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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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마음에 무늬를 새기다.
 
 
  일상을 살다보면, 끊임없이 일에 치여, 마음에 점 하나 찍을 여유가 없어진다. 반복되는 일 속에 감정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 며칠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서로 얼굴을 붉히고, 그러다 내가 왜 이러나 싶어 우울해지는 일이 반복해지다 보면, 한동안 하늘을 쳐다 볼 여유 없이, 그냥 일에 치여, 시간에 쫓겨 하루하루 살았음을 깨닫는다. 개그프로에 웃고, 드라마에 대신 마음을 맡긴 채 지나버리는 일상에 빠지다 보면, 하루에 마음에 무늬를 새길 기회는 사라진다.
 
  시집을 읽는 이유는 마음에 시인의 목소리를 따라읽다보면 생기는 무늬를, 가슴에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달콤한 연애시에서는 사랑의 감정세포가 만들어낸 하트의 무늬가 자리잡는다. 세상의 부조리를 외치는 시에서는 날이 바짝 선 대나무 무늬가 만들어진다. 아픔을 감싸안으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에서는 동그라미 하나가 마음에 들이찬다.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시인의 목소리에 마음을 빈 도화지로 만들어 시인이 외치는 글 하나하나에 떠오르는 느낌을 마음의 붓으로 그림을 그려본다. 
 

     .....

    배를 채우는 일은
 
    뜻밖의 밑줄들을 지우는 일이겠습니다만
 
 
   식사를 마칠 때까지
  
    여자도 나도 반찬 그릇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밑줄」, 28-29p
 
 
  역전 식당에 사람들은 붐비고, 자리에 앉은 나는 모르는 여자와 합석을 하게 된다. 서먹서먹 앉아 있는데, 종업업은 동행인 줄 알고 반찬을 한 벌만 가져다 준다. 낯선 이와 함께 하는 첫 순간이 얼마나 서먹하고 어려운지, 짧은 단어와 글은 영상보다 더 많은 그림을 보여주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

 
   
「찬란」, 34-35p
 
 
  아름다운 장면 위주로 사진을 많이 찍는다. 예쁜 꽃이 활짝 피었을 때, 야경의 불빛이 아름다울 때,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있을 때 등 다시 보았을 때,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순간 위주로 사진을 찍게 된다. 순간의 한 장면에 주목하지 않고, 꽃이 피기 전에 겪었을 겨울의 공간에서 봄의 따스한 기운으로 흙을 뚫고 나오는 순간에 주목하는 시인의 시선이 좋았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찬란이고,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많은 사건들을 찬란의 시선으로 보는 시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상을 바라봤던 시선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시는 시인이 혼자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남긴 시가 독자의 마음에 들어와 하나의 꽃으로 피어났을 때 완성된다 생각한다. 좋은 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로 읽고 싶은, 자꾸 읽고 싶어지고, 다시 생각하고, 찾게되는 시가 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마음 속에 가득차 있던 스트레스와 우울의 감정이 사라졌고, 두 번 째 만났을 때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되었다. 세 번째 읽게 되니, 시인이 그려내는 그림과 내가 느낀 감상을 함께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시집을 읽고 나니, 창밖의 풍경이 궁금해졌다. 오랜만에 바라본 창밖의 풍경에는 물러나는 겨울의 기운과 조금씩 다가오는 봄의 기운이 함께 공존해 있다. 그냥 지나쳤던 꽃들과 나무들도, 마주치지 않지만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왠지 남이 아니라 느껴졌다. 지인이 생각나 문자를 보내고,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었다. 2주동안 삶의 방향이 변했던 지인의 앞날을 응원하고, 그동안 달라졌던 내 마음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인과 나누었던 일방적인 대화가 즐거웠기에, 일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사랑의 온기를 나누는 일탈을 경험하게 되었다 생각한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를 피하게 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시가 우리에게 필요한지 『찬란』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 보았다. 『끌림』이라는 산문집에 끌려, 만나게 된 시집이다. 산문도 좋지만, 시인의 시도 그에 못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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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
노익상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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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착하지 못한 서러움.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이가, 집을 장만하고 살림을 꾸려가는 일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자수성가한 부자들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 역시, 그런 처지에서 자신의 부를 늘리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잠을 잘 수 있는 방 한 칸, 요리를 할 수 있는 부엌 하나, 나만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아파트와 전통가옥 등 집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외딴집과 외주물집, 독가촌 등의 가난한 이가 살아가는 살림집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하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10년의 세월을 이에 관련한 자료를 조사하고, 가난한 살림집에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유랑하는 사람들이 정착을 꿈꾸며 살아가는 공간을 하나씩 살폈다.
 
