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유예! 인간이 처한 상황이다. 카프카가 이 소설에서 말하는 인간의 부조리한 상황이다. 요제프 K는 선고를 받기 원하지만 판사도 만날 수 없고, 법정도 찾을 수 없다. 자신에게 죄가 있음을 판별하는 예심 판사만 만났을 뿐이다. 법정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있지만 문지기가 막고 서있는 역설 역시 인간의 상황이다.

 

카프카의 소송에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없다. 주인공이 혼자 있는 어두운 공간에 갑자기 조명이 켜지듯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문고리를 잡은 손 위에 어떤 손이 얹어져 있고 갑자기 시야가 넓어져 그 손의 주인을 의식한다. 마치 꿈을 기억하듯 불연속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여기엔 어떤 인과관계도 설명도 없지만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꿈과 현실의 경계 없음은 주인공 요제프 K 혹은 카프카의 꿈과 무의식을 수면위로 끌어올려 드러내고, 그의 억압과 실존의 문제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표면적으로는 그가 존재하는 사회의 부조리들을 비판하면서 K의 꿈과 심리, 작가의 깊은 내면까지, 깊이 들어가며 여러 층위의 의미를 형성한다. 한 장면에서 다층적 해석을 하게 된다. 한 사람의 삶의 뒤편에 자리 잡은 꿈과 같은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일상의 한가운데서 일어난다.

 

꿈과 같은혹은 신비한, 또는 환상적인이야기를 독자의 눈앞에 실재인 것으로 제시하고, 실재적인 수법을 사용해서 설명한다고 미하엘 뮐러는 프란츠 카프카-의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낯선 자들이 이른 아침 갑자기 요제프 K를 찾아오고 소송과 체포를 선언한다. K는 이 상황에 전혀 놀라지 않는다. 마치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스치듯 언급하지만 그 소송은 다른 사람의 것인데 집행과정에서 잘못 전달된 것이다. 그럼에도 K는 오히려 먼저 예심판사를 찾아간다. 여기서 그 존재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죄의식을 상정하게 된다.

 

이렇듯 이 소설에는 그의 존재에 대한 의식과 거기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와 삶의 부조리를 의미하는 행위들과 사물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읽다가 무언가를 놓쳤다는 느낌을 받고 되돌아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지점들이 많다.

 

소송 사실을 통보받고 잠시 방 안에 홀로 있게 되었을 때 K가 침대 옆 탁자에서 집어먹는 예쁜 사과(17p)”는 선악과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방이나 다른 공간이 아닌 하필이면 뷔르스트너 양의 방에서 낯선 자들에게 취조를 받는 것이나, 심문받기 위해 그 방의 한가운데로 옮겨진 그녀의 탁자(20p)”K의 성적 욕망 혹은 죄의식을 암시한다.

 

왜 이렇게 K에게서 억압된 욕망과 죄의식을 읽게 되는가? 라고 물으면서, 카프카의 삶을 소환하게 된다. 그가 믿든 안 믿든 유대교는 정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 신앙적 전통은 그의 생활과 문화의 배경이 될 수밖에 없다. 유대교는 금지법과 죄를 해결하는 의식(儀式)의 종교다. 깨끗한가 부정한가, 죄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율법과 유전이 유대인들의 전통을 이루고 있다.

법정이 주거지 안에 위치하고, 화가의 화실 문을 열면 법원 사무처가 나타나는 장면은 이 신앙적 배경에서 기인된 작가의 심리를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K의 죄의식과 판결을 받으려는 시도들은 법정이 가까이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도무지 무죄이든 유죄이든 선고로 이어지지 못한다. 카프카의 해결 받지 못한 심리적 모순 상태와 더 나아가 인간의 부조리 상태를 보여준다. K가 법정을 찾아 지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우락부락하고 불량한 소년들(52p)”의 놀이를 방해하게 되었을 때, 그 소년들의 화난 얼굴들은 작가가 성장하지 못하고 묶여 있는 십대의 상처를 보게 된다.

카프카의 작품 선고에서는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죽음의 저주를 받은 뒤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함으로 그 판결을 실행해버리는 이야기는작가가 부친으로부터 받은 억압과 그로 인한 내적 갈등, 고통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친의 이 선고로 아들이 자살하는 결론은 역으로 아들에게 있는 부친살해의 무의식적 욕망을 엿보게 된다. 카프카의 이런 무의식에 대한 예민한 포착은 죄의식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차라리 아들이 아버지의 선고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K가 심판을 받기 위해 법정을 찾고 변호사를 찾고 브로커를 찾는 상징적 행위의 의미다.

