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타라
조정은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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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적인 수필의 세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길 뒤 편에 솟아있는 험난한 봉우리.
 
 
  학창시절에 읽었던 수필들이 떠오른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으며 맑고 향기로운 마음을 배웠고, 피천득님의 『인연』을 통해 소박하고 꾸밈없는 순박한 마음과 일상 속 아름답게 빛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윤오영님의 수필에 스며있는 한문학의 빼어난 지식과 철학의 깊이가 묘하게 어우러진 품격도 기억에 남는다. 깊이 있는 수필들도 있었지만, 일상의 소소한 경험들이 묶인 에세이도 많았다. 쓸 수 있다면 누구나 쉽게 그 길을 걸을 수 있지만,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평범한 속의 비범이라는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야 한다. 인터넷의 인터넷 만화가와 비슷하다. 누구나 인터넷만화를 그려 자신의 공간에 올릴 수 있지만, 주목받고 인기있는 만화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금을 받고, 3년의 마감을 꼬박 채운 책이다. 저자의 글에서 그는 파택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생각이 구축하던 관념의 집을 허물기 위해 글을 쓰고, 과거의 기억들에 대한 천도제의 의미로 에세이를 완성했다 한다. 소중했던 어머니,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인생의 험난했던 시기를 지나온 과정이 생생히 살아있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깊이와 흥미를 만족시키는 에세이이다. 평소에 읽던 수필과 다른 스타일의 글쓰기가 더욱 흥미를 끌었던, 읽고 난 뒤, 묵직하게 다가오는 생각거리가 진한 여운이 인상적이었다.
 
 
#  마음의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는 글쓰기.
 
 
  부도가 났지만, 이겨낼 수 있다며 힘을 실어주는 남편이 새벽 3시에 피우던 담배와 관련된 에피소드, 부도로 인한 설움을 감추다 결국 어머니께 고백했을 때, 호통과 한탄할 거라는 예상과 달랐던 어머니의 이야기, 청소부 일을 나갔을 때 겪은 청소부들의 오해, 고가의 보석을 파는 일과 팍팍한 일상사이의 괴리감, 고통과 험난함으로 원망이 극한까지 차올랐을 때, 하늘에 내리는 눈을 보며 생각한 마음의 변화 등 일상에서의 격변의 순간, 마음이 변화하는 과정이 생생한 이야기의 힘이 실려 전해져 온다. 한 편의 소설이라 하기에는, 개인의 경험과 철학이 깊이 반영되어 있고 수필의 문법을 지키고 있다.
 
  누가 이야기를 하는가와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수필에 끌리는 매력을 두 가지로 생각한다면, 소재와 소재를 바라보는 관점이 먼저 떠오른다. 유년시절의 경험과 가족들 사이에 일어난 에피소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소재가 많기에 흔하다. 흔한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수필의 깊이가 달라진다 생각한다. 서울 지하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걸인과의 에피소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타인의 호의(비 오는 날, 받은 우산 선물)에서도 작가는 그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일상 속의 또다른 삶의 이면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을 지닌 작가의 시선이 독자의 마음까지 따스하게 만들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게마련인 자식과의 갈등에서도,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자식을 계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유년시절의 에피소드를 회상을 통해, 애틋한 마음이 생생히 드러난다. 저자의 고민을 통해, 우리사회의 모순이 드러나고, 모순을 알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해답이 없는 관계의 문제에서 저자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할까. 저자의 순박하다 못해 바보처럼 보이는 따스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도, 그녀가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세상을 사는 이들이 바라보는 생의 다양한 관점을 곱씹어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했다. 글을 풀어가는 독특한 형식과 후반부의 반전이 살아있는 구성, 독자와 같은 걸음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친근함 등 내겐 배울점이 많은 책이었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수필 이외에는 읽을만한 수필이 없다 생각했었다. 저자의 에세이집을 읽고나니, 매력적인 수필을 찾으려는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소설과 여행기 등 주목받는 장르와 달리, 수필은 큰관심이라는 조명과 거리가 먼 장르라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높고 푸른 나무를 쳐다볼 때, 발밑 낮은 자리에서 작은 풀잎들이 꾸준히 오랜 세월동안 자신들만의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야생의 힘으로 홀로 살아내는 수필의 세계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저자의 나이대인 50대에게는 공감의 힘을, 젊은 세대에게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생을 산 이가 겪어낸 삶의 진주같은 생각의 덩어리를 느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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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3-0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님, 반가운 리뷰에요.
저와 같은 동인의 작가라서 더욱요. 저도 저 책을 구입했지요.
글맛이 상당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쿨앤피스 2009-03-05 03:54   좋아요 0 | URL
앗! 네, 글을 읽다보면 이야기의 힘에 푹 빠져버리는 책이였습니다. 같은 동인의 작가라니. 인연이 이렇게 닿기도 하네요. 작가님께 책 잘 보았다고 대신 안부 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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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여행을 할 만한 길이 갖추어진 곳이 없는 한국의 현실. 


