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옳았다 - 5·16과 10월유신의 정치경제학 박정희가 옳았다 1
이강호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정희라는 인물은 대한민국에서 상당히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중 하나다. 그를 찬양하는 측에선 그가 집권할 당시의 경제성장을 예시로 들어 산업화의 아버지혹은 배고픔을 해결해주신 분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반면, 그를 비판하는 측에선 독재자혹은 친일파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인물이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아직도 아주 강력하게 남아 있다. 그가 태어난 구미 시에는 박정희 생가가 있고, 거기엔 어마 무시한 박정희 동상이 서있다. 또한 서울 월드컵경기장역 옆에도 박정희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박정희 기념 도서관이 있다.

 

이처럼 박정희의 향수는 어느 특정 세대와 특정 정치집답에게 아주 강력히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들이 찬양하는 박정희는 어떤 이미지의 박정희인지 그들이 전개하는 논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즉 아무리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전향한 운동권 출신이 쓴 <박정희가 옳았다>를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게 됐다. 읽기 전부터 책이 가지고 있는 정치성향이 필자의 생각과는 완전히 상극을 달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그 상극은 더 길어졌다. 왜냐하면 이 책은 독자만의 지나친 억측과 논리비약, 역사왜곡, 어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인신공격, 국민들에 대한 우롱 그리고 극단적 반공주의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에 있는 내용을 다 반박하려면 정말 몇 십장이나 되는 논문이나 혹은 책 한권이 나와야 할 정도로 오류가 많다. 그러나 필자가 쓰는 것은 책에 대한 서평이기에 이 글에선 그만큼 다룰 생각은 없다. 이 서평의 목적은 저자가 저지른 대표적인 논리적 오류와 허점 그리고 사실왜곡에 대한 지적이다. 따라서 이 서평에선 필자가 생각한 저자의 대표적인 논리적 오류가 무엇인지 간추릴 것이다.

 

우선 책 저자에 대해 소개를 하겠다. 책 저자는 한때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운동권 출신이다. 대부분의 80년대 운동권이 그랬듯이 저자 또한 1991년 소련 연방의 해체를 경험하면서 쉽게 말해 사상적 혼란에 빠졌다. 그 과정에서 책 저자가 택한 길은 바로 극우였다. 책에서 저자가 박정희를 높게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논리는 뉴라이트들이 하는 논리와 같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소위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선택해서 세계 경제 대국 10위에 오른 기적과도 같은 위대한 나라고, 북한이라는 나라는 소위 인민민주주의를 선택해서 세계 최빈국 대열에 껴 지옥으로 변모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는 이 말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승만 정권의 탄생을 대한민국의 건국은 자유민주혁명이다.”이라는 형용모순이 매우 심각한 말로 표현한다. 여기서 저자는 해방 이후 민중들이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세우려 했다는 것과 미군이 점령군으로 들어와 친일세력들을 등용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친일세력에 지원을 받는 인물이 바로 이승만이라는 사실을 아주 쉽게 무시한다. 저자는 이승만 정권의 탄생이 민중들의 염원인 것처럼 얘기하기 위해, 당시 민중들이 이에 저항했다는 것과 민중의 70%가 이를 반대한 것 그리고 그 민중이 바로 빨갱이로 몰려 무차별 학살당했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여기서부터 저자의 극우적 색체는 아주 명백하게 들어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박정희는 이승만을 싫어했던 인물이었지만, 저자는 이를 무시하고 이승만과 박정희를 어떻게든 연결시키려는 무리수를 둔다. 박정희는 군인시절 이승만을 매우 싫어했던 인물이었다. 박정희는 군인시절 이승만을 제거할 생각을 했었던 인물이기까지 하지만, 어떻게든 이승만과 박정희를 연결하려는 저자는 이런 사실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는 박정희가 일으킨 5.16 쿠데타를 군사혁명이라고 한다. 심지어 영국의 명예혁명에 빚대어 5.16 쿠데타를 군사혁명이라고 표현하기 까지 한다. 5.16 쿠데타를 혁명으로 포장하기 위해 과거에 있던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폭력성과 극단성을 강조하며, “5.16 혁명은 그런 세계사적인 혁명에 비해 유혈이 낭자하지 않은 위대한 혁명이라며 찬양하는 모습을 보인다. 혁명은 일으키는 주체가 누구냐를 떠나 그 목적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무엇보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는 반공이라는 구호를 걸고 일어난 사건인데, 반공의 주체는 약자와 빈민을 대변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따라서 5.16은 반혁명 내지는 군부관료들의 쿠데타일 뿐이다.

