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다 마쳤다아이들과 매주 도시 2개씩 읽어왔다.(부연: 아이들과 책읽기는 경제활동과 상관없는 독서 활동이다.) 오래전, 문학을 읽다가 지리와 역사에 부딪칠 때마다 맥이 끊기고, 찾아보고는 그것이 아주 일반적인 지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했었다. 다행히 구글 맵이 등장하고, 검색기능이 좋아지면서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막막하고 답답한 기분은 덜 느꼈지만, 이런 지식의 빠른 휘발성은 또 한번 좌절을 맛보게 했다. 지중해와 세계지도를 손으로 그려보고, 중요한 지명을 표시해가며 암기한 끝에 지중해변은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항상 느끼지만 어린 나이에 습득해야 시간이 덜 걸리고 잊어버리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나의 간절함을 전달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사회과목 시험 볼 때조차 아이들은 페이지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지도를 쳐다보지 않는다. 식사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지도 꼭 봐라.” 하면 아이들은 선생님이 안 중요하댔어.” 한다. 아이들에겐 이거 시험에 나온다.” 하고 별표를 쳐줘야 중요한 지도다.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들여다 본 지도를 다시 또 돌아가서 확인하고, 고대 해전사를 읽으며, 지중해를 보고 또 보고, 나중에 이런 수고 안 하려면 지금 봐야한다는 것을 어찌 납득시킬까 고민만 하다가 이제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역사를 전공하는 막내만 조금 내 말을 이해하는 듯하다. 뭐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을 테니까.

 

나와 함께 책읽기를 하는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형제, 그리고 중학생 아이들. 처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하며, 지중해 지도를 내밀었을 때, 무심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마침 이 책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을 보고 적당하겠다 생각하고 시작했다. 내 아이들을 이렇게 가르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보지만, 불변의 진리!- 일타 강사도 자기 아이는 못 가르친다.



 

이 책에는 고대 도시들이 등장한다. 바빌론, 예루살렘. 아테네, 알렉산드리아고대 도시가 생겨난 당시의 역사와 그 곳을 차지한 부족과 나라들과 왕조들에 대해 설명한다. 이들 중에서는 지금까지 중요한 도시로서 살아남은 곳도 있고,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지역을 조금씩 이동한 '장안' 같은 곳도 있다. 또한 지금은 유적만 남아있는 '바빌론'이나 '테오티우아칸'도 소개된다. 또한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들도 있다. '튀니스'의 카르타고의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나는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살람보를 찾아보기도 했다.

각 도시에 대한 분량은 10페이지 정도이다. 지도와 사진자료들도 들어있고, 전달하는 내용은 간결한데 충실하다. 뼈대가 잘 갖춰져 있고, 핵심을 잘 전달하고 있어서, 더 알고 싶은 내용을 찾아서 살을 붙여도 복잡해지지 않는다. 정리하기에 유익한 책이었다.

 

마지막 장은 두바이다. 버즈칼리파더 월드섬이 있는 사막위의 인공도시 두바이와 함께 아랍에미리트의 역사, 구성, 정치, 경제를 소개한다. 두바이에 인공도시를 조성한 동기와 목적, 과정, 위기,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도 간략한 설명이 붙여진다. 고대도시에서 시작된 여행은 현대의 인공도시 두바이에서 끝이 난다.


나의 감상은 자연스럽게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ta invisibili)>로 옮겨 갔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동방견문록으로 알려진 마르코 폴로와 타타르제국의 황제 쿠빌라이 칸의 대화다. 주로 마르코 폴로가 여행한 도시들의 단상을 그리고 있다. 파편화된 도시들의 기억으로 이루어진다. 이 55개의 도시에 대한 내용은 공간과 시간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고대 도시는 가상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현대의 도시의 모습을 반영한다. 도시는 소멸과 생성을 거듭하며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담아내고 있다. ‘기억’, ‘욕망’, ‘기호’, ‘교환’, ‘’ ‘이름’ ‘죽은 자’ ‘하늘’ ‘섬세한’ ‘지속되는’ ‘숨겨진으로 은유되고 수식되는 도시들이 순환하며 등장한다.

 

가장 주목하게 된 내용은 도시가 상징하는 기호.