  어렸을 때만 해도, 두시간 내지, 세시간 걸어서 가는 곳으로 소풍을 떠났던 것 같다. 구멍가게도 없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서 떠나는 소풍이라고 할까. 단체로 움직이고, 차도옆 좁은 인도를 따라 걸어야 했기에, 불안하고, 길기만 했던 길이였다. 동무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기에 시간은 빨리 지나갔지만, 크게 기억이 남는 건 없었다고 할까. 우리나라는 도보여행을 하기에 좋은 곳이 별로 없구나 하는 생각은 학창시절부터 늘 있어왔던 것 같다.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에서 나온 한비야씨의 여행기에도 내가 사는 곳을 지나가지만, 쌩쌩 지나가는 차들의 매연때문에 목이 아팠다는 글에 마음이 아팠다. 인간을 위한 길보다, 차가 다니는 길이 더 중요한 사회의 인식이, 인간의 권리, 인권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더욱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옮겨간 것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 산티아고에는 아고보길이 있다고 한다. 800km가 넘는 이 곳을 순례를 나타내는 작은 표식을 가지고, 순례자들은 자기만의 속도로 여행길을 나선다고 한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두 다리로 걷고, 오감으로 느끼면서, 자신을 둘러싼 일상과 벗어나 마음의 화두를 안고 떠나는 여행, 국내, 국외 저자들이 쓴 도보여행기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그런 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인의 강력추천으로 『제주 걷기 여행』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제주도 시장통에서 자란 여자아이가 회색빛 도시로 건너가고, 그속에서 20년동안 치열하게 경쟁 속에서 살다가, 도보여행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과 산티아고의 순례길에 떠나는 기록, 그리고 자신이 살던 제주도에 두발로 여행할 수 있는 올레길을 만드는 과정이 소개되어있다. 나도 행복해지고, 우리도 행복해지는 제주올레의 분투기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 나도 즐겁고, 다른 이도 행복하게 만드는 제주 올레. 


   시멘트와 인공적인 것은 들이지 않고, 오직 자연과 조응해서 걷기 좋은 길을 만든다는 필자의 여행길 만들기 노력은 동생과의 화해로부터 시작된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동생과의 속상한 마음이 제주올레길을 만나면서, 서로 보지 못했던, 아니 보려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게 되고, 많은 에피소드끝에 한 마음으로 화해하는 되는 장면은 마음 속 촛불을 켠것처럼 훈훈했다.
 
  혼자서 시작했지만, 주변 지인들이 한 두명씩, 코스가 하나씩 늘어가면서, 더욱 더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책에서는 6코스까지 만드는 대장정이 소개되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11코스가 개장준비중이라고 한다. 아직 제주도를 한바퀴 다 돌지는 못했지만, 빠른 속도로 그 길이 넓어지고 있다고 할까. 제주도의 깨끗한 풍경이 담겨진 사진은 당장이라도 제주도로 날아가 걷기운동으로 산책하고 싶게 만든다. 느리게, 하지만 자기속도로 걷기를 원하는 필자의 철학이 함께하며, 제주올레는 생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모범이 되는 그런 운동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늘 모든 일은 한 사람의 용기로 시작하는 것 같다. 그 한사람이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노력해나가면, 작은 불씨가 모여 횃불이 되듯, 도움의 손길을 따르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동생의 친구가 도와 만든 다리와 길, 그리고 해병대의 노고가 담긴 해병대 길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서 만들어가는 길이기에 더욱 뜻깊고 의미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많은 관광객을 모으려는 운동이 아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시작한 일이, 나도 즐겁게 하고, 남도 즐겁게 하며, 우리도 함께 즐겁게 만든다고 할까. 수학여행으로 한 번 제주도에 갔었지만, 민속촌과 감귤만 관광버스로 정신없이 돌아보다 끝났기에 제주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필자의 책을 보니, 제주도의 다양한 매력을 빨리 경험하고 싶어진다. 비단 제주도 뿐만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활동하는 주변도, 내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아름답고, 예쁜 길들이 많이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눈을 돌려 바라보려 애쓰지 않아 안 보일뿐. 

