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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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새벽녘에 문자가 왔다. 좀처럼 울리지 않는 핸드폰에서 다시 한번 또 문자가 왔다. 요즘은 뜸하게 만나고 있지만, 나에게 몇 안되는 초등학교 친구의 어머니의 부고를 알리는 문자였다. 지난밤 잠을 설치며 잠들지 못하고 있다가 받아본 문자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후 친구가 전화를 받았고, 나는 친구의 이름을 부르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친구도 나도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울고 있다가 전화를 끊었다.

친구에게 가는 동안 나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를 생각했다. 곁에 없어서 생각이 나지 않다가 가끔 이렇게 장례식장에 가게 되면 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늘 아버지는 집에 아주 늦게 오는 사람이라서 어려서도 하루 종일 아버지 얼굴을 보는 날이 힘들었던 날도 있었기에 아버지에 대한 큰 애정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한동안은 그저 아버지가 이제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가슴을 쓰러 내리는 날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슬픔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사탕 때문이었다. 너무 아파서 고통을 잊기 위해 드셨던 그 사탕 뭉치들을 구석에서 장롱 구석에서 발견하고 그때야,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내 곁에 없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부모는 자식이 용서 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 떠나보낸다고 해서 떠나보낼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을 알았다. 지인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를 떠 올리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이제는 뭔가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집을 나설 때 인사도 못한 아버지에게 마지막 안부를 남기는 기분이었다.

[잘 가요, 엄마] 또한 갑작스런 노모의 부고 소식을 받고 주인공은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잊고 있던 노모의 삶을 떠 올리게 된다. 주인공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도 없이 컸다가 새로운 아버지를 맞았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 생겼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재혼한 어머니는 더 가난해졌다. 돈이 좀 있는 남자에게 결혼을 한줄 알았지만 새아버지란 남자는 가진 것은 허풍뿐이었다. 집에 사람이 늘면서 점점 더 많은 일을 하게 된 어머니를 바라보는 주인공은 늘 엄마가 싫기만 했다. 그런 어머니는 매장도 아니고 무허가 장례식장에서 화장으로 삶이 마감되는 것을 보면서 오랜 시절 한 번도 반듯하게 누워 잠드는 모습을 본적 없는 지난날의 노모를 떠 올리게 된다.



“새아버지를 맞아들인 어머니의 선택이 재앙이 된 것은 내 가슴속에 자리 잡게 된 수치심 때문이었다. 그것은 발뒤꿈치에 생긴 굳은살처럼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의 흔적이었다. 집안에 생겨난 음습함, 막연했으나 돌이킬 수 없는 모순, 빼앗긴 듯 하전한 삶에 가슴이 쓰렸고, 두 사람 사이에 자리 잡은 어떤 진실과 대면하는 것이 지극히 불편했다.” P 180

주인공 나에게는 어머니는 이런 존재였다. 가난을 벗어나려 결혼을 다시 마음먹은 어머니는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주변의 멸시와 냉대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가는 억척스러운 여자. 돈이 없으니 당연히 학교에서 필요한 학용품은 사주지 못하고 그 어떤 것도 지원해주지 않는다. 학교에서 굴욕감을 맛보며 지내도 전혀 어머니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런 어머니를 견디지 못하고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고 어머니의 존재를 잊어가게 되었다. 아버지가 다른 아우와 우애가 있지도 않았을 텐데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우는 살갑게 어머니를 보내는 모습에 빨리 고향을 떠나고 싶어 했다. 내게는 한 번도 다정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빨리 보내야 할 것처럼 떠나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아우가 흙으로 변할 어머니를 위해 던진 그 한마디.

“잘 가요, 엄마”

어쩌면 이 말은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동생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열다섯에 고향을 떠나온 나는 장례식을 끝나고 중국집 장춘옥과 어머니의 중년이 다 녹아 있는 고씨 고택과 유일하게 행복할 수 있었던 장소인 외가댁을 거치면서 자신에게는 수치심과 같은 어머니의 얘기를 아우를 통해 듣게 된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어머니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 어머니는 그토록 모진 세월을 아무 말도 없이 견디며 살아 가셨을까. 화장을 한 모습을 본적이 없는 것 같은 엄마의 가방에서 발견한 립스틱처럼 주인공 나는 처음으로 엄마를 생각해본다. 그처럼 나도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언젠가 나도 이런 인사를 했었던가. 떠나보냈던 적이 있었던가.

