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일기
조병국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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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울지 않으려 했는데...
  
  
  대학시절 토론에 참여했을 때, 입양아의 실태를 접했다. 낙태에 관한 자료를 찾다, 미혼모에 관한 자료를 발견했다.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살아갈 형편이 되지 않아, 집단생활을 하거나 입양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입양에 대해 긍정적이고,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 언론과 사회의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비밀입양이 많고, 파양의 상처가 한 번 상처받았던 아이에게 또다른 시련과 아픔으로 남겨져 있음을 배웠다. 행정편의적인 법제도와 그를 악용하는 사람들, 사랑을 먹고 자라나는 아이에게 가혹한 현실 등은 무력함이 무엇인지 생각나게 한다. 

  좋은 사회는 약자를 밟거나, 내가 약자가 아님을 위안하며 살아가기보다, 약자도 주변의 배려가 있다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사회이다. 가진것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입양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를 만나면, 또다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찬사와 격려의 말 뿐이다.
 
  울지 않으려 했다. 슬픔으로 감상에 젖고 싶지 않았다. 프롤로그에 실린 작은 글 하나가 눈물샘을 자극했다. 울다가, 눈물을 닦아냈기를 되풀이한 책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엄마의 따스한 손길을 받지 못했지만, 저자와 같이 따스한 온기를 전하는 선한 이들이 많아, 많은 이들이 사랑의 힘으로 기적을 하나씩 만들고 있다 생각한다.  

  50년을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헌신을 다했던 저자의 이야기다. 수많은 사연속에서 가려뽑은 사연들에는 진심과 따스한 마음이 스며있다. 깎지를 껴서 왼쪽이 올라가는 이가 아니더라도, 저자의 사연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들어있다.
 
 
#  사랑, 엄마, 고마움.
 
 
  엄마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세상에 태어나 나만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내게 생명과 같은 음식과 보살핌과 관심과 애정의 손길을 전해주는 엄마. 다양한 사정에 의해 엄마가 없는 이에게 홀트 아동복지회 부속의원에서 50년간 일했던 저자와 사랑의 손길을 전했던 이들이 있어, 해외입양과 국내입양 등 다양한 아이들이 집단생활에서 벗어나 가정에서 생활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농촌에서 농부가 피땀흘러 키운 곡식들이 다양한 유통과정을 거쳐, 다양한 보이지 않는 손길을 거쳐, 밥상위에 올라오는 것처럼, 한 아이를 입양을 보내기까지, 다양한 사연과 다양한 과정, 다양한 사랑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함을 알았다. 공개입양을 하지 못한일이 아이에게 두번째 상처로 다가오는 일과 함께, 말하기 못해서 마음에 늘 짐을 두고 살아온 위탁모의 마음은 입양에 대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입양아와 나와 다른 환경을 지닌 아이에게 관대하지 못한 사회의 풍경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23편의 이야기에는 입양아의 건강을 돌보면서 생겨난 안타까운 사연과 50년간 변화한 입양의 풍경들, 가난했기에 지켜주지 못해 무력했던 안타까운 사연과 기적처럼 다른 아이를 볼 수 있는 희망을 전해주는 다양한 사연들이 소개되어 있다. 자신과 함께하지 못했던 친부모를 찾기 위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입양아와 부모들이 만나는 안타까운 사연에는 마음이 아팠다. 선진국에서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우호적인 시선과 비교대는 국내의 사정에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모른척 하는 순간, 누군가는 냉정함에 한 번 더 상처를 겪어내며, 살아감을 느꼈다.
  
  각박하고 힘든 세상이라지만, 내 인생을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여기가 세상의 끝인가 싶을 때 누군가 내미는 다스한 손, 그 작은 온기가 세상살이에 큰 힘이 된다는 걸 안다면, 그리고 내 손에도 누군가를 데워줄 온기가 있다는 걸 안다면 세상살이도 조금은 녹록할 거라고 생각해 본다.
 
