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려 그의 어깨를 움켜쥐자 그의 몸이 둔중하게 따라움직였다. 쥘은 죽었다. 그녀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그 자궁 속 삼십 분을보내는 동안, 그는 죽었다. 여전히 자신의 할 일을 다해놓고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커피를 올려놓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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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 개정판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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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쓰다듬으며 [유진과 유진 -이금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동창을 만나는 일, 혹은 오래전 헤어진 첫사랑과 길거리 해우를 그려보지만 여태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꼭 만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길거리에서 연락이 끊긴 친구를 만나 와락 끌어안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우연과 상상]이라는 영화는 이렇게 시작 된다. 동창회를 나갔던 나츠코는 자신의 동창을 찾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했다. 20년 만에 찾은 고향이라 그녀는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동네를 산책하다가 그녀의 동창 아야를 만나게 된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아야와 벅찬 마음을 나눈 나츠코지만 아야는 그녀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나츠코가 찾고 있던 동창이 아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야는 잊혔던 동창의 이름을 떠 올리게 된다.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던 두 사람은 우연한 만남으로 어쩌면 계속 되는 인연을 이어 갈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옛 친구가 아니었지만 앞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확장 될지 궁금하게 만들었다면 그렇지 못한 만남도 존재한다.



[유진과 유진]은 제목처럼 이름이 같은 두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유진이라는 두 명의 아이. 중학교 2학년이 시작되는 날 같은 반에 배정 받았다. 한명의 유진은 동명의 같은 유진을 기억해 냈다. 그 유진은 자신과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아이. 같이 졸업을 못 하고 어느 날 유치원에서 사라진 아이. 외국으로 갔다는 얘기만 들었고 엄마의 원망 섞인 이야기를 들었던 아이. 그러나 엄마의 그 원망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았던 기억속의 그림처럼 남아 있었던 유진.



학교에서 이 둘을 큰 유진과 작은 유진으로 부르기로 했다. 큰 유진은 작은 유진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작은 유진은 큰 유진을 알지 못했다. 소설은 이들의 서로 다른 시선으로 같은 사건을 바라본다. 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분다’의 가사에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는 말처럼 두 유진에게는 같은 사건이 다르게 적혀 있다. 작은 유진을 알고 있는 큰 유진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잊혔던 일들을 생각하게 된다. 큰 유진의 시선은 작은 유진에게로 가고 작은 유진은 마음속의 판도라 상자를 열게 된다. 그들은 왜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었을까?



두 사람, 특히 작은 유진이 서서히 기억해 내는 일들은 끝까지 몰랐으면 좋았을 일이었다. 큰 유진도 그런 부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작은 유진에게 일부러 기억을 소환 시키려 하지 않았고 자극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그 현실의 시간은 과거를 자꾸만 부르고 있었다. 유치원 원장이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저지른 성추행은 사회에 많은 논란을 만들었고 큰 소송도 걸었다. 당사자였던 작은 유진은 사건 중심에 있었지만 어느 날 작은 유진의 가족들은 미국으로 떠났고 남은 사람들만 싸움을 계속 이어 나가야 했다. 명확한 증거가 있었지만 작은 유진이 없어지며 힘든 싸움이 되었고 많은 이들은 작은 유진네 가족들을 원망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원망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 되었다.



같은 사건을 놓고 큰 유진은 모든 것들을 기억을 하고 작은 유진은 기억을 하지 못할까. 아이들에게 닥친 상처를 보듬는 방법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서로 달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큰 유진의 부모는 아이와 상처를 서로 안으며 치유해 나갔다. 하지만 작은 유진은 그렇지 않았다. 작은 유진에게 닥친 혼돈의 시간을 기억에서 지우기에 급급했다. 집안의 수치라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집안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절대 안 된다는 듯 미국으로 떠나고 작은 유진은 기억이 지워졌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어느덧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며 오랜 시절의 환영들이 작은 유진에게 머물렀다. 그리고 어느덧 잊고 있던 그 상처와 마주하게 되었다.