 

시선이 머무는 경우는 그 사물을 다른 사물의 기호로 인식했을 때뿐입니다. ……

마침내 여행자는 타마라 시에 닿습니다. 폐하는 벽마다 간판들이 튀어나와 있는 좁은 거리들을 따라 도시를 가로지릅니다. 눈은 사물이 아니라, 다른 사물들을 의미하는 사물의 형상들을 바라봅니다. 펜치는 이() 뽑는 사람의 집을 가리키고, 큰 잔은 술집을, 미늘창은 수비대의 막사를, 저울은 채소 가게를 가리킵니다.……상인들이 판매대 위에 진열해 놓은 상품들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물에 대한 기호로서 가치를 가집니다. 수놓은 머리띠는 우아함을, 금도금한 가마는 권력을, 이븐 루슈드의 책들은 학식을, 발찌는 관능을 뜻합니다. 책장을 넘기듯 시선이 거리를 훑고 지나갑니다. ……

도시가 이와 같이 조밀한 기호의 껍질 속에 있기 때문에 여행자는 타마라에서 나올 때에도 도시가 정말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숨기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도시 밖에는 텅 빈 땅이 지평선까지 길게 뻗어 있고 그 위에 펼쳐진 하늘에는 구름이 떠갑니다. 우연과 바람이 만들어낸 구름의 모습들 속에서 여행자는 어느새 범선, , 코끼리의 형상들을 구별하는 데 열중해 있습니다.” (22~23p)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기호는 무엇인가? 그 기호가 환원되고 있는 정신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의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잠실의 마천루, 유명인들만 산다는 한강변의 고층아파트, ‘경축재건축조합이라는 현수막, 새 아파트들과 변해버린 거리들은 자본주의가 치켜든 기호다. 그 피켓을 따라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다. 차를 타고 강남대로를 지나면서 계속해서 보이는 성형외과 간판은 외모지상주의, 여성의 몸, 그리고 돈이라는 기호가 보인다. 대형 전광판 뉴스 오늘 확진자 수는 도시가 앓고 있는 전염병의 기호, 끊임없이 땅 밑으로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행렬은 생기 없는 실내노동자들의 극단적인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들어가는 사무실 빌딩과 아파트 건물마다 설치된 차단기들은 우리들 사이의 경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상징물이다.

 

도시들의 순환은 마지막 대화에서 지옥과 유토피아라는 은유로 마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알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208p)

 

우리의 도시에서 찾아내고 지속시켜야 할 것은 무엇이며, 저항하고 맞서 싸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물론 사냥꾼의 사회에서 사는 것이 지옥에서 지내는 것처럼 느껴지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다. 대부분의 노련한 사냥꾼들은, 사냥꾼의 대열에 끼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수다수에게 쉬운전략을 선택할 것이며, 결국 그 사회의 일부가 되어 더 이상 그 사회의 괴상한 논리에 어리둥절해 하거나, 어디서나 제시되는 강압적이고 대체로 허무맹랑한 요구에도 자극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분명한 것은, ‘누가 그리고 무엇이 지옥이 아닌지를 알아내려고 고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들이 고집스럽게 지옥이라 부르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온갖 종류의 압력에 맞서 용감하게 싸워야만 할 것이라는 점이다.” 

(모두스 비벤디: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지크문트 바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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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7 21: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책 찜! .🖐

그레이스 2021-09-07 21:56   좋아요 5 | URL
하이파이브! 🙌 😁 ~♡

scott 2021-09-08 00:39   좋아요 3 | URL
지도를 사릉하는 1인!🖐
어렸을때부터 세계 도시 퍼즐 맞추는 재미로(실은 아부지가 돈을 베팅하셔서 ㅎㅎ) 살았고 구글이 영리 해지기 전에는 도시에 첫 발을 디딜때마다 지도를 손에! ㅎㅎ

지금도 벽 한쪽은 세계 지도를 붙여 놨습니다
지구본은 LED조명 ㅋㅋㅋ

저도 이책 살펴보다가 보이지 않는 도시 떠올렸는데! 보르헤스의 알렙과도 맞닿았네요
그레이스님의 깊이 있는 독서 광할한 지식에 탐복 합니다. ^ㅅ^

그레이스 2021-09-08 09:28   좋아요 2 | URL
어릴때부터 환경이...!
보르헤스 알레프, 제 독서 리스트에 있는 책이예요. 조금 앞으로 데려와야겠네요.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1-09-07 22: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학교다닐 때 이런 책이 있었으면 세계사 공부가 재미있었을텐데 😅

그레이스 2021-09-07 22:11   좋아요 5 | URL
맞아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중학교 역사선생님이 수업 전에 칠판 한가득 세계지도를 그리고 시작하시던 기억이 나서 지금도 그 쌤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초란공 2021-09-07 22: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 <보이지 않는 도시들> 꼭 읽어보고 싶네요~ 찜해두었습나다~

그레이스 2021-09-07 22:45   좋아요 5 | URL
리뷰 기대해요~

초란공 2021-09-07 22: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엉뚱하다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 어떤 계기로... 개인적으로 쿠빌라이칸의 유물하나를 찾고 있어요~ 하지만 제 생애에 이룰 수 잇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마르코폴로와 쿠빌라이 칸은 이 여정에서 제게 중요한 인물이지요^^ 재미있겠는데요~

그레이스 2021-09-07 22:58   좋아요 5 | URL
초란공님 혹시 고고학자세요?
북플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 커지는 순간 많이 경험합니다.@@ 놀람