  가장 좋았던 건, 프롤로그 마지막에 담긴 저자의 말이였다. 각박하고 힘든 세상이지만, 누군가의 작은 온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고, 내 손에도 그 작은 온기가 있다는 말, 내게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50년을 헌신한 저자와 저자 못지않게 긴 세월을 타인을 위해 헌신한 이가 있기에 세상이 아직 따스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겨울에 어울리는 소설이다. 따스한 손길과 체온,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작은 배려가, 누군가의 하루를 행복하게, 어쩌면 평생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줌을, 저자의 삶을 보며 배웠다. 몸으로 쓴 글이기에, 가슴에 뜨겁게 다가온다. 잃어버린 눈물을 찾고 싶은 이에게, 따스한 손길을 잊고 싶지 않은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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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 최영미 산문집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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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여겨 보던, 작가의 눈에 띄는 산문집을 만나다.
 
 
  최영미 시인의 책을 처음 만난 건, 『시대의 우울』이라는 산문집을 통해서였다. 미술관을 좋아하지 않지만, 마음의 풍경을 저미기 위해, 떠나는 시인의 여정을 통해, 렘브란트를 만나게 되었고, 멀게만 느끼던 미술이 가깝게 다가왔다. 저자의 출간된 책은 가능하면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작가는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는데, 다른 분야의 책을 더 만나게 된다.
 
  1993년부터 2009년까지, 17년간의 산문을 모은 책이다. 길고 긴 시간동안, 느껴지는 기운에서 당당함을 느꼈다. 자신의 시에 대한 해석을 반론하는 글을 맞이한 주말의 아침을 망친 괴로움을 토로하는 글은 예전에 만난 기억을 통해 글의 매력을 느꼈는데, 다시 만나게 되어 좋았다.
 
 
#  일기에 가까운, 솔직한 글들.
 
 
  솔직한 글을 만날때면 즐겁다.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라는 제목처럼, 솔직 담백한 글이 많다. 월드컵의 열기를 즐기면서, 선수들이 죽기살기로 하기보다, 경기를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고, 월든을 보며,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글도 흥미로웠다. 30대, 40대, 50대를 지나면서 좀더 여유로워진 시인의 글을 보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토로한 글은 여전함을 느낀다.
 
 
  일기는 내 문학의 시작이자 끝이다.
  내가 쓴 최초의 시들은 일기장에 발표되었고, 또 내 인생이 종말을 고하는 그날, 내가 세상에 남길 마지막 작품은 최후의 그날 아침, 혹은 그 전날 밤에 내가 썼던 일기일 테니까.
 
   소소한 일상에서 새로운 시선을 관찰하는 일이 작가가 지닌 최고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글감을 찾아, 충분히 독자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을 느꼈다. 모두에게 좋은 곳은 없고, 정치적이나 사회를 보는 시선이 다른 교수님의 차이를 인정하는 글을 볼 때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일상에 많은 글감이 있지만, 그걸 잘 활용하는 이는 많지 않다. 쓸 말이 없는게 아니라, 쓰지 못하는 능력부족의 현실을 산물을 보며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일상이 무료해질 때, 힘을 주는 책이란 생각을 했다. 등단 소감에서 다짐했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는 목적에 맞게 살아왔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결국 사랑과 연민만이 나 아닌 너를 더듬고 이해할 힘을 준다는 것과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 년 세월을 보상해줄 수도 있다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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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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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떠올리면 흐뭇해지는 한 장의 사진.
   
