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역사를 보면 유난히 반복하여 등장하는 나라이름이 있다. 바로 진나라이다. 그러고보면 춘추전국시대에도 진나라가 있었고,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삼국 - 위, 촉, 오 - 시대 이후에도 진나라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실제로 이 진나라들은 모두 다른 나라들이다. 이는 어쩌면 우리나라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어쩔 수 없는 난관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한자로 쓰면 모두 다른 국명이 된다. 진陳, 진晉, 진秦 이렇게 말이다. (춘추시대에 사실 매우 작은 나라인 진軫나라도 존재하였다고는 하지만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가 않다.) 실제 중국어로 읽는 방법도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이후 사마염의 진나라 및 오호십육국 시대에 무수한 진나라들이 등장하지만, 그 진나라들의 한자 자체는 위의 세 한자가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사마염의 진나라는 서진이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이렇게 쓴다 ; 西晉.

 

이 글에서는 위의 세 진나라, 진陳, 진晉, 진秦 에 초점을 맞추어 간단하게 서술해보고자 한다. 오호십육국 시대의 전진, 후진, 등의 나라들 또한 동일한 한자를 쓰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별개의 나라들이지만, (앞의 전前은 후대의 역사가들이 편의로 붙인 명칭이다. 국호 자체는 진나라들이다. 그러니 동일한 한자를 사용하였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너무 많은 국가가 명멸하였기에 일일이 다 언급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 역사 관련 사료를 읽을 때 나오는 진나라에 대하여 파악하고 싶다면, 위의 세 나라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먼저 본격적으로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에 대하여 이야기를 조금 적어놓을까, 한다. 춘추시대는 서주가 멸망하고 동주로 수도를 옮겨 그 명맥을 유지했을때, 여러 제후들이 왕을 존중하고 이민족을 쫓아낸다는 기치 아래에 거병한 때를 일컫는다. 이 시대의 이름은 춘추, 라는 책을 따서 명명이 되었다. 이때만 해도 왕을 존중한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천자를 논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국시대는 달랐다. 이 시대는 진晉나라가 멸망하고, 한, 위, 조, 이렇게 세 나라로 쪼개진 시점을 기점으로 잡는다. 이때부터는 왕을 그다지 존중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한, 위, 조 세 나라는 왕이 먼저 승인을 한 뒤에 쪼개져 나간 것이 아니라, 먼저 쪼개진 뒤에 왕에게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저 선후관계가 바뀌었을뿐이지만, 이는 매우 큰 차이다. 후자의 경우엔 왕권은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라고도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세 나라 모두 시기적으로 엇비슷하게 시작하지만, 그나마 추측해보자면 진秦나라가 가장 먼저 등장하였으리라 본다. 나라로서의 진나라가 아닌, 어떤 부족연맹체로서의 등장말이다. 왼쪽의 진시황 평전의 저자인 장펀텐, 은 이야기한다. 만약 춘추전국시대를 한 사람의 일대기로 축약하여서 그 역사를 그려낸다면, 당연히 주인공으로는 진秦나라 사람이 어울릴 거라고 말이다. 진秦나라가 그만큼 오래 그 자취를 남기고 있었다, 라는 것을 반증해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진秦나라의 기원은 고대 중국의 은나라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의 기록이 있기는 하나, 요순시대의 기록은 확인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은나라의 왕 주왕의 신하였던 비렴은 주 무왕에게 쫓겨 서북쪽으로 이주하고 만다. 이 비렴이라는 자가 진나라 씨족의 직계 선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권력 투쟁에 휩쓸려 그대로 망한 씨족의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주 목왕때 이들은 화려하게 부활한다. 바로 조보, 때문이다. 진나라 씨족 중에서 특히나 말을 잘 다루는 사람이었다. 반란이 일어났을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몇 마리고 말을 바꾸며 천자를 모셨던 조보는, 그 행위 덕분에 천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영지를 받아 춘추시대의 나라들 중 가장 서쪽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자리 잡은 영지는 그다지 좋은 땅은 아니었다. (물자가 비옥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근처에 이민족 - 주나라로 일통되지 못했던 - 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들과의 싸움에서 진나라는 먹히느냐, 먹느냐, 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주나라의 이야기를 조금 하면, 주나라는 크게 시대상으로 서주와 동주로 나뉜다. 시대상으로 앞선 서주는 말 그대로 수도가 서쪽에 있기에 저렇게 일컫어지며, 동주는 이후에 수도를 동쪽으로 옮긴 후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의 분기점이 되는 사건은 주 유왕의 죽음이다. 주 유왕이 죽은 뒤 서주가 멸망하고, 주나라는 동주로 이름을 바꾸어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한다. 중국 고대사를 살펴보면 하나라의 걸왕은 말희때문에 멸망당했고, 은나라의 주왕은 달기때문에 멸망당했다. (물론 이렇게 단일 요인만 존재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 나라의 멸망에 이런 경국지색이 있었다고들 한다.) 마찬가지로 주나라 유왕에게는 포사, 라는 미녀가 있었다. 이 포사, 는 잘 웃지 않는 미녀였는데, 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유왕은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것은 봉화를 올리는 것이었다. 당시 시대상으로 봉화는 제후들의 소집에 쓰이는 그런 중요한 기구였었다. 그런 봉화를 단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사용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봉화에 제후들은 완전 무장을 하고 모이게 된다. 하지만 주 유왕은 그들앞에서 침략은 없으며, 그대들은 헛걸음했노라고 이야기하고, 화를 내다가 너털걸음으로 돌아가는 제후들을 보며 포사는 깔깔거리며 웃음소리를 높였다. 이런 일이 반복이 되자 제후들은 어느 순간부터 봉화를 울려도 가지 않게 되었다. 말하자면 중국판 양치기 소년이었던 것이다.

 

 

주 유왕은 이렇게 어리석었다. 하지만 단지 어리석을 뿐이었다면 주나라는 당대에는 망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마지노선이었달까, 안그래도 지방 제후들의 권력은 가면 갈수록 천자의 권력에 비등해질정도로 강해지고 있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고대의 믿음들 - 삼황오제의 전설 등 - 이 그들을 끝끝내 억누르고는 있었다. 그리고 명분이 없다는 것도 한 몫하였었기에, 만약에 유왕이 어리석기만 하였었다면 주나라는 조금 더 서쪽에 수도를 둘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맹자는 말한다. 은나라의 주왕을 주 무왕이 죽인 것을 두고, '한 필부를 죽였다는 소리를 듣기는 하였으나 천하를 찬탈했다는 소리를 듣지는 못하였다' 라고. 결국에는 민심이 중요한 것이다. 당시의 주나라가 아무리 부패하였다고는 하나, 민심은 은나라 말기만큼이나 날카롭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주 유왕은 어리석기만 한 것이 아니라 포악하고 의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바로 여기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그가 한 일은 많으나, 가장 자충수처럼 여겨지는 일은 자신의 외척을 의심하고 죽이려 몰아붙였던 일이다. 그 외척은 결국 달아나 견융, 이라는 이민족과 연합하여 먼저 공격당하여 죽임을 당하기 전에 주 유왕을 죽였다. 주 유왕은 봉화를 울리라 명하였으나, 이미 여러번 낭패를 맛본 제후들이 그 봉화를 보고 달려올 리 없었고, 결국 주 유왕은 죽고, 포사는 끌려가 범해진 뒤 자살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견융이 주나라의 수도를 차지하고 있지는 못했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와 함께 오는 법, 진秦나라의 당시 군주는 이 상황을 두고 예리하게 분석했다. 아직 주나라의 국운이 쇠할 때가 아니다. 그렇다면 남들이 돕지 않는 이 때 가장 먼저 가서 돕고 천자에게서 완전히 인정받는 것이 좋다, 이런 판단을 내렸던 그는 바로 군대를 몰아 견융과 외척세력을 몰아내버린다. 덕분에 오등작 - 공후백자남 - 중 백작을 받고는 제대로 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때 진秦나라와 함께 도운 나라가 진晉나라이다. 진晉나라에 대해서는 밑에서 이야기 할 것이다.

 

앞서 진秦나라는 이민족과의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환경은 진나라인들에게는 도리어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래서 순자는 후에 진나라에 들러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진나라는 법도가 엄격하고 규율이 잘 지켜져서 백성들이 삿되지 않다, 고 말이다. 다만 순자는 그런 말 다음에 탄식을 하는데, 이는 진나라는 이민족들과 어울리다 보니, 예와 인에 대해서 잘 모른다, 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처럼 깊은 개념은 당장 이민족들과 싸워야 할 진나라에게는 익숙하지는 않았다. 아니, 당장은 소용이 되지 않았다.

 

진나라가 본격적으로 반석에 오르게 된 것은 진 목공때부터이다. 진 목공은 춘추오패의 일원으로써 그 위세를 떨쳤었는데, 그가 이렇게 오패의 일원에 들게 된 것은 그 자신의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모사들을 잘 활용했었던 것에 있다. 진 목공의 모사는 크게 두 명이 알려져있는데, 백리해와 건숙이 바로 그들이다. 가도멸괵의 고사를 아는가? 진晉나라는 근처의 괵나라를 멸망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옆의 우나라에게 길을 빌려주기를 청하고, 그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겠다, 선언하였다. 어리석게도 우나라는 진晉나라에게 길을 빌려주었고, 결국 진나라에게 멸망당했다. 이때 이 진晉나라의 속셈을 알아채고는 도망쳐 목숨을 부지한 사람이 바로 백리해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진秦나라에서 벼슬자리에 올라서 진秦 목공을 패자의 자리에 우뚝 서게 만들었다. 건숙은 또 어떤가? 그는 진秦 목공이 승산없이 초나라를 쳐들어가려고 하자 말렸던 사람이 아닌가? 앞날을 꿰뚫어 보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모사였었다.

 

여기서 공은 진晉나라로 넘어간다. 진晉나라에서도 춘추오패를 배출해내었기 때문이다. 대저 춘추오패라 함은 다음을 말한다. 제나라 환공, 진秦 목공, 진晉 문공, 초나라 장왕, 송 양공. 패는 왜 패覇인가? 제후의 모임인 회맹을 주도하기 때문에 패覇이며, 천자를 대신하고는 그 회맹의 중심이 되기에 패覇이다. 그렇기에 초 장왕은 감히 주나라의 구정의 무게를 물었던 것이다. 진晉나라의 춘추오패는 바로 문공이다. 그런데 이렇게 문공이 오패로 우뚝 서기까지는 정말 많은 고난이 있었다. 그리고 진晉나라 자체도 많은 부침이 있었다.

 

진晉 나라와 진陳 나라는 그 출몰연대가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굳이 따지자면 진晉나라가 앞선다. 진晉나라의 기원은 주 무왕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 주왕에 반기를 든 희창, 그 희창의 뒤를 이은 주 무왕은 이윽고 중국 천하를 주나라의 산하로 만들었었다. 그 주 무왕의 아들이자 주나라 3대 왕인 주 성왕의 동생이 바로 진晉나라의 시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晉 나라가 생긴 시점은 대략 기원전 1000년 정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진晉나라가 우리가 아는 춘추시대의 진晉나라와 완전히 동일한 나라이냐면, 또 그렇지는 않다. 진晉 나라는 기원전 1000년에 어느 정도 기틀을 잡은 뒤 두 나라 - 익, 곡옥 - 로 나뉘고 말기 때문이다. 한참을 그렇게 두 나라로 나뉘어 기틀을 다져가던 그때, 곡옥의 왕이었던 무공은 익나라를 공격후 멸망시키고 하나의 진으로 다시금 통합시킨다. 이 진 무공이 후에 패자가 되는 진 문공의 할아버지다.