 

비슷한 시기 혁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CIA의 사주를 받아 일어났던 쿠데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남베트남에서 일어났다. 남베트남에서 즈엉반민(Duong Van Minh)의 지도하에 응오딘지엠 정권 타도를 걸고 일어난 쿠데타 또한 그 시기에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 사건을 현재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같은 맥락에서 박정희의 5.16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경제 성장 즉 대기업 위주의 성장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거의 종교적 맹신을 뛰어넘는다. 박정희 시절 배고픔과 경제를 잘살게 해줬다는 종교적 믿음과 부자가 잘살게 되면 가난한 사람도 잘살게 된다.”는 상류층 중심적인 저자의 생각은 책에서 이중합창을 한다. 여기서 저자는 소위 박현채가 작성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구했다는 대중경제론을 지적한다. 즉 대중경제론을 선택했다면 한국이 가난을 면치 못했을 거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인 관점이다. 급속도의 경제 발전에서 생산한 것을 누구에게 분배를 하는가는 굉장히 중요하다. 물론 박정희 시절 한국이라는 국가가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거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성장이 과연 가난한 민중을 위한 것이었나를 생각해 보았을 때, 그것은 절대 아니었다.

 

자본주의를 토대로한 경제발전이 성공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나라가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폴이다. 물론 이 나라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면 잘 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이 나라들이 채택했던 경제체제가 진리고 올바른 선택이었다고만은 할 수 없다. 또한 저자의 왜곡된 믿음과는 달리 자본주의 체제에 놓여있는 가난한 나라들은 전세계적으로 아주 많다. 즉 한국이 경제성장을 박정희 때문에 할 수 있었다는 얘기와 자본주의를 선택해서 발전했다는 주장은 사실 왜곡된 반공주의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그런 경제성장은 부유층들이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 원리로 돌아가지만, 정작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노동자들에겐 그 혜택이 부여되지 않았다. 물론 박정희 경제성장은 국가가 경제에 개입한 형태였기에 1920년대 미국식 경제성장하고는 달랐다. 현재 한국사회가 실행하고 있는 복지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불완전한 형태이지만, 일정부분 사회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자본주의 국가 치고 그런 복지 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위에 있는 북측이 미약하지만 무상의료 무상복지를 실행한 측면도 강했다. 즉 북한이 하니까 본인들도 그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초반에 미약하게나마 실행했다. 이것은 마치 히틀러가 반볼셰비즘을 표방하면서 복지혜택을 부여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박정희때는 그런 복지체제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연금제도도 공무원과 군인 교사에만 한정해서 하고 교육도 철저히 시장원리에 맡겼다. 쉽게 말해 인민대중의 복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박정희가 가난한 인민들을 위한 경제정책을 펼쳤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일 뿐이다.

 