[ “잘가요, 엄마”

안개처럼 씨앗처럼... 한평생 무겁고 가혹한 삶의 중력에서 벗어날 날 없었던 어머니는 결국 한줌의 먼지였다."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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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2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5-03-18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책 나중에 읽어봐야겠어요~

오후즈음 2015-03-22 14:17   좋아요 0 | URL
추천합니다. ^^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쓴 책이더라구요.

cyrus 2015-03-18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숨의 먼지였던 어머니... 슬픈 문장입니다.

오후즈음 2015-03-22 14:18   좋아요 0 | URL
결국 떠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겠죠...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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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두가 나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각자 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가장 진정하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158P)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딱 10가지만 적어보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산티아고를 걷는 일을 적을 것이다. 독실한 크리스찬도 순례자도 아닌 종교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오로지 800Km에 달하는 길을 걷고 싶을 뿐이다.


아직 주변에 산티아고를 다녀 온 사람이 없지만 우연하게 여행기 책을 계속 읽게 되고 있는 즈음에 만나게 된 김남희씨의 여행기속에서 산티아고를 알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좀더 마음에 와 닿았다.


작년에 제주도 올레 길을 처음 혼자 걸으면서 생각이 더 들었던 길은 산티아고였다. 아, 지금처럼 내가 산티아고를 걸을 수 있을까. 그 속에서 나는 뭘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처음 제주도 올레 길에 가기로 하고 짐을 꾸리고 도착해 혼자 게스트 하우스 침대에 누워 혼자라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아 비행기만 있다면 다시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저자도 산티아고로 가기위해 처음 알베르게에 갔을 때 느꼈던 그 순간의 후회가 너무도 절실하게 공감이 됐다. 나도 정말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자고 일어나 아침 안개를 맞이하며 걸었던 한 코스의 시작과 끝을 하고나서 어제 집으로 가지 않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함께하면 더 즐겁지만 혼자가 주는 여운은 더 깊은 맛이 있다. 여럿이 함께 걸었던 길보다 혼자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타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여행 중에 만나는 이들과의 교류는 즐겁기는 하다. ‘베드 호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마틴을 만났던 일 (물론 나중에 좀 짜증이 났었지만 그래도 난 그를 이해하겠더라는..) , 처음에는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했던 영적인 여행을 꿈꾸는 애런 그리고 자신들을 수호천사라고 말하는 조와 조지. 마지막 눈물이 날만큼 나도 좋았던 마농과 다시 산티아고에서 만나 조우했던 모습의 순간. 사려 깊은 베아르를 혼자만 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베아르가 말했던 말처럼 산티아고로 향하는 카미노 (길을 뜻한다.)에서는 딱 세 개 밖에 걱정할 일이 없다. 어디까지 걷고 어디서 잠을 자고 뭘 먹을 것인가 하는 단순한 세 개 걱정이면 카미노에서의 걱정은 더 이상 없다. 이렇게 세상을 사는데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을 까 싶을 만큼 그녀의 그 말에 웃음이 나던지.


여행을 준비하기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많은 도움을 받기는 힘들 것 같다. 저자 김희경의 산티아고는 그녀의 여행기에 충실한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정리해 나가는 여행기다. 작가는 남동생을 잃고 그 공허한 마음에 여행을 결정하고 떠났고 그 남동생의 사진을 놓고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고 목 놓아 울며 길을 걸으며 동생의 이름을 부르는 부분에서 나도 한참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여행기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티아고에 꼭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길 위에 놓여있고 모든 근심은 가벼운 웃음으로 깨어지고 국적을 뛰어넘는 교감과 소통이 있는 산티아고로 가기위해 걸어가는 것이지 않을까. 