 
  초등학교 때, 이웃에 사는 형 친구네 가족과 함께, 대도시에 있는 동물원을 구경한 적이 있다.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 기능이 흔한 시대이지만, 그때만해도 사진 한장을 찍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사진은 찍었지만, 사진을 받기는 힘들었다고 할까. 찍은 사진은 많았지만, 앨범에 가지고 있는 사진은 흔치 않았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쉽게 찍고, 쉽게 사진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늘 떠올리면 흐뭇해지는 한 장의 사진이있다. 살랑이는 바람결을 따라 지인과 함께 걷다가, 지인이 끝마치지 못한 책을 읽는 모습을 기억에 남겨두고 싶어 지인 모르게 한 장 찍었다. 편하게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비치는 낮에서, 조금씩 어두워지는 밤의 길목에 찍은 사진은 지금 생각해도 흐뭇해진다. 처음엔 사진에 보았을 땐, 평소에 보는 지인의 모습보다 훨씬 잘 나왔기에 좋았고, 시간이 흘러가며, 열심히 밝은 조명과 다양한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을 찍어도 그 사진보다 더 나은 사진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사진을 떠올리면, 그 장소까지 갔던 추억과 많은 이야기들이 아직도 그때처럼 새록새록 살아있어 좋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그 사진을 떠올리게 되면, 그때 느꼈던 바람소리와 그때 보고 듣고, 느꼈던 많은 기억들이 다시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 처럼 생생하다. 내게 사진은 잊고 사는 시간으로 떠나는 타임머신이다.
 
 
#  인간미 넘치는 사진과 이야기.
 
 
  사람들의 눈을 보는 걸 좋아한다. 눈에 비치는 생기넘치는 표정과 환하게 웃는 미소를 보면,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곤 한다. 사진 작가 조세현씨가 장안으로 많이들 알고 있는, 중국 시안에 가서, 아직 맑은 미소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소수민족과 시골사람들의 풍경과 얼굴을 담아왔다. 무엇보다 맑게 웃는 얼굴이 많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얼짱각도와 준비된 조명이 아닌, 사람냄새가 풍기는 사진들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잃어버린 표정을 다시 만나 반갑다. 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은 정겨웠다.
 
  글에는 그 사람의 내면이 드러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그의 글에는 그의 생각처럼 밝은 마음을 지닌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작가는 따뜻함과 편안함을 좋아하는 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림자 연극과 시장의 풍경, 한 시대의 획을 그은 진시황병마용경과 실크로드의 길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그리는 후이족까지, 그가 보고, 느끼고 겪은 사진에 관한 이야기와 사진들이 담뿍 담겨있다.
 
  에세이라 하기에는 사진이 풍성하고, 사진집이라 하기에는 인간과 사진에 대한 글이 돋보인다. 글과 사진, 한쪽으로만 이야기하기에는 둘의 조화가 자연스럽다. 낯설고 멀게 느껴졌던 사진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아무나 찍을 수 있지만,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생각했었다. 작가의 이야기에는 공감하는 마음으로 피사체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무엇을 찍을것인지 명확히 하며, 소통하며 찍으면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증명사진이나, 면허증에 쓰이는 딱딱한 정면사진과 달리, 사람들의 얼굴에는 다양한 표정, 특히 웃는 표정이 많았다. 맑은 표정을 따라해보았더니, 기분까지 즐거워진다. 많이 친하지 않더라도, 맑고 밝게 웃으며 거리를 걷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언어를 다루더라도, 누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기쁨을 준다. 사진 역시,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많은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음을 느꼈다. 열화당 대표가 출간한『세상의 어린이들』 이라는 사진집이 생각났다. 맑고 순수한 사진이 풍성담긴 책이다. 사진에 대한 저자의 개성있는 이야기를 듣는 건, 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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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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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시, 긴 여운, 감동은 하루를 살게 한다.
 
  
  중, 고등학교 때 가장 시를 많이 읽었다. 시인들이 속삭이는 언어에 귀를 기울이면, 하나의 풍경이 떠오른다. 시어에 울고, 웃고, 분노하고, 아파했다. 통찰력 있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상의 풍경을, 시인은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 했었다. 가장 짧은 언어로 세상의 풍경을 이야기하는 시가 좋다.
 
