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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문명이 사라지면 인간은 사회로부터 학습한 선(도덕)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는가? 아니, 인간은 본래 선한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고 있는 소설이다.
핵전쟁이 일어나자 비행기에 태워져 후송되던 소년들-12살부터 5살 정도-은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그들은 랠프를 리더로 뽑고 역할을 분담한다. 이 과정에서 문명사회의 절차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조니는 몸이 비대하고 안경을 쓰고 있으며, ‘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랠프와 경쟁하던 잭은 무리를 형성한다. 숲속에서 괴물을 보았다는 어린 소년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들 가운데 미세한 공포가 자리 잡는다. 구조를 위해 봉화를 올려야 한다는 랠프의 말대로 산꼭대기로 올라가던 중 제일 그 어린 소년은 낙오된다. 봉화로 인해 불이 나고,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죽음과 미지의 숲, 낯선 어둠으로 아이들의 공포는 점점 커다란 괴물의 모습을 갖춰간다. 랠프는 이 공포의 실체가 없음을 토론을 통해 밝혀내려고 한다. 그러던 중 불을 관리하던 잭과 랠프 사이에 의견 대립이 생겨 소년들은 두 패로 나뉜다. 오두막을 짓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랠프와 달리, 소년들을 겁에 질리게 만든 ‘짐승’을 잡으러 나서야 한다는 잭은 자신을 따르는 소년들과 함께 사냥에 나선다. 잭은 무리를 이끌고 사냥해온 멧돼지를 함께 먹고 춤을 추며 자축한다. 이 날 밤 사이먼은 소년들을 겁에 질리게 한 ‘짐승’의 정체가 낙하산병의 시체임을 알고 이 사실을 알리려 내려온다. 소년들은 사이먼을 짐승으로 오인하고 살해한다. 이제 랠프의 곁에는 참모 격인 돼지와 몇몇 꼬마밖에 남지 않았다. 점점 더 흉포해지는 잭의 무리는 랠프 무리가 불을 피우지 못하도록 돼지의 안경을 빼앗는다. 랠프와 잭이 다투는 동안 잭의 무리에 속해 있는 로저가 바위를 굴려 돼지를 죽게 만든다. 랠프는 달아나고 잭은 살의를 품고 그를 추격한다.
<파리대왕>은 베엘제버브(Ba’alzevuv: 히랍어 Beelzebub)를 번역한 것으로서, 베엘제버브란 직역하면 <곤충의 왕> 이란 뜻이다. Beelzebub(바알세붑)의 헬라어 음역으로는 Beelzebul(바알세불)이다. ‘신약성경에서 ‘바알세불’은 귀신의 우두머리인 사탄의 별칭으로 사용된다.
이 ‘파리대왕’은 숲 가운데 홀로 있는 사이먼에게 나타난다. 아이들이 사냥 후 장대에 꽂아놓은 멧돼지 머리를 바라보는 사이먼은 그 응시를 멈추지 못하고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사이먼의 전면에는 <파리대왕>이 막대기에 매달려 씽긋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사이먼은 눈을 뜨고 다시 쳐다보았다. 흰 이빨과 몽롱한 눈과 피가 보였다.― 그리고 태곳적부터 있어 온 피할 길 없는 인식이 그의 응시를 떠받치고 있었다. 사이먼의 오른편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206p)
태곳적부터 있어 온 피할 길 없는 인식은 무엇일까?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방금 전 사이먼은 “온통 땀과 소음과 피와 공포의 난장판”(202p)을 보았다. 아이들이 쓰러진 돼지를 잔인하게 찌르고 “비명을 지르고 뛰어오르고”, 죽은 돼지의 피를 서로의 얼굴에 발라주고 킬킬거렸다. 그리고 그 웃음은 겉잡을 수 없는 광기가 되었다.
드디어 파리대왕은 사이먼에게 말을 한다.
