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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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도, 병원도 가난하기에 구해주지 않는 빈민가. 누가 그들을 돌보고 있었을까?
 
 
  현실세계는 두가지 축으로 움직인다. 권력이라는 이름의 영향력과 실제 생활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돈. 빽도 없고, 돈도 없고 희망도 없는 빈민가에는 사람은 살지만, 그들을 돌봐주고 구해주는 경찰과 병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시대, 기회의 소중함을 알고, 그 기회를 활용할 배경이나 여유가 있는 이에게는 보물섬에서 황금을 구하는 도전의 나날이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맨손을 지닌 이에게는 하루의 삶이 투쟁과 절박함의 연속이 된다. 여성이 아닌 이상, 밤거리의 공포와 여성이기에 차별받은 설움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절대적 빈곤의 늪에 빠질 여력이 없는 이에게는, 자신이 가난을 겪지 않았기에, 가난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자신에게 기회가 있다며, 더 많은 부유함을 얻기위해 노력하는 이와 가난한 이와 함께 공존하기를 토론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이기에,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절박한 처지에 놓이는 사람들과 끝없이 대화하며 공감의 폭을 넓혀야 한다 생각한다. 극단적 빈곤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이 책의 저자의 의문에 공감했다.
 
  10년간 빈민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졸업논문을 준비한 독특한 대학원생의 논문준비의 흔적이 잘 담겨있다. 1989년 가을, 과학적이나 수치적인 통계를 통해 특정 문제에 답을 얻기보다,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어울리고 싶었던 저자는 빈민가정의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눠보기로 결정한다.
 
  빈민가에서, 마약을 파는 갱들과 마주친 그는 대학을 다왔지만, 더나은 승진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다시 자신이 살던 빈민가로 돌아와 마약파는일의 중간보스를 맡은 블랙킹스의 두목 JT의 부하들에게 잡힌다. 상대조직의 끄나풀이 아님을 확인한 JT는 얼간이 같은 질문을 하지 말고, 왜 거리에서 살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질문을 싫어하는 갱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함께 생활해야 함을 그는 깨닫는다. 10년의 시간, 자신의 삶에 대한 자서전을 써준다고 오해하는 JT와 함께 저자는 빈민가의 사람들과 부딪치며 그들의 삶을 관찰하게 된다. JT가 고위두목이 되어 성공하고, 마을이 재개발이 확정되는 그날까지, 저자가 경험한 에피소드를 통해, 빈민가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  법률과 의료의 보호가 없는 빈민가를 보호하는 것은 갱들과 영향력 있는 지역유지들..
 
 
  노숙자들이 서로 싸우고, 총기가 있기에, 총기사고도 잘 일어나는 빈민가에서는 싸움이 나더라도 경찰이 찾아오지 않고, 구급차를 불러도 오지 않는다. 싸움과 응급상황, 치안을 유지하는 일은 도리어 갱단이 맡게 되는 현실을 저자는 알려준다.
 
  갱단과 주민대표와 경찰이 은밀히 서로 협력하는 과정이 저자의 시선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진다. 사회안정망이 빠진 자리에 들어서는 지하경제에서 움직이는 원칙들을 볼 수 있다고 할까. 공공의 힘이 빠진 영역에서는 어둠의 영역에서 대가를 담보로 해서, 대신 세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사실과 대면하게 된다. 기회를 상실한 이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는지, 매 순간순간이 권력의 싸움의 현장이라는 점을, 로또처럼 대박을 노리고 마약판매의 가장 위험한 이를 떠맡는 이들이 기회비용으로 막대한 대가를 치루는 현실이 보인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중간보스 JT대신 일일보스를 맡은 저자의 두목체험기였다. 쉽게 보이는 두목의 위치가 많은 선택지에 최선의 답을 써내려는 과정이라는 점과 대기업의 기업구조와 비슷한 관리형식을 취한다는 점을 저자의 체험을 통해 생생히 전해진다. 공공의 힘이 미치지 못한 곳에서는 지하세계의 사람들이 영향력과 세금을 걷는 수탈이 반복된다는 점과 철거를 통한 협상의 과정에서도, 주민대표는 혜택을 얻지만, 주민들은 결국 새로운 곳에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떠나는 현실이, 용산철거와 앞으로 강화될 양극화가 계속되었을 때의 풍경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앞으로 20년 후에, 지금 농촌에서 활발하게 태어나고 있는 코시안들이 민족의 벽이 높은 한국에서, 새로운 소외계층으로 될 수 있음이 보인다고 할까. 낯선 외국인에게 한국인과 동등한 시선으로 보는 연습이, 국가와 사회, 개인 차원에서 활발해져야 함을 생각했다.
 
  에피소드를 통해, 낯선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객관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려 하지만, 결국 자신 역시, 이기적으로 주민들을 통해 이익을 얻었음을 인정하는 저자의 성찰과 소외받았지만, 그 안에서 서로 연대하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점이 좋았다.
 
  모두가 빈곤했을 때는 힘들때 서로 돕고, 응원하는 문화가 있어 외롭지 않았지만, 양극화의 시대에는 누구는 부유하게 살고, 누구는 늘 바닥에 있어야 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므로 더욱 구성원들 사이에 돈독함이 사라지는 면이 있다 생각한다. 양극화의 흐름을 설사 막을 수 없더라도,  사회안전망의 확충과 가난한 이가 자신의 가난함을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믿는다. 이제 세상을 떠나버린, 한 정치가가 남긴 글귀가 생각난다. 개인의 성공이 강조되는 시기,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글귀를 통해 한 번 더 곱씹어봐야 함을 느낀다.
 
  가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으로 성장하더라도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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