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갔다 와서 바로 가려던 시댁을 지난 주말에야 다녀왔다. 남편의 승진 시험 합격 소식을 들고 간 시댁행이라서 가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모두 기분이 좋았다. 1박 2일 짧은 일정이어서 집에만 있다 올 생각이었는데 형님네가 밖으로 나가자고 하는 바람에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다녀올 수 있었다.
제주 출신 남편과 사는 덕분에 제주 소식이 들릴 때마다 더 귀담아듣게 되는데 김영갑도 그랬다. 제주에 갤러리가 생겼다고 할 때부터 마음에 담아두긴 했지만 제주 시내에서 후다닥 갔다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어서(제주도에서 한 시간은 엄청 먼 거리로 인식) 계속 미루던 차에 2005년 5월 갤러리 주인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야 다녀올 수 있었다.
제주 출신도 아니면서 제주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을 찍은 사람, 김영갑. 연초에 그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세상과 타협할 줄을 몰라서,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 너무 냉정해서, 너무 외롭고 너무 가난해서, 그리고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 ,...
김영갑 갤러리는 제주 공항에서는 한 시간 정도, 제주 시내에서는 성산포 쪽으로 중산간 도로를 따라 40분 정도 가면 나온다. 삼달초등학교 분교로 폐교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도시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막상 가 보니 아주 작은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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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이름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 교문 자리였던 곳에 돌담을 쌓고 담장 안에 갤러리 문패를 달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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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을 들어서 왼쪽으로 몇 발자국을 옮기니 옛 학교의 모습을 알리는 빗돌이 나왔다. 남편 친구 하나도 이 학교를 나왔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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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아이들이 뛰어다닐 수 있는 넓은 운동장은 없었다. 대신 운동장에 가득한 작은 동산들 앞에서 숨이 탁 막혔다. 아, 이것이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으면서 힘겹게 쌓아 올렸다는 돌이로구나 싶었다.
동산 위에는 대부분 나무를 심어놓았는데 몇 개의 작은 동산 위에는 제주 흙으로 만든 작고 소박한 인형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표정이 하나같이 어둡고 쓸쓸했다. 평생 외로움 속에 갇혀 있었던 김영갑 자신을 표현한 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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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같이 있던 딸아이는 슬픈 표정 때문에 인형들이 다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그래, 열두 살은 인생의 외로움을 이해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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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와 풀들에 가려 인형이 파묻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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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라서 그런지 이곳에 있는 인형 중 가장 따뜻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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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이 있는 사잇길로 들어오면 나즈막한 갤러리 건물이 나온다. 오른쪽은 사무실이고, 왼쪽에 보이는 창문이 그의 작업실이다. 사무실에서 입장료를 받는다. 어른 3천원, 아이들 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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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창문을 사이에 두고 찍은 그의 작업실 풍경이다. 작고 소박하다. 책상과 의자, 카메라, 책들이 살아 생전 모습 그대로란다. 카메라와 사진 외에는 아무 욕심도 없었던 김영갑의 성품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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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진이 들어간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나도 식탁 위에 걸어놓고 싶어서 작은 액자 하나를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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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실에서는 제주 KBS 에서 찍은 20분짜리 영상을 볼 수 있다. 그의 인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루게릭병 막바지에 찍은 그의 어눌한 인터뷰 모습에 자꾸만 가슴이 찡해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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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실에는 김영갑에 대한 이야기와 본인 사진도 몇 장 있었다. 아프기 전의 모습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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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소개한 작업실 의자에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의 사진. 아프기 전의 모습과 확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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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몇 개를 터서 만든 듯 전시 공간이 모두 길쭉했다. 바람 많은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파노라마 사진들. 김영갑갤러리 홈페이지(바로가기 클릭) 에 가면 그가 남긴 변화무쌍한 제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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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에 방명록이 놓여 있어 방문한 느낌을 남기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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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을 다 둘러본 후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간 화장실이다. 대충 철사를 구부려 만들어놓은 남녀 표시가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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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뒤로 돌아가면 이런 찻집이 나온다. 두모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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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차 몇 가지가 준비되어 있고, 직접 타서 마시도록 되어 있는 무인 찻집이다. 찻값은 알아서 계산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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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앞에 서서 본 풍경. 작은 돌인형들이 교실 뒤편 벽에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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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돌아서기 아쉬워 갤러리 앞에 잠시 앉아 있는데 나무 앞에 향을 피운 흔적이 보였다. 형님한테 물어보니 김영갑의 유골을 뿌린 감나무라고 했다. 갑자기 마음이 더 숙연해진다.
그의 육신이 깃든 감나무 앞에 서서 운동장을 바라보니 들어오면서는 답답해 보였던 동산들이 오밀조밀 말을 거는 듯했다. 작은 동산이 모두 돌무덤처럼 보인다. 평생을 지독한 외로움과 함께했지만 죽어서만은 외롭고 싶지 않았나 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든 말든 영원히 함께할 말없는 친구들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놓은 걸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