낯선이의 친절로 하루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 카미노.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로 끝이 나는 카미노의 긴 여정에 언제쯤 기차에 올라 시작을 알릴 수 있을까. 떠 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벌써 가슴이 뛴다. 순례자를 알리는 조개껍질이 배낭에 달려 있는 것만 같다.


세라피 루트(Therapy Route)'라고 불리는 산티아고의 카미노.

한쪽 방향을 향해 800키로미터가량을 걸어가는, 안전하고 단순한 길.

길을 헤맬 걱정도, 내일은 어디에 갈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배낭을 메고 걸어갈 체력만 있으면 그저 화살표를 따라 쭉 걱기만 하면 되는 길.

모두들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자기 길을 걷고 있다. (작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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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8 23: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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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5-03-02 14:29   좋아요 0 | URL
산티아고에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구요.
저자의 동생 얘기에서는 정말 눈물이 ㅠㅠ 감동적이었습니다.
 
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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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려령은 어떤 사람일까?

맘에 안 드는 담임을 죽여 달라고 기도하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완득이 같은 사람일까? 뭐든 포기하지 않고 자식을 지키듯 천대받아도 살기위해 뛰는 아버지 같은 사람일까? 은근히 성깔 있는 완득의 어머니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잘나서 잘난체하는 윤하?

어떤 것이든 작가 김려령은 모든 캐릭터를 작품 안에서 잘 가지고 놀 줄 아는 작가라는 것, 그래서 읽는 독자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고 읽고 나서 뜨거운 가슴을 가지게 할 줄 아는 심성 좋은 작가일 것이다. 내 기준에는 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읽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벌써 34회 초판인쇄가 넘었을 것이고 (내 책 소유 날짜가 2009년 7월에 34회니 더 찍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중고등 학교에서는 권장 도서 중에 하나인 책이고 이미 연극으로 만들어진 <완득이>를 이제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촌철살인적인 대사들, 누구하나 소중하게 만들어 놓은 완소 캐릭터들을 이제 만날 수 있었다니. 팔딱 팔딱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캐릭터들끼리 잘 맞은 옷을 입은 듯한 대사들을 뿜어내는 멋진 한편의 영화를 그냥 그려지는 완득이의 청춘을 이제야 볼 수 있었다니..


<제발 똥주좀 죽여주세요. 이번 주 안에 안 죽여주면 나 또 옵니다.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완득이>속의 도완득은 참 성질 더러운 아이다. 까칠하고 발끈하고 모든 것이 다 귀찮고 관심 밖이지만 기발한 상상력으로 써낸 작문숙제 때문에 소설을 써볼까 하고 , 자신의 아버지를 욕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손부터 휙 날아가는 17세 소년이다. 하지만 담임에게 원치 않는 출생의 비밀을 듣고도 가출을 하지 못하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아버지로 그 마음을 위로 받는 쿨한 완득이다. 이런 완득이를 가슴에 넣는 일은 아프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지언정 따뜻하고 즐겁기만 하다.


<완득이> 책속에는 모두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남들보다 한참은 더 윗 세상에 있지 못한, 남들에게 난쟁이라고 놀림을 당하는 키작은 아버지.

타국으로 와서 아이를 낳고 동남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이 받는 손가락질을 다 받고 제대로 먹이지 못한 아들에게 대한 안타까움에 늦게 다시 만난 아들을 위해 열심히 먹을 것을 만들어 나르다 아들 경기에 안 보내준다고 화끈하게 식당을 때려치우고 경기에 온 멋진 베트남 어머니.

고등학교 교사지만 입에서 온갖 육두문자를 달고 사는 완득의 담인 동주, 하지만 동주보다 완득이가 부르는 똥주가 더 어울리는 사람. 옥탑방에서 완득이 챙겨 온 햇반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는 무개념 교사 갔지만 그에게는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며 돈을 버는 부자 아버지가 있고 그 아버지 때문에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몰래 일을 하며 아버지와 싸워 나가는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교사 동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춤을 추지만 말을 더듬고 장애를 가지고 있는 민구삼촌.

