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키비아데스(Alcibiades, BC450?~404)는 대 아이아스의 후손이라고 나와 있다. 아이아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쟁취하기 위해 경쟁하다가 오딧세우스에게 빼앗기고 수치심과 분노로 자결한 사람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의 유능한 장군 크리아니스의 아들이다. 가문도 좋을 뿐 아니라 용모도 아름다웠고 사교술도 뛰어나고 전쟁에서의 지략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발음을 흉내 내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지금의 아이돌과 같은 관심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가 알려지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와 가까이 지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소년인 그를 아끼고 사랑해서 가까이에 두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전투에서 위험에 빠진 알키비아데스를 구해주기도 하고, 알키비아데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알키비아데스 또한 소크라테스를 존경해서 그를 몹시 사랑하고 따랐다고 한다. 반면 알키비아데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교만하고 난폭한 태도를 보여서 정적이 많았다고 한다.

알키비아데스가 활동한 시기는 델로스동맹이 깨지고 스파르타 연맹과 아테네의 연맹이 패권을 놓고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기이다. 많은 전쟁에서 알키비아데스는 공을 세우기도 하고 웅변술도 뛰어나 그의 가까이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정적들을 만든다. 이 때문에 모함을 받고 재판을 받기도 하고 결국은 탈출해서 스파르타와 페르시아를 위해 전투에 참가한다. 자신이 가진 자금으로 군사를 모아 용병으로서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 그리스 고대 도시국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던 같다. 아직 국가주의라는 것이 탄생하기 훨씬 전이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근대의 정의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스를 침공했던 페르시아로 도망가서 여생을 마친 그를 영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시대 역시 그런 그를 영웅전에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페리클레스에게서 모든 것을 물려받았으나 그 정직함만은 물려받지 못했고, 소크라테스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지만 그 도덕성만은 배우지 못했다고 그를 평가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1장 알키비아데스 편을 읽고 정리하면서 오래 전 읽었던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이 떠올랐다새로 출간된 감정의 혼란에 대한 리뷰가 올라오는 것을 자주 본 탓이기도 했다.



주인공과 교수의 감정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이 인상적으로 각인 되어 있어서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관계로부터 자연스럽게 연상된 것 같다. 이 소설에서 대학교수의 서재에 걸려 있던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하나의 복선이었다.

 

책상 위에는 라파엘의 <아테네의 학교>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특히 사랑하는 그림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종류의 교수와 정신의 표현을 상징적으로 완전한 종합체를 이루도록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의식중에 나는 소크라테스의 완고한 얼굴 속에 그의 이마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은 이 교수에게서 지적인 욕망을 채운다. 그의 강의에 매혹당하고 굶주린 듯 빨아들인다. 한 마디 한 마디, 몸짓, 손짓까지 욕심 사납게 집어삼키고 돌아와 끌어안고 어루만지고 간직한다는 표현은 지적 욕구가 아닌 성적인 욕망을 나타내는 묘사이다. 그의 삶에서의 습관조차도 그의 가치관에 의해 버려지거나 새롭게 조종당하는 것을 본다. 마치 연인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러나 때때로 보이는 차가운 반응과 사적인 삶에서 보이는 미스터리한 모습은 주인공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런 교수의 모습은 마치 파우스트의 옷을 입고 발푸르기스의 밤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바그너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교수의 고백으로 냉정과 열정을 오갔던 태도의 정체가 드러난다. 함께 주인공의 혼란스러웠던 감정의 이유도 밝혀진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모든 기억이 맹렬하게 물결치고, 마치 하나의 암호가 모든 이해할 수 없었던 보고의 말을 한꺼번에 다 풀어 준 것 같았습니다. 내게는 지금 무섭도록 모든 것이 명백하게 되었고, 그날 밤의 애정적인 그의 방문과 그의 늘 무뚝뚝했던 변명이 죄다 알려졌습니다. 그 날 저녁의 그의 방문과, 감격하여 달려든 내 열정에 대해 언제나 그가 무뚝뚝하게 회피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127p

 

주인공이 교수를 떠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논문집을 펴내며 현재의 자신이 있게 된 정신적인 생명 과정의 가장 깊은 비밀이 바로 이 교수와의 만남에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청춘의 진실과 함께.