저자는 반공주의가 고로 자유민주주의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국이 지원한 남미의 반공국가들은 전부다 비민주적이고 폭압적이며 무수히 많은 인명 학살을 저질렀던 나라들이었다. 박정희 정권 또한 매우 탄압적이어서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탄압은 매우 극심했다. 여기서 저자는 박정희 정권 시절 있던 간첩 조작 사건들을 단순히 반공의 이름으로 합리화 시키며, 어떻게 해서든 북한하고 연결시키고자 한다. 예를들면 책에서 나온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내용이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마치 좌파로 몰지만,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철저한 우파였다. 전혀 친북적이지도 좌파적이지도 않은 인물임에도 그저 박정희에게 반대하면 무조건 좌파 빨갱이로 모는 저자의 논리가 과거 반공주의 시대와 판박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정권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좌파 종북으로 모는 논리적 오류를 범한다. 현재 문재인 정권은 친미 친기업적인 구조에서 한 치도 물러난 적이 없지만, 단순히 더불어민주당이 박사모와 반대된다는 이유를 들어 종북 좌익세력으로 모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박근혜 탄핵을 사기 탄핵이라는 박사모들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쉽게 말해 저자가 책에서 전개한 논리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의 전두환 자서전 판매 금지 조치를 두고 출판을 탄압하는 비민주적인 조치라 얘기한다. 그러면서 드는 것이 1974년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 논리 출간이다. 이것은 확연히 다르다. 전두환 자서전이 출판이 금지된 건 1980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었을 뿐이다. 마치 현재 독일에서 나치에 대한 찬양 서적을 내면 처벌하듯이 말이다. 반면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다르다. 우선 박정희 시대의 출판 금지조치는 전환시대의 논리도 적용이 됐다. 또한 저자도 베트남 전쟁 종결 이후 구속되고 감옥살이를 지냈다. 또한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는 이 책을 읽으면 빨갱이로 몰려 끌려가기도 했다. 쉽게 말해 광주를 학살한 전두환 따위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얘기다.

 

저자는 세련된 공산주의와 후진적 공산주의를 얘기하며 공산주의는 실패로 귀결된다는 신자유주의적 망언을 한다. 세련된 공산주의로 드는 예시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인데, 거기서 저자는 살바도르 아옌데가 경제를 망쳤다며 역사를 왜곡한다. 오히려 경제를 더 망친 인물은 책에서 저자가 경제성장 운운하며 찬양하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였다. 피노체트의 경제성장은 신자유주의를 적용한 상태에서 오른 성장이었을 뿐, 빈부격차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해졌고, 대다수 민중의 삶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락에 떨어졌다. 또한 아옌데 정권이 나중에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국가의 경제고립과 우익들의 노골적인 테러 행위 때문이다. 저자의 편협한 반공주의는 이런 기본적인 역사적 맥락마저 무시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가 끝난 것도 아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밑에 있는 나라 쿠바는 미국보다 영유아 사망률도 낮고, 주거와 의료 교육에 있어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더 안정적인 삶을 구가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만 모든 국가의 사례를 접근하는 저자의 관점은 얄팍하고 편협한 관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소위 5.16 군사혁명을 성공시킨 박정희는 무오류 무결점의 반신반인 예수 부처다. 쉽게 말해 박사모들의 종교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이 1부터 10까지 전부다 억측과 비약, 역사왜곡 반공주의로 점철되어 있다. 단순히 사회주의를 실패의 논리로 보는 것도 그렇고, 북한이 경제적으로 가난을 면치 못하는 이유를 미제국의 경제고립에 대한 맥락을 싹다 빼놓고 단순히 체제문제로만 보는 시각도 매우 단순하고 단세포적이다. 박정희의 왜곡된 반공 신화는 2012년 종교에 심취한 한 무능한 인물을 대통령 자리에 앉혔다. 이것이 바로 박정희 신화의 오류고 시대역행이다.

 

저자는 공과 과를 평가하는 것은 단순하다고 얘기하며, 어떠한 인물을 평가할 때, 그 시대사적인 맥락을 파악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정희는 시대사적인 맥락으로 봤을 때, 인민의 이름으로 재판받아야할 반역자요 친일파였다. 이것은 프랑스의 나치청산 기준으로 보았을 때, 사형 혹은 무기징역을 면치못하는 반역자일 뿐이다. 5.16 또한 일부 군관료들의 뒤틀려진 반공 쿠데타였을 뿐, 민중을 1도 대변하지 않은 반동적 행위였을 뿐이다. 따라서 과거 극단적 반공주의 즉 친미제국주의적 기조하에 탄생한 반공주의적 시각은 이제는 타파되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청산되야 한다. 그 시작은 바로 무능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의 왜곡된 신화의 허상을 들추어내는 작업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네im 2020-07-2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는 너가 뱃속에 있지도 않던 시절을 직접 체험하며 보낸 철없는 사회주의 망상에 빠지다가 정신차려 회개한 사례야 선생님으로 모시면서 강의를 몇백먼 들어가며 들어야한단다 읽어다면서 하는 꼬라지봐라 본문에서도 죄다 엉터리를 쓰는 주제에 뭔 역사를 논한단냐 ㅉㅉ