  조선시대, 벼농사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마을의 질서가 강한 곳에서, 버림받거나, 형편이 되지 않아 떨어져 나갔던 이들이 겪어야 하는 설움이 그들이 사는 살림집을 통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일제시대이후 진행된 간이학교와 보통학교, 한국전쟁, 새마을운동, 군사정부에서 시행한 문화주택, 시민아파트, 강제이주 등의 다양한 사건 속에서 가난한 이들이 어떻게 떠밀리며 살아가는지 생생한 사진을 통해 전해준다.
 
 
#  우리에게 남아있는 '텃세'에 대해 생각해보다.
 
 
   외딴 집에서 혼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풍경은, 옛 시대와 맞지 않는 표현임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벼농사라는 마을 사람들이 협동해서 해야 하는 일이 많을수록, 마을 내의 사람들의 인정은 도타워졌지만, 거기에서 멀어진 밭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지배층에 논리와 함께, 소외되면서 힘겨운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음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텃세'가 왜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할까.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를 거치면서, 돈이 텃세의 위력을 많이 없애주고, 공동체의 행사가 사라지면서, 조금 더 혼자서 사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사회 전체의 분위기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여전히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분교와 간이역을 가난한 이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소외받았던 사람들이 정규 교육을 받아, 더 나은 기회를 받을 기회를 받았다는 설레임을 자극했던 분교의 힘과 기차를 통해 도회지로 떠밀려갔던 사람들의 풍경을 느꼈다. 점점 더 돈이 많은 걸 대신해주는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데, 아직도 외주물집과 외딴집보다 못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있다. 특히 서울같은 대도시에는 옥탑방과 고시촌, 반지하방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가난한 이의 살림집을 돌아보는 일이, 과거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삶이 힘겨웠던 이의 발자취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이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점점 세상은 좋아지지만, 가지지 못한 이들은 힘겨운 생활을 해야 하는 현실을 사진들을 통해 생생히 느꼈다. 집이 전해주는 기본적인 생활공간의 역활도 해 주지 못한 공간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 공간에서의 탈출을 꿈꾸지만, 그들 역시 독립해서도 반지하 등과 같은 공간에서 사는 현실을 확인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
 
  세상에서 전해지는 마음 아픈 뉴스를 볼 때면,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이, 따뜻한 인심을 가졌다는 생각을 가지기 어렵다. 가난한 이는 교육받을 기회도 없기에, 자신들의 권리를 찾는 일을 모르기도 하고, 어색해 한다. 그들이 배우지 않았기에 라고 외면하기보다,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더 신경써 줘야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월을 빌어본다. 난 얼마나 가난한 이의 삶에 관심을 가졌는지 돌아보면 부끄러워진다. 이기적인 마음이 부끄러움을 알려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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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이현주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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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와의 추억.
 
 
 
  일제시대에 일본에 가서 탄광에 가셨던 외할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스타일이었다. 많은 이야기보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몇 마디만 말씀하셨다. 그땐 몰랐지만, 꼭 알아두어야 했던 이야기들이었다. 지식을 많이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많이 욕심내지 않고, 스스로 땀 흘려 농사를 짓고, 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살아가다 보면, 욕망에 솔깃해서, 더 큰 욕심을 위해 다른 것들을 외면하려는 생각이 마음이 스미기도 한다. 땀 흘려 일하시는 모습이, 마음에 보석처럼 남아,  나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었음을 깨달았다. 진부한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꺼내는 이유는 첫째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라는 책의 저자가 할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할아버지가 살아 지혜로운 말씀을 하신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셨을 거란 생각이, 읽는 내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묻고 싶던 질문들이 담겨있다.
 