세상에는 싸움을 위한 운동은 없다며 제대로 질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완득이에게 진정한 주먹을 의미를 알려주며 자신의 킥복싱 장에서 완득을 마지막 회원으로 받고 문을 다는 킥복싱 관장.

전교 1등속에서 항상 어머니와 대립상태에 있지만 원하는 꿈은 꼭 이룬다는 의지가 있는 윤하.

이 모든 사람들과 한 발짝 성장해나가고 있는 우리의 도완득.

모두가 슬프지만 또 그 속에서 “희망”속에 살고 있다.


너무 늦게 다시 만난 완득의 어머니는 앞으로 아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희망,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해 노동자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담인 동주의 희망. 완득의 담임이 물주가 되어 교회가 춤 교습소로 바뀌어 차려진 곳에서 더 이상 지하철에서 장사를 하지 않고 5일장에서 망가져가는 티코를 타지 않고 단속과 깡패들에게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 차가운 시건을 모두 버리고 완득의 아버지와 함께 교습소에서 그가 제일 잘하는 춤을 추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민구 삼촌의 희망. 언제든 완득의 경기에 하나님보더 더 무서운 엄마의 눈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윤하의 희망.

그리고 언젠가는 꼭꼭 숨은 TKO승을 찾아내야 겠다는 완득의 희망.


완득이 속에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 청소년 이성교재, 학업 문제, 진로 문제들이 녹아져 있다. 완득이의 청춘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고 완득이의 청춘에 어우러져 있는 사회적인 편견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주변에서 너무 흔하지만 그 흔한 문제에 심각하게 생각하다가 너무 심각해 생각하기 싫게 만드는 것이 아닌 너무나 유쾌한 완득이의 대사들로 모두 이해하게끔 담아낸 작가 김려령의 노력이 가슴 벅차게 와 닿는다.


언젠가 좋은 작품은 작가의 좋은 심성에서 온다고 들었었다. 아마도 이런 유쾌, 상쾌한 작품을 만들어 낸 김려령이 그런 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완득이를 생각하면 완득이가 아직 못 찾은 그 꾀꼬리를 나도 찾아 봐야 할 듯 하다.

내가 못 찾는 그 꾀꼬리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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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8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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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5-03-02 14:28   좋아요 0 | URL
제가 김려령 작가님을 좀 좋아해서요~ 정말 좋아하는 분인데...이상하게 완득이 이후로 저의 마음을 끄는 책이 없어서 속상하네요. 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은 그래도 완득이 이후로 좋았던 작품이예요~
 
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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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이 배라며 사달라는 조카의 소원으로 백화점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적당한 가격과 비주얼이 있는 레고를 하나 사왔다. 같이 맞춰 보자며 한참 조립을 했지만 성질 급한 조카는 빨리 배가 만들어지지 않아 답답해했다. 빨리 가지고 놀고 싶은데 완제품이 아닌 조립 제품을 사가지고 왔다고 동생의 타박을 받으며 한참 조립을 하는데, 조카가 땀 흘리며 애쓰는 이모를 걱정하며 말했던 단어 하나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립을 잘하지 않으면 배가 가라앉는다며 기다림을 강조하는 나의 말에 조카는 배가 가라앉는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물어 보았다. 나는 배가 물어 빠진다고 다시 설명해주니 그때 조카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세월호처럼?”




그때, 나는 한 달 동안 텔레비전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했던 그 단어를 너무 쉽게 잊어버린 나를 발견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랬다, 세월호의 진상규명이 빨리 되어야 하고 자신이 몰았던 배를 버리고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선장이 처벌 받아야 하며 아직 물속에 남아 있는 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남겨진 숫자의 아픈 사람들이 빨리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했다. 그리고 저 너머로 넘어가 있는 진실이 우리 앞에 도착하기만을 원했던 그 순간을 이렇게 빨리 잊고 말았다. 어쩜 세월호는 한 나라의 가장 가슴 아픈 현실과 직면한 슬픔이면서 나에게 직접 닿지 않는 아픔이란 생각에 나는 너무 쉽게 잊었던 것일까.