  다양한 시각으로 책을 볼 수 있는 책이다. 도시생활에서 고향으로 돌아간 이의 고향예찬기로 읽을 수도 있고, 걷기여행의 매력에 푹 빠진 이가 건네는 도보여행 권유서로 읽을 수도 있다.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는 그 연유와 에피소드를 모은 책으로도 읽을 수 있고, 산티아고로 순례길을 다녀온 여행기로 읽을 수도 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이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전환점을 수필형식으로 읽을 수도 있다. 아직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기에 도보여행의 매력에 대해 집중해서 읽었다. 20,30년이 지난 후 생의 전환기를 맞이했을 때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도시생활에서 고향으로 전환기를 맞이한 그녀처럼, 이 책을 그때 다시 읽게되면, 그녀의 고민과 결정을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생각이 어려, 제주올레를 경험하고픈 마음만 가득하다. 

  해외여행을 하기 전에, 꼭 제주올레를 경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담긴 길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올레길 중간 중간 보이는 리본과 돌에 표시된 표식을 보며, 혼자가 아닌 우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인은 다음달에 떠난다고 한다. 지인이 다녀온 후, 여행기를 듣고나면, 왠지 배를 타고 제주도로 떠나는 내 모습이 보일 것만 같다.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중독성이 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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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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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를 방치하지 않고, 뜨겁게 녹여버리는 그녀의 에세이.


   그녀의 글은 뜨겁다. 내 가슴에 생긴 종기를 뜨거운 열기의 글로 터트려 버린다. 여드름이나 종기는 다 여물지 않았을 때 터트리면 상처가 깊게 남는다. 그녀의 글은 내 마음 속의 응어리가 더 커지기 전에 빨리 터트린 후, 신속하게 상처를 아물게 해준다. 눈물이 주르르 흐르게 하는 그녀의 글을 읽고 나면, 남는 건 축축하게 적어있는 눈물이지만, 울고 난 후 기분이 나아지는 것처럼, 세상을 좀 더 살아보게 만다는 힘을 가져다 준다. 드라마에서 잘 보이는 뻔한 갈등구조,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아닌, 내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그녀는 자연스럽게 꺼내어 준다.   

 

  그저 보기만 하고, 그 내면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속마음을, 등장인물이 대신, 그들의 이야기를 해 준다. 나 역시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나도 그만한 사연이 있다고. 그녀의 글을 읽으면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고, 쉽게 동정할 수 없게 된다. 우리의 삶 역시, 동전의 앞 뒤 처럼, 좋고 나쁨으로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호수에 빠진 돌덩이를 찾는 일처럼, 호수 속의 물들이 다 빠진 후에야 겨우 알 수 있다는 걸 그녀의 글은 말해준다.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글은 첫 글이었다. 머리로 계산하고,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던 그녀의 글 속의 모습이 왠지, 상처받는 걸을 두려워 사랑을 할 염두를 내지 못한 내 마음과 닿지 않았다고 할까. 사랑을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었던 그녀가 부러웠고, 미적미적 버둥대는 화자가 마음에 와 닿았다. 

  좋은 부분을 하나만 꼽기가 아깝다고 할까. 많이 울고, 많이 기대하고, 많이 아파했던 그녀의 글이기에, 더욱 더 뜨겁고 가슴 설레고, 훈훈해지는 힘이 깃들어 있다 생각한다. 내 마음속의 작은 응어리들이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  

   신은 그녀의 드라마에 마니아를 주셨지만, 시청률을 주지는 않았다. 세상이 팍팍하고, 위로받은 이가 많기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픔보다는 환상과 욕할 수 있는 공간이 시청자들에게는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대중이 외면한다고 해서, 그녀의 글이, 그들의 드라마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에세이는 그녀의 시나리오 못지 않게, 감동적이고, 훈훈하고, 깊은 생각의 알갱이들을 던져 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저자의 인세와 출판사 수익의 일부는 기아, 질병, 문맹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JTS에 기부된다고 한다. 좋은 일도 하고, 마음을 울리는 글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글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책을 구매함으로써, 세상은 촛불처럼, 뜨겁지 않지만 한 사람의 온기를 지켜줄 만큼 따뜻해진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글을 읽고 나면, 마음이 따스해 지면서, 마음속의 응어리들이 사라진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따스한 마음을 가진, 상처도 가진 모든 이에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애정 결핍이란 말은 애정을 받지 못해 생기는 병이 아니라 애정을 주지 못해 생기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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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혼자놀기 -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
강미영 지음, 천혜정 사진 / 비아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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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지내는 것에 대한 두가지 시선.

