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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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내가 만나는 그 경계선 _ [파트릭 모디아노- 지평]


 

 

그는 모든 첫 만남은 상처라는 말이 어느 책에 쓰여 있었는지 기억해내려 애썼으나 헛수고였다 _ p28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골목길 어귀마다 종종 있었던 레코드 가게를 지나다 문득 비라도 만나 잠시 머물때, 추억을 같이 공유했던 그 음악이 나오면 한동안 집으로 향하지 못했다. 그런 경험은 나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 함께 즐겼던 어떤 사물을 만나게 되면 적적한 마음에 추억이라는 샘이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같이 공유했던 것들이 자리 잡지 않더라도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서 마음을 어지럽힐 때도 있다.


 

어느 날 보스망스는 자신의 젊은 날의 기억들을 떠 올려 보았다. 그에게도 왜 이제 와서 지난 40여년이 지난 그 일을 떠 올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희미해진 기억들 속에 자리 잡은 얼굴들도 왜 자신의 기억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지 그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기억 속에 머물며 희미한 그림을 다시 맞춰 보려 애쓴 것은 어쩌면 40여년전에 헤어진 마르가레트를 기억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닯아 있는 두 사람의 가장 큰 공통점은 사랑받지 못한 가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보스망스는 어머니의 학대 속에서 자랐고 이후 돈을 갈취당하면서 살았다. 마르가레트 역시 어머니와 절연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여자였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불운한 가정으로 인해 두 사람은 매우 불안한 모습으로 성인이 되었고 주변인과의 만남 또한 그랬다. 서로가 마음의 한쪽 다리를 절며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했던 것인지 몰라도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어쩜 이것이 두 사람에게 있었던 첫 만남의 상처는 아니었을까.

 

책속에서 나는 마르가레트라는 여자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정말 어떤 여자였을까? 의문의 남자에게 추적을 당하며 그와 맞서지 않고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다시 독일로 도망가는 것이라며 기차를 타고 훌쩍 떠나버렸다. 그리고 이후 그녀의 생존 소식은 보스망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녀가 정말로 독일행 기차를 타고 떠났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불안은 보스망스를 떠난다고 해서 혹은 독일행 기차를 타고 독일에 도착했다고 해서 끝이 났을까? 끝없이 펼쳐지는 그 지평 속에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그녀의 그 말처럼 자신을 사랑해 줄 그 어떤 다른 사람과 끝나지 않는 그 미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존재는 알 수 없는 그저 보이지 않는 끝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는 생의 한 교차로에, 보다 정확하게는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한 경계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미래. 그리고 또 하나의 단어, 지평. 그 시절의 저녁, 그 구역의 조용하고 텅 빈 거리들은 모두 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탈주로였다.” P91

 

베를린, 어느 서점에 있을지도 모를 그녀를 만나기까지 소설이 끝나는 부분에서는 나는 그저 그들의 만남이 어느 세월의 한 조각으로 그냥 남아 있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쁘지 않을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스망스는 저녁까지 열려 있는 그 서점으로 발길을 돌려 그녀의 생존을 확인했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그들에게 펼쳐진 그 지평의 끝에 서로 맞닿아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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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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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이렇게 3장으로 이뤄진 이 책속에서는 주인공 영혜의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모두 그녀를 보는 제 3자의 시선뿐이다. ‘채식주의자’에서는 영혜의 남편의 시선으로, ‘몽고반점’은 영혜의 언니 인혜의 남편의 시선, 그리고 ‘나무불꽃’은 영혜의 언니 인혜의 시선이었다. 단지 꿈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학적으로 변해가는 영혜의 채식주의에 대한 강박증, 그리고 ‘몽고반점’에서는 좀처럼 그녀의 행동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은 채식주의자에 있었던 부분도 마찬가지 이었다. 더 이상 육식을 하지 않겠다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모인 가족들중 어느 한명도 그녀의 이상한 고집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얘기를 제대로 들어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도 가족에게 심각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속옷을 입지 않고 블라우스를 입고 부부동반 모임에 나가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만 먹으며 앉아 있는 그녀는 고집이 강하거나 강박관념이 심한 사람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녀를 이해 할 수 있는 통로는 어떤 것일까.





 

그녀를 억지로 고기를 먹이겠다는 가족들의 그 성화도 결국 그녀를 꺾지 못했다. 그녀의 몸은 오로지 순수한 것들, 피 비린내가 나지 않는 순한 것들만 들어 올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좋아 했다. 가슴은 그 어떤 것도 해치지 않는다고 했다. 살육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육식을 거부 하는 그녀에겐 그 어떤 것도 죽이지 않는 가슴이 소중했다. 억지로 고기를 먹이지 않았다면 그녀는 고기를 거부하기 위해 과도로 손목을 긋지 않았을 테고, 이런 그녀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이혼하지도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채식만으로 그 어떤 것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며 살아 갈 수 있었을까.