  최영미 시인을 책으로 처음 만난 건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아니였다. 『시대의 우울』에서 렘브란트를 찾아 헤매는 여정 속에 드러난, 시인의 솔직하고 독특한 감수성이 그이와의 첫 만남이였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에 끌렸다. 시인의 감수성을 키우기까지, 저자가 만난 55편의 시가 모였다. 시를 쓰지는 않더라도 인생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향유하기를 바라는 글에는, 시가 많이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세월이 지나도 다시 낭송했을 때, 처음 만났을 때의 여운과 감동이 그대로 살아있는 시가 좋은 시라 생각한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모든 이를 만족하는 좋은 시보다는, 각 개인에게 더 절실하게 와 닿는 시가 있다 생각한다. 다양한 시들을 접하다보니, 영감을 주는 시에 눈길이 간다.
 
 
# 차와 함께 시인과 담소를 나누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시 한 편을 읽는다. 생각에 잠긴 후, 시인의 글이 주는 여운에 대해 글을 쓴다. 시를 바라보는 저자의 글을 읽고, 남은 마음의 흔적을 글로 담는다. 저자와 한 테이블에서 찻잔을 마주하지 않지만, 글의 흔적들을 통해, 담소를 나누는 기분이다.
 
  진짜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거짓말이라 표현한 「불행한 우연한 일치」에는 웃음이, 「여행 길에 병드니」라는 하이쿠에는 애절함이 남아있다. 김수영 시인의 「눈」에서는 천진함을 느꼈고, 마음이 맑아졌다. 사랑을 잃고, 더듬더듬 빈집에 갇혀버린 애련한 상실의 마음이 담긴 「빈 집」에서는, 생각을 마쳤을 때, 차가 식어있었다.
 
  낭송했을 때, 울림을 주는 시가 좋은 시라 생각한다. 읽자마자, 풍경이 그려지고, 생각이 달라진다. 감정이 움직였던 시와는 즐거운 데이트를 한 기분이다. 저자가 따로 남긴 글을 읽어서야 시어가 그려진 풍경과 의도가 느껴지는 저자의 글과의 만남은 시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만나 좋았다. 적어도 시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세상이 삭막하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를 쓰는 시인과 시를 읽어주는 독자가 있는 사회에서는, 작은 촛불처럼,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다 믿는다.
 
  시인과 함께 시를 읽는 일은 즐거웠다. 한 호흡에, 읽기보다는, 일주일에 한 번, 마음의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읽으면 좋다. 한동안 서가에 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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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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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분석과 일반인의 거리를 좁혔던 그녀, 애도에 주목하다.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은, 즐겁다. 주위 사람들에게 소리쳐 자랑한다. 이별은 꼭꼭 숨기거나, 혼자서 견뎌내며, 힘들어한다. 추억이 많고, 행복했던 시간이 길수록, 이별후의 힘겨운 시간은 오래간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이 출간된다. 이별을 잘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찾기 어렵다. 이별이란 단어만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기 때문일까? 종기가 생겼을 때,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더 큰 병으로 커지듯, 이별 후의 감정을 외면하거나 방치하면, 몸과 마음은 더 힘들어진다. 저자는 『사람풍경』과 『천개의 공감』으로 정신상담과 정신분석이라는 일반인이 가진 편견의 벽 너머의 세계를 이야기했다. 다시 돌아온 그이는 상실 이후, 애도에 주목한다.
 
 
# 참 좋은 사람,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사랑의 다른 이름, 좋은 이별이라는 말이 처음엔 어색했다. 이별은 아픈건데, 좋은 이별이 가능할까? 좋은 이별은 서로 원만하게 이별을 통보하고 끝내는 쿨한 이별이 아니라, 그와 이별한 후에 생기는 마음의 응어리, 감정들을 애도작업을 통해  치유하고, 떠나보냄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키우는 과정이라 저자는 말한다.
 
