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수 많은 사람들의 민주화 열망으로 얻어낸 백지 한 장. 꾸준히 지켜내려는 노력이 없다면, 쉽게 더럽혀진다.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사회가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국가 경제는 OECD의 일원이 될 만큼, 부유하게 되었고, 선거제도도 그때와 비교하면 많이 깨끗해졌다. 빨갱이로 몰리면, 잡혀가서 누구도 모르게 죽을 수 있었던 불안의 시대에서, 당당하게 항의는 할 수 있는, 시대로 변했다. 이러한 민주화의 성과는 그 당시의 여당이나, 지도계층이 '옛다, 너희들 고생했으니, 이제 좀 편하게 살아라'하고 선심쓰듯 준 것이 아니다. 독재의 숨결을 견디지 못했던 청년들의 외침과 항거, 노동자들의 눈물, 서민들이 지금 당장의 생업을 잠시 잊고, '아, 이건 아니잖아. 이제 그만하고 물러나라'라는 자신의 피해를 감수하는 희생의 결과이다. 부모님이 떠난 후에야, 그분들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듯이, 민주주의 역시, 민주주의가 상실된 그때, 절실히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세상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 변했다. 이게 다 자본주의가 심화되어, 양극화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30년전에는 이웃간에 살뜰히 공동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어려운 상황을 도우려는 실천적 노력이 많았는데, 지금은 전화 한 통의 후원금, 양심에 찔리지 않을 만큼의 기부 등으로 자신을 위안하거나, '그런 건 정부가 해야지'라며, 모르쇠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들이 생각을 교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앞만 보는 시선을 돌려,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도전해 볼 기회조차 잃어버린 채, 절망에 빠져버린 이들을,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거라며 매도하지는 시선만 거두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사가 소중한 이유는 과거의 체험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역사는 과거의 기억을 해석하는 하나의 틀이다. 예전에는 정부의, 일방적인 관점이 역사인식을 주도했다면, 지금은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한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어두운 기억이 많다. 그 틈새에 어둠을 환한 빛의 공간으로 바꾼, 결과적으로 지는 싸움이였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바꿔, 함께 사는 공간을 만들어 낸 6.10 항쟁이 있다. 지금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과, 6.10에 문외한 사람들이 그 당시를 쉽게 들춰볼 수 있는 만화의 얼굴을 한 책이 출간되었다.
 
 
# 간단한 구성, 간단하지 않은 메시지.
 
 
  가난한 형편에 장남과 영호만 대학을 갈 수 있었던 1989년, 빨갱이와 당장 북한이 물을 내려보내면, 홍수가 난다며, 평화의 댐을 짓자고 정부가 일방적인 여론을 왜곡했던, 당신의 영호가족이 주인공이다. 영호를 위해 공장에 취직했다가,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대학생들이 처참하게 고투를 겪었던 모습을 괴로워하던 누나, 빨갱이라는 말에 자신의 어머니가 총살되어, 트라우마에 갇혀 사는 영호 어머니, 가정의 형편과 장남이기에, 민주화에 나서지 못했던 직장인 영호 형, 외면하고 거부하는 척 하지만, 결국 발을 들이고 마는 영호와 계속 민주화 운동을 하던 영호를 반대하던 아버지까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6.10을 만나는 과정이 책에 담겨있다.
 
  지금의 시선에서 상상도 못할 일들이 그때는 일상이였음을 등장인물들은 전해준다. 민주화는 의식있는 사람들이 혼자서 열렬히 싸워서 이뤄낸 성과물이 아니라, 힘없고, 무력했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자신의 피해를 감수하고, 지는 싸움이 될거라는 걸 알면서도 서로 힘을 모았기에 가능했다는 사실과 만난다.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려서 얻은 결과는 고작 투명한 백지 한 장일 뿐이라는 말이 마음에 닿았다. 함께 힘을 모아 정성스럽게 써야 하는 백지 한 장, 얼룩으로 더럽혀진 지금의 현실을 보며 환멸을 느끼게 하는 정치를 계속 외면한다면, 얼룩진 종이는, 얼룩에 익숙해져, 깨끗함으로 돌아감이 불가능해 보인다.
 
  똑같은 사안도 각자 자신의 위치와 생각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한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민주화를 외치는 그런 세상은 이제까지 오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오기 힘들다 생각한다. 다만, 소수의 인물들이 권력을 나눠지고, 통제하는 일을 당연시 하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바뀌어야 한다. 용산 주공참사와 쌍용자동차의 노조원의 투쟁의 과정을 지켜보며, 더 이상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 누구도 고용을 보장해 줄 수 없는 현실과 만났다. 누군가의 외면속에서, 결국 상처받는 이는 생기고, 그 상처받는 이가 힘 없고, 빽없는 약한 사람들이라는 현실에 눈물이 난다. 홍수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피해보는 이들은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다. 힘없고 빽없는..., 당장 내가 그런 위치에 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위한 구제 방안을 돕기 위해 노력하려는 마음을 잊지 않고, 지지하는 일이, 함께 사는 사회를 사는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이 되어야 한다 생각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세상이 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게으르고, 나태하며, 기회를 악용하려는 마음이 존재한다. 그 마음들 깊숙한 곳에는 현실을 딛고, 희망을 향해 도전해보려는 마음 역시 존재한다 생각한다. 한 사람이 당장 바꾸긴 어렵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피해를 조금 감수하는 시간과 순수한 열정들이 그런 사회로 가는 지름글이라 생각한다. 마음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공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화에 대해, 건강한 사회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나만 잘 사는 삶을 싫어하는, 지인과 함께 읽고 대화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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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9-08-27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하려고 사요. 근데 비이님 리뷰가 보여서 땡스투 날려요^^

쿨앤피스 2009-08-27 13:00   좋아요 0 | URL
하하. 선물 받은 이에게 좋은 책 선물하시네요. 고맙습니다 뒷북소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