 

여기서 진나라의 환란이 끝이 난 것은 아니다. 후계자 문제로 저 무공의 아들인 헌공때 다시 환란을 겪는다. 헌공은 가도멸괵, 순망치한의 바탕이 되는 사건을 일으켰지만 - 괵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이야기이다. - 자신의 후계를 제대로 지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후계 문제는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이 환란은 바로 옆의 국가였었던 진秦 나라의 개입으로 인하여 중이가 왕에 오름으로써 끝이 나고 만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다. 당시 진秦 나라의 왕은 패자 목공이었는데, 외국으로 망명한 중이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진다. 그대를 곧 왕으로 만들어 주면 어떻겠소이까? 하지만 당시에 자신의 아버지인 헌공을 잃은 시기였었던 중이는 천륜을 어길 수 없다, 이런 혼란스러울때에 왕위에 오를 수 없다, 하여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지만 동생인 이오는 중이와 다른 인물이었고 진 목공에게 만약에 자신이 왕이 된다면 진秦 나라에게 진晉나라의 성을 바치겠노라고 공언해버린다. 처음엔 중이를 왕위에 올리려 하였던 진 목공도 이오의 태도를 보고, 이오를 진晉나라의 왕에 올리는 것이 자신들 진秦 나라에 보탬이 되리라 여기고 이오를 왕위에 올리고 만다.

 

하지만 하늘이 정한 자는 결국에는 모든 난관을 거쳐 우뚝 천하에 서리라. 중이가 초나라에 망명할 당시 왕이었었던 초 성왕은 그들을 모조리 죽이라 주장을 하는 신하들에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야기한다. 중이는 어진 이이고, 하늘이 정한자이니 지금 죽이는 것은 천리에 맞지 아니한 것이다. 초 성왕이 그런 판단을 하게 된 것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그는 중이에게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만약에 그대가 왕이 되어 우리와 전쟁을 하게 된다면 그대는 우리에 어떤 보답을 할 것인가? 중이는 한참을 고민하고는 왕에게 이렇게 답한다 : 전쟁시 90리를 물러서겠습니다. 주위의 신하들은 저 중이는 매우 방자한 인물이고, 또한 위험한 인물이니까 당장 죽이라 간언하였지만 성왕은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받아들인다. 결국 이 두 나라는 실제로 결전을 벌이게 되고, 진晉나라는 실제로 90리를 물러난 뒤 초나라를 패퇴시킨다.

 

우여곡절끝에 중이는 이오 - 진晉 혜공, 그리고 이오의 아들인 진晉 회공을 쫓아내고는 왕에 오른다. 여기까지는 좋았었지만 동시대 패자를 다툴 초 성왕은 매우 기세가 당당한 인물이었다. 당시에 패자의 자리에 오르려 했던 송 양공을 - 패자의 의미를 회맹을 주도하였다, 로 둔다면 송 양공을 패자로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송 양공을 패자의 하나로 본다. - 부상입혔고 결국 패자의 자리서 쫓아내었으며, 진秦 목공 다음의 가장 유력한 패자가 되리라 볼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왕은 결국 진 문공, 중이에게는 패퇴를 당하고 만다. 여기서 90리를 물러난 약속이 실제론 계책이었다, 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 상대가 기세가 등등할 때에는 맞서 싸우지 않고, 상대의 기세가 수그러졌을때 공격을 하여 승리를 가져갔었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리라. 그 90리의 약속이 정말 진실된 마음때문에 지킨 것인지 계책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전쟁은 진晉문공을 패자로 만들게 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진秦 목공은 진晉 나라의 혼란을 틈타 멸망시키지를 않았나? 상대의 혼란은 나에겐 득이다. 그러나 진秦 목공은 진晉 나라를 그대로 유지시켜주었다. 이는 파악컨대 두 가지로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멸망시키는 것 보다 그대로 놓아두고 속국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더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것을 진 목공이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라는 것이다. 치안과 정치 그리고 문화 등 귀찮은 부분은 그 나라 군주들에게 맡기고 경제적 알맹이들만 자신들에게 들어오도록 한다. 근대의 식민지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경우에 백성의 불만도 그들의 군주들에게 돌아가버리니 민심을 잃을 가능성 자체도 낮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를 위해서 진秦 목공이 이오를 왕위에 올린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진秦 목공이 실제로 그렇게 여겼었다면 그 전략은 실패로 돌아간 것 같다. 결국 이오는 진秦 목공을 배신하고는 신의를 지키지 않았고 때문에 진秦 목공에게는 큰 이득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고도 진秦 목공은 진晉 을 멸망시키지는 않았다.

 

결국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춘추시대까지는 존왕양이의 이념이 강했다, 라고 말이다. 왕을 존중하면서 이민족들을 몰아내버린다. 그런데 진晉 나라는 사실 주 나라 왕실에 직접 토지를 받은 제후일지니 - 앞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진晉 의 국성國姓은 희씨로 주와 같은 성씨다. - 함부로 건드리지를 못했다, 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주가 직접 질서를 만들어 낸, 토지를 나눠준 진晉 이었기에 존왕양이의 기치를 가장 먼저 내세운 - 앞서 주가 이민족에게 공격받았을때 가장 먼저 군사를 내었다고 말했다. - 진秦 은 공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순히 춘추시대는 상대를 멸망시킬 정도로 심하게 공격을 하지는 않는 시대였었다, 라고 본다면 진晉에게 멸망당한 괵같은 곳들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것인가? 물론 여기에 반박은 있다. 괵나라 자체도 매우 높은 위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었다. 괵의 군주는 주 문왕의 자손의 나라였었다. 그렇다면 진이 괵을 멸망시켰던 것은 주 가 세운 질서를 무너뜨린 꼴이 되지 않겠나?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진 목공은 멸망을 시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 국가가 외부의 침입을 받으면, 그때까지는 서로 내분을 일으키더라도 뭉치게 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진 목공은 공격을 통해서 멸망시키는 것을 중단하고는 이오를 밀어주었다. 아마도 그 당시 진 목공의 심정은 이 세 가지 중 어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진晉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엄밀히 말하면 어느 정도의 명맥은 유지를 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멸망에 가깝다.) 왼쪽의 책 치도를 보면 멸망 당시의 진晉나라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가 나온다. 당시 진晉나라는 네 집안이 세력을 거의 나눠가지고 있었다. 지씨와 한씨, 위씨, 조씨가 바로 그들인데 가장 강력한 집안은 지씨였었고, 한씨와 위씨는 지씨의 가신들이나 다름없었다. 유일하게 조씨가 지씨의 패권에 도전했지만 지씨의 세력 앞에서 성 안으로 갇히고 만다. 그러나 조씨의 군주 조양자는 덕이 강한 인물이었고 성내의 백성들 모두 조양자와 함께 죽을 것을 각오하고 결사항전을 하니 도저히 점령할 수가 없었다. 물론 만약에 한씨와 위씨가 지씨를 열심히 도왔었다면 분명 결과가 있었겠으나 무력에 의한 겁박덕분에 도우고 있으니 어찌 전심을 바치겠는가. 그렇게 점차 지구전으로 상황이 흘러가던때에 지씨의 수장인 지백은 한씨의 수장 한강자와 위씨의 수장 위환자를 자신의 수레를 끌게 한 뒤 직접 전투 상황을 시찰하러 나갔다. 사실 지백의 머리속에는 이미 조양자는 안중에도 없었고, 승리한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지백의 입에서 무의식중에 말이 흘러나왔다. 여기 이 강물이 흐르는 곳은 어디인가, 라고. 그 말을 들은 한강자는 위환자를 팔꿈치로 툭 쳤다. 당시 지씨가 공격하고 있던 성의 근처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 강물을 따라 나아가다보면 한씨의 영토까지도 다다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강물을 따라 그대로 진군하여서 한씨마저도 멸망시켜야겠다, 라고 무의식중에 말한 것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이에 위환자는 한강자의 발등을 밟는 것으로 그 대답을 대신하였다. 한씨가 멸망한 다음에는 당연히 위씨다. 탐욕스러운 지백이 그들을 살려둘 리가 없을 것이니.

 

이윽고 조양자는 위환자와 한강자에게 밀서를 보내 지씨를 함께 멸망시키자고 말한다. 그리고 한, 조, 위, 세 가문은 힘을 합쳐 지씨를 모조리 죽이고 만다. 그 여세를 몰아 그대로 세 가문은 세 국가로 탈바꿈해버린다. 이를 두고 삼가분진이라는 말을 쓴다. 물론 진晉 자체는 이때까지만 하여도 이름은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조리 세 국가 - 한, 조, 위 - 들에게 땅을 빼앗겨버리고 만다. 여기서 춘추시대는 막을 내리고 전국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만약에 주나라 왕실이 아직도 힘이 있었다, 라고 한다면 분명 한, 조, 위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분봉한 국가를 건드리지 말고 다시 진晉 으로 돌아가도록 하여라, 라고. 하지만 당시의 왕은 힘이 없었고 그대로 승인해버리고 만다. 이를 보고 다른 국가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더이상 주나라는 힘이 없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이리라, 라고.

 

진陳 나라에 대해서는 사실 그렇게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간단하게나마 언급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이다. 진陳 왕족이었던 진완은 제나라로 건나가 제나라를 자신의 나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전국시대에 칠웅으로 자리를 잡았던 제나라는 바로 이 진陳씨의 제나라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바로 여기에도 매우 흥미로운 얽힌 이야기들이 있다.

 

진陳 나라의 건국은 주 무왕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 무왕의 딸은 진陳 나라의 시조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진陳 국가의 시작을 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결혼을 통하여 진陳이 제후국으로 발돋움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陳 은 계속 주위 나라들에게 시달렸었고, 업친데 덮친 격으로 내분까지도 일어나게 된다. 바로 후계자 문제다. 한 나라를 기업으로 보자면, 이 기업이 잘 유지되려면 후계를 잘 둬야 한다. 진陳 이라는 기업은 여기서 제대로 맞물리지가 않았다. 결국 후계구도에서 쫓겨난 완이라는 공자는 제 나라로 도망가버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진陳씨를 써서 자신을 진완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이 진陳완은 제나라에서 착실히 일하여 전田땅을 하사받으니 이로써 전田완이라고도 불렸다. 전씨는 상공업에 계속 종사하였고 결국 제 내부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게 된다. 결국 기회를 엿보던 전씨는 힘을 기른 뒤 제나라의 왕을 쫓아내고 왕위를 차지하고야 만다. 원래 제나라는 강태공을 시조로 하는 나라였지만 이를 기점으로 제나라는 전씨가 왕이 되었다. 이를 전田제라 일컫고 허수아비에 가까웠던 주나라 왕은 그대로 인정하고야 만다.