박정희가 얼마나 위대한 리더였냐면은 밖으로는 매일같이 북한과의 총격전이 벌어지며 안으로는 국회의원.사회단체원노동자 등 사회 각 분야에 광범위하게 위장하면서 간첩에 협조하며 국가를 갖다바치려는 매국노들 때려잡으면서 의문사.자살.사형집행 전부 합쳐 30명도 안되었으면서도 자본도 자원도 기술도 없어 회생불능으로 판정난 나라를 20년만에 중진국으로 발돋음했던 말이야 세계 근현대사를 통틀어 이런 사람은 없었어 즉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이루었딴 말이야

너가튼것들 문빠나 민주당좋아하는 것들 2500만명 정도 되는데 북한에 싹다 보내버려 24시간 집안에 김돼지들 모시며 비밀경찰 감시받고 쫄쫄 굶고 공개처형 구경하는 꼴을 1년만 체험해봐야 얼마나 자유와 민주주의가 소중한지 깨닫게되지

친일파? 히로히토에 애비가 죽은거만야 90도 대가리박은 도요다다이쥬 무덤파고 시체를 토막내야 한다는 주장이나 하거라 이런거보면 중남미처럼 민주팔이들 몇만명 사형시켰어야 했는데 고작 고문.투옥이 태반이었는데 과오지
 

홍콩시위에 대한 단상

작년 봄부터 홍콩시위가 격해지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 정부에 반대하여 대규모 민중항쟁적 성격을 가지고 일어난 홍콩시위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시위에는 수백만에 달하는 시민들이 참가했고, 홍콩 전체가 시위 현장으로 돌변했다. 몇몇군데는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저항하는 전선이 나타났을 정도고, 중국측은 이를 진압하고자 했다.

홍콩시위가 격해지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홍콩시위를 보며 5.18 경제민주화운동과 6.10 민중항쟁을 떠올렸던 것 같다. 영화 ‘택시운전사‘나 ‘1987‘를 보며 홍콩에서 시위하는 대학생들이 하는 얘기를 듣다보면 그럴싸하기도 하다. 또한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가치(정확히 말해 서구식 민주주의)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홍콩 시위에서 중국측의 대응은 전 세계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파됐다. 홍콩 시위를 대응하는 중국의 행위가 잘못됐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서 전 세계는 중국에 대해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고 홍콩 시위에 대해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홍콩시위의 전 세계적 지지는 한국 사람들 또한 좌우를 막론하고 이를 지지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규모 연대집회가 있었다. 오히려 홍콩시위에 대해 일반적인 견해와 다른 논평을 냈던 민중당(현재 진보당)은 홍콩 시위 지지자들에게 대차게 까였다.

물론 홍콩시위가 격해지며 중국 공산당측에서 보인 대응은 상당히 강경적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홍콩시위가 지나치게 극우 반공주의적 관점이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것은 마치 한국전쟁에 대한 일반적인 입장과 다를게 없다.

홍콩 시위가 일어나게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선 중국의 자본주의식 극심한 빈부격차나 생계문제도 한점했다. 즉 홍콩과 중국 사이의 모순에는 자본주의적 모순이 정확히 있다. 그러나 홍콩 시위가 격해지면서 국내의 노동문제나 인권탄압 빈부격차등 자본주의적 모순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극우 반공주의자들이 홍콩 시위를 전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다.(물론 그들의 진 목적은 친미반공기조하에 근거한 중공정권타도지, 홍콩 시민의 생활 질 향상이 아니다.) 박근혜 탄핵 무효를 외쳤던 그들까지 말이다. 미국 공화당 네오콘들도 마찬가지였다. 난 이점이 흥미롭다.

