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크게 구분한다면, 절대음악(absolute music)과 표제음악(program music)이 있다. 음악 용어이기도 하지만, 서양음악사에서 이 둘이 주축이 되어 있음을 안다면 클래식 음악 감상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절대음악은 음악만으로 음악을 표현하고 음악이 표현 내용이 된다. 즉 순수한 음악을 표방한다. 반면에 음악 말고도 다른 예술, 사상, 상징 등을 표현 수단으로 삼는다면 표제음악이 된다. 다시 말해서 절대음악은 음악만이 음악의 목적이면서 수단이 되지만, 표제음악은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표현 수단으로 음악을 표현하고 음악으로 어떤 의미를 표현한다.
절대음악은 어떤 기분이나 감정을 일체 암시하지 않는다. 대부분 기악곡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어떤 음악이 기악곡인지 여부가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을 구분하는 기준은 아니다. 절대음악과 대립되는 표제음악은 음향 또는 음악으로 기분, 감정, 의미 등을 묘사한다. 이런 표제음악 기법은 성악곡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지만, 기악곡도 적지 않다. 기악곡은 악기의 특성을 활용하기도 한다. 한편 생각해 보면, 감정 표현이 없는 성악곡은 참으로 밋밋할 것이다.
음악이 태동한 이후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은 불가분 이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대체로 절대음악은 고전시대에, 그리고 표제음악은 낭만 시대에 이르러 예술성을 갖추었다고 하겠다. 절대음악은 음악의 짜임새를 중시하였지만, 표제음악은 형식보다 자유로운 묘사(표제)를 추구했다.
절대음악에서 형식과 구성은 매우 중요하다. 17 세기 합주협주곡 형식에서 18 세기 독주 협주곡과 교향곡을 거치면서 확립된 소나타와 소나타 형식을 중심으로 절대음악의 형식과 악곡 구성이 완성되었다. 코렐리, 비발디, 텔레만, 헨델,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이 절대음악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컸다. 18 세기 후반 소나타 형식은 절대음악의 중심이 되었다. 독주곡, 협주곡, 실내악곡, 교향곡 등으로 영역이 확대되었다.
절대음악이 발달하는 동안 표제음악은 상대적으로 주춤했지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표제음악은 있었다. 19 세기 낭만 시대에는 절대음악은 쇠퇴하고 표제음악이 확산되었다. 특히, 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에서 베를리오즈는 표제음악을 완성한 공로를 인정 받고 있다. 그의 ˝환상 교향곡˝[1]은 5 개 악장이 모두 표제를 가진다[2]. 리스트는 교향시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였다. 교향곡이 엄격하게 형식을 따른 데 반해서 형식과 악장을 무시하면서 교향시는 자유로운 표현에 치중했다. 19 세기 후반에 들어 교향시는 유럽에서 그 영향력이 커졌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체코, 러시아, 핀란드 등에서 각 나라마다 특성이 교향시로 표현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핀란디아˝이다. 한편, R. 슈트라우스는 교향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교향시를 통해 추상적인 주제를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소나타 형식은 기악곡의 중요한 형식으로 낭만 시대에도 계승, 발전하게 되었다. 절대음악이 18 세기에 비해 쇠퇴하기는 하였지만, 브람스, 레거, 힌데미트 등 신고전주의로 명맥이 이어지면서 절대음악은 지금까지도 위세를 떨치고 있다.
표제음악은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그리고 묘사 내용(또는 대상)을 암시하는 표제가 있다. 절대음악에서 음악의 순수성을 해친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표제가 표제음악에서는 중요하다. 표제는 작곡가의 창작 목적 또는 이유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슈만은 피아노, 베를리오즈는 교향곡, 리스트는 문학, 국민주의 음악학파는 고국의 민속음악 등을 표제로 활용하였다. 표제음악의 표제는 매우 다양하지만, 음악에 의한 표현의 한계도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표제와 그에 관련되는 이야기, 주변 지식 등으로 표현수단을 확장하려는 부단한 시도로 표제음악은 풍성해졌다. 20 세기에는 반낭만주의 영향으로 표제음악이 예전만 못하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상황이다.
표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많이들 표제음악과 별명이 붙은 음악을 혼동한다. 이 둘은 분명 다르다. 예를 들면,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제 21 번, 일명 ˝발트슈타인˝ 소나타는 별명이 붙은 음악이지 표제음악이 아니다. 굳이 시비를 가리자면, 이 곡은 소나타 형식의 독주 기악곡으로 음악의 내용과 표제라고 여겨지는 별명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절대음악에 해당한다. 작곡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작품에 별명이 붙은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상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별명이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존재감이 드러나고 우리의 기억이 수월해지나 보다. 표제음악은 작품 내용을 암시하는 제목이 비슷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표제음악의 제목이든 작품과 관련되어 붙여진 별명이든 감상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음악 감상의 재미를 더하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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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베를리오즈가 작곡한 ˝환상 교향곡˝은 그 자체로 작품명이다. 교향곡 제 몇 번 식으로 부르는 일반적인 명명법을 따르지 않는다. 표제음악임이 부각되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주2.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제 6 번 ˝전원˝은 당시로는 드물게 5 개 악장으로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악장마다 베토벤이 직접 썼다는, 전원 풍경을 연상시키는 표제가 붙었다. 이것은 표제음악의 묘사라고 하기에 미흡하고, 작곡자의 감상을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슈베르트, 베를리오즈, 리스트, 브람스 등 후대 작곡가한테 끼친 영향력을 무시하기 힘들다고 본다. 그래서 혹자는 ˝전원˝ 교향곡을 표제음악의 시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