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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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과 통찰이 너무 빛이 나서, 그녀가 갇혀 있던 어두움과 짧은 삶이 안타깝다. 만약 이런 예리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작가의 삶과 관련된 것이라면, 선택하고 싶지 않은 재능이란 생각을 했다. 고통가운데서도 작가의 감수성으로 자신의 욕망을 글쓰기로 전치하는 그녀의 노력에 감탄하게 된다.

 

거식증과 중독, 자해 등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거대한 불안을 들여다본다. 욕구가 커질수록 그것을 억제해야만 한다는 불안도 커지게 되고 비틀린 모습으로 드러난다. 거식증이 시작되었을 때 그것은 식욕과 함께 왔다고 한다. 육체를 가진 한 사람에게 기본적인 기쁨과 충족감을 주는 식욕이 왜 이런 충동으로 바뀔까?

 

식욕은 내 모든 부수적 괴로움을 끌어다 걸어두는 걸이이며(나 자신과 수많은 여자들의) 내면에 흐르는 모든 강이 생겨난 바다다.”(18p)

 

그녀의 식욕이 식사장애와 거식증으로 나타나는 중심에 가족이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의 역학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작용으로 생겨난 기억들은 관계 맺기의 실패와 허함에 대한 감각, 이름 없고 어쩌면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갈망의 감각과 관련되어 있다.”(23p)

 

사실 캐럴라인 냅은 그녀의 어머니보다 더 자유롭고 그녀가 꿈도 꿔보지 못했던 문제들을 놓고 고민하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누리는 자유는 그녀에게는 무섭고 억압적이고 심지어 부당한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자유는 여자로 살아간다는 의미에 관해 그녀가 품고 있던 불분명하지만 뿌리 깊은 일련의 감정들”(25p)과 모순되는 것 같이 느꼈다. 이런 감정들은 사회로부터, 어머니로부터 학습되어진 것이다.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이론적으로 더 많이 보장되었으나, 실제적으로 그것을 학습하고 내면화하게 될 대상인 어머니들에게서는 억압된 욕구와 그에 따른 부정적 감정만을 대물림 받은 것이다.

 

연년세세밝은 밤에서 3, 4대에 걸쳐 대물림되는 여성의 굴레, 침묵을 연상하게 된다. 세상은 바뀌어도 여성을 둘러싼 정신은 끈질기게 막아서고 그녀들은 부당함 가운데서도 침묵하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상처는 다른 모양 다른 양상을 띄며 대를 잇는다.

 

그렇게 캐럴라인 냅의 식이장애와 거식증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여성이란 존재로서의 불명확한 감정들이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신체의 사이즈와 형태에 집중된 주의”, 그것이 여성의 식욕과 관련해서 정체성과 가치와 갖는 관계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에서 원인을 찾는다. “여자의 허기는 어쨌든 부적절한 것이며 심지어 그로테스크 한 것일 수도 있다는 관념이 관련되어있다.(28p) 식욕을 억제하고 사이즈와 형태를 얻는 것은 가치 있는 야망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먹지 않는 것은 만족감을 높이고, 먹는 것은 죄의식에 빠지게 하는 이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굶기는 뒤틀린 방법이긴 했으나 불안과 공포를 처리해주었다. 여성에게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자유가 허락된 세계에서 느끼는 낯선 불편함을 해소해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독, 자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는 억제된 욕구의 발현이라고 본다. 술과 쇼핑 등의 중독도 억제된 욕구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자해의 경우도 어머니로 받은 여성으로서 불행한 느낌과 달리 행복할 수 없다는 죄의식과 관련 있다고 한다. 인간의 마음 깊숙하게 도사리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의 위력에 놀라게 된다.

 

권리와 자격이 본능적이고 영속적이며 실질적인 수준에서 느껴지려면 그것은 자아를 넘어선 영역에 존재해야 하고, 더 폭넓은 차원에서 알려지고 인정되어야 한다.”(79p) 그런 면에서 여성은 불리한 입장이다. 지난 세월 동안 이뤄진 개선에도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불평등하다. 이런 불균형이 욕망 뒤에 자리한 불안이라는 요인을 증폭 시킨다”(80p)고 말한다.