초란공 2021-09-07 23:02   좋아요 5 | URL
ㅎㅎ 전혀 아닙니다^^ 그냥 어떤 계기로... 흥미가 생긴 것이 있어서 자료를 모으고 하는데 훈련받은 바도 없어서 갈피도 못잡고 더디기만 하네요~ 아마 한 10년 쯤 후에 발표를 할 수 있을까요~ ㅋㅋ

그레이스 2021-09-07 23:07   좋아요 5 | URL
그래도 일단 그런 꿈을 갖고 계시다니 놀랍습니다.^^
역사랑 고고학에 관심이 있어서...ㅎㅎ
실크로드 관련된 책은 조금 읽었구요
강인욱 작가 책도 세 권정도 갖고 있어요
다 모으면 읽는게 제 버릇이라서...ㅋㅋ
초란공님 소원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초란공 2021-09-07 23:16   좋아요 5 | URL
감사합니다~^^ 일단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가고 그동안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에 해당하는 충렬왕 전후의 고려사도 찾아보고 있지요. ^^;; 흥미로운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scott 2021-09-08 00:40   좋아요 4 | URL
아! 이런 이야기, 주제 넘ㅎ 좋습니다!

다큐 비비씨 샅샅이 보고 있지만 이 분야에 권위자들은 전부 옥스퍼드에 있어서
혹쉬 초란공님 자료는 영쿡에 아주 많습니다 ^ㅅ^

청아 2021-09-07 23: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요즘 지구본 사려고 알아보던 중이라 솔깃합니다~♡저도 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그레이스님 멋지심! 알라딘 굿즈로 세계사 분야별 인물, 사건, 전쟁, 미술사, 음악사 연대기표 테이핑 나왔으면 좋겠어요. 쭉 펴서 여러개 나란히 놓고 같은 시기 미술사는 뭐였고 등등 비교해봐도 재밌을듯🤭

그레이스 2021-09-07 23:30   좋아요 5 | URL
제가 갖고 있는 큰 책 연표가 있긴한데 미술사 음악사 전쟁사 함께 펼쳐놓고 보면 좋겠네요^^
만들기에는 항목이 넘 많네요
같은 간격으로 나와 주면 비교 가능하겠네요
저도 미미님 의견 찬성!

붕붕툐툐 2021-09-07 23: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런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어내시다니 존경을 보냅니다!! 진짜 대단하셔요~~

그레이스 2021-09-07 23:42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
응원과 격려로 받을께요~!

희선 2021-09-08 03: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세계 지도를 그려보시다니... 지도 같은 거 보기는 해도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는군요 그곳을 잘 몰라도 지도를 그려 보면 어디쯤 있는지는 알겠네요 그러고 보니 만화에서 지리를 아주 잘 아는 아이가 나왔는데, 뭐가 어디 있는지 잘 알더군요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지구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희선

그레이스 2021-09-08 07:08   좋아요 4 | URL
그 만화가 궁금하네요

다락방 2021-09-08 0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학교 다닐 때 세계사, 국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이 네 과목 점수가 제일 낮았거든요. 너무 못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걸어서 세계속으로>보면서 지구본을 돌리는 사람이 됐죠. 저도 이 책 읽어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09-08 09:23   좋아요 2 | URL
요새 지구본은 축척대로 고도랑 해저 깊이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던데 언젠가 그거 하나 장만해보려고 해요^^~♡

단발머리 2021-09-08 0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덕분에 좋은 책 소개받았어요. 저는 역사, 지리를 좋아하지만 꼭 기억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아합니다 ㅎㅎㅎ 읽고 바로 잊어버리는데도 읽는 그 순간이 좋아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기호는 무엇인가? 이 문단 너무 좋네요. 지리와 역사와 문화가 우리 삶과 딱 닿아있는 부분을 꼬집어 주셔서요.

그레이스 2021-09-08 09:2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코로나가 지나가고 나면 이 도시는 어떤 기호를 갖게 될지...!
두렵네요!

mini74 2021-09-08 0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겠어요. 저도 찜! 그러네요. 진짜 중학교 사회책이나 역사책은 참 재미없는데 ㅠㅠ

그레이스 2021-09-08 10:16   좋아요 2 | URL
어투 이런걸 좀 재밌게 하면 안됄까요?
요즘엔 말풍선으로 된 대화나 삽화도 들어가던데...^^

bookholic 2021-09-08 13: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들과 함 도전해 봐야겠어요~~^^

그레이스 2021-09-08 14:10   좋아요 1 | URL
화이팅 하세요
˝🤜🤛˝

steal0321 2021-09-14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두스 비벤디: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의 한 구절로 마무리하는 기승전결이 돋보이는 그레이스 님의 글 덕분에 세계와 지도와 도시와 현재와 지옥과 용감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골몰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9-14 10: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반갑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