 

뷔르스트너 양에 대한 상상과 법원에서 만난 여자(72-73p), 변호사 비서, 화가를 따르는 소녀들의 모습에서 성적 욕망과 수치심을 엿본다.

 

카프카에게서 관청과 가족의 상황들은 다양하게 맞닿아 있다. ……관청과 소녀가 공통으로 지닌 가장 두드러진 속성이 있다면 그것은 K소송에서 만나는 수줍은 소녀들처럼 모든 것에 자신을 내맡긴다는 점일 것이다. 이들 소녀들은 마치 침대에서 그렇게 하듯이 그들 가족의 품안에서 불륜에 몸을 맡긴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런 소녀들을 만난다. 그다음에 하는 일은 술집여자를 정복하는 일만큼이나 손쉬운 일이다.……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 창녀 같은 여자들이 한 번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프카와 현대발터 벤야민 64p)”

 

그녀들이 아름답지 않게 보인다는 것은 그들의 처지나 법정의 부조리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억압되고 왜곡된 성적 욕망 때문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러기에 누군가 엿보고 듣고 있다는 의식을 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소송을 당하고 예심판사 앞에서 변론은 했으나 선고는 유예된 상태에서 K는 판사를 만나기 위해 변호사와 브로커 화가를 만난다. 당시 법에서의 불의를 보게 된다. 화가는 판사들의 초상화를 그린다. 그림 배경에 그려져 있는 정의의 여신과 승리의 여신을 합쳐 놓은 이미지는 정의는 승자의 것인가?’를 질문하게 된다. “정의에는 중립이 없, "우리 안에, 저 깊숙이 살아 있는 정의와 양심의 소리"를 듣기 바란다는 바티칸 추기경의 호소가 맥락 없이 떠오른다.

 

카프카는 선고유예 상태의 죄의식에 시달리는 인간 상황의 원인을 찾아갈 때, 그를 이런 상황에 빠뜨리는 원인을 저항할 수 없는 힘을 소유한 볼 수 없는 존재에서 찾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신이든, 해석의 권위를 가진 권력이든, 정신이든, 그를 대신하고 있는 부친이든!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하게까지 느껴지는 장면 중 하나가 성당에서 사제를 만나는 장면이다. 성당에서 홀로 있는 K의 시야에 갑작스럽게 신부가 등장하고 그는 자신을 교도소 신부라고 소개한다. 그 신부는 그에게 법 앞에 문지기(267-269p)” 이야기를 한다(이 내용은 작가가 법 앞에서라는 단편으로 먼저 발표한 작품이다). 법정으로 들어가려는 남자를 문지기가 막는다. 문지기는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한다. 문지기는 해석자 혹은 철학자 혹은 지도자이며, 신부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가 모르게 재판정이 열렸고, 사형이 선고되었다. 집행장으로 끌려가는 그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 그가 끌려가는 채석장, 죽임을 당하는 방식 모두 유대교의 의식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다. 숨을 거두기 직전 그는 개 같군!”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그가 죽은 후에도 치욕은 살아있을 것 같기(287p)” 때문이다. 결국 그의 질문은 해결 받지 못했다. 치욕은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니던 욕지기와 수치심과 관련 있을 것이다.

 

카프카의 반쯤 잠든 상태에서 찾아오는 환상들은 그의 글의 소재들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불면증으로 고통 받았고, 이런 꿈들을 꾸는 것을 괴로워했다고 한다. 꿈과 같은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일상의 중심에 놓아 독자로 하여금 아무 어색함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작가의 천재적인 재능에 감탄하게 된다. 불연속적이고 환상적이고 괴이한 장면들 속에서 주인공과 작가의 심연을 읽고, 그들이 찾는 답을 찾고, 여러 층위에서 해석을 한다. 그리고 작가가 드러낸 존재의 뒤편을 통해 나의 무의식 안에 침잠해 있을 억압과 상처 혹시 모를 내면 아이를 탐사한다.