 

저자는 사회와 가족 특히 어머니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내며, 때로는 상담을 통해, 때로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 안에 억압되어 있는 욕망과 비틀린 욕구들을 직시한다. 그리고 여전히 욕구와 두려움의 대치 상태에 놓일 때가 많음을 고백한다. “항상 음식 생각을 했고, 포르노 더미를 앞에 둔 10대 소년처럼 음식 관련 잡지들과 레스토랑 리뷰를 열심히 읽었고, 색인 카드에 빵과 케이크, 초콜릿 디저트,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속을 채워 넣은 파이들, 내가 갈망하지만 절대 나 자신에게 허용하지 않는 음식들의 조리법을 옮겨 적었다”(102p)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아름다움, 날씬함, 쇼핑 등을 욕망함으로서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은 더 본질적인 욕망은 흐릿하고 불명료한 상태로 뒷전에 밀어둔다. 계속 이러한 부조화의 상태를 이끌어가는 것은 불안이다. 이러한 불안, 죄책감, 자기혐오, 소외, 슬픔과 같은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은 반복되는 실패를 가져온다. 지리한 과정에서 좌절하지 않으려면 초점을 내면으로 돌릴 것을 제안한다.

 

그녀는 "열쇠는 통찰보다는 기꺼이 해보겠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364p)고 한다. 이 글을 쓸 당시 그녀는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뒷걸음질 치고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어떤 흡족함의 순간들, 그녀가 잘 먹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370p)은 있다. 모든 욕구를 다 이해하고 충족하는 일이란 가능하지 않지만, 그 흡족함의 순간들로 인해 충분하다고 한다.

 

냅이 더 오래 살았다면 그녀의 삶과 글은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날이 더 많았을까? 그녀가 마치 시처럼 써내려간 아름다운 순간들이 삶을 더 많이 채웠을까? 글은 조금 더 안정되고 메시지는 더 강렬해졌을까?

 

마침내 이 삶에서 얻는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있다. 섬광처럼 스치는 만족감, 얼핏얼핏 희미하게 반짝이는 희망의 빛과 맛, 파이처럼 깊이 음미하며 완전히 누려야 할, 아주 잠깐의 순간들이.”(371p)


나의 부모가 나에게 심어준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정서들이 있다반항하기도 하고 맞서 싸우려고도 했던 때들이 있었지만욕구와 관련 짓는다면그 본질과 대상을 모르고 했던 싸움들이었다는 뒤 늦은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나의 억압된 욕구들은 무엇이며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아이들이 내게서 전달받은 여성으로서 사는 존재의 느낌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물어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부정적인 대답이 돌아 올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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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4-25 10:4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왜 아름다움은 날씬함과 굶기로 이어져야 하는지... 한없이 날씬해지고자 하는 욕구와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들이 반대로 여성들을 끝없는 굴레로 몰아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레이스 2022-04-25 10:46   좋아요 5 | URL
자본주의와 나란히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요. 신화와 가부장 사회의 관념이 자본과 만나 끊을 수 없는 굴레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ㅠ

mini74 2022-04-25 10:5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게 식욕뿐이었던 중세의 여자들이 투쟁이나 권리의 의미로 거식증을 택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과거나 현재나 여성에 대한 기준과 그에 대한 억압은 ㅠㅠ 전 엄마에게서 싫으면서도 배우고 닮게 되는 것들이 있는 거 같아요. 이 분 책은 명랑한 은둔자 하나 읽었는데 그레이스님 리뷰 읽으니 이 책도 끌립니다 *^^* 그레이스님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여성의 삶을 보여주고 계실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2-04-25 11:08   좋아요 5 | URL
중세 여자들의 투쟁으로서의 거식증도 슬픕니다.
긍정적 평가! 감사합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독서괭 2022-04-25 12:48   좋아요 2 | URL
저는 거식증이 투쟁이나 권리의 의미가 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었는데,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에서 10대 여자아이들의 거식증에 대해 그렇게 평하는 걸 보고 놀랐었어요. 중세부터 내려온 것이군요!