작은 유진이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며 이야기 하게 되는 부분은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주변의 아이들의 태도도 인상적이었고 훌륭했다. 하지만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작은 유진과 엄마와의 화해였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에 어설펐던 모녀의 마지막 이야기가 안쓰러웠다. 잠을 자다가도 어느 날 문득 눈을 떠 고통스러운 그날의 모습이 계속 남아 있을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한 작은 유진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약해 보였지만 그것은 또 그녀가 감당해 내야 할 몫인 것이다. 어른들의 책임져야 할 몫은 어떤 것들일까. 힘겨운 아이들이 잘 이겨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이 서로를 보듬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서로가 다시 만난 것을 반가워 할 수 있을까. 알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떠 올리며 아픈 기억을 계속 생각해내며 살아가야 하는 두 아이에게 이 만남이 우연으로 남아야 하는 것일까.



두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어떤 상처가 생겨도 잘 이겨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안아주고 싶었다.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야 할 날들에 아이들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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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0-07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이 책이 리커버돼서 새로 나왔나봐요.
당선 축하드립니다 *^**

서니데이 2022-10-07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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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 형사 시리즈를 향하여 [붉은 손가락 _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60번째 소설집이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붉은 손가락]은 가가 형사 시리즈 7권중의 하나이며 마지막 시리즈라고 하는데 정작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마지막을 처음으로 읽게 됐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파노라마가 있기에 이토록 다양한 얘기들이 쏟아지는 것일까. 

대부분의 스릴러는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찾는 이야기라면 [붉은 손가락]은 공개된 범인이 언제 공개 될 것인가로 시작된다. 가가 형사가 범인을 찾아가는 동안 그 범인이 은폐 될때 이 책의 엔딩에 밝혀진 범인을 찾아 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반전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현관문이 열리기까지 마쓰미야는 서류를 들여다보며 마에하라가의 가족 구성을 확인했다. 네리마 경찰서에 있는 자료를 복사해온 것이었다. 세대주는 마에하라 아키오. 47세. 처는 야에코, 42세. 14세의 아들과 72세 된 어머니가 있었다. 

“그냥 평범한 집이네.” 미쓰미야는 불쑥 내뱉었다. ] P137 

서류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가족 구성원이지만 평범한 가족에게서 평범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평범’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긴장감 없는 단어라서 반전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나름의 반전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의 가족이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할까. 주인공 아키오가 아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을 해결하는 방법을 보면서 나라도 저렇게 밖에 할 수 없었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최선이었을까. 숨길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경찰에게 우리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얘기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데 아들의 태도를 보면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정말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자신이 행한 일을 두고 전혀 죄의식 없어 보이는 태도이기 때문에 주인공 아키오의 행동에 공감은 멀어지게 된다. 아들도 반성하고 죄책감을 갖고 괴로워하고 있으니 아버지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아키오는 자신의 아들의 살인을 은폐해서는 안됐다. 아들에게 저지른 일의 잘못과 반성, 속죄할 시간을 주며 바른 길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소설의 이 부분의 서사와 묘사가 가장 아쉽다. 그래서 아키오를 옹호하고 싶지 않다. 

모두가 아키오의 계획대로 살인 사건이 마무리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가가 형사는 그 작은 부분을 놓치지 않았고 결국 사건의 결말을 맞게 된다. 그런 부분에서 아쉽고 안타까운 한 가장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들을 낳은 어머니의 쓸쓸한 모습이 아른거려서 안타깝고 마음 아프다. 

어머니는 아마도 아들의 행동을 눈감아주고 싶었겠지만 결국 자신의 무죄도 밝혀내셨다. 이후의 그 가족이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쓸쓸한 평범한 가족의 종말일 것 같다. 