  
  대학 새내기가 되었을 때 혼자서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어야, 뭐든지 잘 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시도한 일이었다. 늘 친구들이나 선배들과 어울려 먹다가 혼자서 밥을 먹는 느낌은, 외롭다는 느낌보다, 타인의 시선에 더 부담스럽고 불편한 느낌이 더 컸다.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냥 마음이 많이 불편했었다. 그러고 보니, 밥을 먹을 때도, 술을 마실 때도, 언제나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이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문화 자체가 혼자 보다는 어울림의 문화가 많았다고 할까. 복학생이나 아저씨들이 쓸쓸히 밥을 먹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이는 것도 내 마음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연유 중 하나였다.

  성인이 되면, 선택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그 책임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혼자서 밥을 먹는 일은 홀로서는 일의 첫 걸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맥락으로, 성인이 되면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성인이니까 무조건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정상 어쩔 수 없게 된 때에는 혼자서도 즐겁게, 둘이 먹는 것처럼 자신을 잘 돌볼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할까. 군대를 제대한 후에유야, 겨우 혼자서 밥을 먹는일이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혼자놀기'라는 제목이 마음에 든 책이었다. 관계와 어울림을 중요시하는 많은 책들이 나온 이때, 개인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 주는 책이 적절하게 출간되었다고 할까. '개인의 자유'를 좀 더 폭넓게 바라보는 생각들이 예전보다 많이 넓어진 시대상의 흐름을 잘 읽은 책이 나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도 없이 불쌍한 홀로가 아닌, 스스로 고독의 시간을 즐길 여유가 있는 '혼자놀기'. 두 가지 시선에서 두번째 시선으로 옮겨가고 싶다면, 가볍게 이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 가볍게, '혼자서 즐겁게 노는 방법을 소개한 책.'  
 

  사진도, 글도 무겁지 않다. 가벼워 보이는 제목과 글은 어려움 없이 책을 읽어보게 하는 마음을 독자의 가슴 속으로 불어넣는다. 조금만 맘을 바꾸면 쉽게 할 수 있는, '이런 건 나도 말할 수 있겠는걸'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오랜 시간이 들지 않는 일들이 소개되어 있다. 부모님의 욕망에 갈등하고, 부응하고자 애쓰는 시기인 고등학생부터 사회생활을 하기 전인, 대학생때까지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의 여성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카페에 가고, 여관에서 하루의 자유를 누려보고, 조금 더 내 모습과 내 행동을 관찰하고 찾아보는 등 조금 더 나에 집중하는 시도들은 습관적으로 보내는 일상에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과정의 경계로 넘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책에 나온 방법을 행했을 때 장점은 조금 더 사회의 시선을 바라보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 보이지만, 그 시간을 세세히 들여다보면, 나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하고, 그 짧은 시간을 일상의 습관에 휘둘려 아무생각없이 보낼 것이 아니라, 그 틈을 잘 활용해서, 작은 일탈과 자신에게 더 집중하게 만들어 주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사람이, 무리 속에서도 즐겁게 잘 지낼 수 있을거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만큼, 타인에 대한 이해도 함께 깊어지고, 그 한계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사랑도, 관계도 잘 풀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소개된 30가지 주제의 8-90가지의 방법은 저자가 좋아하는 놀이의 방법일 뿐이다. 커피도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이 다양하듯, 각 개인마다 자신만의 혼자놀기의 방법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책에서 소개된 부분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면, 스스로 자신의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립이 아닌, 공존을 위해서라도, 자기만의 공간, 자신만의 신간을 보내는 일은 꼭 필요하다.  