scott 2022-04-25 1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섬광처럼 스치는 만족감, 얼핏얼핏 희미하게 반짝이는 희망의 빛과 맛, 파이처럼 깊이 음미하며 완전히 누려야 할, 아주 잠깐의 순간들]

한 주 동안 되새기고 싶은 구절이네요
넵의 생이 넘 짧았다는게 안타깝습니다 ㅠ.ㅠ

그레이스 2022-04-25 11:50   좋아요 3 | URL

저도 그랬습니다.
에세이라 그런지 반복과 모호함이 있는데 그래서 날선 문장들이 기억에 남는듯요.^^

얄라알라 2022-04-25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딱 제목으로 떠오르지는 않지만 [욕구들]을 비롯해 책, 그리고 일상의 대화에서 여성들이 현재 겪는 마음의 파동은 어머니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안타까워해온 것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자주 듣다보니 어디서 들었는지 읽었는지도 헷갈릴 만큼, 변주되나 지속적인 주제...

그레이스 2022-04-25 11:53   좋아요 3 | URL
그렇죠?!
지속적인 주제라는 것은 어느 한가지 답으로도 완결될 수 없다는 의미!
좀더 아름답고 밝은 변주가 들려질 때도 있겠죠.

새파랑 2022-04-25 12: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경험해보진 못하겠지만 글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삶을 접하기만 해도 상당히 괴롭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ㅜㅜ

그레이스 2022-04-25 12:50   좋아요 5 | URL
새파랑님의 책읽기를 보면 공감능력이 좋으신 분이라는게 느껴져요!👍

독서괭 2022-04-25 12: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기 자신을 이렇게 날카롭게 분석할 수 있는 정신은 어떤 것일까요. 불안과 욕구와 힘든 투쟁을 벌이는 중에 이렇게 명징한 분석을 내놓았다는 게 너무 놀랍습니다.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그레이스 2022-04-25 12:51   좋아요 4 | URL
예~
저도 곳곳에서 감탄했습니다!
밑줄 투성이예요

서니데이 2022-04-25 21: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부모와의 관계가 좋은 것도 좋은 시작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화목한 가정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사람사이에는 말하지 못하는 갈등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있긴 하니까요. 거식증이나 폭식증은 심리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이번주는 4월 마지막주입니다. 좋은 일들 가득한 한 주 되세요.^^

그레이스 2022-04-25 21:47   좋아요 3 | URL
예,
그래서 두렵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좋은 일 가득하시길요.

희선 2022-04-26 03: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부모한테 가장 많이 영향을 받고 다음엔 사회에 영향을 받겠습니다 부모와 잘 지내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는 부모가 처음이어서, 하는 말을 하기도 하니... 어떤 건 죽 이어지기도 하는군요 여성의 삶이랄까 여성이 어때야 한다 그런 거... 그게 잘못됐다고 누군가 생각하면 좋을 텐데...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많은 걸 그런가 보다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2-04-26 07:34   좋아요 3 | URL
부모도 가정에서 사회로부터 내면화된 부분이 있겠지요
완전히 이겨낼 수는 없겠지만, 아는 것으로부터 한발 한발 시작하는게 중요하겠지요

페크pek0501 2022-04-27 1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통찰력 있는 글이 최고죠. 한두 줄에 담긴 저자의 통찰을 보기 위해 책을 읽는 건지도 몰라요.

그레이스 2022-04-27 12:12   좋아요 2 | URL
예. 맞아요~
그 한 두 줄이 인생을 바꾸기도 하니까요!^^

서니데이 2022-04-29 1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4월이 거의 다 지나가고, 내일이 말일이네요.
좋은 일들 많은 4월 보내고 계신가요.
그레이스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그레이스 2022-04-29 18:07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frycar02 2022-05-08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네요.과연 욕구들, 여성들의 욕구는 남성들과 어떻게 다른지..

그레이스 2022-05-08 09:58   좋아요 0 | URL
^^
욕구를 받아들이고 총족시키는 차이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