 

10년 쯤 전, 지역 도서관에서 책 바꿔가기 행사를 했었다. 한 노부인이 그녀의 남편이 생전에 읽었던 책을 기증하면서, 계속 갖고 있으려 했지만 이제는 관리하기 어려워 내놓는다고 못내 아쉬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녀가 내놓은 책들 중에 내 눈에 띈 책이 막스 브로트의 카프카 평전이었다. 이 책은 절판 상태였었다(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 나의 카프카역시 절판이다). 낡아서 누렇게 바랬지만 귀한 책이었기에 무조건 가져왔다. 그 날 하루 이 책을 다 읽었던 것 같다. 다 읽고 나서야 책 뒤쪽 헛지에 독서에 대한 단상이 흘림체로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적바림은 생을 형기(刑期)”라고, “옥중에서 구원을 기다림이라고 하고 있었다. 제일 마지막 줄에는 “84324〇〇로 가는 길, 터미널에서라고 적혀 있었다. 아직은 바람이 찬 터미널에서 카프카를 읽던 한 남자, 마지막 장을 넘기고 카프카의 삶에 대한 감회에 젖어 볼펜을 꺼내드는 그를 그려본다.

 

카프카 평전』 『변신』 『단편집은 카프카를 이해하는 일련의 독서였다. 그리고 소송』, 발터 벤야민의  『카프카와 현대』, 『프란츠 카프카은 그에게 깊이 들어가는 독서였다. 특별히 프란츠 카프카은 카프카의 꿈과 소설과의 연결을 이해하는 특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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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3-25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는 숫자가 맞나요?
84년? 대단하네요.
저는 몇년 전에 젊었을 때부터 모았던 책들을 팔아서 그렇게 오래된 책은 없습니다. 카프카 평전 겨우겨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내용은 기억에 없습니다. 😂

그레이스 2025-03-25 10:49   좋아요 1 | URL

그래서 더 감상에 젖게 돼요.
돌아가신 분의 유품과 감상이어서,,, 평전이 더욱 다가왔던듯요.

고양이라디오 2025-03-25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카프카가 여전히 읽기 어려워요ㅠ <성>, <소송> 모두 몇 번씩 도전했는데 완독을 못했네요.

그래도 <변신>이랑 단편집은 읽었습니다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시 카프카가 읽어보고 싶네요.

그레이스 2025-03-25 11:22   좋아요 1 | URL
쉽지는 않죠
미완성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막바지 퇴고와 탈고를 거치지 않은 원고인듯요
그래서 막스 브로트가 초판본출간할때 순서를 변경하고 편집을 했다 해서 비판을 받았고, 다시 후에 원고의 원래 순서대로 출간했다고 하더군요.^^

제 경우 <프란츠 카프카-꿈>이 도움이 됐습니다.
추천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5-03-25 12:59   좋아요 1 | URL
<프란츠 카프카-꿈>! 카프카와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을 먼저 보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5-03-26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할아버지네요~!! 84년이라니~~
카프카는 그냥 읽는것보다 평전이랑 같이 읽는게 좋을거 같아요. 카프카<소송>, <성>은 이해하기 힘들더라구요 ㅜㅜ 꿈이 핵심 키워드군요~!

그레이스 2025-03-26 21:04   좋아요 1 | URL
네! 멋지시죠!
이건 말 안하려고 했는데,,, ^^
그 노부인이 사별하신 남편을 교수님이라고 부르신걸로 보아, 강단에 서셨던 분으로 추측합니다.

초란공 2025-03-26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4년 3월 24일... 딱 이맘때네요.. 산수유 피고, 진달래 개나리 피기 시작하는 시기.. 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리시는 청년(?)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그레이스 2025-03-26 21:13   좋아요 1 | URL
3,40대였을 듯 한데,,, 청년이죠^^
예 그러네요
3월 24일

초란공 2025-03-26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KBS 다큐에 나온 새한 서점 이야기가 감상에 젖어요. 학창시절에 서점이 서울에 있을 때 잠시 일했던 헌책방이었는데, 단양으로 이사 가셔서 숲 속에 책방을 열었는데요, 지난 12월에 화재로 책 60%가 소실되었거든요. 어제 다큐멘터리를 보고 사장님 나이드신 모습을 보고 짠했습니다. 텀블* 펀딩이라도 참여해야겠어요.

그레이스 2025-03-26 21:17   좋아요 1 | URL
아!
마음이 아픕니다.

(화재 이야기 들으니,,, 경남 산불이 저절로 떠오르네요
제발 빨리 진화되길 ...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