 

운명이 나에게 찾아오는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운명이라는 것이 내가 만들어 놓은 덫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녀의 채식으로 인한 운명은 이미 꼬일 대로 꼬여 남편과의 관계를 틀어지게 했고, 혼자 있는 처제를 걱정하다 그녀의 엉덩이에 아직도 남아 있다는 몽고반점이 궁금했겠지만 그것을 비디오로 담을 생각은 형부로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있는 그녀에게 그렇게 쉽게 갈 수 있었을까? 물론, 자신의 아트를 위해선 위약을 벗어던지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아 그가 그런 가능성을 떨쳐 버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영혜의 언니 인혜 또한 힘들게 아들을 홀로 키워 내며 정신병원에 있는 동생도 돌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모두 영혜가 만들어 놓은 운명의 덫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런 운명을 그녀가 원했을까?

 

나무불꽃에서 영혜는 나무 형상처럼 말라갔다.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른 늙은 나무처럼 그녀는 점점 말라갔고, 나무처럼 되고 싶어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제 나를 포기하라는 의사표시 같다. 나는 이제 나무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자연으로 남길 원하는 그녀는 이제는 채식이 아니라 모든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정신병원에서도 그녀를 더 이상 손쓰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거식증이 계속 되고 있으며 무생물처럼 살아가길 원했는지 자신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것들을 모두 거부했다.



 

이것이 인혜의 말처럼 모두 꿈이었으면 영혜는 좋을까? 모든 것을 부정하듯 숨이 넘어갈 듯 피를 토하는 동생을 보는 그녀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꿈이라면 그녀가 새벽녘 숲길을 걸어 동생이 머문 정신병원에 가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간신히 숨이 남아 있는 동생을 보며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악몽 같은 시간을 떠올리지 않아도 됐을 일이다. 매번 지옥 같은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면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이 꿈이었길 바란다. 그녀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 것이다.

 

 

 

<소년이 온다.>를 통해 나는 한강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5.18 민주항쟁을 가지고 소설을 쓴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임철우의 <봄날>을 읽으면서도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가. 계속 시간이 지나도 그 얘기를 해줘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시대가 그것을 그대로 옮기기에는 작가 자신에게 큰 위험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 참 불행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소년과 5.18을 엮어 놓았다. 계속해서 이런 작업을 해 주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한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밀어 놓았던 그녀의 작품을 만나기 시작했다. 사실 주인공의 마음을 공감해 주기가 너무 어려웠다. 영혜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공감은 해주고 싶었는데, 그 공감도 사실 너무 괴리감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너무 고지식한 것일까. 주인공 영혜보다 그녀로 인해 가정이 파괴됐지만 혈육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돌보고 있는 인혜에게 훨씬 많은 측은지심이 발동하고,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든다.

 

구급차 안에서 영혜의 삶이 끝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인혜의 삶은 현재진행중이다. 아직도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은 인혜를 더 위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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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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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 나이에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사강이 이 소설을 쓸 시대를 생각하면 결혼도 하지 않은 서른아홉의 폴이 실내 장식가로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당찬 여자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그녀도 그녀의 애인 로제만 곁에 있으면 한없이 나약한 여자가 되고 만다. 자유연애를 꿈꾸는 로제는 폴과의 사랑이 절대적이지 않다.



그는 때론 기분에 맞춰 젊은 여자와의 하룻밤이 특별하지도 않다. 지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나쁜 남자의 정석이라고 할까. 그런데 폴은 그를 사랑함에 있어서는 동화 속에 나온 공주들과 다를 게 없다. 나른한 연애를 깨워줄 마법의 주문을 가진 왕자가 나타나야 할 것 같았다. 그런 폴에게 나타난 시몽은 그녀가 살고 있는 동화속의 액자 안으로 들어간다. 폴을 사랑하는 시몽은 그녀에게 적극적인 사랑을 표현하지만 나이차이가 나는 시몽과의 사이에서 늘 갈등을 겪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문득 나이든 사강의 모습이 떠오른다.