 

주인공이 느꼈던 감정의 혼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교수의 열정을 따라가면서 탐욕스럽게 집어삼킨 지적 욕망의 끝에는 동성애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때 주인공은 감정의 혼란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 그 혼란스러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주인공이 카타르시스나 극치를 경험한 것의 정체가 육체적인 욕망이었는지 지적인 것으로 인한 것인지 혼동했을 수도 있었을까? 인간의 욕망의 끝은 결국 종착점에 이르러 한 곳에서 만나는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이나 그 뿌리의 웅덩이 속, 또는 하수도 속과 같은 그런 곳에서만 진실로 위험한 정열의 야수가 인광을 발하며 숨어서 각양각색의 괴기한 유혹 속에 남 몰래 연결되기도 하고 분열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131p

 

츠바이크를 한참 탐독할 때 읽었던 정신의 탐험가들이 또 하나의 고리를 만든다. 심리 치료의 세계를 개척한 학자 안톤 메스머와 메리 베이커 에디, 프로이트에 이르는 정신의 탐험가들에 관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이다. 프로이트에서 출발해 융, 정신분석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책이었다. 지금은 절판 상태. 츠바이크가 계속 꾸준히 읽혀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다시 출간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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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4-14 2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감정의 혼란 읽으면서 그리스식 멘토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레이스님글, 고개 끄덕이며 잘 읽었습니다. 너무 좋아요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어린시절 동화책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레이스님 글 읽고나니 제대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편한 밤 보내세요 ~

청아 2021-04-14 2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글을 보니 츠바이크가 자신의 소설에서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관계를 염두해 둔것 맞는 듯! 역시 지식이 쌓일수록 이해 반경도 넓어지겠어요. 아아 저도 츠바이크의 절판된 책들 재출간을 바랍니다아! 😁

라로 2021-04-14 22: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재지수 : 23389점
마이리뷰: 18편
마이리스트: 0편
마이페이퍼: 43편
오늘 7, 총 777 방문

안녕하세요? 예전 알라딘 서재에서는 이렇게 특이한 거 서로 캡춰해주고 했는데,,,옛날 생각 나요.
제가 그레이스님 서재에 오늘의 7번째면서 777번째 방문자네요!! (혼자 의미를 두고 있는;;;)^^
이렇게 사유가 팽창하는 글 좋아해요.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1-04-14 23:07   좋아요 1 | URL
의미를 부여하는것 어째 설레이네요.
김춘수의 꽃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레이스 2021-04-14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모두!

새파랑 2021-04-14 2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되는군요. 그레이스님 완전 전문가시네요^^ 전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그냥 감정의 혼란만 느겼는데~역시 아는만큼 보인다는~!!

그레이스 2021-04-15 00:05   좋아요 1 | URL
올리시는 츠바이크 책 정보 많은 자극이 돼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제게 없는 책이어서 구입해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바람돌이 2021-04-15 0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 감정의 혼란 읽으면서 아테네 학당 얘기는 그런가 하고 넘겼는데 그레이스님 글 읽다 보니까 진짜 복선 맞네요. 하 또 이렇게 새로운 시각을 배워갑니다. ^^

scott 2021-04-15 1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츠바이크옹의 감정의 혼란은
결국 아테나 학당 그시기의 논쟁에 관한
인간의 지적 욕망을 향한 열뛴 토론을
한권에 소설에 담아 버린 ㅎㅎㅎ
 

어머님이 누워 계시던 방의 냄새가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다. 오늘도 닦고 치우며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을 기억했다. 아마도 어머님 홀로 계시다 돌아가셨다면 그런 청소가 되었을 것이다. 요양병원에 계셨더라면 침상 하나를 정리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새벽 2시 방문을 열었을 때 죽음에 이르는 사투를 벌이고 계신 것을 발견했다. 어둠 가운데서 거친 호흡을 내뱉고 계셨다. ‘체인 스톡스 호흡 Cheyne-Stokes respiration’이 시작된 것이다. 임종 직전에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숨을 몰아쉬는 현상이다. 거친 숨과 함께 엄청난 냄새에 당황스럽다. 손을 붙들고 찬송가를 불러드렸다.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와 함께 울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있다가 용변을 닦아 드리고 새벽 3시가 되어 방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몸에 밴 희미한 냄새를 느끼면서…·. 그리고 그날 밤 11시 30분에 소천하셨다. 불과 5일 전 일이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방 정리를 하면서도 그 마지막 밤이 계속 떠올랐다. 이미 저만큼 건너 가버린 그 분과 나의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 분 홀로 둘 수 없었다. 고독하고 힘겨운 시간을 함께 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 힘겨운 숨을 바라보며 저절로 빨리 평안을 맞이하시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편안한 죽음』을 읽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어머니가 암으로 병원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경험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나의 경험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물리치료사가 침대로 다가와서 이불을 젖히고 엄마의 왼쪽다리를 들어 올렸다. 앞자락이 벌어진 잠옷 속으로 쪼글쪼글하게 주름 잡힌 뱃가죽과 음모가 하나도 남지 않은 치골이 드러났다.」
29p