 

이제 이 긴 글의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다. 사실 이 글의 제목인 '진나라가 몇 개 있었나?' 에 대한 정답은 세 개,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진軫 나라가 하나 더 있기는 하다. 진軫. 하지만 그야말로 기록에도 거의 없는 나라일테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나라 입장에서는 진나라가 너무 많다고 헷갈리겠지만 중국인 입장에서는 발음이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에 헷갈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이 글의 질문 자체가 잘못된 질문일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은 진나라의 갯수 따위가 아니라 저 진나라들을 살아간 사람들 자체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춘추전국시대만큼 여러 나라들이 난립하고 이해득실을 따지며 여러 분야가 발달한 시대는 드물 것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왜 중국이 결국엔 유럽에 따라잡히게 되었나, 에 결국엔 중국이 안정을 추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해답을 내놓았었다. 이를 뒤집어 이야기하자면 만약에 계속된 분쟁이 있다면 그 분쟁에 참여한 국가들 모두는 계속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 시대에 가장 무기가 발달한 시기는 1, 2차 세계 대전 때였다. 이런 분쟁은 물론 해가 되겠지만, 동시에 득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책 등을 통하여 굳이 전쟁을 겪지 않고도 그들의 정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p.s. 여기선 여담인데, 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인 계속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때문에 유럽이 중국을 앞서나가게 되었다, 라는 것에는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물론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근거가 저것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중국은 진시황이후로 하나의 중국이라는 신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요순시대에 하나의 중국이 있었다지만 문헌의 이야기 뿐이다. 그 넓은 땅덩이 모두를 지배한 모습을 백성들 눈에 똑똑히 새겨준 때는 진시황때였으니까. 그래서 수많은 전쟁을 겪고도 결국엔 중국은 다시 하나로 돌아갈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한 번 일어난 것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리하여 중국사에서는 만성적 통일이 몇 번이고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사실 발전상으로 볼때는 가치중립적인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서, 통일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우리 나라만 해도 북한과 끊임없이 분쟁 중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가 이 분쟁을 통해서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미국을 앞지를 수 있을까? 문제는 그 운용에 있다. 또한 하나의 중국, 그리고 통일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무엇을 대가로 치르더라도 다시 통일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이런 목표하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막연한 분열들에서 일어나는 전쟁보다는 훨씬 치열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훨씬 국가의 힘을 강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청나라의 성군들, 그러니까 강희제에서 옹정제로 이어지고, 건륭제에서 마무리되는 그 시기에 유럽에 추월을 당하게 된 근본적 이유가 있으리라고 본다. 좀 더 말하자면, 나는 청나라가 만약에 좀 더 유연해졌다면 유럽을 도리어 앞지를 수 있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는 편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만성적인 분열과 만성적인 안정이라는 유럽과 중국의 차이점에서 유럽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말이다.

 

p.s.2  다음엔 도교에 관한 이야기를 끄적여 볼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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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3-07-21 11:39   좋아요 0 | URL
평소에 저도 궁금하던 부분인데, 엄청난 페이퍼로 정리해주셨네요.잘 읽었습니다 ^^

가연 2013-07-31 17:58   좋아요 0 | URL
어허허.. 감사합니다. 답이 매우 매우 매우 늦어버렸습니다

희선 2013-07-21 23:39   좋아요 0 | URL
陈 [chén]
(陳) 늘어놓을 진
1.[동사] 진열하다. 배열하다. 차려 놓다. 벌여 놓다.
2.[동사] 진술하다. 말하다.
3.[형용사] 낡다. 오래 되다.


晋 [jìn] (알파벳을 그대로 읽으면 진이지만 찐이라고 들리더군요)
(晉) 나아갈 진
1.[동사] 나아가다.
2.[동사] 오르다. 승급하다. 승진하다.
3.[명사][역사] (Jìn) 진나라. [주(周)대의 나라 이름. B.C.1106〜B.C.376년. 지금의 산시(山西)성·허베...


秦 [Qín] 친(발음을 들어보니 이렇더군요)
1.[명사] 주(周)대의 나라 이름.
2.[명사] 진(秦)나라. [B.C 221〜B.C 206년]
3.[명사] 산시(陕西)와 간쑤(甘肃) 일대의 지역.



轸 [zhěn]
(軫) 수레뒤턱나무 진
1.[명사][문어] 수레뒤턱나무. [고대의, 수레 하부의 사방으로 가로지르는 횡목]
2.[명사][문어] 수레.
3.[명사][천문] 진수(軫宿). [이십팔수(二十八宿)의 하나]



중국어 사전에 한자를 넣어보니 이렇게 나왔습니다(중국식 한자인 간체자는 작게 보이죠 그냥 뒀습니다) 모두 발음이 다르군요(陳 첸, 晉 찐, 秦 친) 요즘은 한자 그대로 읽지 않고 중국말로 하게 됐잖아요 이 나라 발음도 그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지... 이렇게 말하지만 예전에 한자음으로 읽은 것과 다시 중국말로 했을 때 다른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뭐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전쟁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아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라를 하나로 만들려 한다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예전에는 유럽이 중국을 앞질렀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중국이 앞지르려 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아직 이런저런 문제가 있지만... 그리고 우리나라도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죠 책이 많이 나오고 있고, 중국말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군요 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이지만...^^

진나라, 그냥 이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많이 있었군요 중국말로는 다르지만... 주 유왕이 한 일은 조금 웃기는군요 왕이 여자를 웃기기 위해서 그런 일을...

역사 왜곡은 그만했으면... 우리나라가 거기에 잘 대응해야 하지만...


희선

가연 2013-07-31 18: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모두 발음이 다릅니다. 위의 진시황 평전에도 Qin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나저나 중국어 사전을 찾아보시다니.. 대단한 학구열이신데요ㅎㅎㅎ

동북공정은 끊이지 않지요, 우리나라의 역사를 편입시키려는 움직임들도 있으니. 그래서 도리어 더욱 중국 역사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금씩 합니다

2013-07-28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31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4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5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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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문학사상사 출판사에서 나온 '상실의 시대' 책을 보면, 제일 뒤에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출판사로 보내달라, 그러면 다 모아서 한꺼번에 보내주겠다' 라는 말이 적혀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당시 어렸던 저는 몇 번이고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고 하다가 다시 관뒀습니다. 첫 문장을 안녕하세요, 로 시작하면 그 뒤는 어떻게 적어야 할지, 도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거든요. 사실은 그다지 힘주어 쓸 편지도 아니었거늘, 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때는 이 편지를 보고 상대방이 어떻게 여길지 상상을, 그것도 나쁜쪽으로만 상상을 하게 되더군요. 어리고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저는 무의식중에 당신의 소설에 의지를 하려고 들었나봅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교내서점에서 웅크려 읽던 책도 당신의 책이었습니다. 학생회관에서 밥을 먹으면 바로 붙어있는 교내서점으로 내려가 정면에 보이는 부분이 일본소설들을 모아둔 곳이었는데 그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당신의 단편집들을 구매해 읽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람은 익숙한 것을 (주위가 모두 새로운 환경뿐이라면) 처음엔 따르기 마련이고, 당신의 이름은 내가 아는 일본 작가들 중에서 가장 뇌리에 깊게 새겨진 이름이었으니깐요. 그때 같이 산 소설이 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당신의 소설을 더 많이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아, 요시모토 바나나도 제가 좋아하던 작가 중 한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당신을 더 좋아했습니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무슨 열병에 걸린 것 처럼 잔디 바닥에 눕기도 했고, 계단에 걸터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던 저는,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이 저에게 더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습니다. 상실의 시대의 마지막은 (당신의 소설이니까 더 잘 기억하시겠지만) 와타나베가 미도리에게 전화하다가 자기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라고 독백하면서 끝이 납니다. 다만 미도리보고 데려와달라, 너를 만나고 싶다, 라고만 말하면서 말이지요. 그 장면만큼 당시의 저에게 잘 들어맞았던 것은 없었습니다. 당시의 저도 어디로 가야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고, 어디에 내가 있는지조차 알 수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지나면서 계속 그렇게 도서관 계단에 걸터앉을수는 없었습니다. (여전히 이유는 명확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겠지요, 아니 할 수는 있어도 그때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일탈적, (하지만 당시의 나에겐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웠던) 행동을 하려면 억지로 꾸민 가면을 쓰지 않으면 못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펴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는 상실의 시대를 뒤집은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슷하지만요. 주인공의 주변에 정신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었던 여자아이가 있는 것도 상실의 시대의 나오코의 변주같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다자키 쓰쿠루는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과는 달리 자신의 힘으로 상대를 찾아가지요. 그래서 이 책은 광고에서도 그렇듯 '당신은 어느 역에 있습니까?' 를 계속 물어옵니다. 역은 열린장소이자 동시에 어디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기도 합니다. 전작의 와타나베가 공중전화박스에 갇혀버렸다면 이번의 쓰쿠루는 사방으로 뚫린 곳에서 스스로를 밖으로 밀어냅니다.

 

이를 한발짝 더 진보했다, 주인공의 마음이 진보하거다, 라고 본다면, 그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 '회피' 로 끝나던 성격이 '다가감' 으로 기울어졌으니까.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위의 '도서관 계단에 걸터앉지를 못하는 것' 을 합리화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엔 외로웠던 거니까, 외로움을 해소하려면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할테니까. 고고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던 행동들)이 무슨 소용일까, 사람 사이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러니 나도 다가가자, 라고 마지막장을 덮으며 그런 느낌을 다시금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금 미궁속으로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냐면.. 조금 있다가 말씀드릴께요.

 

상실의 시대, 의 향기만 이 책에서 느낀 것은 아닙니다. 꿈속에서의 성적인 행위를 그려낸 부분은 해변의 카프카, 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다자키 쓰쿠루가 어울리던 친한 친구들 중 두명의 여자아이들의 이름은 시로(흰색)와 구로(검은색)인데, 이는 1973년의 핀볼, 의 두명의 쌍둥이 여자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주인공과 성교를 가지는 것조차도 비슷한 상황이지요. (비록 이 책에서는 꿈속이었지만요) 결국 떠나버리는 것도 비슷합니다. 그 외에도 동경기담집, 의 서사와 닮은 부분도 있습니다. 정말 수많은 '비슷한'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 다시금 생명을 갖고 반복됩니다.

 

 저는1Q84를 읽고 당신의 일생의 대작이 나왔다, 라고 여겼습니다. 아마 이 이상 더 훌륭한 소설은 쓰지 못할 것이다, 라고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1Q84를 읽으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비난을 할때도 저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고 여겼습니다. (1Q84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소설인 듯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의 책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부풀었었습니다. 1Q84만큼은 못쓰더라도 이번 소설 또한 아주 뛰어난 작품이겠지, 라고. 하지만 뭐랄까, 네, 저는 이번 책이 마치 당신의 모든 작품들의 총집편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힘이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을요.  