공부 안하기로 유명한 사강이 19시에 쓴 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그해 비평가 상을 받으면서 엄청난 부를 지니게 되었다. 너무 어린 시절 성공을 거둔 그녀의 중년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그녀의 “슬픔이여 안녕”의 주인공은 17세였고, 그것을 쓸 때 그녀의 나이는 19세였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작품을 쓴다고 했으니 경험이 많지 않았던 19세의 그녀의 소설은 당연히 그녀의 17세가 녹아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을 생각해 보면 서른아홉의 폴은 분명 사강의 세월을 녹아 넣었던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읽었는데 사실 이 소설은 그녀의 나이 24살 때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쓰기 전에 그녀는 고통사고로 차가 전복되어 머리에 중상을 입고 3일간의 의식 불명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이 소설을 쓰게 되었으니 그녀는 자신의 혼돈의 시대를 시간여행자로 미리 다녀 온 것은 아니었을까.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고, 알코올과 마약, 도박 중독으로 그녀의 노년은 정말 궁핍한 삶이었다고 했다. 마치 모든 사랑을 다 잃어가는 폴처럼 그녀는 쓸쓸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폴은 아직 젊고 젊은 시몽이 있지 않는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아니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특히 여기서 점 세 개가 중요하다고 한다.)는 당시 브람스를 즐겨 듣는 프랑스인들이 없었기 때문에 물음표가 아닌 권유 형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상대방에게 꼭 같은 감정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권하는 느낌. 브람스를 좋아해보세요. 폴은 그녀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시몽을 보며 연상의 여인을 좋아했던 브람스를 떠 올렸다. 브람스는 열네 살이나 연상이었던 클라라 슈만을 평생 동안 연정의 마음을 품지 않았던가.



폴은 브람스를 떠 올리면 시몽이 자연적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젊은 시몽을 떠나보내기로 한 그녀가 시들해진 로제와의 사랑을 계속 가기로 선택한 부분은 어쩌면 시몽의 젊음을 계속 가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평생 연정의 마음을 품고 살아갔던 브람스처럼 시몽을 두지 않았던 그녀가 시몽의 뒤를 보며 했던 “시몽, 나는 늙었어. 늙은 것 같아......”의 대사에 그녀가 선택한 현실의 타협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코카인 소지로 인해 기소된 그녀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얘기 했다. 그녀가 그녀를 덜 파괴하고 살았다면 훨씬 더 많은 그녀의 다양한 작품을 만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쉽지만, 참 멋진 대사를 하며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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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생활비를 출금해야해서 오늘 토요일인데도 은행에가서 atm기로 돈을 인출했다.
혹시 몰라 늘 펑일에 갔는데 오늘은 한국서 가져온 유로를 다 써서 인출해야만 했다.

500유로 인출하려니까 360만 가능하다고 뜨기에 알았다고 확인 버튼을 누르니 돈은 안나오고
카드만 나왔다.
이상해서 서 있다가 다음 사람에게 양보하니 그 사람도 안된다며 다른곳으로 갔다.
나는 그냥 기계가 이상 있나봐 하고 집에 와서 혹시나 하고 인터넷 뱅킹 어플을 와이파이 잡아 확인했더니 돈이 출금되었다.


ㅠㅠ 내돈 50만원.
급하게 은행으로 가봤더니 안됐던 그 기계에서 돈을 뽑는 사람들을 봤다.

아 미치겠다.
토요일이라 은행 직원은 없고
영수증도 나오지않아
나의 이 사실을 확인 시켜줄 사람이 없다.
독일인들은 이런것에 얄짤없다던데 미치겠다.
울고 싶다. 500유로가 아니라 360유로인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난 진짜 왜이럴까

유랑 카페를 막 알아보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찾았는데 돈을 다시 받을수 있더라도 한달이 넘게 혹은 석달도 걸린단다.


제발.
착하게 있다가 귀국할테니
내 현금을 돌려주세요. 오늘 이렇게 종교도 없는 나는 계속 기도했다. 내일부터 수업에 들어가야해서 오늘 공부해야 하는데 지금 열받고 속상해서 잠이 안온다.
월요일에 좋은 꿈 꿔서 로또 사라고 한국에 얘기 하고 기다렸더니 꽝이란다.
로또 꽝이었으니 제발 인출된 내 돈은 돌려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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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7-07-02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꼭 찾을 수 있기를 한국에서도 간절히 바랍니다.

오후즈음 2017-07-04 06: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ㅠㅠ

oren 2017-07-0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없는 기계가 사람 잡더라고요.
3년 전에 벨기에 갔다가 ‘주차 정산 시스템‘한테 붙잡혀서 몇 시간 동안 진땀 흘린 거 생각하면 아직도 진땀 나요.. 아무리 제대로 절차를 밟아도 정산이 안 되고, 차 뺄려는 사람들은 연신 밀려들고 말이지요...

