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한국 소설의 첫 문장
김규회 지음 / 끌리는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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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서 첫문장이란 어떤 의미일까?

독자들과 첫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기 때문에 첫 문장을 쓸 때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어느 작가의 인터뷰에서 읽은 것 같다. 사실 첫 문장, 그 처음 이라는 것이 소설 속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첫 인상도 그랬고, 대입 시험에 떨며 마주한 면접관의 첫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 긴장했던 순간들도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처음은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위한 첫 번째 발 돋음일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 한국 소설의 첫문장]은 작가들의 좋은 글귀보다 소설을 마주하게 한 첫 문장들을 엮어 놓은 책이다. 작가들이 쓰고 지우고 다시 고치며 고민했던 문장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있다. 책속에는 다섯 개의 챕터로 나눠져 있는데, 굳이 다섯 개로 나누지 않아도 될것 같다. 마지막 다섯 번째 장은 고전으로 되어 있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고전들을 떠 올리게 해서 좋았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문학상들을 받은 작가 위주의 소설들을 고르고 그들의 첫문장들을 소개했다. 저자의 대표작들이 제일 먼저 나왔지만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감흥에 와 닿았던 책들이 내게는 더 많아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잊고 있던 작가들의 첫문장을 다시 보는 시간동안 내내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그 감동에 다시 젖어 들어 책장 어디에 있는지 모를 그 책을 찾느라 한동안 시간을 소비했다.

작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첫문장을 이 책에서 소개 했는데 나는 그녀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게 된 책이 [소년이 온다]였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한강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소년이 온다]의 첫문장이 오버랩 되면서 그녀의 차분한 음성으로 읽히는 그 문장에 매료되고 말았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소년이 온다. 첫 문장은 한강이라는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은희경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새의 선물]이었다. 새의 선물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진희라는 주인공의 시점부터 시작된 이 얘기는 첫 문장에 그녀의 삶이 평탄하지 않음을 알리고 했다. 그녀는 부모 없이 외할머니 댁에서 삼촌과 이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부모 없이 사는 초등학교 5학년이 느끼는 삶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그녀가 나중에 만나게 될 아버지의 존재 또한 그녀가 살아왔던 삶의 다른 이면을 장식하고 있으니 이 첫 문장에 소설의 플롯이 다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개인마다 느끼는 감동의 스펙트럼이 다르기 때문에 첫문장의 감동 또한 다를 것이다. 내게는 근간 나왔던 소설의 첫문장 베스트 1은 한강의 소설이었고 고전은 이상의 [날개]였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이상의 [날개]속 화자는 마치 이상 자신 같다.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나버린 이상을 생각하면 더 안타까운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한 한국 소설의 첫문장]에 없는 나만의 소설 속 문장들을 떠 올려 보느라 한동안 멀리 던져 놓았던 책들을 꺼내보는 시간이 많았다. 나를 위로 했던 문장들을 떠 올려보기도 했다. 책을 읽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 며칠이었다. 문득 내가 나를 위로 할 수 있는 문장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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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0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빨리 읽게 되니까 소설의 첫 문장을 음미하지 못하고 그냥 넘긴 적이 많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