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알라딘을 평정한 뒤 이를 쑤시고 있던 마태우스 씨는
빨려들어갈 만한 글을 하루에 몇편씩 쓰던 한 알라디너를 넋을 놓고 바라본다.
그러면서 마태우스는 지도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앞으로는 저 친구가 알라딘을 평정할 거야."
알라딘이 뭔지도 몰랐던 지도학생들은 뭔 소리냐고 두런거렸지만,
그의 말은 맞았다.
마태우스님이 알라딘의 헤게모니를 틀어쥐고 이를 쑤시고 있을 때 음지에서 은밀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알라딘에 둥지를 틀게 된 '가연'.
인터넷상의 별별 커뮤니티에서 눈팅족으로 살면서 정말 가끔가다가 뻘글을 올리며 지내던 가연은 어느 날, 알라딘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치 집어삼킬 외계를 발견한 갤럭투스 - 마블 코믹스의 - 를 닮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가연(이때는 가연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었겠지만)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여기를 집어삼키는거야'
목표를 세운 이 존재는 닉을 지금의 가연, 이라는 들어도 위화감없고 '해치지 않아요, 아하하' 같은 느낌을 주는 선량해보이는 닉으로 세탁하고 알라딘에 숨어들어왔다. 하지만 알라딘은 앞서 본대로 마태우스, 라는 사람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고, 그 세력에 눌려 도저히 기를 펼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가연은 방법을 달리 할 수 밖에 없었다.
'쳇, 신간평가단을 하는 척하면서 어둠의 다크한 그림자를 뻗어야겠어.'
하지만 신간평가단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알라딘을 정복하려면 페이지뷰라던가, 이웃수라던가, 서재지수를 갱신하여야하는데, 굳건한 마태우스님의 헤게모니는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마태우스님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맹렬한 기세로 글을 올리고 있는게 아닌가! 기껏해야 두세번 글을 올리는 정도로는 그 사람들을 물리칠 수 없었고, 역시 알라딘을 정복하려면 이런 낡은 수법으로는 안되는 것인가, 절망하던 가연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방법을 바꿔보기로 결심한다. 그래, 헤게모니를 뺏어올 수 없다면, 헤게모니를 쥔 사람들과 연합을 하는거야!
기회는 정말 어렵게 찾아왔다. 저 마태우스님이 주목한 다락방, 통칭 다락님이라는 알라디너가 내 신간평가단 추천글에 댓글을 달아온 것이다. 그것도 '와, 정말 멋진 글이에요.' 라는 말까지 적으면서 말이다. 가연은 그 댓글을 보고 음흉한 미소를 모니터 너머로 띄웠다. 역시, 내 계획은 완벽해, 라고 중얼거리면서.
하지만 왠걸, 그 뒤에 더이상 다락방님은 댓글을 달지 않는게 아닌가! 이대로는 내 계획에 무리가 생긴다. 거대 세력과의 연합은 내 계획에서 천하삼분지계에 맞먹는 계책이거늘!! 조급해진 가연은 다른 서재에 거의 댓글을 남기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다락방님의 서재를 찾아가서 댓글을 남겼다. 아마 바이런에 관련된 글로 기억한다. 기회다, 가연은 그가 아는 바이런에 관한 토막 상식을 끄적거렸고, 자신의 지식에 다락방님이 감동받아 서재로 다시 찾아주기를 바랬다.
그, 바이런은 정말 유명한 일화가 있습죠, 무슨 시험때 바이런이 포도주에 관한 시를 쓸때 말입죠,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져버렸다네 하고 한 게 아닙죠, 아하하하핳하하핳핳
하지만 그 글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며칠이 지나도 가연의 댓글에는 답글이 달리지 않았다. 가연은 그 사실에 슬슬 절망하고, 이 계획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그때!