  깊이와 무거움을 원하는 이에게는 잘 맞지 않는 책이라 생각한다. 휘리릭 책장을 넘기다 두어장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부분이 읽다면, 그때 구입해도 좋다고 할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장관을 이제껏 보았다면, 폭포에서 떨어지는 순간의 물방울 하나 하나에 떨어지고 난 후 물방울들이 흘러가는 모습, 폭포 주변에서 피고있는 들꽃에 시선을 돌리게 하는 시각의 폭을 넓여준 책이었다. 뻔한 행동을 뻔하지 않게, 참신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 그 발상이 책에 잘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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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관계가 아닌 자신에 초점을 맞추는 책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여성들을 위한 책이 적절하게 나온 느낌이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여고생 - 20대 후반의 여성.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한계에 도전하는 이유는 내 포기지점을 알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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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법 - 엔도 슈사쿠의 행복론
엔도 슈사쿠 지음, 한유희 옮김 / 시아출판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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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 대한 이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2009년에 대학교 졸업반이 되는 지인과 통화를 하였다. 취업을 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다가,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남과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면접에 들어서게 되면, 일정 수준의 자격은 갖추었으니, 그 이후에는 남과는 다른 자기만의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요지였다. 무엇보다 기획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틀로 잡아내어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기획력이 있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기획 능력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자신있는 분야를 크게 발전시키는 일은 중요하다 생각한다. 꼭 취업이 아니더라도 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하다고 할까. 내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고 있어야 타인을 보는 관점도 좀 더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가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엔도 슈사쿠는 오정희님이 추천한 책소개에서 알게 되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를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책이라는 메시지가 기억에 남아,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면 제일 처음 읽어보아야 겠다고 다짐한 책이다. 『바다와 독약』, 『예수의 생애』등 종교적인 내용을 다룬 소설을 많이 쓰는 작가이기에, 외로이 혼자서 깊은 사색에 잠겨있을거라는 생각이 작가의 책을 만나기 전, 작가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었다. 그런 생각은 저자가 쓴 『전략적 편지쓰기』라는 책을 보고 많이 바뀌게 되었다. 편지쓰기에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의 마음에서 생각해서 글을 쓴다는 점, 상대를 배려하는 점을 가장 중요시하는 마음씨가 글 속에 잔잔히 스며 있었다. 따스한 문체를 가진 작가의 글이라면 타인과의 소통에 많은 배려를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작가의 에세이집을 찾아서 읽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처음 만나는 책이 『나를 사랑하는 법』이다.

   1982년에 출간되어 오랜시간 일본에서 사랑받고 있는 책이라한다. 젠체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잔잔하게 들려주는 배려심 있는 문체에 마음이 끌렸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라는 자기계발서가 아닌, 나약하고, 질투많고, 부족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보는, 삶에 대한 시선을 바꾸어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글이 마음에 닿았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만큼 작품의 깊이가 대단해서, 큰 재능과 편한 삶을 살았을거라 생각했는데, 에세이 속에 닿아있는 저자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수학을 0점맞는 실력으로 어쩔 수 없이 문과에 갔다가 문학선생님 덕분에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삼수끝에 고생해서 대학에 간 이야기, 배우가 되고 오디션도 여러차례 보았지만 떨어진 이야기,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힘들게 4등석 선실에서 고생하면서 유학을 간 경험이 자신감을 키우게 만들어 준 에피소드 등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책의 메세지에 어울리며 글에 대한 설득감을 더 높여주었다.

 
# 강하고, 자기 주장이 세지 않은, 나약한 듯 솔직한, 인간미 넘치는 작가가 전하는 메세지.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쓴 서툰 고백같은 글이기에 더욱 마음이 끌렸다. 어머니의 강요로 받는 세례로 인해 그리스도교를 많이 불편해 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어머니가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에 내 몸에 맞게 고쳐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소설쓰기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결합되어 걸작 <침묵>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유명한 명성을 지닌 최고의 신실한 믿음을 가졌다고 알려진 신부가 에도 시대에 생의 마지막 순간에 결국 그리스도의 얼굴에 발을 밟으며 배신을 하게 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도리어 신의 큰 사랑을 전했다고 할까. 출간당시 기독교 단체의 판금 요청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극복하여 쓴 작품의 뒷 이야기를 알 수 있던 점도 좋았다.  

  모두에게 맞는 해법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힘들고 견디기 힘든 폭풍우가 몰아칠 때, 맞서 싸우기 보다는 조용히 폭풍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잘 맞을거라 생각하며 쓴 글이다.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이가 읽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박약함을 한탄만 하는 마음 여린 사람들이 읽다보면, 힘을 얻을 구절을 많이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 잘나지 않았지만, 자기 생에 만족하면서 사는 친근한 삼촌이 들려주는 조언 같은 책이라고 할까. 편안하게 다가서도, 방향을 제시해 주는 글이 마음을 토닥여주었다.  

  거울을 바라보며 "나는 정말 멋져,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서툰 말솜씨를 잘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다른 이의 말을 잘 맞장구치고, 주의깊게 들어주는 능력을 키우고, 나의 결점은 나의 장점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꼭 기억하기로 다짐하였다. 능력이라는 것은 젊은 시절에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겨, 나를 변화시키는 작은 계기를 눈을 크게 뜨고,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기로 다짐하였다.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뻔해 보이는 말이지만, 전하는 방법이 세련되어, 마음이 훈훈해지는 책이다. 어설픈 자기계발서나 이 기술만 익히면 성공할 수 있다는 처세서들보다는 저자가 주장하는 나약한 자신, 보통의 자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직시하는 일을 먼저 하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 다음은 자기 삶의 방식을 진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실천해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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