“「나 같은 짐승을 너희들이 사냥을 해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참 가소로운 일이야!」하고 그 돼지머리는 말하였다. 그러자 순간 숲과 흐릿하게 식별할 수 있는 장소들이 웃음소리를 흉내 내듯 하면서 메아리쳤다. 「넌 그것을 알고 있었지? 내가 너희들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란 말이야. 왜 모든 것이 틀려먹었는가, 왜 모든 것이 지금처럼 돼버렸는가 하면 모두 내 탓인 거야」” (215p)
파리대왕이 의도하고 지금처럼 광폭한 모습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사이먼이 산위에서 본 낙하산에 매달린 시체를 보고 짐승의 실체를 알리러 내려갔을 때, 아이들은 천둥과 번개로 공포에 질려서, 광기로 가득한 반복된 노래, 아니 고함을 쳐 대고 있었고, 거기에 기진맥진 기다시피해서 도착한 사이먼을 죽인다. 파리대왕이 말한 것처럼 그들의 일부분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 후 잭이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은 흥미롭다. 봉화를 피울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섬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유리한 위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사이먼의 죽음 후 공포심이 그들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사이먼의 죽음으로 인해서 공포심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처음의 죽음은 사고일 수 있었다. 두 번째 죽음은 사고라고 말하기에는 모두가 가담한 살인행위이다. 부지중이라 하더라도 살인이다. 이제 그들은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산으로 올라가고 굴속으로 들어가고 보초를 서는 것이다. 랠프와 돼지의 무리가 그들을 죽이거나 적대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음에도, 적으로 삼고 방어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그들은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을까?
자끄 엘룰은 『도시의 의미』에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 한 후 그는 자신이 살해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함과, 이 후 세대에서 살해가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성을 쌓는 모습을 주목한다. 범죄는 오히려 그 범죄자의 내부에 불안을 조성한다. 범죄의 특징이다. 성을 쌓는 행위는 자신의 범죄가 만들어낸 공포심으로 비롯된 문화라고 설명한다.
사고사로 시작해서, 부지중 살인으로, 그리고 명확한 범죄의 요건을 갖춘 살인으로 진전되고, 이 진전은 공포와 병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살해에 대한 죄의식은 그들 내부의 근원적인 공포심을 키우고, 공포는 잔인한 사냥행위 의식으로 무뎌지고, 적대행위와 범죄로 발전하고 있다.
『파리대왕』은 『산호섬』에 대한 윌리엄 골딩의 패러디 작품이라고 한다. 1857년에 출판된 R.M.밸런타인의 이 작품은 랠프, 잭, 피터킨이라는 세 소년이 신을 공경하며 서로 도와 태평양의 한 섬에 낙원을 건설한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파리대왕』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 소년들을 구하러 온 장교는 「알겠다. 처음엔 <산호섬>에서처럼 잘 지냈단 말이지?」(302p)라고 랠프에게 묻는다. 랠프는 몸부림치며 “크나큰 슬픔의 발작에 몸을 맡기고”(303p) 울었다.
“그 소년들의 한복판에서 추저분한 몸뚱이와 헝클어진 머리에 코를 흘리며 랠프는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 (303p)
‘과연 인간 본성은 『산호섬』의 아이들처럼 선할까?’에 대한 골딩의 반론과 같은 작품이다. 문명은 취약한 기반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문명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지난 세기에 목도했다. 악마의 짓이라고 할 만한 끔찍한 현장을 보았고, 거기에 가담한 사람들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말에 분개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문명이 사라진 무인도와 같은 세계에서 우리는 인간본성이 선하다는 믿음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까? 어른들이 아닌 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데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복잡하지 않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선악의 개념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선과 악 사이에 무척 넓은 도덕적 중립성의 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설사 악이라 하더라도 그것과 싸우는 데에는 정당한 수단이 필요하며, 또 그것을 제재하는 방식 역시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일상적 선악의 개념이다. 그러나 학살자는 이와는 좀 다른 선악의 관념을 갖고 있다. 일단 공포에 질린 그에게 세상은 폭력의 세계이며, 회색이 없이 깨끗이 갈린 선과 악의 대격전의 장이며, 이 세계에서 유일한 선은 적을 말살함으로써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최고선의 목적은 일체의 수단을 정당화해준다. 이로써 기존의 도덕은 효력이 중지되고, 일상적 선악의 피안에서 폭력과 잔인함을 상찬하는 새로운 도덕(?)이 탄생한다.
문명은 아주 취약한 기반위에 서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함에 대해 말했다. 학살자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평소에는 멀쩡한 사람들이 바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문명이 공포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인 것처럼, 우리가 의식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실은 사회의 바탕에도 늘 폭력의 포텐셜이 깔려 있다." -『시칠리아의 암소』, 진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