다락방님이 다시 댓글을 달아온 것이 아닌가! 후후후훟훗 그래, 이대로 직행하면 내 이름도 겸사겸사 알릴겸 알라딘을 집어삼킬수 있겠어, 음흉하게 웃으며 착한 척 가연은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계획을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너무 그 계획을 오래 끌어서는 안된다. 너무 오랫동안 알라딘 서재 정복 계획을 끌어온 탓일까, 이렇게 친분을 만드는 것은 성공했는데, 이 다음 단계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스스로의 독기도 점차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다락방님의 글들을 읽어나가면서 말이다. 권력을 쟁취하는게 목표였었던 가연은 이런 감성도 있는 것인가! 절규하면서 글들을 읽어났다. 그에게는 사실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그가 거쳐온 것은 상상도 못할 말들이 난무하는 수많은 수라장. 친해도 비난하고 친하지 않아도 비난하는 그런 곳들을 뚫고 진성 악플러로서의 자신을 갈고 닦아왔던, 그러다보니 주기적으로 과거를 지우려 닉세탁마저 했어야만 했던, 가연은 점차 스스로가 착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니, 난 사실 음흉하고 캡쳐질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머리를 흔들며 착해져가는 스스로를 바로잡고는 다시 알라딘 정복 계획을 시행하려고 했지만, 시간은 흐르고, 때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알라딘 정복은 물거품이 되고, 듣보잡 서재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하지만 뭐, 그래도 나쁘지 않다, 고 여겼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 한 악플러를 갱생시킨 그 다락방님이 책을 출간했다. 모두가 하는 말들, 다락방님의 글솜씨를 생각하면 너무 늦게 나왔다 등등, 은 모두 빼겠다. 아직 나는 저 책을 읽지 못했다. 오늘 주문했는데 내일 올 것이다. 그리고 리뷰도 아마 쓸 것이다. 나는 이 서재를 운영하면서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이 서재에 올려져 있는 책들은 거의 대개 내가 읽은 책들이다. 물론 내가 읽지 않은 책들도 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간하면 읽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서재에 올려놓고는 읽지 않은 책이라면 어떻게든 그 이후에 구해서 읽는다.
그래서 말인데, 이 책도 아직 읽지 않았지만 내일이면 읽을 것이다. 그러면 내일 글을 쓰면 되잖아, 싶겠지만 나는 사실 다른 말이 하고 싶다. 옛날에 다락방님이 책을 한 번 나눈 적 있었다. 그때 내가 받은 책은 가스라기였다. 그날 밤 나는 책을 받자마자, 술약속 시간이 되기전까지 거침없이 읽어나갔다. 빠른 속도로 1권을 읽어내려가고, 다음 권 말미에 이르던 내 눈동자는 책의 어느 여백 한 가운데 멈췄다. 그 여백에는 다락방님이 볼펜으로 휘갈겨 써놓은 짧은 문장이 있었고, 나는 그 문장을 보고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답답하다, 대략 그런 내용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보는 나도 이유는 모르지만 답답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흰 건 종이이고 검은 건 글자인데, 그 글자 너머로 떠오르는 이 둥근 액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밤은 어둡고, 거리의 전봇대는 깜빡거리고, 차소리마저 안들리는 정적사이로 나는 순간 울것만 같았다. 나는 그때 헤어지던 날 밤을 무심코 떠올렸다. 문을 등지고 돌아서던 그 순간, 그녀가 보는 내 마지막 얼굴이 웃는 얼굴이었으면, 내가 보는 그녀의 얼굴이 웃는 얼굴이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괜찮다고 중얼거리며 돌아서던 그 순간, 그리고 문 너머로 느껴지던 그녀가 무너지던 기척까지도.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던 그 때를. 그 다음부터는 겨우겨우 가스라기를 다 읽었지만, 가스라기보다도 내가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 문장이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이 책을, 마음을 후벼파는 이 문장을 포함해서 돌려줘야겠다, 고 마음먹었지만 결국에는 내가 여전히 가지고 있게 되었다.
책을 출간했다는 말을 소식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저런 이야기이다. 그녀의 서재의 글들은 저렇게 때로는 볼펜으로 여백에, 때로는 포스트잇에 끄적거리던 그런 그녀의 감성이 정리되어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답답하다, 라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울릴 수 있을 정도라면, 그런 감성이 책으로 정제된다면 얼마나 웃고 울리게 만들까? 그런 생각에 나는 저 책을 내일 배송받기가 두렵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물론 지금은 저렇게 간단히 울지는 않을 것이다. 감정도 많이 무뎌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전이 왜 고전인가? 시대를 지나도 여전히 보편적으로 통하는 감성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고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주요한 것은 보편적으로 통한다는 말이다. 다락방님의 글들에게는 그런 것이 있고, 그 감성은 싸운 커플을 화해시키기도 하며 - 다락방님의 어느 글에 달린 비로그인 댓글로 미루어 짐작해볼때 - 직장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듬어주기도 한다. 혹은 어떤 글은 - 최근에 읽은 모던 하트에 관한 포스팅은 - 이렇게 무뎌진 나의 감정을 다시금 움직이기조차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성을 전달하면서도 전혀 젠체하지 않고 변함없이 활동을 하고 있는 다락방님의 글들이 묶인 위 책이 부디.. 고전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울음의 전달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추신 : 사실 전혀 친분이 없는 마태우스님...을 함부로 글에 등장시켜서 죄송합니다만.. 용서해주세요ㅠㅠㅠ 혹시나 불쾌하셨다면 말씀해주세요. 마태우스님의 추천사를 보자마자 이렇게 한 번 써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바로 들어서 그만...
추추신신 : 이 글은 사실에 아주 약간 기반한 꽁트입니... 저 저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닉세탁은 했지만요, 아흐한함느히ㅏㅁ흐ㅏ흐........
추추추신신신 : 아 손발이 오그라드네요, 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