   
  아이들이 손글씨로 질문한 내용을, 저자인 할아버지가 손글씨로 하나하나 답을 했다. 손으로 쓴 마음들이 오고가며 쌓여간 따뜻함이 가득한  책이다. 집중력, 변덕스러운 마음, 계획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 커서 뭘 하게 될지 궁금하다는 등 아이이기에 할 수 있는 많은 질문들이 동심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일을 잊고 산다. 질문을 해 봐야 들리지 않는 답변에, 지친 마음이 오랜 시간 쌓였기  때문이다. 질문을 할 여유와 낭만이 사라진 자리에는 권태와 우울의 기운들이 일상을 차지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다른 어른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몰라도 돼, 나중에 크면 알게 될거야’라는 대답만 들었던 질문들의 답변들은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다독이게 했다. 할아버지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읽어갈수록 다음이 궁금한 책을 만나기 어렵다. 읽을수록, 어떤 이야기로 아이에게 대답을 해 주었을까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다.
 
 
# 친절한 할아버지의 대답에는 지혜가 스며있다.
 
 
  질문을 대하는 대답의 시선이 좋았다. 그래, 당연히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어. 할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해로 이어지는 친절한 답변에는 아이를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중하는 지혜가 스며있다.
 

  무슨 일을 하다가 싫증이 나면 금방 그만두게 된다고? 그게 뭐 어때서? 싫증이 나는데도 억지로 계속하는 것보다는 그만두는 게 훨씬 낫다고 나는 본다. ... 네가 하고 싶고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그 일을 하면 될 것 아니냐? .. 요즘은 사람마다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쪽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그점에서 너희가 우리보다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더욱 많고 따라서 세상은 지금보다 더욱 좋아지고 재미있어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선 계획을 세웠으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빈틈없이 그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리는 게 좋겠다.
 
  내가 별 짓 다해도 남의 마음을 내 맘대로 돌리거나 바꿀 수는 없는 일이거든. 많은 사람이 이 점을 잘 모르는 것 같더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거나 상대를 미워하기 까지 하는데, 그것은 사과나무한테 배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억지를 부리는 거야.
 
  내가 보기엔 넌 바람직한 질문을 하고 있다. 그래, 그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렴. 그것이 너를 훌륭한 사람으로 이끌 테니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네가 찾은 ’대답’이 아니라 그의 가슴에 묻혀있는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해.
 
  "사람이 잘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것을 감추고 고치려 하지 않는 것이 진짜 잘못이다."라는 옛말이 있단다. 우리 모두 ’진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되어보자꾸나.

 
  탄복할 만한 특별한 대답은 없다. 쉽게 다가서는 여유로움과 따스함이 가득한 책이다. 한 호흡에 읽어보게 하는 화법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아이의 질문에 답할 때, 어떤 시선에서 답해야 하는지, 내가 잊고 사는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그의 가슴에 묻혀있는 질문이라는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살아가면서, 고민해야 할 질문과 대답을 얻을 수 있어, 독서하는 시간이 즐겁다.
 
  환경을 생각해 숲을 살리는 재생종이를 쓰고, 표지에 코팅을 하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국내 종이사용량의 24프로가 책을 만드는데 쓰인다. 재생종이를 사용하는 책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점에서 환경친화적인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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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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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의 삶에 친화적이고, 호의적인 저자가 쓴 여성 인물 이야기.
 
 
  시대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의식이 먼저 변하고, 제도와 사회통념은 그 다음에 많은 갈등과 사건들을 거친 후 변화한다. 오랜 시간 남성우위의 문화에 젖어있기에, 남녀평등이 바른 방향이라는 걸 알지만, 현실에서는 동등한 조건에서 남성의 삶이 더 가산점을 받는 부분이 있고, 남자이기에, 기득권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많은 짐을 져야 할 때도 있다. 성은 남녀로 나뉘지만, 현실에서는 부와 건강, 재능과 노력의 차이로 다양하게 갈리기 때문에, 남녀의 우월함을 놓고 다투기보다 남녀의 역할과 방향설정에 대해 논의하는 걸 좋아한다.
 