여기서 부터 난 홍콩시위에 대해 많은 의심을 했었고, 지금도 이런점들 때문에 개인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렇다 해서 필자는 홍콩 시위 자체가 파시스트들의 시위라는 일부좌파적 견해라든지, 모든 사람이 미국 앞잡이라든지 하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이 시위 자체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반공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가 없다고 본다.

홍콩시위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딱히 욕하거나 그들이 무조건 잘못됐다 결론짓고 싶지도 않다. 다만 홍콩 문제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려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적으로 ‘너 중공 지지자냐?‘라는 식의 논리는 전개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쨌든 난 홍콩시위에 대해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홍콩시위를 다르게 보는 관점도 필요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홍콩시위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얘기하겠다. 수백만의 참가한 홍콩시위는 걷으로 보기엔 중국 공산당에 맞서는 양상이지만, 그들이 모인 이유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중국의 자본주의식 체제가 빛어낸 극심한 빈부격차다. 그 빈부격차를 해결할 수 있는건 영미식 자유주의 체제는 역사가 입증하듯이 절대 아니다. 결과적으로 전인민적 복지와 민중혜택을 혜택을 적용한 사회주의다. 이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홍콩시위는 사회주의로 나가기 위한 방향으로 가야지, 자본주의를 활성화 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가서는 안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모스크바 공방전이 한참이던 1941년 12월 독일의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미국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은 하와이에 있는 미해군 기지를 기습 공격했다. 애리조나호를 비롯한 다수의 미국 군함과 선박이 파괴되었고, 이로써 27개월간 중립을 표방해오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Pearl of Harbor)의 소식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치 독일에게도 전해졌고, 이 소식을 들은 히틀러는 매우 기뻐했다. 그는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전쟁에서 질 수가 없다. 3천 년 동안 한 번도 정복당하지 않은 나라가 동맹국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런나라에게 공격을 받았으니 루스벨트도 충격이 컷을 것이다.”

 

히틀러의 이런 황당무계한 전제의 밑바탕에는 그가 오래전부터 품어 온 시나리오가 있었다. 즉 일본이 참전하면 미국은 태평양에 발이 묶이게 되고 극동에 식민지를 둔 영국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의 심복이자 선전장관인 괴벨스 또한 이런 히틀러의 반응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히틀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일본과 미국이 전쟁에 돌입하면서 세계의 그림이 확 바뀌었다. 이제 미국은 소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영국에도 변변한 물자를 공급하기 어려운 입장에 놓일 것이다.”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선포하자 히틀러 또한 미국과 전쟁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치독일의 모든 정치권력자들이 미국과의 전쟁을 환영하지는 않았다. 특히나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리벤트로프가 그러했다. 리벤트로프는 히틀러에게 “우리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참가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건 그들의 전쟁입니다. 먼저 미국을 도발한건 일본입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히틀러는 이 말에 대해 “그것은 동맹 조약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듣지 않았다.

 

진주만 기습 공격이 있은 다음날 히틀러는 베를린 주재 일본 대사인 오시마 히로시를 불러 이를 축하해줬다. 또한 히틀러는 12월 8일에서 9일 사이 카를 되니츠 제독이 이끄는 유보트 부대에게 미국 배를 침몰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히틀러와 나치 독일은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차츰차츰 그 과정을 진행해 나갔다.

 

