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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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부재에 대한 질문들 [환상의 빛 - 미야모토 테루]

20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이후 가까운 지인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어 본 것은 3년 전 갑자기 떠난 친구의 사망 소식이 전부였다. 죽음이라는 것이 내게는 좀 멀리 있는 단어 같았다. 아버지는 1년 정도의 투병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 기간이 있었지만 친구는 그러지 못했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소식을 늘 전해왔던 친구의 죽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주름을 만들었다. 때로는 잊고 있다가 길가의 돌부리처럼 갑자기 넘어지며 그들이 남겨 놓은 상흔을 마주하게 되었다. 친구의 장례식장에 갔다가 얼굴을 잊고 있었던 지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오랜 달력에 빼곡하게 적어 놓았던 기록들을 얘기하며 웃고 울다가 헤어졌다. 모두 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던 그 말들. 집으로 오면서도 끝내 뱉어지지 않았던 질문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디서든 대답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왜라고 물어보면 때문이라는 답을 얻지 못할 것이었다. 

고레이다 히로카즈의 첫 장편 영화의 원작인 [환상의 빛]도 그렇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 창문을 열어 불어오는 바람처럼 문득 죽은 이들의 추억과 기억이 머물다가 사라진다. [환상의 빛]에는 총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작품 모두 죽음의 부재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환상의 빛’에서는 늦은 밤 전차에 치어 자살한 남편의 죽음의 상흔이 일상에 놓여 있다. 두 번째 단편 ‘밤 벚꽃’은 아들의 죽음이 집안에 남아 있다. 세 번째 단편 ‘박쥐’는 중학 시절 친구였던 란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며 그와의 시간을 떠 올리게 된다. 네 번째 단편 ‘침대차’에서는 어린 시절의 친구가 기차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여하며 잊고 있던 지난날의 기억을 회상하게 된다. 어느 날 문득 다가온 지인과 가족의 죽음은 일상적인 삶을 흩트려 놓게 된다. 총 4편의 작품 속에 던져진 죽음의 부재로 인한 물음은 각자 다르겠지만 그들이 겪고 있는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모두 그 질문에 답을 해 줄 수가 없다. 어느 날 기차선로를 걷다가 죽은 남편은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말해줄 수 없다. 그는 불륜도 하지 않았고 도박이나 술로 문제를 일으켰던 인물이 아니었다. 사랑했던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았던 그는 왜 늦은 밤 선로를 걷다가 자살을 했을까. 그 물음은 아내 유미코의 재혼 생활에도 계속 되었지만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지 모른다. 남은 자는 계속 질문을 하지만 대답을 해줄 이가 세상에 없으므로 감당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야 한다. 당신은 나와 아이를 두고 왜, 세상을 떠 날 수밖에 없었나요? 물어도 그 어떤 단서 하나 놓지 않고 떠난 남편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그 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밤 벚꽃’은 아들이 사용했던 방을 하숙을 해 볼까 생각했지만 떠난 아들을 떠 올리며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그 방을 사용하게 될 젊은 청년이 하룻밤 머물게 되면서 불안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 청년의 기구한 사연이 밤에 빛이 나는 벚꽃과 대비되어 네 편의 소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그녀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이 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밤에 반짝이며 빛이 나는 저 벚꽃의 찬란함으로 그간의 고통은 잠시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박쥐’와 ‘침대차’는 모두 친구의 죽음을 듣게 되며 그동안 있었던 기억들을 소환하게 된다. 사실 모두 그 친구의 죽음 소식을 듣지 않았다면 별반 다르지 않을 일상의 하루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 잠시 넣어 두었던 시간의 흔적을 다시 찾아보는 것은 괴롭거나 슬퍼 머뭇거리게 된다. ‘박쥐’의 주인공도 그랬다. 길을 가다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친구가 그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면 잊고 있던 그 시절의 어둠속에 있던 박쥐의 존재를 알지 않았을 것이다. 

총 4편의 소설 속에서 가장 빛나는 소설은 단연 [환상의 빛]이지만 총 4편의 소설이 주인공의 지인들로 구성된 연작 소설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차분하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유미코의 얘기가 가장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대답을 들을 수 없는데 계속 질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크면 아버지는 왜 세상을 떠났냐고 물을 테고 그 대답은 유미코가 해야 할 것인데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왜 죽었을까. 왜 당신은 치이는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선로의 한가운데를 걸어갔던 것일까. 대체 당신은 그렇게 해서 어디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저는 그릇을 든 손을 멈추고 설거지대 구석에 시선을 떨어뜨리면서, 지금 바로 죽으려고 하는 사람의 그 마음의 정체를 알려고 필사적으로 이리저리 생각했습니다.” P57

환상의 빛의 유미코는 이 질문을 아마도 살아가는 동안 멈출 수 있을까? 오랜만에 그의 영화로 다시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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