 

아까,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다가가자, 라고 생각했었지만, 그 생각이 미궁속으로 빠져버렸다고 이야기했지요? 이제 그 이유를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한가지 질문을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왜 '그'들은 그대로인가요? 당신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너무나 그대로입니다. 주인공들한테 느껴지는 '시크함' 은 여전한데, 당신의 소설을 읽는 나는 더이상 그렇게 시크하게 살지는 못합니다. 이번 소설에서는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그나마 '다가간다' 고 이야기하지만 그걸 언급하는 부분은 결국 마지막 몇 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몇 장을 제외하고는 당신의 소설의 분위기는 그 옛날의 상실의 시대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대로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서른을 훌쩍 넘는데도 말이지요.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질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질문에 지나지 않으며, 진짜 요지는 이것입니다 : 이렇게 그대로인 '그- 당신 소설의 그들' 가 어떻게 마지막에 이르러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궁에 빠져버렸습니다.

 

요즘 저는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밤에 넓은 곳으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는 대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자리에 나가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어쩌다보니 술게임들도 제법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전의 저는 이런 것들은 모조리 질색이었고 이런데 시간을 쏟느니..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이에서 얻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이렇게 어울려 나갈 생각입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게 귀찮습니다. 혼자서는 못사는 세상, 그리고 직접 사람들을 만나며 배우는 지혜들, 그런 것들을 떠올리고는 어울리기는 합니다만, 저는 도저히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지는 못할 것 같네요. 늘 그런 자리에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책이나 한 자 더 봤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니까.

 

결국 사람은 자, 이제 나가자, 한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못한다, 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소설 속 다자키 쓰쿠루는 너무나 쉽게 해냅니다. 상대 여성을 '이번에 잃으면 다시는 이런 사람을 얻지 못할 것이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너무나 적극적으로 달려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에 저는 솔직히 아연했습니다. 너무나 그대로였던 주인공이 너무나 극적으로 바뀌어버렸으니. 그의 한계는 여자주인공의 손을 잡고 '당신을 잃기가 싫어' 라고 말하는 것 까지일텐데. 다가와야 할 사람은 여자주인공일텐데. 사랑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면 쉽겠지만, 사랑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그리고 내가 상대를 사랑이라고 확신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를 사랑이라고 확신할까요. 여기서 여주인공은 주인공에게 순례를 떠나서 그를 버렸던 친구를 만나라, 라는 이야기밖에는 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책에서는 다자키 쓰쿠루의 행동 변화를 제대로 설명해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결국 주인공이 여주인공을 만나러 가는 것은 '개인적 판단' 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그저 여주인공의 손을 붙잡고 외롭다, 라고만 말하기를 바랬습니다.

 

난 여전히 당신의 팬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의 팬일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 소설의 별점을 3개를 주려다가 결국엔 별 한개를 더 추가를 하고 맙니다. 당신의 소설에 별점을 3개 이하로 주는 건 도저히 할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어렸던 나, 돈이 없어 밥먹을 돈을 아껴가면서 당신의 책을 구입하고, 서점의 한 귀퉁이에서 당신의 소설 한 구절을 외우려 읽고 있었던 나와 비교하자면, 지금의 경제력을 어느 정도는 갖춘 -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 직장생활을 하는 - 나는 당신의 소설을 덜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여전히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 당신의 소설을 보면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당신의 소설을 손에서 놓을 수 없나봅니다. 당신을 좋아했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에 여전히 당신을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나는 - 비록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 그때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정말 외로웠던, 그래서 도서관 계단 한중턱에 앉아서 누군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던 저의 치기를 그리워할때도 종종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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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7-15 18:49   좋아요 0 | URL
으앗. 저는 이 책이 제게 배송중인데 가연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상실의 시대]가 가연님에게 아주 의미 있는 책이었군요. 어느 한 때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강한 책이요. 저는 [상실의 시대]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지만, 제게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는 볼 수 없을것 같아요. 다만 언급하신 마지막 부분만큼은 기억이 아주 선명하게 나네요. 저는 자신이 어디있는지 모른다고 수화기를 통해 대답하는 와타나베를 보면서, 바로 이래서 이 책은 상실의 시대인 것이다,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가연님이 느끼는 이 책에 대한 서운함이 대체 어떤것인지, 저도 책을 읽어봐야 알 수 있겠죠. 리뷰의 제목을 보니 실망한 것 같은데 별은 네개구나, 라고 생각하며 읽어내려갔더니, 역시, 하루키라서, 하나 더 준 거네요.

가연 2013-07-16 00:43   좋아요 0 | URL
ㅎㅎ 기대는 많이 했는데.. 뭔가 기대만큼은 아니었기에 이렇게 끄적거렸네요, 풋. 상실의 시대를 제가 너무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아, 덕분에 ttb들어왔는데.. 10원이 들어왔..ㅎㅎㅎㅎㅎ 어쨌든 감사합니다. 10원이라도 들어왔기에 다행스럽네요. 요즘 제가 서재활동을 거의 잘 안해서.. 그래도 글은 잘 읽고 있어요

희선 2013-07-16 00:40   좋아요 0 | URL

새 작품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대해서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때는 순수한 리얼리즘 소설을 쓰려고 생각했다. 한번 써두지 않으면 한단계 위로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는 실험적으로 쓴 것이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은 기뻤지만 어떤 압박이 되었다.

지난번 작품 《1Q84》의 큰 뜻은 모두 3인칭으로 쓴 것. 3인칭은 어디에도 갈 수 있고,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 《악령》같은 종합소설을 쓰고 싶었다. (《다자키 쓰쿠루》는) 내 감상으로도 머리와 의식이 따로따로 움직이는 이야기. 이번에는 《1Q84》와 견주어 문학의 후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새로운 시험이다.

사건을 쫓는 것이 아니고 의식이 흘러가는 가운데 사건은 두고 간다. (다자키의 애인) 사라 씨가 쓰쿠루 군(지난날과 마주보기 위해)한테 나고야에 가라고 말하지만, 같은 식으로 나한테 쓰라고 말한다. 사라가 나를 이끌어간다. 이끌려가 무언인가를 경험하는 것으로 더욱 자신이 단단하고 크게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읽는 사람 가운데도 그런 느낌이 들면 좋겠다.

이번에는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이 가서 자꾸 생각하다보니(등장인물들이) 멋대로 움직였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에 큰 관심과 공감을 갖게 되었다.

(다자키는 친구 넷과 이룬 공동체에서 잘려 버림받지만)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고, 무엇이 사람 마음을 다치게 하는지는 거의 안다. 사람은 그렇게 다치면서 마음을 닫고, 시간이 지나면 마음을 조금 열어서 한단계 위로 가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자란다. 성장 이야기의 하나다.

나는 내 소설을 다시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우는 일이 단 하나 있다. 그것은 소설은 아니지만(지하철 사린 사건 피해자나 유족을 취재한) 《언더그라운드》. 죽임 당한 20대 부인 이야기를 듣고 집을 나와 전철을 타고 있을 때 눈물이 나왔다. 한시간 정도 멈추지 않았다.

그게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을 때 되살아났다. 그 책을 쓴 일은 나한테 큰 경험이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29, 30살쯤에는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었다. 쓸 수 있는 것을 조금씩 늘려서 쓰고 싶은 것을 거의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2000년쯤. (이번 작품도) 그냥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쓰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가운데서)



얼마전에 뭔가 없을까 찾아보니 하나 나오더군요 그런데 이것은 한부분입니다 이번 책에 대해 한 말만 옮긴 겁니다 많은 말은 없지만 조금 도움이 될까 해서... 다른 것은 아직... 이것저것 찾아두기만 하고 게을러서 제대로 읽지도 않고, 어떤 것은 읽다 말기도 하고... 핑계를 댄다면 네이버 사전을 쓰기가 조금 어렵게 되어서(낱말을 다 아는 게 아니기 때문에)... 컴퓨터 때문인 듯합니다 사실 다른 것보다 게을러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사랑 때문에 바뀌기도 하죠 처음에는 그렇더라도 나중에는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겠죠 그러니까 쓰쿠루는 자신의 뜻으로 그렇게 지난날 일어난 일을 알아보려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그런 말을 하셨군요) 다른 사람 이름에는 색깔을 넣어주었지만 쓰쿠루한테는 넣어주지 않았죠 그게 쓰쿠루한테는 남들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본래 사람은 같기를 바라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쓰쿠루(作る) 이름(책 제목에는 히라가나'つくる'로 썼지만)에는 만들다는 뜻이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만들어갈 수 있다 이것은 저만의 생각입니다

책을 읽지도 않고 이런 말을 하다니... 그냥 색이라는 것만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가진 색을 하나로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구한테나 그 사람만의 색은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자신의 어느 때를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 있다는 것은 좋지 않나 싶습니다


희선

가연 2013-07-16 00:58   좋아요 0 | URL
이 글은 저도 읽었던 것 같네요. 아닌가? 제가 읽은 것은 다른 인터뷰인가 헷갈리네요. 사실은 작품 중에도 쓰쿠루의 의미가 나옵니다. 작가가 상당히 노리고 쓴 이름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이름을 받아서, 그 이름의 의미대로 살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요. 특히나 소설이라면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사실 쓰쿠루의 이름을 작중에서 풀이했을때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에 지나지 않지만.. 주인공의 주위의 네 명의 친구는 각각 아카, 아오, 시로, 구로란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시로와 구로, 그러니까 백색과 흑색을 색깔이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흑백은 무채색이지요. 뭐, 무채색도 색채라 부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이렇게 보면 - 두 색깔이 무채색이다는 사실로 미루어보면 흥미로운게, 결국엔 다자키 쓰쿠루는 색채와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색채가 있든 없든 그건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 처럼. 이는 핀란드에서 구로가 말하는 부분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또한 희선님께서 적으신 '그 사람만의 색' 과도 비슷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어요. 어떻게 부여할 수 있냐면 - 그 사람만의 색은 사실 그냥 그 사람의 개성입니다. 굳이 색채로 표현될만한 성질의 것은 또 아닌거지요. 그래서 저는 이 색채, 라는 것이 어쩌면 그저 소설의 맥거핀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욱더 실망감이 커졌었달까, 라는 이야기를 저렇게 길게 푸념해두었답니다.

2013-07-17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0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5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5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우 TTB 광고를 달아보았다. 상품을 어떻게 넣는지 알 수가 없어서 - 예시로 쓰였던 캡쳐는 너무 오래전 모습을 담고 있다 - 시간이 오래걸렸는데, 달고 나니까 생각보다 광고의 느낌도 안나고 괜찮은 것 같다. 뭐랄까,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니 꼭 읽어보세요, 라는 느낌이랄까. 글로 쓰는 것 보다 더 눈에 확 들어오는 것 같고.. 이런 플랫폼 자체는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다. 무료로 사용자들에게 광고할 수단을 부여한 뒤에 적립금을 받을 수 있게 하고.. 동시에 회사입장에서는 홍보도 되고. 적당히 사용자들에게 자율성까지 부여함으로써 - 직접 책을 고를 수 있다 - 강제성에서 오는 반감을 상당히 누그러뜨렸다. 디자인도 생각보다 깔끔한 것 같다.

 

글을 하나 썼다가 비공개해버렸다.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계속 솔로를 어필하는 글을 쓰기도 힘들다. 그런데 글을 비공개하는 방법도 어렵다. 도대체 비공개버튼이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겨우 우회적으로 비공개시켰지만.. 글 자체를 비공개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는건지 모르겠다. 나 컴맹이었던건가?