“ 내가 철저히 그녀의 고통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그 고통이 담긴 타인의 몸이 있다는 걸 알았다. ” P 19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나처럼, 한 나라를 책임질 수장은 배를 버리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선장처럼 책임감 없는 신년 새해 연설을 했다. 그분도 나처럼 자신의 가슴 아픈 고통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두 손 꼭 잡고 당신들의 아픔을 안다는 그때의 잠깐의 모습은 진실이었을지 몰라도 너무 쉽게 그 눈물 자국을 지워버렸다.


나와 같이 쉽게 잊는 사람을 위해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책이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소설가, 시인, 문학 평론가, 언론학자와 정신 분석학자까지 쉽게 잊으면 안 될 그날의 얘기를 다시 들려주고 있다. 이토록 얇은 책이 이렇게 무거운 얘기로 나에게 말해줬다. 나의 망각의 곡선 끝에 자리 잡은 그날의 일들을 다시 얘기해주고 있었다. 너무 쉽게 잊으면 안 된다고 혹은 잘못된 진실이었다면 다시 고개를 들어 차디찬 겨울에도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는 그들의 시린 손을 기억해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분은 분명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말했고 최선을 다해 구조에 나서겠다고 말했었다. 배의 꼬리가 점점 보이지 않는 순간까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기도했을 것이다. 정말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구조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단 한명도 차디찬 바다 속에서 살아오지 못했다. 차디찬 바다 속에서 온 몸의 온기를 다 빼앗기고서야 모습을 보인 그들을 위해 남겨진 사람들은 진실에, 거짓된 눈물에서 눈 떠야 하지 않을까?



“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들려줘야 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P65 / 박민규_ 눈먼 자들의 국가




어느 날 세월호에 관련된 기사를 읽으며 분노했던 마음이 덧글을 읽으며 우울해졌다. 어떤 이가 써 놓은 덧글에는 이제 그만 세월호 얘기를 하라고 했다. 이정도 했으면 됐다고, 지겹다고 했다. 대체 지금의 일이 어느 정도껏 해야 하는 일인지 누가 정해 놓은 것일까. 한 달, 석 달, 일 년이 지나면 그 정도껏에 해당이 되는 것일까. 남이 죽는 것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라지만 지겹다는 말은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P230)" 우리가 예의를 갖춰 잊지 않아야 할 때가 지금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진실이 수면 위로 모두 올라올 때까지, 그 시간이 무거운 어깨를 누르고 있다고 할지라도 함께 지켜봐 줘야 하는 예의를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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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4 0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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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4 1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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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라 고양이 - 가끔은 즐겁고, 언제나 아픈, 끝없는 고행 속에서도 안녕 고양이 시리즈 2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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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길의 감식가야 평생 길을 맛 볼거야. 이 길은 끝이 없어. 지구의 어디라도 갈 수 있어> - 영화 <아이다호>

 

 

 

 

후미진 골목을 돌면 불현듯 나타나는 고양이, 언덕을 오르면 주차된 자동차 밑에 반짝이는 작은 두 눈동자, 공원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해 좋은 날 빌라 난간에 누워 잠을 청하는 고양이를 마주칠 때마다 아이다호의 기면증에 걸려 누워 잠이든 리버 피닉스가 떠오를 때가 있다. 고양이야 말로 길의 감식가가 아닐까.  

 