오후즈음 2017-07-04 06:58   좋아요 0 | URL
정말 식은땀 나는 일이셨겠네요. 저도 이놈의 기계 때문에 정말 사람 잡네요...

cyrus 2017-07-0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난감한 상황이군요. 타지에서 돈이나 지갑을 잃어버리면 얼마나 마음이 아찔한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돈이 무사히 되돌아오길 바랍니다.

오후즈음 2017-07-04 06:59   좋아요 0 | URL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습니다. ㅠㅠ 계좌로 송금 되기전까지는 아직 안심은 안되네요. 으휴.....못살겠어요.
 
친구가 뭐라고 - 우리의 삶은 함께한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사노 요코 지음, 이민연 옮김 / 늘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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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친구들과 놀러 좀 그만 다니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밖에 나가서 놀면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그것 때문에 나의 모든 것들에 제약이 생겼다. 숙제를 빨리하면 친구네 집에 놀러 갈 수 있고, 내 방 청소를 빨리 마치면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생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와 놀러 다니는 것도 어느 정도 나이를 더 많이 먹으니 각자가 더 소중하게 챙겨야 할 것들이 생겨 친구와 함께 공유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친구가 뭐라고]를 쓴 사노 요코는 처음에 친구가 없어도 될 것처럼 얘기 했지만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챙기거나 알려 주거나 공유 되는 것들이 모두 다 있어야 친구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어느 날 소식을 끊었어도 수술한 배를 움켜쥐고 돈을 빌려 달라고 전화를 걸 수 있고, 나의 부고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려와 나를 위로 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필요하다.

다른 작가와 인터뷰를 하는 걸로 시작된 이 책 속에 그녀의 진실성이 얼마나 많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쏟아 놓는 친구와의 일화들을 통해 지나간 나의 친구들을 떠 올려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매년 다이어리를 정리 할 때마다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지인들의 연락처를 지워 나갔다. 이후 핸드폰을 바뀌게 되면 자동적으로 연락처를 다시 옮겨 넣으면서 멀어진 이들의 연락처를 지우거나 때로는 다시 연락 할 때도 있었다. 지워지는 이들에 대해 아쉬운 것이 없다가 문득 나도 어떤 이들에게 이렇게 지워 지겠다는 생각에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친구와 멀어졌을 때, 혹은 심하게 다투었을 때 친구와 화해를 하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그냥 둔다고 했다. 억지로 다시 만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나에게도 간혹 이런 것들이 그전의 감정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싸우지 않기 위해 참다가 결국 그것이 더 큰 눈덩이처럼 커져 싸워 안보는 사이로 남게 된 경우도 있다. 그녀처럼 그냥 시간이 더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남을 때까지 기다려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관계의 친구가 떠올라서 마음이 쓸쓸했다. 그녀의 말처럼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우정이 우정을 불러들일 때까지 있었다면 나는 정말로 소중한 그녀를 잃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우정이 우정을 부른다는 그 말은 어떤 말일까? 시간이 지나서 이제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남을 때까지 시간을 두는 것, 그래도 마음에도 더 이상 앙금이 남지 않아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 할 수 있는 그런 일,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 사실 얼마나 많은 고독의 시간이 필요 할지 생각해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오해는 인생 경험치와 서로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는 오랜 시간을 들여 친구를 만나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친구는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꼭 오래된 사람만이 진정한 친구로 남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그 친구의 진가를 알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사건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 경험치를 불러와 그 사람의 인성을 알 수 있겠지만, 간혹 내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 중학교 고등학교의 친구들만 오랜 친구,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는 주변의 몇몇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과 훨씬 많은 교감을 하고 소통을 하며 잘 지내고 있을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된 사람인가 생각이 든다. 내겐 오래된 친구들은 중학교 동창들이었다. 중학교 친구들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돌보느라 아이가 없는 나에게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놓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나는 더 이상 그녀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나는 내 인생에 친구가 뭐라고 생각하며 많은 고민을 했다. 꼭 오래된 친구들만이 진정한 친구로 남는 건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고 내 주변에 남은 지인들이 더 빛나보였다. 그들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그 수간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고 행복한 일인지 잘 알고 있으므로 나는 내 옆에 있는 그들과 더 행복하게 살기위해 배려와 안부를 나누며 살기로 했다. 물론, 그들도 그렇게 해 줄 것이라고 믿어 본다. 그런 이들만 내게 남았다고 나는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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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25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기 전까지 자주 만날 수 있는 친구 다섯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