 

 

 

잉카 최후의 날.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기념비적인 저서, 총균쇠를 읽다가 아타우알파에 대한 일화가 있어서 같이 읽어보았다.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에 얽힌 이야기들은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피사로에게 아타우알파는 이런 제의를 했었다. 이 방 벽에 선을 그은 부분 까지 금을 채워서 그대에게 드릴 터이니, 나를 풀어주시오, 라고.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피사로는 그걸 무시해버리고 여전히 아타우알파를 붙잡고 있었다가 교수형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잉카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뒤를 잇는 황제의 이름은 망코 잉카, 인데 처음엔 꼭두각시처럼 붙잡혀 지내다가 각성을 하고 잉카의 독립 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그리고 고산 도시로 거처를 옮겨 끝까지 저항을 한다. 책에서 가장 확인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부분이다 : 잉카의 멸망에 작용한 요인은 총, 균, 쇠 뿐만이 아니라 기존 잉카 제국 자체의 억압적 통치 자체도 한 몫을 차지하였다는 것이다. 잉카에 억눌려 있던 원주민들은 정복자들을 지지하였고, 그들을 위하여 몰래 정보를 빼오는 것을 계속해나갔다. 정복자들은 - 사실 정복자라는 명명이 옳을 지 모르겠지만 - 원주민들을 방패로 쓰면서 잉카의 거센 반격을 막아내었다. 이 책의 의의 중 하나는 바로 그 부분을 세밀하게 그려내었다는 점이다. 다만, 책 서술 자체의 문제는 지울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중요한, 아니 독자들이 가장 기대하는 부분의 서술은 너무 간략한 설명만 하고 지나가버리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떤 전투가 일어났다. 양 측의 장수는 누구다. 그리고 그 다음 장을 보면 사료 하나를 인용하고는 전투가 누구의 승리로 끝이 났다고 적어버린다. 갑자기 많은 부분을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제 3의 침팬지

솔직히 말해서 좀 기대하면서 읽어나갔었는데, 상당히 실망한 책이다. 정말 이 책의 저자가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맞단 말인가? 동일 저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총, 균, 쇠의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주장의 전개 과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히 설명하지만, 이 책에서의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런 서술로 일관한다 : 이건 이렇다. 왜 이런가? 당연히 이렇게 되니 이렇게 되는게 맞다. 나를 더 당혹스럽게 한 것은, 이 제 3의 침팬지의 내용이 그대로 총, 균, 쇠에 적용된 것이다. 그것도 매우 그럴듯하게 논리를 갖춘 상태로 말이다. 바꿔말하자면, 총, 균, 쇠의 내용은 벌써 이 책 내부에 씨앗 상태로 있었다고나 할까. 반복적으로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이 책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외계 문명의 학자가 우리를 지켜본다면? 그런데 이런 연구법 자체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흥미롭게도 촘스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촘스키는 외계에서 누군가 관찰을 해나간다면, 인류 자체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에 더 주목하리라고 이야기하였다. 이 책의 저자의 고찰도 그와 유사한 면이 보인다.

 

 

 

 

 

 

 

p.s. 촘스키와 제레드 다이아몬드, 그리고 아마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을 어느 학자를 이어 글을 한 번 써볼 생각을 하고 있지만.. 언제 쓰게 될런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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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3-06-19 22:28   좋아요 0 | URL
글 자체를 비공개하는 법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아마 우회적으로 하신 그 방법이 맞을듯요 :)

가연 2013-07-06 22:52   좋아요 0 | URL
어허허.. 14주년 기념으로 이런거 좀 고쳐주면 좋을 것 같은데... 오랜만입니다, 웬디양님ㅎㅎㅎ

희선 2013-06-20 00:38   좋아요 0 | URL
가연 님이 잘 모르는 것은 아니고 여기에는 그게 없어요
그런데 다른 방법이 있기도 하군요
사람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쪽보다는 그러지 않는 쪽을 더 좋아하겠죠 다른 사람 힘을 빌린 것이었기 때문에 그 나라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을지도...
잘 모르겠지만, 밑에 것은 <총, 균, 쇠>보다 먼저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당연한 말을...^^


희선

가연 2013-07-06 22:5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사실 지금껏 비공개를 해본 적이 없어서 몰랐었는데 좀 불편하네요, 에휴.

다락방 2013-06-20 08:07   좋아요 0 | URL
저도 글 자체를 비공개로 돌리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는데, 여기서는 비밀 폴더에 넣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는것 같아요.
그런데 광고로 걸어둔 책이 비트겐슈타인, 융, 루소 네요. 제가 한 번 씩 클릭 해봐야겠어요. 저 책들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가연님 부자되라고... ㅎㅎ

가연 2013-07-06 22:53   좋아요 0 | URL
아하하.. 다락방님께서도 부자되실겁니다, 그 고운 심성덕분에ㅎㅎㅎ

드림모노로그 2013-06-20 17:58   좋아요 0 | URL
서재관리에서 그냥 비공개하면 되어요 ㅋㅋ
근데 비공개 해놓고보니 아깝지 뭡니까? ㅎㅎ
아까 와서 글만 읽고 갔어요 , 역시 가연님은 페이퍼도 잘 쓰신다니까요 ^^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책이 실망스러웠다니. 흠.... 전 그럴때마다
제 무지를 탓하거나, 번역을 탓하는데 ㅋㅋ 아.마.도. 번...역이 ^^;;;
날이 무지 덥네요 ㅎㅎ 가연님도 올 여름 건강 유의하세요 !
그냥... 들렸습니다 ㅋ~

가연 2013-07-06 22:55   좋아요 0 | URL
그게 안되는 것 같더군요, 풋. 글만 비공개하는게.. 드림님께서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군요,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제 개인적 의견을 꺼내면 사실 번역 문제라기보다는.. 초기에 써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2013-06-21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6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17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0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전에 신간평가단 하면서 정말 좋았던 글이 두 개 있었다. 이전에 평가단 마무리 글을 보낼때 같이 적으려 했지만.. 시간이 흘러서 지금에야 글을 끄적거린다. 아, 물론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별다른 의도가 없다, 풋. 말하자면 숙제를 하는 것이다. 갈 때 가더라도 숙제는 하고 가야되지 않겠나? 물론 다른 분들의 글도 좋았던 글이 많았다. 내가 다른 사람의 글을 평가할만한 수준이 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주관적으로 그저 뇌리에 강하게 남았던 글을 끄적거리는 것이다. 다른 글보다 더 뛰어나다거나, 더 못하다거나, 를 판단하려고 쓰는 것들은 아니다. 응? 이렇게 말하면 선비같다고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선비처럼 굴려고 이렇게 올리는 것도 아니다. (근데 인터넷 비속어로서의 선비란 단어는 그 역사적 기원을 따라 - 2011년에 비속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참고한 문헌은 인터넷 검색 - 커뮤니티들을 살펴본다면 위선보다는 진지한 척 하는 사람에게 쓰는 말 아닌가? 바로 이 괄호내 문장에 선비같다고 한다면 적절한 용례가 될 것 같다.) 뭐, 그래도 선비같다면 그저 웃을 수 밖에, 풋.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사실 이 책은 상당히 호불호가 갈렸던 책으로 기억한다. 나 또한 리뷰를 쓸때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이 책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싫어한다고 해야 할지 긴가민가했던 기억이 난다. 끝의 한 장을 넘길 때 마음을 겨우 결정했었다. 내가 쓴 글은 결국 호, 쪽에서 쓴 글이 되어버렸는데, 만약에 내가 불호, 로 기울었다면 그 글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왔을 것이다. 책 자체는 구성상 특별한 특징이 있는 책은 아니다. 말 그대로 어쩌다 사회학자가 된 '피터 버거' 의 일대기인데 특히 좋았던 리뷰는 nunc님의 리뷰이다. http://blog.aladin.co.kr/nunc/5720684 그때 사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았던 글이라.. 가끔씩 생각이 날 때 찾아가서 읽어보고는 한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 책은 리뷰하기에 썩 좋은 책은 아닌듯 하다. 책이 좋은 책이다, 나쁜 책이다, 를 떠나서 리뷰를 쓰기에는 힘들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여러가지 논거를 가져와서 비약적인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다른 책이었다면 비판을 강하게 했었겠지만, 이 책에서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도 이 경계가 긴가민가하다. 똑같이 비약적인 결론을 내리지만, 어떤 책에서는 그 결론이 전혀 어색하지않고, 도리어 그럴듯하게 들리고, 다른 책에서는 비판을 내리게 된다. 나는 당시에 그 부분을 끄집어내는데 실패했었지만, 여기에 성공한 분이 계신다. 그 분은 흔적을 찾아서, 님이다. http://blog.aladin.co.kr/findingtrace/5765025 여러 용어가 나오지만 글에서 그 용어가 뜨거나 어색하지도 않은 좋은 글이라 생각이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 한 번 직접 읽어보시라.

 

 

 

 

 

 

 

 

 

이제 에반게리온에 대한 글을 써야되는데

날려먹고나서는 너무 패닉에 빠져서 더 쓰지를 못하고 있다.

 

 

 

 

 

 

 

 

추신.

 

밀려둔 숙제는 저 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주말엔 친구를 만나기 때문에 바로 답을 못해드릴지도 모르겠다. 티뷔보러가는게 아니라 좀 멀리갈지도 모르겠다. 자그마치 다른 도시로 가는 것이다.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수는 없지 않는가. 하지만 혹시 주말에 반론을 올리신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모두 답해드리고 다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다. 물론 비꼼으로 일관하신다면 나또한 똑같이 계속 비꼴것이다. 그러니까 1+1에 덤하나 얹어드릴 것이다. 요즘 대세 아닌가? 차분하게 받아들일걸 받아들이고 말씀을 쓰신다면 (잘 모르실 것 같아서 적자면, 예를 들어 윤OO 사태에 대한 청와대 갑질에 비유한 것이라던가 - 솔직히 다른 건 몰라도 본인이 이런 비유를 들으면 기분이 좋겠는가? - 웨이터의 비유라던가... 자신의 논거 중 하나가 논파된것이라던가...) 나또한 차분하게 글을 쓸 것이다. 실시간으로 글을 볼 수는 없어서 변천사를 살피기 어렵겠지만. 뭐, 혹시나 서로 더 할 이야기가 있다면 말이다. 사실은 주말까지 이 이야기가 지속안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휴일이잖는가? 시간이 하루종일 빈다. 오늘은 컴퓨터 앞에 계속 앉아있을수 있다. 나만 그런가? 아, 사실 오늘은 원래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집에서 묵념을 좀 하고..(오늘 현충일이다) 게임이나 열심히 할 생각이었지만.. 쓰다보니 좀 우울해진다, 풋.