아직도 계속 쏟아지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읽을 생각을 하니 벅차오른다. 언제 다 읽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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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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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부재에 대한 질문들 [환상의 빛 - 미야모토 테루]

20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이후 가까운 지인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어 본 것은 3년 전 갑자기 떠난 친구의 사망 소식이 전부였다. 죽음이라는 것이 내게는 좀 멀리 있는 단어 같았다. 아버지는 1년 정도의 투병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 기간이 있었지만 친구는 그러지 못했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소식을 늘 전해왔던 친구의 죽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주름을 만들었다. 때로는 잊고 있다가 길가의 돌부리처럼 갑자기 넘어지며 그들이 남겨 놓은 상흔을 마주하게 되었다. 친구의 장례식장에 갔다가 얼굴을 잊고 있었던 지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오랜 달력에 빼곡하게 적어 놓았던 기록들을 얘기하며 웃고 울다가 헤어졌다. 모두 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던 그 말들. 집으로 오면서도 끝내 뱉어지지 않았던 질문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디서든 대답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왜라고 물어보면 때문이라는 답을 얻지 못할 것이었다. 

고레이다 히로카즈의 첫 장편 영화의 원작인 [환상의 빛]도 그렇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 창문을 열어 불어오는 바람처럼 문득 죽은 이들의 추억과 기억이 머물다가 사라진다. [환상의 빛]에는 총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작품 모두 죽음의 부재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환상의 빛’에서는 늦은 밤 전차에 치어 자살한 남편의 죽음의 상흔이 일상에 놓여 있다. 두 번째 단편 ‘밤 벚꽃’은 아들의 죽음이 집안에 남아 있다. 세 번째 단편 ‘박쥐’는 중학 시절 친구였던 란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며 그와의 시간을 떠 올리게 된다. 네 번째 단편 ‘침대차’에서는 어린 시절의 친구가 기차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여하며 잊고 있던 지난날의 기억을 회상하게 된다. 어느 날 문득 다가온 지인과 가족의 죽음은 일상적인 삶을 흩트려 놓게 된다. 총 4편의 작품 속에 던져진 죽음의 부재로 인한 물음은 각자 다르겠지만 그들이 겪고 있는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모두 그 질문에 답을 해 줄 수가 없다. 어느 날 기차선로를 걷다가 죽은 남편은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말해줄 수 없다. 그는 불륜도 하지 않았고 도박이나 술로 문제를 일으켰던 인물이 아니었다. 사랑했던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았던 그는 왜 늦은 밤 선로를 걷다가 자살을 했을까. 그 물음은 아내 유미코의 재혼 생활에도 계속 되었지만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지 모른다. 남은 자는 계속 질문을 하지만 대답을 해줄 이가 세상에 없으므로 감당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야 한다. 당신은 나와 아이를 두고 왜, 세상을 떠 날 수밖에 없었나요? 물어도 그 어떤 단서 하나 놓지 않고 떠난 남편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그 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밤 벚꽃’은 아들이 사용했던 방을 하숙을 해 볼까 생각했지만 떠난 아들을 떠 올리며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그 방을 사용하게 될 젊은 청년이 하룻밤 머물게 되면서 불안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 청년의 기구한 사연이 밤에 빛이 나는 벚꽃과 대비되어 네 편의 소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그녀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이 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밤에 반짝이며 빛이 나는 저 벚꽃의 찬란함으로 그간의 고통은 잠시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박쥐’와 ‘침대차’는 모두 친구의 죽음을 듣게 되며 그동안 있었던 기억들을 소환하게 된다. 사실 모두 그 친구의 죽음 소식을 듣지 않았다면 별반 다르지 않을 일상의 하루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 잠시 넣어 두었던 시간의 흔적을 다시 찾아보는 것은 괴롭거나 슬퍼 머뭇거리게 된다. ‘박쥐’의 주인공도 그랬다. 길을 가다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친구가 그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면 잊고 있던 그 시절의 어둠속에 있던 박쥐의 존재를 알지 않았을 것이다. 

