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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피터 L. 버거 지음, 노상미 옮김 / 책세상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1.

내가 전기나 자서전을 읽는 이유는 대체로 다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익히 알고 있던 인물에 대한 더 세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한 인간의 사고란 것이 그가 자라온 환경이나 경험들과 무관할 수 없기에 그 인물을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전기나 자서전은 그의 생각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다른 하나는 위와 똑같은 이유로 앞으로 알고 싶은 인물에 대한 흥미유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책을 접하기 전에 전기나 자서전을 읽음으로써 대강의 배경지식뿐만 아니라 어려운 책도 더더욱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사상에 대한 흥미가 그 사상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기도 하지만, 한 개인에 대한 관심이 그의 사상으로 확장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학자의 지적 편력을 펼쳐 보여준다는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나는 후자의 입장이었다. 오래 전에 <사회학에의 초대>, 작년에 <의심에 대한 옹호>를 읽었을 뿐 그의 사상에 대해 무지했기에 이 책을 통해 현존하는 20세기 사회사상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는 피터 버거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지루했다. 물론 곳곳에 박혀 있는 유머 코드와 대가의 여유 같은 것이 느껴지긴 했지만 최소한 나에게 흡입력을 가진 책은 아니었다. 그건 내가 읽었던 그의 두 책, <사회학에의 초대><의심에 대한 옹호>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것과 마찬가지였다.

 

2.

왜 그렇게 지루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아마도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두 가치, 종교와 보수주의라는 두 토양에 저자가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 와 신학자가 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먼저 미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우연히 사회학 수업을 듣고 사회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사회학자가 되었다고 해서 종교적 신념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기에 종교적 관점이 자신의 사회학 전반에 녹아들어 있다.

 

단지 그가 주전공으로 종교사회학을 선택했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학문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책이라 평가하는 <성스러운 천개>에서 저자는 종교를 사회적 세계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결정적 요인”(130)으로 제시한다. 또한 이후 세속화에 대한 입장을 수정하면서 현대사회는 세속화된 사회라기보다 종교적으로 다원화된 사회라고 분석한다. 혹은 동아시아의 발전모델을 검토하며 후기 유교 가설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손꼽는다. 이처럼 피터 버거에게 있어 종교는 한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적 프레임이 된다. 물론 학자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기에 다소 낡아 보이는 종교적 프레임을 가졌다는 것이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학문적 여정에서 특정 가치가 개입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 자신이 신학자이면서도 방법론적 무신론이라는 접근 방식을 취한다든가 사회학적 분석에 있어 가치중립적 입장을 견지해야 함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학을 단지 사회에 대한 객관적 서술의 역할로 한정짓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의 분석적인 부분은 당연히 가치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그 실제 적용은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도덕적으로 정당하다”(84~85)거나 사회학은 인간을 환상에서 해방시킴으로써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100)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좀 더 인간적인 사회라는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학이 사회적 현실을 폭로함으로써 좀 더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3.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좀 더 인간적인 사회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명확한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이러저러한 언급들을 통해 추측해보건대, 저자 자신이 미국적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광범위하게 보장된 사회, 그리고 이를 위한 기초로써 절대적 빈곤과 같은 물질적 제약이 극복된 사회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즉 다소 과도한 단정일 수도 있지만 그가 말하는 좀 더 인간적인 사회란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발전해가는 사회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공화당원으로 가입한 사실이나 자본주의적 성장의 신화를 승인하는 부분을 읽다보면 이러한 혐의가 짙어진다.

 

그는 자신의 사회학적 입장이 단지 책상물림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학적 관광이라고 부르는 전세계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이해한 결과라고 강조한다. 남아메리카와 동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저개발 국가들의 근대화 과정을 실증적으로 추적하며 도출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전세계를 몇 바퀴나 돌아다니는데 필요한 경비는 과연 누가 댔을까. 당연히 거대 자본을 가진 기업이나 정부일 것이다. 그가 이 책에서 회고하는 대부분의 미팅들이 기업의 CEO들이거나 정부기구의 관계자인 것은 그의 연구를 누가 지원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며, 그의 사회에 대한 시선에 어떤 이들의 입장이 녹아들어 있을지 추측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수용할 만한 발전 모델이라면 사회변화가 야기할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하며, 또한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전통적 가치들을 존중해야 한다”(176)거나 사회학은 모든 제도가 깨지 쉽다는 것을, 그리고 제도가 급격히 해체되면 독재나 무질서라는 이중의 위험에 봉착한다는 것을 알려준다”(242)라며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고 제도적 안정을 추구하며 최소한의 점진적 개혁만을 승인하는 그의 보수주의적 입장이 어디서부터 기원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신이 우파와 좌파 양쪽에서 비판받는다는 사실을 계속 언급하며 중도적 입장에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그가 좌파를 언급할 때는 명백히 사회주의자들과 같은 정치적 좌파를 말하는 반면 우파를 언급할 때는 정치적 우파라기보다는 기독교 근본주의에 가깝기에 이것이 적절한 범주화를 통한 비교인지 의심스럽다. (물론 이는 미국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 수정헌법 1조를 통해 종교의 자유를 분명히 하지만 저자 스스로 인정하듯이 강력한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정치적 우파들이 자신의 동지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손잡는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낙태와 동성애 논쟁이 대선의 주요 이슈이자 민주당과 공화당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라는 사실을 보면 좌우파의 범주가 단순히 자유민주주의 대 사회민주주의와 같은 정치 체제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4.

결국 종교라는 프레임을 통한 사회적 안정과 자본주의라는 프레임을 통한 경제적 발전이 그의 학문적 입장을 지탱하고 있는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스스로도 이러한 두 기둥이 전형적인 우파의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런 태도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이중 시민권이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이다. 사회학은 이데올로기의 수단이 되면 안 된다. 사회학자는 반드시 객관적인 관찰자와 사회 구성원의 입장에서 도덕적인 참여자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내야만 한다.”(273) 자신이 바라는 사회상이 있지만 학문 연구에 있어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치우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학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러한 모습의 학자의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론 억지스런 중립의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편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복지국가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양 극단의 투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듯이, 중도라는 것은 극단적 편향들의 투쟁을 통해 도출되는 결과일 뿐이지 미리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농담을 좋아하는 피터 버거에게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오라는 어떤 이의 말에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우파란 말이오!’라고 답했다는 프랑스의 농담을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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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 2012-07-11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도 만원권 수상하시겠는데요? 피터버거 할아버지 책보다 더 재미있는 서평 잘 읽었습니다.

nunc 2012-07-11 13:26   좋아요 0 | URL
지난 달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07-28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8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