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사랑이 데굴데굴, 앵도화櫻桃花

絳葩春艶艶 강파춘염염

朱實夏團團 주실하단단

붉은 꽃 봄날에 곱디 곱더니

빨간 열매 여름날 동글동글해

고려사람 이규보(李奎報)가 앵두를 노래한 시의 첫 두 구절이다. 꽃과 열매가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하게 그려졌다. 옛사람들은 빨갛고 이쁜 앵두를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이” 의 모습을 비유하는 많은 시를 남겼다.

一雙玉手千人枕 일쌍옥수천인침

半點櫻脣萬客嘗 반점앵순만객상

한 쌍의 옥 같은 손 천 사람이 베개 베고

반 점의 앵두 입술 만 사람이 맛 보네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대목이다. 앵순(櫻脣)은 즉 앵두 입술이다. 여인의 입술에 대한 비유가 여기에 이르러 최고봉에 오른 것이 아닌가 싶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세종과 문종 사이에 앵두를 두고 벌어진 일화가 전해진다. 앵두를 좋아한 아버지 세종을 위해 아들 문종이 궁궐에 앵두나무를 심어 궁궐에 온통 앵두나무뿐이었다고 한다.

*꽃 보기를 즐겨하여 여러 가지 과실수를 심었다. 덤으로 열매까지 얻을 수 있다면 좋은 일거양득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심은 나무 중에서 꽃보다 열매에 주목한 것이 이 앵두나무다. 혹여 때맞춰 손님이라고 온다면 인심을 크게 써도 좋은 것이라 의도가 컷다.

크지 않은 나무가 가지마다 수없이 많은 꽃을 피운다. 그것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데 빨갛게 익은 열매를 보면 그 꽃이 다 열매로 맺힌 것 아닐까 싶게 넉넉한 품을 풀어 놓는다. 감당 못하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의도를 가진 주인이다. 수시로 따먹기도 하지만 마침 외출이라도 할양이면 한 봉지 가득 들고 나가고 그래도 남는 것이 많기에 담장을 사이에 둔 할머니들에게 나무를 통째로 내맡기기도 한다. 할머니들의 입가에 번지는 달콤한 미소는 앵두보다 이쁘고도 달았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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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초
우연한 발견이었다. 제법 큰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 서식지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겨우 한두개체를 만나거나 남의 꽃밭에서 보던 느낌하곤 전혀 다른 느낌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오래두고 볼 수 있길 바란다.

제법 투툼한 질감에 털 많은 잎을 아래에 두고 하트 모양으로 갈라진 다섯장의 홍자색 꽃이 둥그렇게 모여 핀다. 색감이 주는 독특하고 화사한 느낌이 특별한 꽃이다.

앵초라는 이름을 가진 종류로는 잎이 거의 둥근 큰앵초, 높은 산 위에서 자라는 설앵초, 잎이 작고 뒷면에 황색 가루가 붙어 있는 좀설앵초 등이 있다.

꽃이 마치 앵두나무 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앵초라고 하였다는데 그 이유에 의문이 들지만 꽃에 걸맞게 이쁜 이름이긴 하다. ‘행복의 열쇠’, ‘가련’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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嗛 마음에 맞을 겹

우연히 한자 한자를 들여다 본다. 마음에 맞을 겹이다. 평소 주목하고 있는 '겹치다'에 닿아있어 그 의미를 헤아려 본다. 겹은 거듭하여 포개진 상태를 일컫는다. 겹쳐지려면 겸손함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서로가 통하여 겹에 이르러야 비로소 마음에 맞는다.

뜰에 핀 작약이 빛을 품었다. 화사한 꽃잎이 서로를 품으니 더 깊어진 색으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겹쳐지니 비로소 조화로움을 얻어 생기롭다.

겹쳐져야 비로소 깊어진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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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가만 있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성을 다하여 기회를 만든 후에야 비로소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꽃을 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멀리 있어 보지 못하고 아쉬워만 하다가 오는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먼길을 나섰다.

죽령 옛길을 올라 그늘진 경사면에서 첫눈맞춤을 했다. 올해는 청태산 숲에서 만났다. 몇번의 눈맞춤이 있었다고 꽃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 느긋하다. 빛을 품고 제 속내를 드러내며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꽃마음이 불원천리 달러온 그 마음에 닿았나 보다. 반짝이는 보랏빛 꽃술을 품는다.

처녀치마, 특이한 이름이다. 땅바닥에 퍼져 있어 방석 같기도 한 잎에서 치마라는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꽃이 필 때는 작았던 꽃대가 활짝 피면서 쑥 올라온다고 한다.

차맛자락풀이라고도 하며 비슷한 종으로는 칠보치마와 숙은처녀치마가 있다. 숙은처녀치마는 지리산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 올해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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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생살을 찟듯 묵은 둥치를 뚫고 움을 틔웠다. 가능성으로 출발한 꿈이 현실화 되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나무 둥치에 봄볕에 병아리 나들이 하듯 싹이 돋았다. 보아주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를 자리다. 애초에 설 자리가 아닌듯 싶으나 그건 구경꾼의 심사에 지나지 않을뿐 싹은 사생결단의 단호함으로 이뤄낸 결과일 것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이 봄 뿐이겠냐마는 더디기한 한 봄을 애써 기다린 이유가 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꿈을 펼치느라 곱고도 강인한 싹을 내는 식물의 거룩한 몸짓을 본다. 일상을 사느라 내 무뎌진 생명의 기운도 봄이 키워가는 새 꿈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봄은 틈이며 숨이자 생명이다.

그 봄 안에 나와 당신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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