자신의 엄마는 상처입기 쉬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어떤 창피한 일도 겪은 적이 없다고 한다. 깔끔하고 고상한 취향의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런 자신의 엄마가 병상의 침대 시트에 배설을 하고 관장을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 인간의 동물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커다란 용기였다고 한다.

누구나가 병상에서는 자존심을 세울 수 없다. 의학에 굴복하게 되고 존엄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도 어머니의 배설물을 치우면서 당신이 언젠가 며느리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상상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시고 있던 1년 반 동안 목욕도 시켜드리고 가끔 실수하신 뒤처리를 하긴 했지만 죽음을 앞 둔 거의 보름 동안 방문을 열기 전에 나는 쉼 호흡을 해야만 했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성큼성큼 다가서는 죽음의 징후가 내뿜는 악취와 새로운 상황들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느끼는 어머님의 두려움과 회환에 같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잘 보내드리자고 다짐을 거듭했지만 마지막 며칠은 긴 시간으로 여겨졌고, 병원에서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리로 모실 것을 고민하기도 했다.

「나는 죽어가는 이 여인에 대해 점점 더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병실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오랫동안 둘 사이에 쌓였던 어떤 회환 같은 것들이 치유되고 있음을 느꼈다. 」
154p

아마도 어머니의 임종을 곁에서 지키게 된 것은 이러한 의미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이니 어려움의 순간도 있었다. 굳이 대화가 없어도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그분의 곁에서 손을 잡고 있었던 그 새벽 나는 눈물을 흘리며 치유를 경험했다.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어머님에게도 회환을 다 놓아버린 순간이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오래 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생각한 인간의 죽음은 피상적이고 추상적이었다. 인간의 죽음은 보다 구체적이고 디테일 하다. 병상에서 배설을 하고 악취를 풍기고 다른 이의 도움이 없이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은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고 숨소리를 듣는 실재이다. 거실과 방 사이의 방문 하나를 두고 현실과 비현실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죽음을 맞는 사람이나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나 물적인 상황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서 존재에서 무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죽음 후 그 존재는 거대한 것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보부와르의 말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남겨놓은 물건들을 치우고 냄새를 지우면서, 떠나간 자리에서. ‘그는 그가 없음으로써 완전한 無가 되기도 하고 그가 있으므로 온전히 존재하는 세계마냥, 거대한 존재가 된다.’

「자연사란 없다. 인간에게 닥쳐오는 어떤 일도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세상에 그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돌발 사건이다. 죽음은, 그가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이다. 」
217p

이런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몸이 존엄을 잃어버렸을 때, 마지막까지 그 존엄을 지켜주어야 할 사람들은 옆에서 병상을 지키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의 삶을 지켜보았고, 삶을 함께 살았던 가족들이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죽음을 존엄하게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어머니와의 그 새벽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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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4-11 01:4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그레이스님 너무 장하고 멋있게 어머니를 잘 보내드리셨군요. 그거 쉬운 거 아닌데 진심으로 감동 받았어요. 담담하게 말씀하셨지만 많이 힘드셨을 거 같아요. 푹 쉬시면서 마음 추스리는 시간 오래오래 가지세요. 책의 치유력을 이미 경험하고 계시지만, 더 많이 경험하시기를🙏

그레이스 2021-04-11 01:4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2021-04-11 0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4-11 08:0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hnine 2021-04-11 07:0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정말 힘든 일을 겪어내시고 이렇게 차분하고 울림있는 글을 써주셨네요. 저도 5년전 아버지의 마지막을 옆에서 지켜본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않아요. 죽음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요.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천천히 마음 잘 추스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04-11 08:0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청아 2021-04-11 08: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그레이스님. 뭐라 위로를 해 드려야 할지. 그레이스님이 시어머님 곁에서 지켜주시고 손도 잡아주셔서 분명 큰 의지가 되셨을 거예요. 아픔없이 하늘에서 평온하게 쉬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1-04-11 09:3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수이 2021-04-11 09: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부아르 글을 덕분에 이렇게 마주할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조만간 읽어봐야겠어요.