미국을 향한 나치 독일의 선전포고는 진주만 기습 공격 4일 후인 1941년 12월 11일에 이뤄졌다. 목요일 오후에 있던 히틀러의 ‘대미선전포고’ 연설은 1시간 30분 동안 이루어졌다. 그는 연설 전반부에선 유럽 전선 즉 소련과의 전쟁에서 나온 전과를 세세하게 나열했고, 후반부에선 “악마처럼 교활한 유대인의 사주를 받고 루스벨트가 전쟁으로 독일을 파괴하려 한다.”는 주장을 하며 반유대주의를 자극했다. 이렇게 하여 히틀러는 미국을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전선으로 끌어들였다.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한 다음 날 히틀러는 진주만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부터 설명했다. 일본이 나서지 않았으면 독일이 언젠가는 미국에 선전포고를 햇을 것이라 그는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확전이 되면 유보트도 대서양에서 활개를 펼 수 있고, 유보트에 침몰되는 적의 선박도 크게 늘어나며 이것은 전세를 크게 좌우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히틀러는 굳이 일본이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미국하고 전쟁을 할 생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2일 뒤인 12월 14일 히틀러는 베를린 주재 일본 대사인 오시마 히로시에게 독일독수리황금대십자훈장을 수여했다. 이처럼 히틀러는 미국과의 전쟁을 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장밋빛 그림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였다. 오히려 현실을 아주 정확하게 직시했던 인물은 히틀러가 아닌 윈스턴 처칠이었다. 일본이 미국에게 선전포고 했다는 소식을 들은 처칠은 매우 기뻐하며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그는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하는 것을 보며 연합국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후 역사가 증명하듯이 제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미국은 곳곳에서 반공의 가면을 쓰고 다른 나라름 침략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곳곳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중남미·아시아·아프리카뿐 아니라 유럽·오세아니아에까지 손을 벌리는 통에,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미국을 달가워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수많은 인민들도 미국을 싫어합니다. 일본도 미국을 싫어합니다. 미국이 자국을 억압하기 때문입니다. 동양에는 미국의 참략을 받지 않은 나라가 한 곳도 없습니다. 미국은 중국 영토인 타이완을 침략했습니다. 개중에는 미국의 동맹국도 있습니다. 인민들이 불만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조차 미국을 싫어합니다.

 

피압박 민족은 모두 독립을 갈망합니다.

 

만물은 변화하게 마련입니다. 큰 세력이 부패하면 새로운 작은 세력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작은 세력이 커지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변화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미제국주의의 큰 세력도 작아질 것입니다. 미국 인민들이 자국 정부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평생이 이런 변화를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우리 중에는 청조시대에 태어난 이도 있고, 1912년 중화민국 건국 이후 태어난 이도 있습니다.

 

청조는 오래 전에 무너졌습니다. 누가 청조를 무너뜨렸을까요? 그것은 손문이 이끄는 당파 인민이었습니다. 순몬의 세력은 매우 작았기 때문에 청조의 관료들은 이들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는여러 차례 봉기를 일으켰으나 그때마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청조를 전복시키고 말았습니다. 큰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큰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으로 바뀔 것입니다. 청나라를 전복시킨 이후 손문은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인민의 요구, 예를 들자면 토지와 반제국주의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반혁명을 진압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당시는 반혁명 세력이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후에 그는 베이양군벌 사령관 위안스카이에게 패배를 당했습니다. 위안스카이는 손문보다 세력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법칙이 적용되었습니다. 세력이 작더라도 인민과 연대하면 강하며, 세력이 크더라도 인민과 대립하면 약하다는 법칙 말입니다. 이후로 손문의 유산계급민주혁명파는 우리 공산당과 합작하여 위안스카이의 뒤를 이은 군벌 세력을 패퇴시켰습니다.

 

장제스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중국 통치를 승인받았습니다. 22년간 집권하면서 그의 세력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해졌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세력은 보잘것없었습니다. 반혁명 세력을 진압하는 와중에 5만 당원은 1만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적들은 도처에서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법칙이 적용되었습니다. 강대한 적이 실패한 것은 인민과 동떨어졌기 때문이요, 약한 우리가 승리한 것은 인민과 연대하여 인민을 위해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지금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항일전쟁 시기 일본은 막강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국만당 군대는 오지로 밀려났으며, 공산당이 이끄는 무장 세력 또한 적 배후의 농촌에서 유격전을 치를 수 있었을 뿐입니다. 일본은 베이징·텐진·상하이·난징·우한·광저우 등의 대도시를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군국주의는 독일의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몇 년 못 가서 붕괴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법칙이 적용된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퇴각하는 동안, 수십만 병력은 수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장정 25000리 끝에 남은 병력은 25000명뿐이었습니다.

