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다 - 꽃의 인문학 ; 역사와 생태, 그 아름다움과 쓸모에 관하여
스티븐 부크먼 지음, 박인용 옮김 / 반니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턴가 봄이 되면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마을에서 열리는 꽃과 관련된 행사를 찾아가 볼까 뒤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인터넷으로 오르는 기사 한 줄과 함께 본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여의도 벚꽃구경을 한번 가보곤 다시는 한 낮에 가는 일을 삼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꽃구경이 아니라 사람 구경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벚꽃 길의 끝자락을 붙들며 꽃길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나왔던 것이다. 많은 인파에 치이면서 걸었던 그 길이 아름답다는 탄식을 쏟아내기엔 복잡하고 번잡한 느낌에 처음 가졌던 기대는 사라졌다. 나만 어떤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부분 뭔가 대단한 봄을 알리는 서막을 여는 꽃의 향연을 그리워 했던것 같다.


하지만 이런 봄을 그리워하는 것은 점점 짧아지고 있는 계절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봄에만 볼 수 있었던 꽃들이 어느새 볼 수 없을 것 같은 아쉬움은 환경에 대한 고민과 반성도 하게 된다.

내게는 혹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꽃은 그냥, 길가에 피고 지거나 조경을 위해 만들어 놓은 화단에 피어 있는 꽃을 보는 것이 대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꽃으로도 때로는 계절의 움직임을 느끼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이를 느끼는 것은 꽃이 주는 위로와 안식일지 모르겠다.



이런 꽃들에게도 역사라는 것이 있고,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들도 모습이 달라져왔다. 때로는 꽃은 부유한 생활의 과시욕이 되기도 했다. 몇 년 전 방문한 오스트리아 쉰브론 궁전의 뒷문으로 나와 마주한 정원은 아름다웠다. 궁전에 머물렀던 왕비는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의 꽃들을 보면서 휴식을 얻었을 테고, 수많은 종의 꽃들을 가꾸고 키우기 위해 애를 썼을 테고 더 화려하고 유일무이한 꽃을 찾아 자신의 정원에 심고 싶어 했을 것이다.



유럽에선 꽃이 귀족들의 전시품이 됐던 부분도 있지만 꽃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헤세도 정원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며 마음의 위안을 찾았고 그것을 통해 그의 글쓰기도 계속 될 수 있었다. 간혹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수목원만 찾아다니는 지인도 있는데, 그녀의 마음도 헤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동물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인 것처럼 꽃 또한 그렇다. 인간의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자연 속에 녹아 들어가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사라져 갔는지.

“꽃이 우리를 치유한다면 우리 또한 꽃을 치유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사막화, 삼림 벌채, 기후변화에 수반되는 생활터전의 여러 가지 변화 등 수많은 환경적인 도전에 맞설 수 있을까? 사람이 자연을 치유하게 될까? 황야나 공원, 도시가 모두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 세대와 미래의 여러 세대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 멸종은 점차 늦추어지다가 이윽고 안정적일 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모든 것을 상실한 것은 아니며 희망도 많다. 꽃과 사람은 함께 생존하기 위해 서로에게 필요하며 또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 P 407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보호는 어디까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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