  역사의 영역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기는 쉽지 않다. 문자가 기록된 이후로 많은 남성들이 역사의 필자로 참여했고, 여성에게는 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기록되는 행운을 지닌 여자는 주로 극단의 역할을 맡았던 이라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는 이유이다. 사회의 제도의 틀을 지나치게 순응하거나, 항거하여 벗어난 이만이 숭배와 매도의 대상으로 기록될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자의 삶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어머니에 대해서 강한 애정의 손길이 가득했다 생각한다. 남성을 낳아준 이가 어머니이기 때문일까? 충효를 강조했던 사상의 영향도 있다 생각한다.
 
  역사인물만 다루었다든지, 예술가만 다루었다든지, 특정 장르의 여성 인물이 주인공인 책은 만나보았지만, 시대와 생존의 유무를 뛰어넘어 다양한 여성들을 다룬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역사속의 여성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영화, 소설에서의 여성도 작가의 눈길에 끈 여성은 에세이의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작가의 편향적인 시선과 여성 친화의 시선이 담기었지만, 예찬의 일색에서는 벗어난, 지나치게 편파적이여서, 공정함을 잃지 않은 에세이가 가득한 책이다. 편향적인 시선을 통해, 한 시대를 살았던 여성의 삶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도 함께 읽을 수 있다.
 
 
#  인물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녀들의 삶을 재조명하다.
 
 
  비타협적, 혁명적, 국제주의적 사회주의자이면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유를 존중했던 로자 룩셈부르크를 시작해서, 강금실 변호사까지 34명의 여성이 책에 등장한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여성들을 저자의 글을 통해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권력의 반대파에게는 냉혹했지만, 민생과 권력의 기반을 다지는데는 능숙했던, 당의 전성기의 초석을 놓았던 무 측천과 펜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관점에 따라 역사상 최초의 소설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겐지 이야기의 저자 무라사키 시키부와 천일야화의 주인공 세헤라자데까지,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여성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여성은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계몽의 시선이 없는 점이 가장 좋았다. 역사적 이야기의 루머를 통해, 사치를 일삼으며 멍청했던 여인으로 낙인찍힌 마리 앙투아네트의 루머를 벗겨주고, 단두대와 혼란의 시대 폭동으러 변해버린 혁명의 잔혹함을 인식하게 하는 부분이 좋았다. 어떤 도덕적인 선을 정해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선택과 시대의 상황을 보여주며, 그 인물의 결을 드러나게 하는 이야기의 방식에 끌렸다.
 
 
#  동의하고 부정하다 보니, 지나가버리는 시간들.
 
  
  책을 읽다보면, 그녀들의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가치관과 만나게 된다. 독선적인 마더 테레사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다른 점을 발견하였다. 신의 존재에 헌신하지 않고, 끊없이 회의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향해 투쟁한 그녀를 존경하는 그의 평가에는 동의하였다. 요네하라 마리에 문체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 점에서는 분노의 기운이 솟아났지만, 살아있었다면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충실한 독자라는 점은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하였음을 느꼈다. 진솔한 문체를 좋아하는 나와 상투적인 문체를 싫어하는 저자와의 차이를 통해, 한 인물을 대해 저자와 카페에서 논쟁하는 기분이었다.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 각자의 현재의 위치를 바라보게 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게 되는 부분이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점이라 생각한다. 독자를 압도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방식에, 상대의 자유를 인정하는 자유주의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저자가 언급하지 못한, 많은 여성들이 있다. 여성 최초의 대통령, 여성 최초의 학장, 여성 최초의 검찰 등 여성 최초라는 말이 뉴스에 등장하지 않을 때, 진정한 남녀평등이 시대가 시작된다는 생각을 했다. 책과 자료조사를 통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여성들이 많아졌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서른 네명의 여자들에 대한 생각들이 독자들의 흥미를 끌고, 그 생각이 깊이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자의 생각은 흥미로웠다. 깊이는 앞으로 경험과 지혜가 쌓여갈수록, 조금씩 깊어질 것 같다. 다양한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여성 우월과 남성우월의 시각을 지닌 이가 아니라면,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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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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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의 시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다.
 