 

혹시 길어서 이 글도 다 못읽으실까봐 한 줄로 줄이면, 저 오늘 시간 많아요, 듬뿍 이야기를 나눠요, 다. 여자도 아닌데 나랑 대화를.. 라는 생각은 피해주셨으면 한다,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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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06-06 18:58   좋아요 0 | URL
더 글을 쓰고 싶지 않아서 여기에 이렇게 댓글을 답니다. 이 말이 논쟁을 피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반론을 하신다면 저 또한 읽은후 모두 답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든지, 대화를 하는 이상 '아, 이 사람은 더이상 상대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라고 여기지는 않으니깐요. 할 수 있는데까지 대화를 계속할 작정입니다. 물론 말을 더이상 하시지 않는다면 저 또한 말을 더 할 생각은 없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오늘 아침까지는 좀 화가 가라앉지가 않은 상태였지만.. 지금은 좀 피곤하네요. 가슴도 어제보다는 많이 차가워졌으며 계속 컴퓨터 앞에서 얽매여 있을 수도 없고 말입니다.)

인터넷을 하는 자, 구글 앞에서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겠지요. 어제 시간을 조금 들여서 곰곰생각하는발님, 아니 페루애님이 네이버 블로그에서 어떤 논쟁을 하셨는지를 검색해보았습니다. 통칭 M님이라고 불리는 me....님과 논쟁을 벌이셨더군요. 그때 페루애님은 지금과 달리 감정의 편에 서서 논쟁을 벌이셨더군요. 지금은 다른 글들이 모두 비공개가 되어있어서 me...님의 글밖에는 없는데, 그 당시 페루애님과 페루애님을 지지하시던 분의 이야기 중 하나는 me...님의 태도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안하무인에 토론에 임하는 태도가 불량하다고 비판하셨더군요. 그게 작년의 일이었습니다. 자, 지금 페루애님의 태도를 보면 그때 me...님께 그렇게 비판한 분과는 전혀 다른 분처럼 보입니다. 적절한 반론이 없는 비꼬기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말씀들 말입니다. (이 댓글도 길어서 못읽으시겠습니까?) 자신의 일관성조차 지키지 못하시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설득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논쟁을 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앞선 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하지만 저는 그런 문제제기나 논쟁 그 이전에 서로가 준비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때의 페루애님은 그걸 아셨던 것 같은데, 왜 지금은 이러시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감정에 앞서 페루애님께 저렇게 글을 남겨서 죄송합니다. 제 스스로가 지적질을 하지 말라고 말해놓고는 지적질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입니다. 선비의 특성이구나, 또 그렇게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이건 진심입니다. 근데 한편으로는 제가, 그리고 드림님께서 화가 날 만도 하지 않았을까요? 한 번쯤 상대편에서 반박을 하는 사람들 입장도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희선 2013-06-08 00:22   좋아요 0 | URL
에반게리온에 대한 글 언젠가 써주세요 기다릴게요
극장판 에반게리온을 조금 봤더니, 애니메이션으로 했던 것이기도 하더군요 Q에 나오는 카오루(이름이 맞던가)도 나왔고... 저는 그 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인가 했습니다 극장판만 봐서는 에반게리온 잘 모르겠어요

저는 여기에 나온 사람들 모두(아이, 어른 다)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관계를 맺기는 어렵고, 그래서 차라리 모두가 하나가 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죠 마지막에 신지한테 무엇을 고를지를 시키고...

이것은 그저 보이는 것일 뿐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 다른 생각을 말해주세요^^


희선

가연 2013-06-08 17:55   좋아요 0 | URL
에반게리온 글을 쓰고 나면 아마 미련 없이 이 서재를 떠날 것 같은데요, 하하하.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2013-06-10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8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중복 서평이란?
중복 게재
중복 게재 4

 

 

 

솔직히 이런 글을 왜 써야 되는지 모르겠고, 쓰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분명 후회할 것이다, 나중에. 하지만 쓰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다. 뜬금없이 왜 이런 글을 쓰는가, 하는 생각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마립간님 서재의 중복 게재의 가장 최근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트랙백 목록에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글이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지만, 꽤 화가 났기에 이렇게 감정적으로 글을 쓰게 된다. 어차피 서재에 대한 애착도 그다지 없는 몸.. 하는 심정으로 몇 마디 날카로운 말을 남긴다. 난 토론을 목적으로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그냥 감정적으로 화가 나서 쓰는 글이다. 말하자면 비난인 셈이다. 물론 조금은 논리적으로 보일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다 논리적인 척, 에 불과하다. 그 점을 미리 밝힌다.

 

하나더 미리 밝히자면 난 신간평가단에서 받은 책으로 중복 서평을 다른 블로그에다 올리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기에 근거를 묻는다면, 그러니까 왜 다른 블로그에 올리면 안되요? 라고 나에게 물어온다면 난 그저 감정적 논거 - 도의상 안되니깐요 - 밖에는 댈 수 없다. 신간평가단의 책들이 출판사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라는 증거까지도 나왔으니까. 그리고 많이들 그냥 넘기는데, 좀 거칠지만 고서님의 중복서평에 관한 글의 논거도 생각보다 그럴 듯 하다. 당장 네이버 포털에 인기 책들을 검색해보라. 가장 먼저 잡히는 검색결과는 네이버블로그에서 작성된 리뷰들이다. 결국 좋은 리뷰는 어떤 책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를 결정하지 어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살 것인가, 를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몰라, 정말 유니크한 책이라면 당연히 이런 인터넷 서점이 검색엔진에 걸리겠지만. (예로, 한참 넷상을 휩쓸었었던 의자놀이, 를 검색해보라. 그리고 1면에 뜨는 블로그가 어디 것인지 살펴보라. 어디 것인가?) 그래서 나는 중복 서평에 반대하는 글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두 글다 마찬가지로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이다. 하나는 감정적이고, 하나는 논리적인 척하는 감정적 글이다.

 

이 끄적거림의 시작은 중복서평에 대한 댓글을 곰곰생각하는발(이하 곰곰발, 로 줄인다. 양해바란다.)님이 드림모노로그(이하 드림, 양해바란다.)님의 서재에 덧글을 남김으로서 시작된다. 그 글은 몸젠의 로마사, 에 대하여 드림님이 리뷰를 쓴 글인데, 곰곰발님은 거기에 '이 글은 예스와 동시에 올라온 글이군요' 라고 댓글을 남겼다. 지금은 지워졌지만 기억을 더듬어 적어보면, 당시 드림님은 자신은 몰랐다, 신간평가단 규정 어디에 그런게 있느냐, 신간평가단에서 정식으로 말을 하면 당연히 올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곰곰발님이 신간평갇간 FAQ를 댓글에 달았다. 그런데 내 눈을 사로잡은 부분은 드림님의 다른 글귀였었다.

 

다른 글에도 이렇게 남기셨던데.. 저한테 관심이 아주 많으시나봐요?

 

드림님이 나중에 쓰신 항변 '미안하지만 페이퍼 씁니다' 를 미루어 판단해보건데, 곰곰발님이 드림님의 서재에 지적을 한 것은 저것이 처음이 아니었었다. (이는 이후에 나와의 비밀댓글에서도 인정한다.) 그 이전에 드림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김밥 싸는 글' 에도 곰곰발님은 덧글을 달아 예스의 드림님인 줄 알았다, 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하여 무슨 명확한 설명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 이후에 곰곰발님은 전혀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

 

자, 여기서 내가 느낀 것인데 - 어디까지나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그냥 느낌이다. 괜히 논리적인 척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 난 이 부분이 궁금하였다. 왜 처음엔 곰곰발님은 드림님에게 비공개댓글로 지적해놓고 나중에 와서 공개댓글로 지적했을까? 공개댓글로 지적할거면 처음부터 공개댓글로 공론장에다가 끌고나오든지, 아니면 비공개댓글로 할 거면 끝까지 비공개댓글로 하든지. 왜 비공개댓글에서 공개댓글로 바꾸었을까? 

 

미리 일부를 밝히자면 - 이 또한 나와의 비밀댓글에서 곰곰발님 본인이 언급했지만 - 곰곰발님은 비공개댓글로 그런 지적을 남기는 것이 훨씬 예의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나에게 내가 비공개댓글을 남기는 이유와 동일하게 처음에 드림님에게 비공개댓글을 남겼다, 라고 밝혔다. 나는 비밀댓글이 예의가 있는 댓글이라고 여겼기에 그렇게 남겼던 것이니 곰곰발님의 의도도 나의 의도와 동일할 것이다.) 하지만 (드림님과 곰곰발님 사이에 어떤 댓글이 오갔는지 모르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한 두 번 곰곰발님은 드림님에게 비공개 댓글로 지적을 한 뒤에, 아, 드림님은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 라고 여겨서 공개댓글로 바꾸어 남긴 것 같다. 하지만 말이다. 이 부분은 좀 곰곰발님의 실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상에서, 그것도 평소에 댓글을 종종 남기던 사람도 아닌데 갑자기 무슨 지적을 한다고 해서 '오, 옳은 말이군요, 받아들이겠습니다' 라고 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누구나 지적당하는 것은 기분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서, 곰곰발님이 비공개댓글이 예의가 있다고 여겼었다면, 그렇다면 갑자기 공개댓글로 바꾼 것은 예의따위는 버려야겠다, 라고 여겼던 것일까? 잘 지키고 있던 예의를 왜 갑자기 벗어던졌을까?

 

하지만 나는 그 당시에는 여기까지만 생각을 하고 끝냈다. 왜? 사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앞서 밝혔다시피 중복 서평은 좀 이상하다고 여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못내 곰곰발님의 태도는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

 

그 후에 나온 것이 고서님의 페이퍼이다. 고서님의 글은 거칠었지만, 앞서 말한대로 논거가 그르다, 라고 할 수는 없었다.  고서님의 글의 논거는 크게 두가지 였는데 하나는 다 쓴 리뷰를 놀려서야 되겠는가, 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겠고, 다른 하나는 중복 서평을 쓰더라도 다른 인터넷 서점을 쓰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였다. 여기서 내가 아까전부터 언급했던 것은 두 번째 논거인데, 아직도 의심되면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를 네이버에 검색해보라. (왜 네이버를 예시로 삼는가? 네이버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작페이지로 놓고, 검색에 쓰기 때문이다 - 네이버 점유율은 75%이다.) 1면에 뜨는 블로그들은 거의가 네이버 블로그이다. 네이버 지식쇼핑을 통하여 들어갔다면 이제 반디엔루디스, 예스, 알라딘, 교보, 영풍 등 여러 서점을 보게 된다. 그 서점들 중 별도로 가입한 곳이 없다면, 소비자는 최저가로 파는 곳을 선택할 것이다. (소비자를 경제적 인간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런데 특정 인터넷 서점에 가입한 사람이라면 그 특정 인터넷 서점에 마일리지 등이 있을테니 (이 또한 소비자가 경제적 인간이라면) 그 곳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물론 좋은 리뷰를 보고 그 책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라? 그 소비자가 본 좋은 리뷰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 단순한 확률이다. 더 많이 노출될수록 소비자들이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많이 노출될수록 그 글을 본 사람들 중 한 사람은 오, 이 글 괜찮은데, 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에서 쓴 글보다 다른 인터넷 서점의 리뷰가 더 좋다, 라는 말을 누가 감히 할 수 있겠는가? (네이버 책 분야에 가면 다양한 리뷰를 볼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한 번 읽어보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혹은 그 소비자가 인터넷 서점을 이용한다면, 그 좋은 리뷰를 인터넷 서점 내에서 보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서재, 저 서재 돌아다니면서 말이다. 이런 점에서 아무리 좋은 리뷰라도 - 애초에 유니크한 책이 아니라면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를 검색하면 아이리시스님의 글이 가장 먼저 나타난다. 물론 그 이하로는 네이버 블로그들의 글 뿐이다) - 한 인터넷 서점에서 다른 인터넷 서점으로 독자를 옮길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 대하여 곰곰발님이 쓴 글은 위의 두 논거를 모두 다루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홍익인간파, 라고 이야기하면서 한 가지 논거에만 반론을 제기한다. 아직 곰곰발님이 반론을 제기할 논거가 하나 더 남아있는 셈이다. (제대로 된 토론을 정말 원하였다면) 여기서 곰곰발님의 비유가 나온다. 웨이터에 관한 비유인데, 이탈리아의 레스토랑에서는 시끄럽게 떠들면 웨이터가 손님을 쫓아내버린단다. 그럴 듯하게 들리는 비유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비유가 아니다. 곰곰발님은 웨이터인가? 본인의 비유에 따르자면 본인은 웨이터처럼 행동하였다, 라는 것인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웨이터는 아닌 것 같다 - 그러니까 알라딘 직원은 아닌 것 같다. (여기 서재에서 웨이터는 알라딘 아닌가? 손님이자 동시에 주인은 우리 알라디너들이고.) 그렇다면 그는 손님인가? 그렇다. 손님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맞아떨이진다. 다른 손님이 시끄럽게 하면 조용히 하라고 할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이 또한 올바른 비유가 아니다. 왜? 우리가 레스토랑에 있다고 해보자. 저기서 어떤 손님이 떠들고 계신다. 오우.. 시끄럽다.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a. 야, 시끄럽다, 라고 소리지른다. b. 조용히 좀 하세요, 라고 다가가서 말한다. 당신의 선택은?