그레이스 2021-04-11 10: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4-11 0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힘든 일이 있으셨군요ㅜㅜ 임종을 지켜보는건 정말 힘들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책을 통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힘내세요~!!

그레이스 2021-04-11 10:0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scott 2021-04-11 1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머님,,그레이스님의 따스한 온기, 마지막 사랑 전해 졌으리라 ㅠ.ㅠ 봄날 햇살 처럼 가신곳에서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1-04-11 12:5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2021-04-12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4-12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자성지 2021-04-15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을 피안의 세상으로 보내고 얼마나 상심이 크셨습니까.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으며 한 번은 맞이할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어머니와의 삶이 언제까지나 이어질지 모르는 지금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주말에도 엄마와 함께하렵니다.
 

나의 양탄자는 빠름 빠름 빠름
표지만 읽음
우리가 고아였을때 읽는중인데 이것부터 읽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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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6-14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사놓고 몇페이지 읽다 말았네요.
놔뒀다 읽어야지 하고
오늘 북플보다가 손가락을 잘못 놀려서
6월에 읽고 있는 책으로 올라갔네요
지우려니 플친님들 좋아요 하신 수고가 죄송스러워서 차라리 책을 빨리 읽기로 했습니다^^
민망합니다.ㅋㅋ

새파랑 2021-06-14 20:03   좋아요 0 | URL
완독에 리뷰까지 기대합니다^^

그레이스 2021-06-14 20:04   좋아요 1 | URL

ㅎㅎ
 
네가 뭐라건, 이별 반사! 상상문고 8
김두를빛 지음, 이명애 그림 / 노란상상 / 2019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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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뭐라건, 이별 반사

12살 소녀 오슬로의 이별 이야기인데 마음이 움직인다.

‘우리 그만 만나자. 안녕.’

사귀던 민준이가 톡으로 헤어지자는 통보를 하고, 슬로는 그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는 동안 가슴앓이를 한다. 이별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른들의 이별 이야기가 보인다. 아빠의 이별, 할머니의 이별, 그리고 이모의 이별……. 그래도 어른들은 그 이별을 이겨내고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오슬로에게 혜민이가 있었던 것처럼 어른들에게도 위로해 줄 친구가 있어서 일까? 아님 이별을 뒤에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는 아빠의 말처럼 다른 사랑이 찾아와서 잊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슬로는 이별의 이유들을 찾는다. 자신이 민준이를 만나며 했던 행동들을 기억해보면서…. 함께 떡볶이 먹을 때 국물을 옷에 묻힌 것 때문일까? 바지만 입고 다녀서일까? 칭찬을 해주지 않아서일까? 당당했던 슬로도 이별 앞에서는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을 경험한다. 하지만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슬로는 민준이를 찾아가서 말한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한 법이거든.”
일방적인 통보에 납득할 수 있는 10가지 이유를 대라고 한다. 10가지를 못대면 이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민준이가 톡으로 보내오는 이유들을 읽으며 슬로가 상처받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고작 이런 거였어? 라고 말하는 슬로의 반응은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민준이가 톡으로 이유를 보고도 인정하지 않던 슬로는 9번째 이유를 보고서야 받아들인다.