 
  욕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생각대로, 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세상을 살라는 메시지가 TV에 책에, 신문에 가득하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욕망을 근거로 성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욕망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욕망이 사라진 공간에 맑은 마음이 들여차고, 맑게 개인 눈에서는 만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가 먹을 것,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대상이 아닌,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눈으로 보는 시선을 가진 이에게는 세상은 또다른 배움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욕망의 시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일은 사치스러워 보인다. 그렇게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면 배고파 죽기 딱 좋다는 이야기가 세상을 떠돈다. 실제로 저자는 젊은 시절, 지독한 가난에 빠져 힘겹게 살아온 경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젊고 건강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저자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절대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발언의 뒤에 그가 겪었을 기나긴 가난의 시절이 느껴졌다. 모든 걸 잃어본 사람이 많은 걸 얻을 수 있다는 말처럼, 가장 낮은 자리까지 겪어 본 저자의 이야기이기에, 소설보다 그의 생각이 담긴 산문을 좋아한다. 선과 악을 나누고, 남을 가르치려는 듯한 작가만의 필체가 거북하지 않는 이에게는, 저자의 글은, 세상의 삶에 빠져, 무언가 잊고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영혼의 숨결로 바라보는 추상적인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  글이 아닌,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책.
  
 
  우화상자인데 우화의 의미가 다르다. 동물을 빗대어 한 이야기가 아닌, 동물을 빗대어 그린 그림 상자라는 메시지에서 현실을 살짝 비튼 여유가 보인다. 춘천의 의암호 아래에 사는 물벌레와 도깨비가 주인공이다.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는 물벌레와 외모가 아름다운 금붕어, 의암호의 무적생물 베스와 다양한 물고기들이 부딪치는 이야기를 통해,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춘천을 배경으로 해서, 춘천에서 일어나는 행사인 마임축제와 다른 여러가지 이야기들도 소개된다. 군대를 마치고 나서, 춘천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이외수씨의 문학작품이 소개되어 있는 길을 거닌 적이 있다. 지금은 홍천 감성마을에 살고 있지만, 한때 춘천에 머물렀던 작가의 춘천에 대한 사랑이 함께 느껴지는 책이기도 하다.
 
 
#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닌 이는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육안과 뇌안, 심안과 영안, 사물을 보는 네 가지 시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과 하나를 보더라도 육안의 눈으로 보면, 침이 고이고 사과를 먹는 일이 음식물을 사랑하는 일이 된다. 뇌안의 눈에 사과는 탐구의 댕상이지만 본성에 이르지 못하고 현상에 머물러 있다. 심안의 눈을 지닌 이는 사과를 보면 감동한다. 사과 속에 들어있는 시와 하나의 사과에 들어있는 사과와 은총을 보게 된다. 진정한 예술은 심안에서 출발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영안의 눈으로 사과를 바라보는 이는 깨달음을 얻은 인간이다. 신의 본성과 우주의 본성과 자신의 본성과 사과의 본성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다. 삼라만상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달은 이의 눈이다.
 
  
  오늘 그대가 흘린
  슬픔과 고통의 눈물이
  내일 그리운 이의 가슴에
  사랑의 감로수가 되리라.
 
 
  아름다움을 알고,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늘 마음은 맑음을 꿈꾸지만, 현실은 많은 갈등 속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욕망과 갈등에 고민하며 살게 된다. 욕망이 이끄는 삶을 쫓는 현대사회의 풍경을 물고기 속의 물벼룩을 통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우화집이다. 이야기보다 그림을 더욱 강조한 책이기도 하다. 2001년 출간된 책에 컬러의 색을 입힌 재개정판이다. 디자인과 색감을 중요시하는 이에게는 개정판도 나쁘지 않다 생각한다.
 
  맑은 호수 옆에서 읽으면 좋은 책이다. 속도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을 때, 책을 통해 생각을 다시 한 번 가다듬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문화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미국과 서양 문물의 극심한 유입을 우려하는 시선이 가득하다. 독특하게 많은 부분이 피씨통신체인 맞춤법에 어긋난 글로 채워진 책이기도 하다. 규칙을 잘 지키는 이의 의도적인 일탈의 이유를 한 번 더 곱씹어보게 된다., 담백한 기운이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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