 

나는 당연히 b를 선택할 것이다. 아니 대부분 b를 선택하지 않을까? b를 선택했는데 또 말을 듣지 않는다. 다시 선택지가 뜬다. a. 시끄럽다, 고 소리지른다. b. 다가가 조용히 하시오, 라고 말한다. 다시 선택은? 나는 또 b를 선택할 것이다.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되는가? 앞서 말한대로 누구나 지적받는 것은 싫어한다. 그 지적이 공개적이라면 더욱더. 공개적인 지적은 수치심까지 지적받은 사람에게 부여해버린다. 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싶으면서 수치심까지 줘버리면 그 사람의 행동이 변화되겠는가?

 

바로 여기서 나는 곰곰발님의 글에 다시 한 번 이상한 점을 느꼈다. 곰곰발님은 정말 토론을 하고 싶은것일까? 그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의도는 무엇인가? 다시 사실을 정리해보자. 곰곰발님은 중복 게재에 대하여 드림님에게 지적을 했다. 그런데 이 지적의 의도는 (지적질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면) 드림님이 행동을 변화시켜서 중복 리뷰를 쓰지 않기를 바란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곰곰발님은 가면 갈수록 드림님에게 수치심까지 부여해버렸다. 그런 곰곰발님의 말을 드림님이 '네, 당신 말 옳군요', 하고 따르겠는가? 결국 남은 것은 곰곰발님에게 남긴 비밀댓글대로 '댓글과 공감 몇 개 뿐' 이었다. 목표가 되는 드림님은 변화시키지 못한 것이다. 변화시키는데 실패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런 글을 도대체 어디에 무엇에 쓸 수 있겠는가? 지적은 힘든 것이다. 친분을 적절히 쌓은 뒤에 말해도 들을까, 말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리라. 그런데 웃기게도, 곰곰발님이 자신의 의도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철을 하고 싶었었다면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알라딘 신간평가단 담당자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곰곰발님의 비유를 빌리자면 웨이터를 데려오는 것이다.

 

곰곰발님은 나와 나눈 비밀댓글에서 '도대체 신간평가단 담당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라고 말을 하셨다.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당연하다. '공식적'인 항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신간평가단 담당자가 '중복리뷰는 피해주세요' 라고 직접적으로 말을 했다면 드림님께서 저렇게 계속 올렸겠는가? 적어도 나는 드림님께서 공식적 항의를 받았다면 그런 일을 계속 하시지 않으셨으리라고 여긴다. (이는 드림님이 몸젠의 로마사, 에 남겼던 댓글과 일맥상통한다. 지금은 지워졌지만 드림님은 공식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면 그만두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또 이런 일도 할 수 있다. 다음 기수에 드림님을 포함하지 않는다, 라는 일 말이다. 길어야 6개월, 6개월 뒤에는 중복 리뷰를 쓰려고 해도 신간평가단에 포함되지가 않으니 못쓸 것이다. 어떤가? 좀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곰곰발님은 본인이 '문제 제기' 를 했다고 여기고 있다. 문제 제기는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곰곰발님의 네이버 블로그의 댓글을 보면 (지금은 지워졌지만) 곰곰발님의 목표는 문제 제기, 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은... 캡쳐해두었다.. 솔직히 이렇게 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었지만, 왠지 캡쳐를 해두어야 될 것 같아서 해뒀다. 그리고 쓸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적 공개는 왠만하면 피하고 싶다. 그렇다, 사실 진짜 진흙탕에서 뒹굴어 왔었던 사람은 나다..) 블로그에서 링크해둔 글을 보면 댓글에서 곰곰발님은 '저 양반 보니 가관이더군'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뒷담화를 시전한다. 그리고 인터파크의 일을 들먹이면서 이 일을 터뜨리려고 했지만 내가 참았다, 라고 이야기한다. 응? 문제 제기 아니었습니까? 이건 그냥 일방적 비난이다. 문제 제기라면 대화를 하는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벌써 비난이 되어버렸는데 무슨 문제 제기가 되겠는가?

 

그리고 이 인터파크 일은 곰곰발님의 글 '미안합니다, 리뷰씁니다' 에서 떠뜨려진다. 그냥 비난할 탄환을 아낀 것에 지나지 않다. 약간 시간적 흐름이 어긋났지만 미리 언급하자면, 미안합니다 리뷰씁니다, 에서는 마치 찾아보라고 해서 드림님 중복 블로그 찾아보았다, 라고 적어놓았지만, 네이버 블로그에서의 댓글을 보면 그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미리 드림님에 대하여 다 찾아본 것이다. (여기 블로그에 올린 글과 내가 캡쳐한 글의 날짜를 확인하면 선후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야 원, 너 참 잘 걸렸다, 라는 태도가 문제다, 라시던 드림님 서재의 항변이 오싹하게 들려온다.

 

다시 원래 시간적 흐름으로 돌아오면, 저 글을 보고 이제 나는 의아함들을 감출 수 없어서 비밀댓글을 달았다. 드림님의 중복리뷰도 이상하지만, 드림님 자신을 저렇게 몰아간 것은 곰곰발님인 것 같다, 라고 말이다. 너무 궁금해서 의도를 물었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것이었다 ; 수사관이 취조하듯이 묻지 말라, 라고 벌컥 화를 내셨고, 그래서 나의 사과로 끝이 났었다. 물론 난 곰곰발님이 왜 의도를 물었을 때 벌컥 화를 내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곰곰발님, 혹시 제가 생각하는 그 의도가 아니라면 왜 의도를 물었을 때 벌컥 화를 내셨던가요? 그러니까, 지적질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니셨나요? 이 판단의 근거는 네이버블로그의 댓글과 위에서부터 보였던 알라딘 서재의 행동에 기인합니다. 지적질과 문제 제기는 다르게 취급되어야 할텐데. 문제 제기는 토론을 통해서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것이지만 지적질은 아무 것도 낳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과를 한 뒤 나는 다시는 이제 이 곰곰발님과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겠다, 라고 여기게 되었다. 뭐, 더 이야기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실 책을 많이 읽어도 자신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도리어 자신의 주장만 더 고착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여기고 절망하고 있던 사이 드림님은 '미안하지만 페이퍼 씁니다' 라는 글을 올렸고, 곰곰발님은 '미안하지만 리뷰 씁니다' 라는 글을 올렸다. 먼저 드림님의 미안하지만 페이퍼 씁니다, 라는 글에 대하여 한 마디 하자면, 너무 감정적이다. 그리고 신간평가단이 모욕당한 것을 곰곰발님이 사과해야만 한다는데.. 신간평가단이었던 내 입장에서는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읽으면 모욕당한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댓글을 남기려고 했지만 그냥 그만두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남기고 싶어도 못남기도록 바뀌어버렸다.

 

미안합니다 리뷰씁니다, 에 대해선 곰곰발님은 논리적인 척, 을 하고 있는데, 사실 논리적인 글이 되려면 상대방의 말을 받아서 퍼즐을 맞추듯 잘짜야 한다. 하지만 곰곰발님은 의도적으로 (분명 의도적이었을 것이다, 왜? 아예 의도조차 못했다면 그야말로 글을 헛읽은 것일테니까) 드림님의 감정적인 글 중의 유일한 논거 - 신간평가단의 책은 출판사에서 무료로 받는다- 를 무시했었다. 바로 전 글인 한 줌의 도덕, 에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데 쓴 논거가 알라딘에서 책값을 일부 부담한다는 것이었는데, 이걸 무시해버리면 지난 번 글과의 일관성이 없어져버린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줄이면, 받아들일건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저번 글 논거가 잘못되었네요, 라고.

 

사실 오늘 아침에 눈을 뜰때만 해도, 오늘도 절대 해는 입히지 말아야지, 라고 중얼거리고 하루가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알라딘 서재에 글은 점차 적게 올려야겠다, 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립간님의 서재에 남긴 댓글은 나를 겨냥한 것이었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치솟았다. 아니, 더이상 말을 안섞었으면 됬지, 무저항의 상대의 등에 칼을 꽂아?

 

난 시멘틱스와 로직스로 글을 판단한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곰곰발님의 글들은 시멘틱스도 맞지 않고 로직스도 맞지 않다. 그냥 감정적인 글이다. 그러니까, 곰곰발님의 말을 빌리자면 진흙탕싸움의 글이다. 물론 이 글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나 또한 진흙탕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내 글을 가져가서 마음껏 밑줄쳐서 반론해도 좋다. 도리어 제발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나 또한 반론을 올리면 마음껏 밑줄쳐서 모든 것의 논리적 연결을 파악할테니 말이다. 그런데 부탁이 있다. 왠만하면 감정적보다는 논리적으로 받아들일건 받아들이며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아니 넌 감정적으로 비난해놓고 나보고 논리를 맞춰라는 거냐? 라고 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더 생산적인 결론을 낳는 토론을 하려면 이성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감정적인 글에는 그냥 감정적인 글밖에 안나온다. 곰곰발님의 댓글에 대한 이 글이 그렇듯이 말이다. 스스로의 댓글을 보면 '유명한 블로거' 가 '눈 먼 독서' 를 한다는 자의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유명한 블로거' 입장에서는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해가시는가? 하지만 당연히 그렇게 안하실테니 최소한 일관성과 앞뒤 인과관계는 맞춰주었으면 좋겠다. 또 곰곰발님의 말을 빌려서 말하자면 눈 먼 독서를 하면 느는 것은 그런 것 파악하는 것 밖에 없으니.

