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를 뿌리면서 부터 시작된다. 새 순은 언제 돋아나는지, 하루에 얼마나 크는지, 꽃봉우리는 언제 맺히는지, 이번엔 무슨 색으로 필지, 아침이슬을 이는지, 비 무게는 견딜 수 있는지, 바람이 불때는 얼마만큼 고개를 숙이는지 혹여 가뭄에 목은 마르지는 않는지?.

꽃봉우리가 맺히고 나서부터는 키만 키우고 부실해 보이는 꽃대가, 무게를 더하며 자꾸만 부풀어 가는 꽃붕우리가, 벌어지는 꽃봉우리에서 어떤 색깔이 나올지, 활짝 핀 꽃은 며칠이나 갈지, 맺힌 씨방엔 꽃씨가 얼마나 담기는지?.

다?. 감당할만큼씩만 스스로 키를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다는 것을 알지만 매번 잊고서 의심스런 눈길을 보낸다. 

개양귀비가 절정에 이르러 꽃잎을 떨구기 전이다. 꽃술의 품에 안겨 속내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씨방에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다.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숙명이다.

다음 생은 따로 있지 않고 오늘 이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려고 내게 왔나 보다. 어제와 내일이 오늘 이 순간에 공존한다. 

미래가 궁금하거든 오늘의 나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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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앵도나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식물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세심한 주의력과 관찰력을 요구하는 식물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알기 위한 노력을 요구한다. 하여, 낯선 길을 나서거나 무엇인가 있을 듯한 곳은 서슴없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올해 내가 새롭게 만난 다수의 식물이 그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늘상 다니던 길의 각시괴불나무가 그렇고 산앵도나무, 자주풀솜대, 참작약이 그렇다. 산과 들에서 만난 꽃친구들의 넉넉한 마음도 한몫 한다.


푸른잎 사이로 가지끝에 달려 빼꼼히 세상 구경 나온 듯한 모습이 앙증맞다. 과하지 않은 색감이 더해지니 귀엽기가 둘째가라면 삐질 것만 같다. 붉은 빛이 도는 종 모양의 꽃이 참 이쁘다. 달고 새콤한 맛이 난다는 열매는 9월에 붉은색으로 익는다고 한다.


한번 보이면 자주 보인다. 장소를 달리하여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지리산 노고단과 세석평전 주변에서 실컷 봤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게 만든 나무다. '오로지 한사랑'이라는 꽃말이 의미심장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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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꽃을 보기 위해 산과 들로 간다. 그 시작을 떠올려 보면 나만의 그럴싸한 이유를 댈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식물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이다.

이런저런 세상살이에 지쳐 있을 때 찾아가면 언제나 환한 미소로 반겨주지만 찾아온 이유를 묻지 않아서 좋았다. 이것은 순전히 내가 식물에 기대는 것이라서 식물들은 어떤지는 모른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세상과 멀어진 내가
세상으로 난 길 쪽으로
한 뼘씩 기울어 가는 일"

*김부조의 '소중한 일'이라는 시에서 만난 이 싯구가 한동안 머리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자꾸만 지난 삶을 돌아보게 한다. 

꽃이 안내한 길을 걷다보니 '세상과 멀어진 내가 세상으로 난 길 쪽으로 한 뼘씩 기울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중심에 산과 들에서 만난 꽃이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꽃으로 난 길을 걷다가 만난 사람이 있었다. 

서툴지만 너무 느리지 않게 세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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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닭개비'
아침에 일어나 산책하듯 뜰을 거닌다. 아침을 깨우는 새들만큼 부지런한 꽃이 환한 미소로 반긴다. 인근에 사는 분이 나눔해준 꽃이 1년 사이에 제법 범위를 넓혔다.


색의 조화가 만들어낸 절묘함이다. 어울림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듯 멋과 맛을 함께 보여준다. 만개한 널 보려면 햇살 환하게 비치는 아침이 좋다.


꽃은 5월경에 피기 시작하고 자줏빛이 돌며 꽃줄기 끝에 모여달린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3개씩이고 수술은 6개이며 수술대에 청자색 털이 있다.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날이 흐리거나 오후가 되면 시든다.


식물체를 통해 환경의 상태를 알아낼 수 있는 식물을 지표식물이라고 하는데 자주닭개비가 방사선에 대한 지표식물이다. 오랜 기간 동안의 방사선의 노출정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의 주변에 심고 있다고 한다.


자주달개비라고도 불리지만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자주닭개비가 추천명이다. 이 곱기만 한 꽃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외로운 추억', '짧은 즐거움'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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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맞춤이다. 숲에 들면 한없이 느려지는 걸음에 익숙하다. 좌우를 살피고 위아래도 봐야하며 지나온 길에 돌아도 봐야 한다. 높이를 달리하고 속도가 변하면 일상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거기에 있다. 일부러 그렇게 봐야할 이유를 밝히기 전에 당연시되는 행동이다. 숲에 들어 생명을 만나기 시작한 후로 달라진 태도다.

문득 눈을 들어 몇 걸음 앞 허공에 멈춘 꽃을 본다. 희미한 빛을 품고서 자신이 본래 간직한 순한 빛을 발하고 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순간이다. 사소한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는 세심한 눈길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눈맞춤이다. 느린 움직임을 멈추고 내쉬는 숨마져도 조심스럽게 가만히 바라본다.

적절한 때와 장소 그리고 그 앞에 멈춘 내가 하나되어 꽃이 되는 순간이다. 순백의 지극한 아름다움에 가슴이 먹먹하다.

꽃이 핀다고 그 꽃이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는 안다. 관련된 모든 인연의 정성을 다한 수고로움으로 꽃이 피듯 사람의 만남도 그러하다. 사람과의 만남, 그 만남으로 인해 형성되는 공감, 이 모두는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져 꽃으로 피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대는 이미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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