이곳으로 이사 온 날 그달에 가장 추웠던 날이었다. 어찌나 추웠는지 보일러를 틀어도 따뜻하지 않았다. 이삿짐을 풀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니 꽁꽁 얼어 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발로 건들고 있는 노랑 고양이를 보았다. 모든 것이 다 꽁꽁 얼어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는 단단하게 얼어 있었고, 녀석의 발톱으로 생채기를 내지도 못하였다. 집으로 들어가 녀석에게 국물용 멸치를 가져와 바닥에 뿌려 주었다. 나는 녀석이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몇 마리 던져 놓고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녁쯤 나와 보면 멸치는 없었다. 녀석이 먹었는지 다른 길고양이가 먹고 갔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때부터 나는 녀석을 아주 가끔 볼 수 있었고 내가 나오면 후다닥 도망을 갔다. 어느 날부터 아주 조금 간격이 좁혀졌다. 도망은 가지만 정말로 아주 잠깐 내가 또 뭘 놓고 가는 것인가 확인을 하고 도망을 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녀석이 나를 의식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삼 개월이 흘렀다. 이쯤 되면 나와 녀석이 좀 친해질 것도 같은데 그때쯤인가부터 녀석이 안 보였다. 여전히 멸치는 사라지지만 나와 눈인사를 딱 한번 했던 그 노랑이 녀석은 안 보였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읽고 길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나도 길의 감식가라는 길고양이 친구를 하나 만들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처음 이사와 마주친 녀석을 나 혼자 짝사랑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 추위를 견뎌 이제 봄이 왔는데 녀석은 길고양이의 습성처럼 영역을 옮겼는지 혹은 고양이 별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명랑하라 고양이>속에 처음 등장하는 “언제나 옳다”는 노랑 고양이 ‘바람이’의 등장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가 처음 정을 주었던 그 노랑이 녀석이랑 너무 닮았던 녀석이라서 더 반가웠다.

 

 

 

작가가 서울 생활을 접고 어느 공기 좋은 시골로 이사를 가고 그곳에서 만난 길고양이에 대한 기록을 남겨 놓은 이번 책은 지난번과 같이 계절별로 고양이들의 생활을 기록되어 있다. 화사한 봄을 지나 반짝이는 여름, 쓸쓸한 가을을 스쳐 눈처럼 사그라지는 겨울 속에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며 인간과 똑같이 삶을 살아가고, 자식을 낳고 자식이 올바로 자랄 수 있도록 지극정성 길러내는 모성애로 짧은 생애를 마치는 길고양이들의 얘기. 이것이 이 책의 내용이 전부 일지 모르겠다.

 

 

책속에는 우리의 삶과 똑같이 살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더 모질게 혹은 느긋하게 때로는 더 간절한 그들의 생활. 묘생이 전쟁일수록 더 많은 새끼를 낳아 희박한 생존율을 이겨낼 고양이를 낳는다는 축사 고양이들, 마치 애완견처럼 주인 할머니와 산책을 가고 배웅을 가거나 할머니가 마응 회관이라도 가시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달타냥.<녀석이 삼총사의 그 달타냥이 아니라 하도 담을 넘어 여기 저기 쏘다니기 때문에 지어 주었다는 이름>, 자식을 낳고 어마라서 투정도 못 보리는 까뮈네 식구들. 이런 접대냥을 꿈꾼다면 여기 있다며 보여주는 봉달이, 봉달이를 따라 같이 뛰는 덩달이, 어미이기 때문에 섭씨 30도를 넘어도 긴 행군을 이어가며 자식들에게 먹이를 나르는 여울이, 전원 고양이들 얘기로 마치 그 마을만 가면 만나서 인사라도 나눌 것 같은 다정함이 생긴다.

 

 

내가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노랑이 녀석처럼 ‘바람’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안 나는 것이 이상할 만큼 많이 속상했다. 녀석 그냥 그 집에 좀 빌 붙어 있지 어디를 며칠 동안 다녔는지 살도 다 빠져 나타나 그렇게 슬픈 모습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냔 말이다.

 

 

시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진다. 달나냥을 만나서 좁을 길을 걷고 싶고...(나쁜 고양이는 없다에서 달타냥의 죽고 말았다.) 덩달이와 함께 개울도 걷고 싶고, 전원 고양이들과 인사도 나누고 싶다.

올 겨울도 참 춥다는데 우리 동네 고양이들 얼지 말고, 죽지 말고 봄이 오길 견뎌 내주길. 명랑하게 살아주길.

 

 

 

 

 

 

바람이가 작가의 집에 도착했다. 밥을 먹거나 혹은 먹고 나서 하는 행동.

 

 

 

 

요런 귀여운 길고양이인 바람이.

 

 

 

 

바람이가 죽고 바람이가 걸어 다녔던 길목에 바람이를 묻어 준곳.

그때 심어 주었던 민들레는 올 겨울을 견디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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