 

공산당의 역사를 살펴보면 좌우 노선 할 것 없이 많은 오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오류는 천두슈의 좌경 노선과 왕밍의 우경 노선이었습니다. 그 밖에 장궈타오·가오강 등도 우경 노선의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오류를 저질렀다고 해서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통해 인민과 당을 교육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일본·미국, 장제스·천두슈·리리산·왕밍·장궈타오·가오강 등 수많은 반면교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면교사에게서 학습하느라 우리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과거에 영국은 우리와 여러 번 전쟁을 벌였습니다. 영국·미국·일본·프랑스·독일·이탈리아·제정러시아·네덜란드 모두 우리의 당덩어리에 군침을 흘렸습니다. 저들은 우리의 반면교사이고, 우리는 저들의 학생입니다.

 

일본에 맞서는 항전의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 군대는 90만 대군으로 발전했습니다. 그 다음 우리는 해방전쟁을 치렀습니다. 우리의 총포는 국민당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국민당 군대는 400만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3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우리가 소탕한 적국의 수는 총 800만에 이릅니다. 국민당은 미제국주의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우리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약한 자가 반드시 승리하는 법입니다.

 

현재 미제국주의가 강하다 하나, 이는 진정으로 강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아주 취약합니다. 대다수의 인민과 동떨어진 탓에,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정부를 싫어합니다. 미국 인민들도 마찬가지로 정부를 싫어합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실제로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 없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겉은 호랑이처럼 보이나 종이로 만들어진 탓에,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합니다. 전체 역사, 즉 인류 계급사회의 수천 년 역사가 입증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강한 것이 약한 것에게 자리를 내준다는 것입니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제국주의가 멸망해야만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종이호랑이가 쓰러지는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스스로 쓰러지지는 않습니다. 종이호랑이를 무너뜨리려면 비바람이 몰아쳐야 합니다. 우리가 미제국주의를 종이호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략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미국은 대수롭지 않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호랑이는 발톱과 이빨이 있습니다. 이 녀석을 쓰러뜨리려면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려야 합니다. 예컨대 이빨이 열 개 있다면 우선 한 개를 뽑아버립니다. 그러면 아홉 개가 남습니다. 다시 한 개를 뽑아버립니다. 이제 여덟 개가 남습니다. 이빨을 다 뽑아버렸으면 이번에는 발톱 차례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나아간다면 결국 승리를 거두고야 말 것입니다.

 

전략적으로는 완전히 무시합니다. 하지만 전술적으로는 중시하는 것입니다. 이들과 전쟁을 벌일 때에는 매 전투마다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현재 미국의 세력은 강대합니다. 하지만 전체 모습을 폭넓은 시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십시오. 미국과 인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미국의 정책을 싫어합니다. 미국은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합니다. 이런 이유로 호랑이는 반드시 거꾸러질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얕잡아 보아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미국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은 철강을 매년 1억톤씩 생산하여 곳곳에서 공격을 일삼고 있습니다. 미국은 철강을 매년 1억 톤씩 생산하여 곳곳에서 공격을 일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과 싸울 때에는 있는 힘을 다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또한 한 번에 하나씩 물리쳐야 합니다. 여기에는 시간이 소요됩니다.

 

상황을 보건대, 라틴아메리카·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은 끊임없이 미국과 충돌할 것입니다. 이는 비비람이 종이호랑이를 박살낼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미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중남미 국가에서 유럽 출신 백인과 본국의 인디오가 단결해야 합니다.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통치 계급이고, 다른 하나는 피통치 계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압받는 백인들은 토착민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같은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의 벗들, 아시아··아프리카의 벗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하는 일도 같습니다. 우리는 인민을 위해 일하며, 제국주의가 인민을 억압하지 못하도록 노력합니다. 우리의 노력이 성공을 거둔다면 제국주의의 억압을 근본적으로 몰아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동지입니다. 제국주의의 억압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여러분과 우리는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다만 지역, 민족, 그리고 언어가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국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제국주의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납니다. 제국주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습니다. 중국 인민은 제국주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인민 또한 제국주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는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1956714, 마오쩌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바마의 아프팍 전쟁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 5
조너선 닐 외 지음, 차승일 옮김 / 책갈피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바마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전쟁