「⑨ 이건 진짜 자존심 상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슬로가 진짜로 나를 좋아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학교에서 마주쳐도 별로 반갑지 않은 것 같다. 난 신나서 아는 체 하는데, 슬로는 슬금슬금 도망가 버린다. 또 선물이나 쪽지를 줘도 고맙다는 말도 없고, 답장도 안 한다. 우리 아빠가 사랑은 주고받는 거랬다. 오슬로, 앞으로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알겠냐?」
113p

슬로는 민준이를 만나서 직접 말한다.
「“그동안 미안했다. 너한테 차인 게 화가 나서 괜한 오기를 부렸어. 그동안 이유 대느라고 고생했어.”
“만나는 동안 많이 좋아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네가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 놓지 못한 것도.”」
129p

민준이가 알아들었을까?^^

아빠 가게에서 노래 부르는 삼촌과 이모가 헤어졌다. 사람들은 왜 헤어지냐고 하는 슬로의 질문에 ‘사람마다 마음에 빈 의자가 있는데, 삐걱거려서 언제 고쳐야지 하면서 그게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삼촌이 대답한다. 이 말이 슬로에게는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민준이의 아홉 번째 이유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 속 의자가 앉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 말은 아마도 민준이가 말했던 아홉 번째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은 마음의 일이고 잘 제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를 마음에 담는 일이고, 서로의 마음을 존중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렵다.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배워가야 한다.

그리고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슬로의 말에 100% 찬성. 헤어지는 일은 한 번에 끝나는 법도 없다. 일방적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한편의 마음이 떠나면 아무리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 이별을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마음이 하는 일이니까. 상대의 마음은 나의 것이 아니므로 강요할 수 없어서 더 외롭고 아프다.
민준이와 만나서 사과와 악수로 멋지게 이별하고 있지만, 슬로의 마음은 여전히 아프다. 그러면서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아빠는 슬로에게 말한다.
“이별은 한 번만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몇 번이고 이별은 또 있을 거야. 그러니까 벌써부터 힘 빼면 안 돼.”
77p

인생에 많은 순간 찾아오는 이별은 또 다른 사람을 조금 더 멋지고 아름답게 만날 힘을 갖게 해준다. 마음의 의자가 삐걱거리는 걸 알게 되고 고치는 시간이다. 사실 이별하고 있는 순간에는 잘 모르지만.

『네가 뭐라건, 이별반사』라는 제목은 슬로의 아픈 이별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이별이라는 ‘사랑의 엔딩’ 앞에서 때로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유치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삐걱거리는 의자를 고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별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편안하게 수리하기 위해.

아이들이 이성과의 만남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고 자신의 마음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기 위한 좋은 소설인 듯하다. 12살 소녀의 생애 첫 이별에 마음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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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우울증을 깊이 앓았다고 한다. 그는 정원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면서 그 정서를 극복한 것 같다. 그의 수채화가 예뻤던 기억이 있다. 작가로서 글을 쓰는 것이나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정신증을 더욱 심화시키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더러 이상심리상태를 예술로 표현하는 예술가들이 있기도 하다. 그 상태에 빠져들어 창작을 하는 경우가 있다.
헤세는 글쓰기를 벗어나 몸으로 하는 일들을 통해 위기를 넘기는 듯하다. 본래 가지고 있는 병은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예술가들은 그 병을 예술로 승화시키거나, 아님 다른일로 환기시키며 벗어나거나 한다.
헤세의 정원가꾸기는 생산적이란 생각을 했다.
앞에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과는 다르다는 생각이다. 사실 그녀는 정원 일을 전혀 모르고 감상과 즐기기만 했다. 혹시 그녀가 헤세처럼 직접 남편과 함께 정원일을 했다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정원 가꾸기를 즐기는 예술가들. 타라의 정원, 모네의 지베르니, 울프부부의 정원, 헤세의 정원.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데...
타라, 레너드 울프나 헤르만 헤세를 보면 부지런함이 요구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다.
전에 일할 때는 몰랐던 정원에 대한 감성을 발견한다. 정원과 나무 꽃에 대한 책들을 부쩍 꺼내 읽게 되다.











재미 삼아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고작 몇 달밖에 안 되는 따뜻한기간에 많은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원한다면, 혹은 누군가 정원을 가꾸어달라고 요청한다면 온통 즐거운 것만 보게 된다. 생산하고 자신의 형태를 만들어 가는 가운데 넘쳐 나는 자연의 힘, 다양한 형상과 색채로 드러내는 자연의 유희와 상상력. 여러 면에서 인간적인 여운을 주는 작고 재미나고 소박한 삶 - P15

아주 이따금,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어느 한 순간, 땅 위의 모든피조물 가운데 유독 우리 인간만이 이 같은 사물의 순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사물의 불멸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번뿐인 인생인 양 자기만의 것, 별나고 특별한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기이하게만 여겨지는것이다. (1908년)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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