총 4편의 소설 속에서 가장 빛나는 소설은 단연 [환상의 빛]이지만 총 4편의 소설이 주인공의 지인들로 구성된 연작 소설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차분하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유미코의 얘기가 가장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대답을 들을 수 없는데 계속 질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크면 아버지는 왜 세상을 떠났냐고 물을 테고 그 대답은 유미코가 해야 할 것인데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왜 죽었을까. 왜 당신은 치이는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선로의 한가운데를 걸어갔던 것일까. 대체 당신은 그렇게 해서 어디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저는 그릇을 든 손을 멈추고 설거지대 구석에 시선을 떨어뜨리면서, 지금 바로 죽으려고 하는 사람의 그 마음의 정체를 알려고 필사적으로 이리저리 생각했습니다.” P57

환상의 빛의 유미코는 이 질문을 아마도 살아가는 동안 멈출 수 있을까? 오랜만에 그의 영화로 다시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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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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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지 않아도 괜찮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 마쓰이에 마사시]

마흔 여덟에 이혼을 한 남자는 자신만의 가구들이 들어오는 순간을 보면서 흥분하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공사와 가구에 든 비용이 집을 구할 때 든 중개수수료를 훌쩍 넘어섰지만 괜찮았다. 얼마나 원했던 공간이란 말인가. 아내의 간섭과 잔소리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공간을 채워 나간다는 즐거움은 그동안의 결혼 생활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갈 것 같았다. 새로 이사한 집은 마음에 들고, 깐깐한 팩폭을 날리는 아내도 집에 없다. 저녁에는 공원을 느긋하게 걸으며 하늘에 걸린 달도 구경할 수 있는 날들이 펼쳐지는 독신의 삶이란 얼마나 우아한가. 그런데, 이것으로 행복하다고 얘기 할 수 있을까?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인기가 있는 작가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이 처음 접하게 된 작가다. 소설을 읽으면서 번역의 힘일지라도 단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의 내용이나 구성을 떠나서 그냥 분위기가 단정하게 접어 수납되어 있는 수건들의 느낌이라고 할까. 찾아 본 작가의 얼굴을 보니 무척 소설과 닮아 있다. 혹시 작가가 책속의 주인공 오카다 다다시였을까. 때로는 허무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 사진 한 장에 흥미가 생긴다.

오카다 다다시가 큰돈을 들여 집을 고치고 가구를 들여 놓으면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던 때에 나타난 전 연인 가나와 조우하게 된다. 불륜도 아닌, 독신의 삶의 시작에서 다시 만나게 된 전 애인이라니. 그것으로 행복한 엔딩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며 새로운 반전이 시작된다.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책임져야 할 가나는 오카다에게 병원을 가거나 큰일에 부탁을 하지만 함께 살지는 않는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와주며 서로의 아픔과 힘든 시간을 위로하는 친구로 남게 되는 것이 싫지 않은 오카다에게는 어느덧 호기롭게 시작된 독신남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의 마지막 독백처럼 들리는 이 말은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 것인지 알려주는 것 같다.

"가나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자고, 시시한 이야기를 하며 함께 웃고 싶다. 나이를 먹어서 정신이 흐려질 때까지 아니, 흐려진 뒤로도.

몇 번이고 가나와 이야기하자. 집이 완성되고 나서도 늦지 않다. 우아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P 254

중년의 남자가 아내와 이혼을 하고 자신만을 위한 공간에서 우아한 노후를 맞이하는 얘기 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우아함은 어느덧 소설 밖으로 빠졌다. 우아한 삶이란 어쩌면 주인공의 머릿속에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카다 다다시가 혼자가 되고 자신이 원하는 집을 찾아 만들고 비싼 가구들을 들여 놓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중년의 남자는 본인 마음속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처음 소다노씨에게 집을 빌렸을 아들을 따라 미국으로 들어가 다시는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을것 같으니 마음대로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 그러나 미국으로 갔던 소다노씨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를 들으며 그 집에서 나가야 된 것이다. 우아한 오후의 모든 시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시작이라는 것도 해보지 않았는데 사라진 느낌, 처음부터 우아함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듯 그의 집이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엔딩이 처음, 이혼을 했다로 시작한 첫 문장과 어울려 보인다. 심심하게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마지막 뭉클하게 와락 안기며 사라지는 연인의 뒷모습 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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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8-10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오후즈음 2022-08-18 17:3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