  이별 직후, 생기게 되는 마비, 부정, 분노, 그리움, 환상, 미화까지 다양한 감정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 위해 치러야 할 과정이라 저자는 이야기한다.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등의 이별 후의 감정을 잘 포착한 가려뽑은 시구절에, 이별의 고통이 가슴에 전해진다. 저자는 감정에 빠진 상황을 극복하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감정의 상태를 인정하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말미에 recipe라는 이름으로 조언한다. 자신의 경험으로 시작하는 저자의 솔직함에, 힘든 이별의 순간이, 나만 겪는게 아니라서 든든했다.
 
 
#  마음은 거두어 들었지만, 갈 곳이 없네.
 
 
  돌아오지 못한 마음이 주는 부정과 그리움, 환상 등의 과정을 지나고 나면, 마음은 거두어 들었지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자기애와 조증, 떠돌기, 대체대상 사랑하기 등 어찌할지 모르는 시간과 감정 역시, 저자는 상실을 극복하는 애도의 시기를 지나는 자연스런 과정이라 이야기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몸의 증상, 특히, 식습관과 관련된 현상이 나타난다는 부분에 많이 공감했다. 어떤 이는 "그가 떠나갔는데 밥이 넘어가느냐"며 거식증에 걸리고, 다른 이는 꾸역꾸역 먹다가 폭식증에 빠진게 된다는 설명을 이해했다. 심리학과 정신분석에서 바라보는, 유아기때 상실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몸의 감각으로 경험하고, 몸의 반응으로 표출한다는 부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에서 기억나지 않는 유년시절부터 쌓인 내면의 감정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이다.
 
 
  몸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우울증과 붕괴의 감정에 빠져있을 때, 극복과 치유가 시작된다는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모든 감정이 다 사라져버린, 울음도 나오지 않는 절망의 지점이, 다시 희망을 안고 시작하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울 수만 있다면, 마음의 병이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성보다 남성은 울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작은 일에도 분노하고, 마음에 담아두거나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슬픈 노래나, 실컷 울 수 있는 공간에서, 자신의 마음을 달랜다면, 감정에 휘둘려 무기력해지는 상태에서 달라질거라 생각한다. 저자는 독서와 글쓰기, 노래부르기, 술자리 등,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이야기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기형도 시인의 절창을 다시 만나 좋았다.
 
  울지 못하는 마음에 병이 생기고, 무기력해지며, 살아가려는 의욕이 사라진다.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라는 말처럼,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에서 상실한 이를 배려하는 관습과 우리 문화에 남아있는 굿과 삼우제, 49제, 삼년상등이 잘 이별하기 위한, 오랜 지혜의 결과물이였다는 점을 소개한다. 애도의 관점으로 바라본, 다양한 문학작품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이방인』과 『수레바퀴 아래서』 등 다양한 작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니, 더욱 흥미로웠다.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배웠다.
 
 
#  정신분석과 심리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종교에 대한 신화도 사라졌고, 과학에 대한 엄밀함도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 21세기에 산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은 자신의 감정상태를 알고 싶어하는,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이유를 알려주는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정신분석과 심리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고, 애도작업을 보내고, 더 나은 자신이 된 시기 역시, 1-2년이 아닌,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자신을 관철하고, 분석하는 일을 지속했기에 가능했다 이야기한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희망과 꿈을 파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바라는 대중이 많은 시대에, 한계를 인정하고, 진솔한 책이라 생각한다. 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하나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비전공자인 작가의 글이기에, 다양한 이론들이 소개되었다. 문외한이지만, 저자의 글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책을 읽었지만, 이별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허전한 마음을 채웠던 충만한 느낌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다. 소중한 누군가를 만났기에, 이별의 시간도 따르는 법이라고, 행복했던 그 시간들이 나를 살게 만들었던 소중한 시간임을 기억한다. 떠나간 그에게 집착하는 것보다, 그를 잘 떠나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그와 나,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감정의 노예가 아닌, 감정의 주인이 되도록 돕는 책이다. 좋은 이별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을, 소리내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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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09-12-0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네요. 짧지만 강한 느낌이 느껴지는 훌륭한 글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