 

하나만 더, 유명한 블로거라고 딱히 알라디너들이 편들어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건 정말 그냥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알라딘에 온지 얼마 안되서 무슨 텃세부리는 것 같다, 고 여기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애초에 난 유명한 블로거도 아니다, 정말 미안하게도. 네이버에 혹시나 해서 네이버블로그까지 알려질 정도인가, 싶어서 - 곰곰발님이 원래 계시던 곳은 네이버 블로그이다 - 내 닉을 검색해봤지만 잘 안뜨더라. 유명한 블로거가 누군지 알고 싶으면 저기 서재 지수와 명예의 전당을 잘 살펴보시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로쟈님이라던가 로쟈님이라던가 로쟈님이라던가.. 계시지 않은가? (물론 마OO스 님이라던가 등등이 계시긴 하다. 난 당연하게도 저분들과는 교류가 없다.) 아, 이렇게까지 왔는데 갑자기 '유명한 블로거' 는 가연님 지칭한 것 아닌데요, 라고 하시면 그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근데 저 맞죠? 우리 비밀댓글 그렇게 주고받았잖아요, 풋.

 

 

추가로 내가 곰곰발님의 서재에 남겼던 비밀 댓글을 첨부한다. 긴 글이지만 위에 적은 것이랑 크게 다를 것 없다. 곰곰발님의 답변은 빼겠다. (사실 곰곰발님의 답변이 삼단변신을 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봤었다. 보고싶어서 본 것은 아닌데 곰곰히생각하다보니 보게 되었다.)

 

 

 

 

곰곰발님의 답변 이후에 남긴 내 댓글은 다음과 같다.

 

 

 

 

 

 

아.. 솔직히 내가 혐오스럽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끝을 봤으면 좋겠다.

너무 긴 글이라 다 줄이고, 요약하자면, 곰곰발님은 다음 두 질문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싫으면 어쩔 수 없다..)

 

1. 드림님의 출판사 문자로 알라딘 신간평가단의 책이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본인의 이전 글의 논거 중 하나가 무너지는 것인데 그 논거를 보충할 만한 무엇이 있는가? 없다면 논거 하나는 그르다, 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겠는가?

 

2. 비공개 덧글에서 공개 덧글로 남긴 이유가 사실 궁금하다. 물론 곰곰발님 말씀대로 비공개댓글이 공개덧글에 비하여 예의를 더 차린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발님의 공개댓글이 고서님의 페이퍼로 이어졌다는 점을 생각해보고, 그 이후에 더이상 돌이킬 수 없이 상황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살펴본다면, (그럴 의도가 아니었으리라고 믿고싶지만, 어쨌든 상황은 저렇게 되었.. 사실 긴가민가하다. 곰곰발님의 미안하지만 리뷰 씁니다, 라는 글을 읽어보면 감정적 뒷다마, 가 되버린 그 상황에 대하여 한탄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파악해볼때 곰곰발님은 토론을 원했던 것 같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곰곰발님은 저렇게 상황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혀 예측을 못했을까?) 비공개댓글로 계속 알렸었다면 혹시 아는가? 돌이킬 수 있게 되었을지 말이다.

 

그리고 이건 내 근본적 생각이다. 나도 옳은 것을 좋아하고, 정의가 구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무엇이 정의인가? 그리고 정의를 이루기 위해 다른 불의를 저지른다면 그 정의는 정의인가? 솔직히 비약적인 이야기이지만, 중복 서평을 막는 것이 정의다, 라고 놓아두자. (잠시 동안만 이 명제가 정말 정의인지는 살피지 말고) 그렇다면 곰곰발님은 그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불의를 저지른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네이버블로그 댓글에 그런식으로 남겨야 했었나?) 이렇게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정의를 정의라고 소리높여 부르짖는 것이 정말로 정의인가? 여기에 대하여 난 적절한 태도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는다면 불의라고 여긴다. 논문 표절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솔직히 난 논문 표절과 이런 중복 서평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지 의아하지만) 논문 표절은 당연히 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학계에서 그 표절로 표절을 한 사람을 완전히 묻어버리는 것은 불의이다. 물론 그 학자의 말에 신빙성이야 많이 낮아지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예 보지도 않고 내던져버린다면.. 혹시 아는가? 그대가 내던져버린 논문에 정말 뛰어난 생각의 단초가 들어있었을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한 번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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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06-05 23:25   좋아요 0 | URL
우선 글을 아끼신 것보다 의견을 표현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공감 중 1개는 제가 눌렀습니다. 집에서는 아이 때문에 컴퓨터를 거의 하지 않고 정독을 못했습니다. 저에 대한 글보다 중복 게재에 반론?이 옅보이는데, 나중에 숙고해 보고 글을 쓸 때 함께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휴일 잘 보네세요.

가연 2013-06-05 23:29   좋아요 0 | URL
사실 마립간님에 대하여 무슨 반론을 한 것은 아니구... 제일 위에서 밝혔다시피 화가 나서 끄적인 감정적 글에 지나지 않지요. 솔직히 아까 화가 많이 난 게.. 윤창중 사태의 청와대 갑질이 떠올랐다고 저 분이 쓰셔서..;; 하필 비교할 데가 없어서 저 사태에 비교를 하시다니요. 마립간님과는 다음에 편안히 말씀을 좀 나눠봤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일로 댓글을 주고 받게 되어서 솔직히 좀 죄송하네요.

마립간 2013-06-07 08:35   좋아요 0 | URL
저는 감정적인 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pek0501님과 나눈 이야기지만, 저는 객관적인 글 쓰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pek0501님은 주관적이 가미되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100% 주관적인 글쓰기나 100% 객관적 글쓰기는 불가능합니다. 모든 글쓰기는 주위에서 자료를 습득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정리합니다. 따라서 누군가 50%객관과 50% 주관을 섞는다는 판단이 , 그리고 가능한 한 90%이든 95%이든 객관을 밀어부치겠다는 생각 자체가 주관적인 것이죠.

제가 '감정의 배설'이라는 용어를 쓴 적고 있지만, '감정의 해소'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죠. 그리고 사실 많은 문학 작품이 '감정의 해소'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연 2013-06-07 12:14   좋아요 0 | URL
감정과 감정이 만나면 그 논의는 사실 생산적이지 못하죠. 모든 논의가 생산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저는 적어도 생산적이고 무언가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논의를 하고 싶긴 한데... 잘 안되네요, 풋. 뭐, 그렇다고 해서 이성과 이성이 만났을 때의 논의가 생산적이라는 이야기는 또..ㅎㅎ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은 말입니다. 온전한 객관적 글쓰기는 분명 불가능합니다. 감정의 해소, 를 위해 존재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전 이런 모습을 보고 싶네요. 강한 감정이 있지만, 그 감정의 고삐를 강한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ㅎ 정말 뛰어난 문학작품들은 또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던데요, 하하.

마립간 2013-06-07 14:0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강한 감정이 있지만, 그 감정의 고삐를 강한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함 받을 수 있고, 그런 글은 훌륭한 글이지요.

2013-06-07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7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7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7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7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3-06-07 19:00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도 중복 게재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제게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정의를 언급할 지언정, 제가 정의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의 댓글이나 반론을 환영합니다. 드림모노로그님이 중복 게재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계시다고 제가 느겼으면 (그래서 제가 드림모노로그님의 댓글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주제는 같지만, 전개는 다르게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저를 이해하실 수 있는 페이퍼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5640990

가연 2013-06-08 17:48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제가 생각할때에는 다른 분들이 마립간님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립간님께서 다른 분들을 이해하시는 방향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그럼에도 이해하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본인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요. 아래, 본인을 더 이해할 수 있는 페이퍼를 소개해주신 것을 보고 느낀 생각입니다. 저 또한 마립간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보겠습니다

마립간 2013-06-10 08:20   좋아요 0 | URL
남을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일부는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거의) 항상 최종적 판단은 자기 중심적이 되네요. 노력하겠습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가연 2013-06-18 22:52   좋아요 0 | URL
너무 답글이 늦었습니다, 충고라니요, 제가 어찌 충고를..

2013-06-06 0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6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7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6 1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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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8 02: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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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8 17: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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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6 1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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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6 1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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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7 08: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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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7 1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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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6-07 09:31   좋아요 0 | URL
가연님은 본인이 쓰는 이 글이, 그러니까 이런 글을 쓰는 본인을 혐오스럽다 생각하시지만, 제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질 않네요.

저도 '유명한 알라디너' 라는 댓글을 보고 도대체 누가 그런 글을 쓴걸까, 했는데 가연님이라고 해서(미안해요, 유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쿨럭) 좀 놀랐어요. 그리고 가연님이 올리신 저 댓글을 보니, 제가 생각하는 그런 뉘앙스의 댓글은 아니었네요, 역시나.

사실 저도 의견을 보탤까, 생각을 안한건 아니었지만,
일전에 여러가지 일들로 의견을 피력하는 글을 쓰면 '오래된 알라더니의 텃세' 라는 식의 말들이 들리더라고요. 텃세와 인기로 지지를 얻는다, 는 식의 반응들이 소름 끼쳐서 별로 말하고 싶어지질 않더라고요. 아니나다를까, 가연님도 텃세에 대한 걱정을 하셨네요. 이런거저런거 따져가며 결국 말하지 않기를 선택한 제 자신이 좀 씁쓸해요.


그리고 이건 다른 얘긴데,
나는 가연님이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ㅎㅎㅎㅎㅎ 이런거 바라면 좀 안되나요? ㅋㅋㅋㅋㅋ

가연 2013-06-07 12:47   좋아요 0 | URL
아니 이렇게 직접적으로 안유명하다고 하시면 저 슬픕니다? 하하하.
뭐.. 지금은 다 끝난 것 같네요, 풋. 별다른 말씀이 없다면 저 또한 굳이 뭐.. 저는 계속 이런 글을 볼때마다 스스로가 좀 싫어지네요. 그래서 더 덧붙이고 싶지는 않아요, 에휴. 하지만 더 말씀을 하신다면야, 저또한 계속 답하고 질문할테지만 말입니다. 어중간한건 싫으니깐요.

저는 '밀려둔 숙제' 라는 글을 쓰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깐 그때 후회감이 밀려오더라구요, 풋. 내가 뭐하러 이런 짓을 하나, 싶기도 하고. 사실 '유명한' 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ㅎㅎ 구분을 짓는게 느껴지지 않나요? 에휴. 어떤 의견이든지간에 (사실 생각해보면 다락방님의 의견이 저랑 동일할지는 모르니까, 쿡.) 의견 안보태시기를 정말 잘하신 것 같아요. 분명 의견을 피력하셨으면 힘드셨을거에요. 저같은 마이너 블로거니까 텃세이야기가 안나오는거죠, 풋.

저도 유명해지긴 싫은데 숙명이 저를 유명세로 이끄는군요, 푸하하. 물론 농담입니다. 아, 추가로 오늘 불금입니다, 하하하. 오늘 친구만나서 열심히 놀겁니다. 저의 유명세를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은 있을 수 없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