COVID-19가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에선 전쟁이 사실상 종결됐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이 20년간 치렀던 미국과의 전쟁은 그 이전 미국이 치렀던 베트남 전쟁보다도 긴 시간이었다. 그런 전쟁이 올해 2월 29일 도하합의를 성사시키며 미국의 패배로 끝난 것이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인들은 20세기 후반부터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러왔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0년간 전개됐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7~8년 동안의 내전 즉 종족분쟁과 세력분쟁이 1990년대 아프가니스탄을 휩쓸었다. 그런 내전이 얼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아프가니스탄은 2001년 미국과의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었다.

2001년 9.11 테러로 인해 미국인 3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1941년 진주만 기습 공격 이후 단 한번도 자국 영토가 공격받아본 적이 없던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것도 테러리즘에 바탕을 둔 단 한번의 공격으로 진주만 기습 공격 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나왔으니 미국사회는 충격과 공포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공포에 휩싸였다.

9.11 테러를 시작으로 미국이 일반적인 침공을 감행했던 나라가 있다. 하나는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였고 다른 하나가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에 속한다. 이들은 미국에게 침략 받던 시점에서 이미 20년동안 전쟁을 치른 상태였다. 즉 2001년 9월 미국이 침략해서 일으킨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세계 최강의 경제국이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를 공격한 것이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할때 내세운 명분은 크게 나눠 두가지다. 첫번째는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에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여성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국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미국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명분이었지,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진정한 목적은 아니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 진정한 이유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동 사이의 패권경쟁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함이었다.

9.11 테러 이후부터 미국 네오콘의 상징인 도널드 럼즈펠트 국방장관과 부통령 딕 체니는 9.11의 희생양으로써 이라크를 침공하고 싶어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리적으로 이란과 붙어있어 미국이 장악했을시 그들이 소위 ‘악의축‘이라 부르던 이란을 압박하는데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거 이라크에 들어가면 이란을 견제하는데 미국이 매우 유리해진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간 진짜 이유였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은 개전 초기 큰 저항을 받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농촌에서 저항이 일어나긴 했지만, 초반에 들어간 미군이 한 것은 지역을 다스리며 통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4년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선 탈레반이 주도하는 게릴라전이 미군 점령 지역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여기에 미군이 대응하는 방식은 간단했다.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했던 게릴라 소탕 방법 그대로였다.

그 결과 오히려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미국을 더 지지하지 않게 되었다. 미군이 얘기하는 소위 부수적 피해는 민간인들이 많이 죽게되는 이유였다. 과거 베트남에서 그랬듯이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 병력 증강을 감행했고, 이것은 부시 행정부를 이어받은 오바마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오바마는 부시 행정부 보다 더 나갔다. 그들은 탈레반이 있을거라 예상되는 파기스탄까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했다. 2007년부터 시작된 드론 공격은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횟수가 더 늘어났다. 오바마 또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이다.

이 책은 오바마 집권 초기인 2009년에 출간된 책이다. 책에서 언급하듯이 실제로 오바마는 2010년 아프가니스탄의 주둔 병력을 10만 명 이상까지 증강했다. 10만 명까지 증강하던 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미군은 최소 500명을 넘겼었다. 2009년에 집필한 책이기에 그 이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 점이 조금 아쉽다.

지난 12월 필자가 읽었던 ‘아프가니스탄 왜?‘라는 책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이 그것보다 더 났다. 왜냐하면 전자는 아프가니스탄 지원사업에 나섰던 인물이 쓴거라 미국에 대한 비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오바마의 아프팍 전쟁‘은 미제국주의에 대한 고찰이 있다.

미국이 침략해서 일으킨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보였던 미국의 실책과 과오 그 자체다. 미국은 애초에 가망이 없는 전쟁을 일으켰다. 이게 바로 베트남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연결고리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왜 미국의 패배로 끝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