사맞지 않아, 독특한 아이디어가 강한 소설가라 생각했었다. 한 편씩 읽을수록, 대책없이 낙천적이고, 농담을 좋아하며, 영화와 미드를 많이 보는 그의 새로운 모습들이 친근했다. 무엇보다 글을 읽다보면, 대책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든다. 딱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마음이 편해지는 묘한 느낌, 한 번 읽고 다시 읽었을 때의 마음은 묘한 따스함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 좀 느리게, 좀 실패해도 괜찮아. 뭐라도 되겠지.
아이같은 마음으로. 뭔가 많이 되려고 애쓰는 2-30대들, 스펙과 취업과 자신의 꿈을 위해 정해진 정보를 기초해서 많이 노력하는 이들에게 그는 예술은 다르게 말한다.
"예술에 목표 같은 건 없다. 집중을 욥구하는 권이나 군에는 목표가 있겠지만 마음이나 예술에는 목표가 없다. 마음을 기록하는 예술은, 그러므로 산만한 자들의 몫이다."
"꿈이 별로 없었다. 누군가 꿈을 물어봐도 말할 게 없었다. ... 나이가 들면 뭐라도 되겠지. ... 놀 수 있을 때는 최대한 즐겁게 놀았어야 했다.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고, 기회를 주고, 관대했어야 했다. ... 내가 생각하기에 '재능'이란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개인을 바뀔 수는 있을 테니까. 개인이 바뀐다면 언젠가는 세상이 바뀔 수도 있을 테니까, 포기할 수는 없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웃기면서 슬플 것이다. 보네거트의 글은 대체로 그렇다."
그냥 현실을 도피하는 마음이 아니라, 충분히 놀아보고 고민도 해보고, 방황도 해 본 이가 말하는 지혜와 경험 사이의 말이기에 다른 멋진 말씀들보다 와 닿았다. 성공에 대한 멋진 말보다, 실패하고 방황해도 괜찮다, 꼭 뭘 더 하지 않아도 이렇게 지내다보면 뭐라도 되겠지라고 말하는 그의 글이 다른 어떤 위로보다 더 힘이 났다.
# 주변,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소소한 즐거움
꼭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말하자면, 책에 소개된 책과 영화들, 소소한 이야기들이 매력적이다. 책을 읽고나서, 미드 커뮤니티를 알게 되고, 커트 보네거트의 매력을 더 깊게 알게됐다.
여자들을 지탱해 주는 힘이 수다이고, 남자들 지탱해 주는 힘이 놀이이기에, 남자 아이들이 잘 노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진정한 남자가 된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어렸을 때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이해하지 않았고, 그냥 지내다가 시간이 쌓여, 서로를 이해하는 대신에 함께 보낸 시간을 이해하게 됐다는 말이 참 좋다. 어른이 되어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함께 부대끼다 보면 그 시간의 힘으로 그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 주변과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는 매력이 책에 있다.
10살 위아래인 사람과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소재들의 평이함, 그리고 그의 취향들... 그의 산문에 기대 다른 친구들을 만들어 봐야겠다. 이렇게 책 읽고, 글 쓰고 생각하고 버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